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찰총국 위장기업 中서 활개…‘화성-12형’에 중국 부품 사용
  • 北예성강 호가 중국 상선으로 물건을 옮겨 싣는 장면을 찍은 위성사진. ⓒVOA 보도-美재무성 공개사진.
    ▲ 北예성강 호가 중국 상선으로 물건을 옮겨 싣는 장면을 찍은 위성사진. ⓒVOA 보도-美재무성 공개사진.


    중국이 북한과 서해상에서 선박 간 운송을 통해 석유류 제품을 밀수하고 있다는 ‘조선일보’의 26일자 보도 이후 북한의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개발 과정에서 중국은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미국, 일본, EU, 호주 등의 독자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계속 외부 세계와 거래를 하며 외화벌이를 하고 에너지 자원 등을 입수하고 있다는 주장은 오랫동안 나온 이야기다.

    그러나 갈수록 강력한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이 나옴에도 북한 내부에서 동요하는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고, 김정은 정권은 계속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에 주력하는 행태는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였다.

    이를 두고 국내외 북한전문가들은 ‘중국’을 의심했다. ‘미국의 소리(VOA)’나 ‘자유아시아방송(RFA)’, ‘아시아프레스’, ‘38노스’처럼 북한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매체들은 “중국이 단둥을 비롯해 공식 무역 경로는 지난 9월부터 차단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국경 지역과 서해 일대에서의 밀수는 오히려 더욱 증가했다”는 소식을 계속 내놨다.

    이때 美정부가 의미심장한 증거를 공개했다. 먀샬 빌링슬리 美재무부 테러·금융 담당 차관보가 美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해상에서 밀수를 하는 북한 선박들을 찍은 위성사진을 공개한 것이다. 해당 내용은 곧 세계 주요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이후 美정부를 필두로 국제사회는 ‘대북 해상운송 차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12월 12일(현지시간) 美워싱턴에서 나온 씽크탱크의 보고서는 중국이 김정은 정권의 숨통을 틔여주고 있다는 정황을 더욱 확실히 보여줬다.

    이날 韓세종연구소와 美국방문제연구센터(C4ADS)은 ‘외환효과: 미국 달러, 해외 네트워크, 북한의 불법금융’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김정은 정권이 정찰총국을 중국에 보내 위장기업을 앞세워 외환 거래를 계속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1월 홍콩의 ‘셴강 무역투자 유한공사’라는 회사가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 계좌를 이용해 아시아 지역의 한 전자재품 도매상에게 1만 5,000달러를 송금했다고 한다. 민수용 GPS 장비 등을 판매한 대금이었다.

    해당 전자제품 도매상은 통신장비업체 ‘글로콤’에게 장비를 판매한 뒤 대금을 ‘글로콤’ 중국 지사에게서 받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글로콤’과 ‘셴강 무역투자 유한공사’가 北정찰총국이 차린 위장기업이었다고 한다. 소재지는 각각 中단둥과 말레이시아였지만 실제로는 北정찰총국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관련 물품을 구매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었다.

    보고서는 ‘글로콤’과 ‘셴강 무역투자 유한공사’의 거래가 美재무부의 대북제재 이후 김정은 정권이 외환거래를 하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北정찰총국은 ‘글로콤’ 같은 위장기업 외에도 해킹그룹 ‘라자루스’, 북한산 석탄을 수출하는 ‘원방무역’ 등을 운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北정찰총국이 만든 위장기업과 조직들은 ‘고려대성은행’과 자회사 ‘대성신용은행’ 등을 거쳐 노동당 39호실, 즉 김정은 정권의 비자금 창구로 모인다고 한다. 美재무부는 이런 외환거래 구조를 파악한 뒤 2010년 ‘고려대성은행’을, 2013년 ‘대성신용은행’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고 한다.

