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지식인 聰明 씨,
    어느 탈북 외교관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북한에도 ‘좋았던 옛날’ 같은 것이 있습니다” 라면서 그는 주체사상이라는 게 횡행하기 전, 그래도 정통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지배적인 이념으로 있었던 50년대 중반 무렵을 예로 들었습니다. 전후(戰後)라서 물자는 풍족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좌파 지식인적 행세를 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대로 지식의 여운이 남아 있었고, 이론급 담론이 남아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다가 주체사상이 들어오고, 마르크스 레닌 서적을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모조리 압수한 이후부터 분위기가 꽁꽁 얼어붙었다는 것입니다. 이 외교관은 이런 이야기도 했습니다. “쿠바에 가보았더니, 야, 사회주의도 이런 식으로 할 수 있구나! 하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쿠바식 ‘낭만적 사회주의’에 눈이 휘둥그래졌다는 것입니다. KAL기를 폭파한 김현희 씨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정통 마르크스 레닌주의도 가고, 쿠바 모델도 갔습니다. 이제는 오직 중국, 베트남 식만 남았습니다. 그 모델 역시 억압, 비밀경찰, 부정부패, 과대성장국가(시민사회가 없는, 너무 압도적으로 큰 국가)의 비효율, 특권층의 전횡,..이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는 채 말입니다. 그렇다면 聰明 씨는 김정일 사후에 북한 엘리트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김정일 사후에는 김일성, 김정일 식 수령독재는 중장기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자전(自轉) 훈련을 받아보지 못한 당(黨)에 의한 제도적인 독재인들 중국 베트남처럼 되겠습니까? 결국 남는 건 군(軍)밖엔 없겠지요. 그러나 군(軍)이 남쪽의 박정희 정권 같은 ‘근대화 혁명’을 수행할 만한 자질, 두뇌, 성향, 비전을 과연 가졌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들 상층부야말로 김정일과 더불어 부패한 특권을 누린 층 아닙니까?

     그렇다면 역시 중요한 것은 聰明 씨 같은 지식인의 역할입니다. 그곳 지식인의 힘과 비중은 매우 취약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나마 생각할 줄 아는 지식인들은 지금부터라도 김정일 사후의 북한의 진로에 대해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고민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의 단계에서는 "이렇게 저렇게"라는 식으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나에겐 물론 의견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의견을 말하기 전에 당신 같은 북한 엘리트가 스스로 길을 찾아 지적(知的) 순례와 고행(苦行)을 할 것을 권하려 합니다. 그 순례과정의 토론과 대화 상대는 되어 줄 수 있읍니다. 어차피 북한의 장래는 북한의 엘리트 당신들이 선도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자조(自助)의 노력이 먼저 있어야 남이 조언(助言)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주체사상, 수령절대주의, 극단적 민족주의, 쇄국주의, 극단적 반(反)시장, 극단적 반(反)세계, 극단적 인권유린, 극단적 우민화(愚民化)가 북한을 망쳤습니다. 사회주의인들 그렇게 하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聰明 씨, 김정일은 머지 않아 죽습니다. 그 이후의 보다 나은 대안을 궁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