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쇠고기 수입문제로 촛불시위가 일어났지만 미국 쇠고기가 아니었다면 과연 촛불시위가 일어났을까.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린 사람이 아직 한 사람도 발견되지 않았는데도, 3개월 이상 미쇠고기 수입반대 촛불 광풍이 휘몰아쳤던 것은 기본적으로 반미감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촛불시위는 2002년 의정부 여중생 효순·미선사건에서 시발된 이후 2008년 미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반미감정과 연계되어 있었다.

    2002년 6월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효순·미선 사건을 일으킨 미군병사 2명이 2002년 11월 미국 법정에서 무죄로 평결된 것이 광화문 촛불시위의 촉발계기가 되었다.

    당시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붉은악마’의 단합된 거리응원 경험과 대한민국 축구 4강 신화에 대한 자부심 등이 미국법원의 무죄 평결을 계기로 대규모 반미 촛불시위로 연결된 것이다. 이것은 2002년 12월에 있었던 제16대 대통령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만큼 사회적 영향력이 컸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재임한 토마스 허바드(Hubbard) 전 주한미대사는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 당시 부시 대통령이 사과하도록 강력하게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후회로 남는다고 술회하였다 한다.

    효순·미선 추모 촛불시위가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이후 촛불시위는 좌성향을 가진 반미세력에게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는 평택시 팽성읍 촛불시위는 2004년 9월 1일 처음 시작된 이래 2007년 3월 24일까지 4여년에 걸쳐 935일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었다.

    2007년 3월말 한미FTA 체결을 위한 한·미간협상이 진행되고 있을때 이를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서울시청 앞 광장 등에서 일어났다. 한미FTA가 체결된 6월 30일 이후에도 한미FTA 체결 반대 촛불시위는 상당기간 지속되었다.

    미국 부시 대통령이 북경월드컵 개막식 참석차 중국에 입국하기 직전2008년 8월 5일, 한국을 방문하였다. 반미세력들은 부시 대통령의 방한을 반대하는 촛불시위를 개최하였다.

    이처럼 촛불시위의 소재는 대체로 좌성향 세력들이 투쟁대상으로 삼고 있는 반미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북한은 물론 중국이나 일본을 비판해야할 상황에서도 촛불시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미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가 위축될 무렵인 2008년 7월 금강산에 갔던 여성 관광객 한 명이 북한군으로부터 피살당하는 반인권적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반북 촛불시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2004년 4월 고구려사 문제로 중국과 심각한 외교적 갈등이 있었을 때나 2008년 10월초 먹거리에 불안감을 증폭시킨 중국산 멜라민 파동이 일어났을 때도 단 하루도 반중 촛불시위가 일어나지 않았다.

    2005년도에는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2월 22일) 지정, 중학교 역사교과서 검정문제 등으로 한·일간 심각한 외교분쟁이 일어났을 때도 항일 촛불시위는 일어나지 않았으며, 2008년 7월 일본 정부가 중학교 교사의 교육지침으로 사용될 ‘사회·과학교과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일본명은 다케시마)가 일본 영토임’을 명기하는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반일 촛불시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일본보다 미국을 더 미워하는 셈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촛불시위에는 분명 반미감정이 스며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 국민들의 반미정서는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김충배 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 최근 밝힌 “2004년 1월 육사 가(假)입교생 의식조사”에 따르면, 당시 250여명의 가입교생 중 무려 34%가 주적(主敵)이 ‘미국’이라고 답했고, ‘북한’이라고 답한 입교생은 33%에 머물렀다. 깜짝 놀라 주적이 미국이라고 답한 34%의 학생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전교조 교사들에게 그렇게 배웠다”고 답했다고 한다. 김충배 전 육사교장은 금성출판사에서 만든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를 보고 좌편향에 놀랐다고 한다. 이에 김 교장은 이들의 잘못된 안보의식을 바로 잡기 위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대안 역사교재를 만들기도 하였다. 이 역사교재는 발행되지 못하고 있다가 2008년에 비로소 『사실로 본 한국 근현대사』 이름으로 간행되었다.

    2004년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우리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나라’를 묻는 질문에 ‘미국’이라고 답한 사람(39%)이 ‘북한’이라고 답한 사람들(33%) 보다 많았다. 같은 해(2004년) 국방부가 실시한 ‘입대 장병 의식조사’에서도 75%가 반미 감정을 드러냈고, 공산주의에 비해 자유민주주의가 우월하다고 답한 장병은 36%에 불과했다고 한다. 2005년 16-17세를 대상으로 한 갤럽조사에서는 “미국과 북한이 전쟁을 하면 북한을 돕겠다”는 응답이 65%에 달했다.

    이러한 국민들의 반미정서는 ‘이념주의’에 치우쳤던 노무현 정부를 지나면서 약화되는 경향이 있지만, 여전히 반미성향은 심각한 수준이다. 

    2008년 6월 23일 행정안전부가 “리서치&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중·고생 1,01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안보·안전의식 설문조사에서 ‘우리나라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국가’를 묻는 질문에 미국(28.4%)이 가장 높았으며, 다음이 일본(27.7%)이고, 북한은 24.5%로 3위에 그쳐, 충격을 주고 있다. 친구와 적을 구별하지 못하면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미국은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많이 도와주었고, 정치·외교·경제적으로도 협력하고 있는 친구 같은 국가라면, 북한은 정부수립 후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침략하고 무너뜨리는 것을 명시적인 목표로 삼고 있는 세계 유일의 나라 즉 적국이라는 것을 왜 알지 못하는가.

    ‘안보를 위해 협력이 필요한 국가’로는 미국(34.6%)이 가장 많았으나, 북한이라는 응답도 22.3%에 이르렀다. 또한 중국(17.7%)·일본(14.8%)·러시아(6.6%) 등을 미국 보다 더 좋은 안보협력대상으로 생각하는 비율이 41.1%나 되었다. 미국을 안보협력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비율이 65%에 이른다는 것은 청소년들 의식 속에 반미정서가 상당히 내재되어 있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