    美C4ADS는 지난 6월에 발표한 보고서 ‘위험한 비즈니스: 북한의 무기확산 자금시스템 분석’을 통해서 中단둥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중국인 쑨쓰동과 그 가족들이 운영하는 기업 ‘단둥 둥위안’이 레이더 항법장치, 로켓추진수류탄(RPG) 등을 북한에 수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韓세종연구소와 美C4ADS가 공동 발표한 北금융거래 보고서. ⓒ美C4ADS 배포
    ▲ 韓세종연구소와 美C4ADS가 공동 발표한 北금융거래 보고서. ⓒ美C4ADS 배포


    美재무부는 이후 ‘단둥 둥위안’을 제재 대상에 포함시키면서 “이들이 무선 항법장치 등의 전자기기, 알루미늄, 철, 원전 관련 부품 등 2,800만 달러 상당의 주요 물품을 북한에 팔아 넘겼다”고 지적했다.

    美C4ADS만 이런 지적을 한 것이 아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일명 ‘1714위원회’의 전문가 패널들 또한 그동안 중국이 김정은 정권의 숨통을 틔워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보고서를 계속 내놨다.

    지난 2월 美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1718위원회 전문가 패널들의 보고서를 인용해 “중국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정권의 수명연장을 위해 북한으로부터 다량의 석탄, 금, 철광석 등이 불법적인 경로로 계속 유입되는 것을 놔두고 있다”면서 2016년 12월 중국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321호를 무시하고 ‘대북 석탄수입량 규제 한도’의 2배에 달하는 석탄을 수입한 사례를 꼽았다.

    당시 ‘포린 폴리시’가 인용한 보고서는 북한의 은행과 기업 등이 중국에서 광범위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중국 당국이 이들을 용인한 때문에 북한이 국제금융망에 진입할 수 있고, 대북제재에도 여전히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유엔 안보리와 美정부로부터 동시에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 대동신용은행(DCB)과 대성은행의 중국 다롄, 단둥, 셴양 지점은 계속 영업을 하고 있으며, 2011년 7월 중국 업체가 이들 북한은행의 지분 60%를 사들여, 현재는 사실상 중국 소유 은행이 됐음을 밝혀냈다고 한다.

    보고서는 또한 중국에서 활동하는 北외화벌이 조직들은 중국에 있는 국제금융기관을 이용해 현금, 금괴 등을 거래하고 있으며, 관련 거래에서 중국 정부가 직접 개입한 명확한 증거는 못 찾았지만 중국 금융기관을 이용하는 것을 허용해 국제사회가 ‘대북제재 위반’을 적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 美포린 폴리시는 지난 2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위원회 전문가 패널들이 작성한 보고서를 인용, 중국 당국이 김정은 정권의 수명을 연장시켜 주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美포린 폴리시 관련보도 화면캡쳐.
    ▲ 美포린 폴리시는 지난 2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위원회 전문가 패널들이 작성한 보고서를 인용, 중국 당국이 김정은 정권의 수명을 연장시켜 주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美포린 폴리시 관련보도 화면캡쳐.


    ‘포린 팔러시’는 “중국이 (北외화벌이) 조직들의 불법적인 무역과 운영을 돕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나 사고가 아니며 중국은 ‘안보’를 이유로 북한의 활동을 용인하고 있다”는 윌리엄 뉴스컴 前유엔 대북제재 위원회 전문가의 말도 인용했다.

    ‘포린 팔러시’는 북한이 2006년부터 핵실험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잠수함 발사탄도탄(SLBM)을 포함해 26번의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을 했다는 점을 상기시킨 뒤 “中당국의 이런 행태는 트럼프 美대통령이 ‘중대한 안보 위협’이라고 지적한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개발 과정에도 중국이 모종의 도움을 주지 않았는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또한 중국이 대북제재에 구멍을 내 김정은 정권을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발표한 보고서에는 “북한이 발사한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의 액체 연료 로켓에 사용한 열펌프, 미사일 본체 일부로 사용한 탄소 섬유는 중국이 수출한 것”이라고 지적, 북한의 탄도미사일 개발을 중국이 사실상 지원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전 세계가 김정은 정권의 후원자로 중국을 꼽고 있음에도 현재 한국 정부는 중국을 향해 당당하게 항의하기는 커녕 정당한 의견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