• 이승만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
    ▲ 이승만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

    이승만 박사는 왜 회의에 늘 ‘샌드위치’를 내 놓았을까.

    샌드위치를 먹어보라며 이 박사가 유엔군 사령관에게 권하는 장면에 함께 공연을 보던 이가 웃음을 터트린다. 외국인의 접견인 탓일까, 그의 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오스트리아 출신이기 때문일까.

    사실, 둘 다 정답은 아니다. 이는 6.25 전시 중에 프란체스가 여사가 기록한 일기(‘6.25와 이승만’, 기파랑, 2010)에 잘 설명돼 있는데, 바로 손으로 집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기 때문이었다. 전쟁으로 인해 물자가 매우 귀했던 시절, 경무대(대통령 관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고자 찾은 사람들은 꼭 그 증거로 다과 옆에 놓여있는 포크와 수저 등을 갖고 돌아갔고, 이를 막고자 집기가 필요 없는 샌드위치를 대접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연극을 보는 내내 이를 이야기 해주고 싶어서 입이 간질거렸다. 한 권의 책을 통해 작은 기억을 간직한 필자가 그랬으니, 공연을 기획한 이들은 오죽했을까.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해야 할 말,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았을까.


     

  • 연극 '6.25와 이승만' 포스터 ⓒ 뉴데일리
    ▲ 연극 '6.25와 이승만' 포스터 ⓒ 뉴데일리

    지난 23일 오후 7시. 대학로 예술극장 앞에 있는 편의점에 유독 줄이 길었다. 그 중 유난히 눈에 띄는 이가 있다. 백발의 중년 신사. 그는 손에 햄버거 빵 두개를 든 채 늘어진 줄 사이에 비쭉 서 있었다. ‘누구랑 함께 오셨을까. ‘햄버거를 좋아하시나’. '대학로에는 얼마만에 나오시는 걸까' 계산대 앞에 다다를 때 까지 그렇게 혼자 이런저런 생각에 기분 좋은 미소가 입가에 어린다.

    세월의 유구함은 많은 것들을 잊게 한다. 아무리 깊은 상처라도 아물고 새살이 돋으면서 기억 저편으로 가물가물해지기 마련이다. 아직 휴전선이 가로 막고 있는 분단국가인 우리가 겪었던 6.25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제는 ‘잊혀진 전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6.25전쟁 발발 60주년. 지금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는 결코 ‘잊혀질 수 없는’ 전쟁의 이야기가 한창 공연중이다. 1963년에 창단돼 올해로 47주년을 맞이하는 민중극단의 ‘6.25전쟁과 이승만’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1974년 이후 91년까지 극단 대표를 맡았고 현재 극단 상임연출을 맡고 있는 정진수 전 성균관대 교수가 쓰고 연출한 이 공연은 우리나라 건국 대통령이었으며 6.25 전쟁을 주도한 이승만대통령의 대미 외교 투쟁을 극화한 기록극으로 박봉서, 박기산 등 민중극단의 중진 단원들이 대거 출연하고 있다.

    그간 TV드라마와 영화로 이승만 대통령를 다룬 작품은 있었지만, 연극 무대에서의 만남은 다소 생소하다. 또한, 6.25 전시에서 그의 모습을 만나 본 기억은 거의 없다. 그러한 호기심 때문일까 평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객석은 빼곡이 차 있었다.

    연극의 관객층은 매우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젊은 연인들이 객석을 차지하고 있는데 반해, ‘6.25전쟁과 이승만’은 백발의 노인들은 물론,  대학생,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왔을 키 작은 아이까지 각양각색이다.  이 공연만의 특별한 매력일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울고 웃을 수 있는 공감대가 그곳에 있었다.

