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원석 칼럼] 憲法의 이름으로 헌법가치 훼손하는 판·검사들
  • ▲ 서울중앙지법·서울고법 청사.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서울중앙지법·서울고법 청사.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판결문과 공소장으로 입장을 밝혀야 할 판·검사들이 ‘정치’에 빠졌다.

    지난 정권 적폐사건 수사에 모든 수사력을 쏟아 붓고 있는 검찰은 법원의 구속적부심 및 영장실질심사 결과에 수시로 입장문을 내, 노골적인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범죄 혐의가 ‘소명’되지 않거나, 혐의에 있어 다툼의 여지가 있을 때, 피의자의 직업·경력 등에 비춰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염려가 없다면,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을 받도록 하는 것이 우리 헌법의 원칙이란 사실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그러나 중고교 사회교과서에도 소개돼 있는 이들 원칙이 현실에서는 통용되지 않고 있다.

    ‘검찰이 혐의를 인정했으면 법원은 영장을 발부하면 된다’는 식의 고압적 태도는, 세상이 30년 전 군사독재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

    ‘검찰이 정권의 입맛에 맞는 하명(下命)수사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법조계 안팎의 날선 비판에, 서울중앙지검이 낸 입장문은, 껍데기만 남은 검찰 독립의 허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난달 27일 중앙지검 2차장 명의로 나온, ‘최근 중앙지검 수사팀의 수사방향과 구속 문제에 관하여’라는 긴 제목의 입장문은 그 자체로 이례적이다. 검찰이 수사의 방향 혹은 흐름과 관련해 별도의 입장문을 낸 것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내용이다.

    입장문에서 검찰은, 국정원과 군(軍)의 선거개입 정치관여 의혹을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고 헌법 원칙을 훼손한 중대 범죄’라고 정의내리면서, 수사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이것으로 부족했는지, 여의도 정치권에서나 나올법한 수사(修辭)를 같다 붙여 수사의 정당성도 강조했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정보 공작정치와 군의 정치 개입에 종지부를 찍고자 한다”는 검찰 주장은, 마치 정치인의 출마 선언문을 연상케 할 만큼 현란하다.

    특히 “우리 법이 채택한 대륙법계 구속제도에서 중대범죄가 인정돼 무거운 처벌이 예상되면 증거인멸과 도주 염려가 있다고 간주된다”거나, “피의자 개인별로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는지, 도주 우려가 있는지를 따지는 것은 구속이라는 인권제한조치의 기준을 애매하게 만들어 평등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는 주장은, 검찰이 고약한 독선에 빠져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런 논리라면 사법부의 재판은 있을 필요가 없다. 영장실질심사도 구속적부심도 존재 의미가 없긴 마친가지다. 혐의인정 여부는 검사가 판단하면 충분하고, 그 판단의 당부는 따질 필요가 없다는 말과 같다. 이런 초헌법적, 위헌적 주장이 검찰의 공식 입장문에 담겼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다.

    ‘적폐 청산’을 명분삼아 검찰이 광기어린 독선에 사로잡혀 있는 사이, 법원에서도 정치적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현직 부장판사가 다른 법원 재판부의 결정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여론재판을 경계한 대법원장의 발언을 탓하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동료 법관과 대법원장을 싸잡아 비난하면서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끈 당사자는 김동진(48·사법연수원 25기) 인천지법 부장판사다.

    김 부장판사는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51부 신광렬 수석부장판사를 비난하는 내용의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는 “서울지법 형사수석부의 3회에 걸친 구속적부심 석방결정에 대하여, 나는 법이론이나 실무 측면에서 동료법관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며, “위 석방 결정에 대하여 납득하는 법관을 한 명도 본적이 없다”고 했다. 김 부장판사는 “법관 생활이 19년째”라고 자신의 경력을 앞세우면서, “구속적부심에서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법조인들조차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을 비판하는 것이 왜 정치행위로 폄훼돼야 하느냐”며 여론재판을 경계한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

    한술 더 떠 그는 “신임 대법원장님이 해당 이슈에 대해 침묵했어야 한다”, “상식에 어긋나는 판결을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형국” 등의 표현을 써,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앞서 김명수 대법원장은 1일 열린 故 이일규 대법원장 추념식에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재판 결과를 과도하게 비난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그의 발언은 김관진 전 국방장관,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 등에 대한, 법원의 구속적부심 석방 결정 직후 나온 것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김 대법원장의 발언은 ‘정치권과 언론이 법원을 흔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힌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구속적부심 석방 결정에 대한 중앙지검의 노골적인 불만 표출이나 일부 민주당 의원의 설익은 비난공세에 대응해, 후배 법관들의 동요를 막기 위한 당부의 메시지도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 부장판사는 몇 마디 말로, ‘법관의 독립’을 강조한 대법원장의 고언(苦言)을 사뿐히 지르밟았다.

    ‘법정 밖 법관의 처신’에 대한 고민을 안겨준 김 부장판사는, 과거에도 ‘입’ 때문에 설화(舌禍)를 겪었다.

    그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1심 재판부를 노골적으로 비난한 일로, 정직 2개월의 징계처분을 받았다. 2012년에는 자신이 유죄라고 판시한 사건을 대법원이 무죄취지로 파기하자, ‘교조주의에 빠진 판결’이라고 맹비난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있는지 사안별로 따지는 것은 평등 원칙에 반한다’는 검찰의 주장이나, 사건 기록에 대한 자세한 검토도 없이 주관에 의지해 동료 법관의 판결을 비하한 김 부장판사의 행태는, 그 바탕에 ‘독선’이란 공통분모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같다.

    이런 검찰, 이런 판사가 내리는 판단을 국민이 그대로 받아들이길 바란다면 난센스다.

    남의 허물을 탓하기 전에 자신의 독선을 먼저 살피지 않는다면, 그가 바로 청산돼야 할 적폐다. 적폐는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