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18일자 오피니언면에 숙명여대 겸임교수인 송영대 전 통일원 차관이 쓴 시론 <'나이브한 대북관'이 북(北)간만 키웠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북한이 미사일 2차 발사를 할 때 마침 평양에 머물렀던 로버트 스칼라피노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남북 교류는 해야 하지만 북한 실체에 대해 ‘나이브(Naive)’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 인사들은 계속 나이브한 발언과 행동을 보여 줘 국민을 불안케 하고 대북정책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올바른 대북관에 입각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대북정책이 요구된다.

    우리는 먼저 핵과 미사일을 가진 북한과 평화공존이 가능한지를 냉철히 살펴봐야 한다. 대한민국의 대북정책 기조가 ‘선(先)평화공존, 후(後)통일’이라고 할 때, 남북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평화공존의 제도화에 있다. 평화공존을 세분하면 평화정착과 교류협력을 합성한 개념으로, 그동안 남북 간에는 교류협력이 활발히 진행돼 왔다.

    반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통한 긴장 조성행위로 평화정착은 엄두도 못 낼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 결과 남북관계는 ‘평화 없는 교류협력’이라는 사상누각과 같은 왜곡된 구조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남북 간에 군사력 균형이 유지되어야 하는데,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로 이 균형이 깨지고 있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 균형 파괴에 따른 남측의 군사력 공백을 미군이 감당해 왔으나 최근 한미 동맹의 균열로 어떻게 그 공백을 메워 나갈지 불투명해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의 대북금융 제재에 대해 ‘목 자르고 따지는 격’이라고 발언했다고 한다. 그는 또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선과 악의 대립개념으로 보기 때문에 미국을 더욱 설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처럼 틈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한미 공조에 의한 한반도 평화정착은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그 결과 핵과 미사일을 가진 북한과 이를 갖지 못한 남한 사이에 평화정착 내지 평화공존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점에서 정부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포기를 대북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북한이 남한을 평화정착의 상대로 인정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남한 정부를 경제지원이나 해 주는 ‘봉’으로 볼 뿐 군사문제 해결의 대상으로는 인정하지 않고 미국만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도하려면 강력한 대북 제어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 북한이 남한과의 평화정착에 호응해 오면 보상해 주고, 군사적 위협을 하면 제재를 가하는 당근과 채찍을 배합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다음 날에도 비료 지원을 계속했고 개성공단 사업과 금강산 관광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유화정책으로는 결코 북한을 평화정착 상황으로 끌어 낼 수 없다.

    정부는 지금껏 평화정착을 위한 과제는 전혀 외면한 채 ‘민족공조’로 문제를 풀어 보겠다고 매달려 왔다. 정부 당국자들은 지난번 광주에서 열린 6·15공동선언 6주년 기념행사 때 북측 인사들과 어울려 통일 분위기를 돋우면서 ‘우리 민족끼리’를 외쳤다. ‘통일’ ‘민족’ 등의 감상적인 구호로 남쪽의 눈과 귀를 멀게 하려는 북한의 최면전술에 맞장구를 치면서 축제를 벌였다.

    그 사이 북한은 은밀히 미사일 발사를 준비해 왔고, 마침내 ‘민족공조’에 잠들어 있는 남한 당국자들의 뒤통수를 친 것이 아닌가.

    이런데도 열린우리당 김원웅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은 “북한은 미사일을 자위 수단으로 사용한다고 했지 남한을 공격한다고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이 ‘민족공조’와 관련된 것이라면 그것은 독(毒)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