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1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문창극 주필이 쓴 '차라리 김정일에게 배워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북한 외무성은 미사일 발사 후 대변인의 입장을 밝혔다. 자위적인 국방력 강화를 위해 정상적으로 진행한 군사훈련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힘의 균형을 얘기했다. "힘의 균형이 파괴될 때 불안정과 위기가 조성되며 전쟁까지 벌어진다"면서 "미사일의 개발은 힘의 균형을 보장하고 평화와 안정을 보장해 준다"고 말했다. 힘으로 북한체제를 지켜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미사일을 개발한다는 요지였다. 북한이 핵을 개발한 논리도 똑같다.

    이는 "북한이 경제적 파탄에 빠져 있으므로 무력도발할 능력이 없다"는 사람들의 말과는 전혀 다르다. 북한은 재래식 무기로 힘의 균형을 이룰 수 없으니까 핵과 미사일을 만든 것이다. 또 '민족끼리'를 주장하는 북한이니까 전쟁은 없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생각과도 다르다. 북한은 민족 우선이 아니라 힘이 우선이다. 선군정치, 강성대국이 바로 그것이다. 북한 경제는 엉망이더라도 핵무기와 미사일로 나라를 지켜 가겠다는 철저한 힘의 논리를 신봉하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당연한 주장이다. 자기 나라를 힘으로 지키겠다는 그들을 나무랄 수 없다. 그러면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김정일 정권의 유지다. 더 나아가면 북한의 방식으로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노동당 규약에는 공산주의로의 통일이 명문화돼 있다. 그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북한의 국익이다.

    뉴욕 타임스는 사설에서 미사일 사태를 분석하며 중국과 한국을 북한의 우호국가로, 미·일을 그 반대편으로 지칭했다(6월 20일자). 이를 확인이나 시켜 주듯이 대변인 발표에 남한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없다. 미국과 일본만을 비난했다. 왜 그럴까. 한국이 자신들에게 필요해서인가, 아니면 한국은 군사력이 아예 상대도 되지 않는다고 깔보아서일까. 둘 다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핵을 가진 국가와 재래식 무기만 갖고 있는 국가 간에는 군사력의 균형을 유지할 수 없다. 핵무기라는 절대성 때문이다. 북한은 한국의 경제력이 자기들 체제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믿고 있다. 미·일이 경제적 압박을 가해 와도 한국이 북을 도와주면 버틸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지금 거의 유일한 북한의 젖줄은 한국이기 때문이다.

    힘의 정치를 추구하는 북한은 군사력 우선이다. 미국과 직접 대화를 원해도 대화만 내세우지 않는다. 이번의 경우도 그렇다. 힘을 과시해 대화로 끌어들인다. 남북관계에서도 이는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방북을 위해 남북 인사 간에 철도 연결을 합의했지만 북한의 군이 거부했다. 바로 이런 점이 남북관계의 맹점이다. 우리는 경협을 통해 북한을 움직일 수 있다고 계산을 하지만 북한에게 경협은 군사의 하위 개념이다. 햇볕정책이 성과가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퍼주기'로 아무리 도와주어도 군사력에서는 양보가 없다. 그들은 힘의 질서를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 경협으로는 핵과 미사일 문제를 풀 수 없다.

    북한은 이렇듯 철저한 힘의 논리로 나가는데 한국의 처신은 모호하다. 한쪽은 힘을 말하고 있는데 다른 쪽은 대화와 협력만 강조하고 있다. 6.15 기념을 한다며 광주에서 평화와 통일을 외쳤다. 한 달도 안 되어 북한은 미사일을 쏘았다.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 대해 설명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전략적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대통령이 강경한 입장을 밝히면 국민이 불안해할까 봐 그렇다고 한다. 지금 국민은 대통령의 침묵에 더 불안해하고 있다. 북한이 힘의 논리로 나가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국민은 듣고 싶어 한다.

    북한이 힘을 과시하고 나오면 우리도 힘을 바탕으로 나서야 한다. 우리 힘의 근원은 한·미동맹이다. 한·미동맹은 최악의 상태로 만들어 놓고 북과 대화와 협상을 말해봐야 북한은 듣지 않는다. 북핵과 미사일은 우리만 눈감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유엔 안보리가 소집되는 것이다. 이제는 북핵과 미사일 해결을 위해 국제 공조에 성실하게 참여하는 길뿐이다. 경제적 압박이 필요하다면 경협도 중단해야 한다. 그들은 그들의 국익에 충실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국익을 지켜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으로서의 의무다. 힘으로 체제를 지키고자 하는 김정일에게 차라리 배우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