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3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북측 단장이 안하무인(眼下無人)식 발언을 했다. 그는 한·미 군사훈련 중지와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했다. 혁명열사릉 등에 대한 남측 인사의 참배 허용도 요구했다. 미사일 발사에 대해선 며칠 전 나온 외무성 대변인 발언을 참고하라고 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듣자고 회담에 그렇게 연연했나. 이 정부가 한심스럽다.

    압권은 '북의 선군(先軍)정치가 남측의 안전을 도모해 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쌀 50만t 지원을 요구했다. '미제의 침공에 맞서 핵과 미사일로, 북은 물론 남도 보호해 주고 있으니 남측은 그 대가로 지원을 하라'는 것이다. 북측은 미사일 발사라는 '정상적 군사훈련'을 할 수 있지만 남측은 군사훈련하면 안 된다는 강변도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한국을 '조공국'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기막힌 지경에 온 것은 어찌 보면 예견된 일이었다. 대통령이 나서 모든 물질적·제도적 지원을 하겠다는 등 지원을 못해서 안달을 부렸다. 국제범죄인 위폐나 처참한 북한 인권 문제 등에선 북한을 감싸느라 안달이었다. 심지어 미사일을 발사해도 북한보다도 일본을 탓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다.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난 건지, 아니면 '이념적 신조' 때문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 개인의 신조 때문에 나라가 이렇게 망가질 수는 없다.

    남쪽 대표라는 사람은 제대로 항변조차 못하고 있다. 이런 소리 듣자고 남북회담 했는가. 미사일에 대해서는 겨우 마지못해 한마디하고 이제는 조공까지 바치라는 얘기를 듣는 정도가 되었다. 북한이 이렇게 오만한 태도를 보인 것은 '남측은 안중에도 없다'는 뜻이다.

    이 정부는 '대화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이번 회담을 강행했다. 그러나 북한의 의도에 대해선 백치(白痴)임을 여실히 드러냈다. 대북 정책을 원점에서 재고하라. 이렇게 협박당하고 끌려가는 남북대화는 더 이상 안 된다. 국민은 분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