     

  • 연극 '6.25와 이승만'. 이승만 대통령(좌)이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중)과 브릭스 주한미국대사(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뉴데일리
    ▲ 연극 '6.25와 이승만'. 이승만 대통령(좌)이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중)과 브릭스 주한미국대사(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뉴데일리

    연극 ‘6.25 전쟁과 이승만’은 대한민국 역사에 있어 가장 비극적인 민족상잔의 역사를 오늘의 시점에서 재조명한 작품이다.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하여 1953년 7월 27일 마침내 휴전협정이 체결되기까지 만 3년을 넘게 지속된 전쟁의 과정 중에서 휴전협정 체결 직전인 1953년 6월부터 11월까지의 약 6개월에 걸친 기간에 경무대(현 청와대) 대통령집무실을 배경으로 벌어진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전략의 구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1953년 6월 18일 일요일에 이승만의 용단에 의해 27,000명의 반공포로를 전격적으로 석방시킨 사건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한 사건과 휴전협정 체결을 서두르던  미국으로 하여금 한사코 주저하던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체결에 동의할 수밖에 없도록 몰고간 그의 벼랑 끝 외교가 2시간동안 빼곡하게 펼쳐진다.

    “인사에는 등신 외교에는 귀신이라는 말이 이 대통령에게 늘 따라 다녔지만 반공포로 석방에서 휴전조인까지 약 한달간이야말로 이 대통령이 외교적 수완을 유감없이 발휘해 혼자 거대한 민국을 상대로 외롭게 투쟁하며 한국의 장래를 위해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쟁취해 낸 극적인 기간이었다해도 조금의 과장이 없을 것이다” (백선엽저, 군과 나, 2009)

    이 작품은 이 같은 역사적 전개과정을 기록극적 수법에 의존해 재구성했으며, 이를 통해 6.25전쟁의 의미와 이 전쟁을 이끌었던 이승만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하다. 과거 수십년간 이어온 한국현대사에 대한 수정주의적 관점을 재수정하여 탈수정주의적 관점에서 균형있는 역사관을 수립하여 대중들에게 지난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케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6.25와 이승만 박사에 대한 아무런 기억이 없는 젊은이들에게 다소 어렵지는 않을까. 하지만 2시간의 짧지 않은 시간동안 배우들을 혹사시켜 긴 호흡으로 대사를 내뱉게 만든 정진수 연출가의 능력은 탁월했다. 극 중간 중간 당시의 사건들에 대한 설명을 끼워넣어 관객들의 당혹감을 줄였다.

    2시간이 너무 짧게만 느껴졌다. 공연기간이 10일 뿐이라는 사실은 더욱 안타깝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꼭 봐야만 하는 공연이다. 공연을 관람한 대학생 이민호(23)씨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됐다"며 "정말 의미있는 공연이었다. 6.25와 이 대통령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 없는 우리 젊은 세대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며 들뜬 표정을 지어보였다.

    눈시울이 붉어진 채 손을 꼭 잡고 극장을 나서는 노부부의 모습 또한 눈에 띄었다. 아마도, 오랜만의 외출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 그들이 겪었을 전쟁의 아픔과 삶의 환희를 더듬었으리라.

    민중극단 이종일 대표는 "최근 일어난 천안함 사태는 우리에게 잊고 지냈던 많은 것들을 상기 시켰고 새로운 의지를 다지게 했다"며 "6.25 전쟁의 상처는 장마철 신경통이 도지듯 다시 욱신거리며 그날의 아픔을 각인 시켰다. 민중극단도 오랜만에 옛 전우들이 모이듯 함께 무대에 섰던 동지들이 한 무대에 모였다. 결과보다도 과정의 소중함을 배워온 연극무대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공연이 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연극 ‘6.25 전쟁과 이승만’은 오는 27일까지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이 나라에 민족 대통령 동상 하나가 없다.”

    민중극단의 연출가이자 前 성균관대학교 정진수 교수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혀를 찼다. 장기집권이라는 오명으로 대통령직을 떠나, 평생 평가절하 당한 이승만 대통령의 외로운 인생에 대한 한탄이다.

