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19일자 오피니언면 '포럼'란에 김형국 서울대 교수(지역개발학 전공)가 쓴 <말도 안되는 ‘우리민족끼리’ 통일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그때만 해도 언문과 진서가 구별되던 시절이었다. 내가 갓 초등학교에 들어간 것이 1948년인데, 늦게 집에 돌아가니 어른이 어디 다녀왔는지 물었다. “‘친구’하고 놀다오는 길”이라 여쭈었다가 “예끼 이놈, 아이들끼리는 ‘동무’라 해야지” 하는 주의를 받았다. 동무라는 말은 6·25동란이 나자 졸지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입에 올리는 법이 없었다. 그 순수 우리말이 정치적 동지를 일컫는 북한말로 선점됐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가 훌쩍 넘은 요즈음도 우린 ‘어깨동무’처럼 ‘동무’에다 다른 관형사를 붙여 드물게 쓸 뿐이다.

    말이 갈라진 것은 남북분단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그 사이 남북은 가속·중첩적으로 갈라졌다. 첫째는 1945년에 점령군에 의해 국토가 갈라지는 지리적 분단이었다. 둘째는 1948년에 2개 정부가 남과 북에 각각 들어서는 정치적 분단이었다. 남에는 자유·민주주의를 국시로 삼은 대한민국이, 북에는 공산주의를 앞세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탄생했다. 셋째는 1950년에 북의 남침으로 발발한 동족상잔이 민족을 분단시켰다. 민족이 문화공동체라는 말이기도 한 점에서 민족 분단은 언어 분단으로도 이어진 것은 당연했다.

    결국 한반도에는 2개의 ‘국민·국가’ 또는 ‘민족·국가(nation-state)’가 생겨났다. 국민국가는 민족주의와 국가주의가 두 근간이다. 전자로 말하면 종족·문화적 동질성이 전제된 민족은 가족의 연장이기에 그만큼 함께 살 수 있는 친화성이 좋다는 발상법이고, 후자는 법과 질서를 지키면서 공존공영을 누릴 수 있는 장치로서 국가라는 존재가 필수적이라 보는 발상법이다. 때문에 한반도의 두 국민국가가 오래 공유한 역사적 인연을 중시해서 통일을 이룩하자면 ‘우리의 소원은 통일’ 식의 민족주의만 부르짖어 될 일이 결코 아니다. “진정한 민족의 역사는 그 자신만의 국가를 얻으면서 시작된 것”이란 헤겔의 명쾌한 지적처럼, 그리고 같은 민족이지만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다른 국가로 살아가는 엄연한 현실이 말해주듯 민족주의보다 국가주의가 더 상위가치인 것이다. 국가주의로 따지면 국호(國號)에서 내걸었으니 같은 민주라 치부한다 해도 북은 세습형 변질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데 비해, 남은 자유를 거의 절대시하는 등 그 속성이 전혀 다르다.

    한반도 통일은 원론적으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통합적 수렴이고, 단계적으로는 분단역사의 전개순서를 되돌아가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되돌아가자면 무엇보다 먼저 6·25로 갈린 민족 분단을 봉합해야 하는데, 여기엔 상호 신뢰 구축이 절대필수다.

    신뢰는 우선 말이 통해야 한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남쪽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겠다”는 데 이어 계속 ‘말 같잖은 말’만 던지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열렸던 남북장관급 회담에서 “미사일 발사는 군부가 한 일이라 우리는 모른다”면서, 같은 입으로 “남측 대중이 선군(先軍)정치의 덕을 보고 있다”했다. 앞에서 ‘모른다’한 군부는 어디 군부이고, 우리에게 덕을 입혀준다고 ‘알고 있는’ 선군은 어디 군부란 말인가. “적화는 되었고 아직 통일만 미완”이란 과신 끝에 남한의 일부 주사파가 들으라고 한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북한군의 휴전선 일대 집중 배치를 익히 아는 다수 국민은 북측 말을 두고 “고양이, 쥐 생각한다”고 가소롭게 여기거나, 말답지 않은 말이니 아예 듣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지 싶다.

    동무란 말이 사어(死語)가 되었듯이, 요즈음 나는 어쩌다 만나는 전직 장성을 예우로 ‘장군님’이라 부르길 주저한다. 전지전능하다는 한 ‘장군님’이 인민을 굶기는 모순이 상기되기 때문인데, 이러다간 ‘장군님’ 호칭도 언제 사어가 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