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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를 알면 동창회 운영에도 도움이 된다!

조갑제 칼럼 | 최종편집 2017.11.27 0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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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甲濟  /조갑제닷컴 대표

최단기간에 최소한의 희생으로 최대의 업적을 남긴 위대한 CEO 박정희의 조직 경영 원리는 회사나 국가뿐 아니라 다른 형태의 조직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데도 응용될 수 있다. 박정희를 알면 동창회 운영에도 도움이 된다.

모든 형태의 지도자를 위한 참고 자료: 朴正熙 리더십 12계명

1. 화합형 정책 결정: 朴대통령은 무엇보다도 듣는 사람이었다. 엉터리 보고라도 끝까지 들어주었다. 좀처럼 즉석에서 반대하지 않았다. 일단 본인의 의견을 제시한 뒤 主務(주무)장관이 다시 한번 심사숙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대통령의 지시가 아니라 주무장관이 發案(발안)한 정책이 채택되는 방식을 취하도록 했다. 그렇게 해야 정책에 대한 주인의식이 생기고 일을 할 때 신바람이 나는 것이다. 朴대통령은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남을 통해서 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2. 민주적 정책 결정: 朴 대통령은 어떤 회의에서도 먼저 발언하지 않았다. 토론을 시켜 문제가 제기되고 贊反(찬반)의견의 방향이 잡혀가면 그때 결론을 도출하고 필요한 보충지시를 내렸다. 당시의 정치체제와는 다르게 경제정책의 결정과정은 민주적이었다.

3. 생산적 회의: 朴 대통령은 월간경제동향보고, 수출진흥확대회의(무역진흥회의), 청와대 국무회의, 국가기본운영계획 심사분석회의, 방위산업진흥확대회의를 정례화하였다. 이들 회의는 대통령이 國政을 종합적으로 규칙적으로 파악 점검하고 살아 있는 정보를 얻는 기회였다.

4. 철저한 확인과 일관된 실천: 朴 대통령은 계획수립에 20%, 실천과정의 확인에 80%의 시간을 썼다고 한다. 중앙부처 및 지방 순시 등 현장 시찰을 자주 한 것도 집행의 확인과 士氣(사기) 진작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계획의 수정이 필요할 때는 토론절차를 거쳐 신속하게 했다.

5. 국민의 각성과 참여: 朴 대통령은 국민들이 自助(자조)정신을 발휘하여 자발적으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데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는 인간과 조직의 정신력에 주목한 사람이다. 그는 한국인의 패배의식과 싸워 이긴 사람이다. 그는 京釜(경부)고속도로 건설 같은 눈에 뜨이는 구체적 업적을 통해서 국민들의 체념과 自虐(자학)을 자신감으로 교체해갔다. 의욕을 불어넣기 위해 '새마을 노래', '나의 조국' 도 작사 작곡했다.

6. 정부는 맏형, 기업은 戰士(전사): 朴 대통령은 경제관료와 기업인이 異見(이견)을 보이면 많은 경우 기업인 편을 들어주었다. 그는 정부 주도형 경제개발정책을 채택했으나 기업이 엔진이고, 경제전선의 戰士는 기업인이라고 생각했다. 대통령은 기업 엘리트를 존중해주었고, 기업인들은 대통령을 '우리 편'이라고 생각했다.


7. 내각에 권한과 책임 위임: 청와대 비서실이 장관 위에 군림하는 것을 금지시켰고 장관의 인사권을 존중했다.

8. 관료엘리트 중시, 학자들은 자문역: 실천력을 중시하던 朴대통령은 집행기관장으로서는 학자를 거의 쓰지 않았다. 학자들은 자문역으로만 부렸다. 거의 유일한 예외는 서강대학교 교수 출신인 南悳祐 부총리였다. 南부총리도 실무능력의 검증을 거친 다음에 重用(중용)되었다.


9. 정치와 군대의 압력 차단: 그는 관료들이 國益(국익)과 효율성의 원칙하에서 소신대로 일할 수 있도록 군인들과 정치인들의 경제에 대한 개입을 차단하고 견제했다. 군대의 힘으로써 집권한 사람이 군대의 영향력을 약화시킨 예는 매우 드물 것이다.

10. 경제발전 우선주의: 朴대통령은 경제발전이 결국은 안보와 민주주의 발전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先 경제발전, 後 민주화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에 따른 비난에 대해서는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로 대응했다.

11. 市場(시장)의 한 멤버로서의 정부: 朴 대통령은 정부가 시장의 규제자가 아니라 한 참여자라고 생각했다. 朴대통령 시절의 정부는 시장 지배자라기보다는 시장의 일원으로서 시장 기능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했다. 정부는 기업가, 은행가, 개혁가로서의 역할도 했다. 電力(전력), 철강 등 민간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은 정부가 公기업을 만들어서 맡아서 하되 경영은 민간기업 방식으로 운영되도록 했다. '官治(관치)경제가 아니라 대통령이 CEO로 뛴 주식회사 대한민국이었다(김용환)'


12. 선택과 집중과 고집: 朴 대통령이 채택한 수출주도형 공업화정책, 중점 투자전략, 先성장-後분배 전략, 과감한 외자유치 전략은 모두 성공했다. 朴 대통령은 정책과 전술은 수시로 변경했지만 철학과 전략은 18년 동안 그래도 밀고나갔다.

[조갑제닷컴=뉴데일리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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