  • 연출가, 前성균관대교수 정진수 ⓒ 뉴데일리
    ▲ 연출가, 前성균관대교수 정진수 ⓒ 뉴데일리

    정 교수는 “역대 지도자 중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만큼 욕을 먹은 인물도 드물 것이다.”라며 “하지만 두 사람을 제대로 들여다 본 사람이라면 그런 말은 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단지, 국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애국심, 오직 그 하나로 살았다.”고 설명했다.

    연극의 마지막 장면. 당시, 미국 부통령 닉슨과 이야기를 나누는 이승만 대통령의 모습이 무대에 펼쳐진다. 이후 컴컴한 무대 위에 홀로 선 닉슨 대통령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이승만 대통령과 저의 공통점은 불명예스럽게 일선에서 물러났다는 것입니다. 그는 4.19로, 저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우리는 스스로 자리에서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저와 그에게는 한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저는 죽기 전에 타임지가 선정한 미국인이 존경하는 인물 10명 중 한 사람으로 꼽혔다는 것입니다. 즉, 명예를 회복했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는 아직도 제대로 된 평가가 나오고 있지 못합니다”. 정진수 교수, 그가 가장 전해고 싶었던 메시지리라.

    이승만 대통령의 전기 중 반공포로 석방과 휴전 협정에 관한 이야기를 무대에 올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3년간의 전쟁 중 휴전 직전에 일어난 반공석방과 한미방위조약은 가장 극적인 기록"이라며 "이 박사가 온 몸을 던져 외교적 수완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시간이었다.”고 설명했다.

    최극빈국이었던 우리나라는 3년간의 전쟁을 겪으며 경제적 바닥을 봤다. 이후, 군력에 힘을 사용하면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없는 상황. 이 박사는 한미방위조약을 통해 미군이 국가안보를 책임토록 하고, 경제적 원조를 받아낸다.

    정 교수는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경제성장은 민주화로 이뤄진 것이다.”라며 “특히,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에 올인 할 수 있었던 것과 우리가 현재 OECD 회원국으로서 세계 10위권 안의 경제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근본적 이유가 이 대통령이 이뤄낸 한미방위조약이었다.”고 덧붙였다.

    대본을 쓰기까지 많은 자료와 연구자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그중에서 특히 연세대의 유영익교수와 성균관대의 고 김일영 교수, 그리고 충남대의 차상철 교슈의 연구 논문이 큰 도움을 받았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연극의 특성상 문제도 많았다. 특히, 역사적 시간이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사건을 기록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 역시 적지 않았다. 그는 “대통령 집무실 한 곳으로 장소를 제한했으나, 일상적인 대화나 장면의 연속성을 위한 부분적 설정을 제외한 나머지 중요한 행위와 발언들은 모두 최근까지의 연구서, 논문, 전기, 회고록 및 여타의 기록물 등에서 발췌, 인용한 것들로서 역사적 사실에 기초했다.”고 말했다.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는 현존하는 인물도 있다. 바로, 백선엽 장군이다. 그는 이 대통령의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그를 찾아가 직접 대본을 감수는 수고를 감내했다. 정 교수는 “실존 인물들의 언행은 신빙성 있는 기록에 충실했으나, 비서들의 경우는 개인으로서라기 보다 객관적 시대의 증인으로서의 보조적 역할을 수행하게 했다.”고 전했다.

    한편, 그는 나라와 대통령에 감사할 줄 모르는 이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안되면 다 대통령 탓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을 잘못된 것이다”라며 “부모와 선생님, 나라에 감사할 줄 알고,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정 교수는 “역사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던 젊은이들과 정체성을 잃은 국가 공무원들, 그리고 고위직에 있는 군인들에게 연극을 꼭 보라고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소망은 광화문에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을 세우는 것이다. 그것이, 비뚤어진 한국현대사를 바로잡는 해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집권 말기에 실책이 있었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 그에게 진 빚은 너무나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