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독재자의 비릿한 웃음이 떠오른다
  • 세습독재자의 비릿한 웃음이 떠오른다

    李 竹 / 時事論評家

    이 글을 밥상머리나 외식 자리에서, 또는 간식을 씹으며 읽기 시작하셨다면,
    그만 멈추기를 권하고 싶다. 음식이 싫어지는 건 그저 그렇다하더라도,
    다음부터 필자의 글을 아예 외면할까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길이가 최장 27cm에 이르는 기생충··· “우리나라 사람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기생충”,
    결국은 ‘회충’(蛔蟲)의 일종으로 밝혀졌단다.

    키 170cm 체중 60kg 정도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병사가 며칠 전 판문점 JSA(공동경비구역)를 넘어 필사의 탈출을 감행했다. 총상을 입고 사경(死境)을 헤매던 그를 이 나라 유명한 ‘외상외과’ 의사께서 어려운 수술 끝에 구했다. 부상 정도와 수술 및 치료 경과를 알리는 과정에서 그 ‘회충’이 갑자기 세간에 주목을 받게 됐다. 이런저런 경위와 사연들은 이미 언론을 통해 자세하게 알려졌으니, 별도로 논할 바가 아니다.

    그 ‘회충’을 바라보는 이 나라 국민들의 공통된 의견은 “징그럽다”였던 것 같다. 그런데...

    언론보도와 주위의 의견들을 보고 들어보니, 징그러움을 내뱉는 속내는 한결같지 않은 듯했다. 그 속내를 나름대로 들여다보았다. 그 ‘외상외과’ 의사께서 북녘 병사 창자 속의 ‘회충’을 들어냈던 심정을 추억하며...

  • ① 무심(無心)이
    “징그럽다”는 느낌 이외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북녘의 핵실험이 몇 차례 있었는지 알 바 아니다. 세습독재자와 그 졸개들이 이 나라에 대고 ‘불바다’와 ‘핵 참화(慘禍)’ 위협을 들이대도 “어떤 강아지가 짖어대냐?”하고 시큰둥했다. 허긴 이런 불감증을 북녘 세습독재가가 가장 두려워한다는 믿거나 말거나 소문이 있다.

    ② 경망(輕妄)이
    아무개 신문에 난 기사 한 토막으로 대신하자.
    “1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총상을 입고 귀순한 북한 병사의 몸에서 기생충 수십 마리가 발견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때 아닌 ‘구충제 먹기’가 유행하고 있다...” 국민 개개인의 건강이 안보를 담보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부인하고 싶지 않다.

    ③ 깐죽이

    “저는 기생충의 나라 북한보다 그걸 까발리는 관음증의 나라, 이 대한민국이 북한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정의’를 내세우는 정당의 국회의원이라는 분이 한 방 날렸다고 한다. 역시 ‘정의’롭다.
    미국에 살고 있는 조선 아줌마 한 분은 “세계적 소프라노나 일부 일본 여성들이 다이어트를 위해 일부러 회충을 키웠다...”는 새로운 의료법까지 소개했다고 한다. 이 아줌마는 북녘의 ‘혁명 수도’를 방문하여 그곳[혹자는 지상낙원이라고도 한다]의 ‘첨단 무상의료’를 경험했다고 한다.
    북녘 ‘지상낙원’의 정체가 까발려지는 게 너무도 싫은 심정을 알만한 국민들은 다 안다. 직설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일단 깐죽거려보기로 했나보다. 이런 분들이 어디 이 나라에 한둘일까?

    ④ 얼간망둥이
    이번 기회에 덩달아 자신의 이름을 한껏 얹어보자고 덤벼드는 분들이 적지 않은가 보다. 북녘 인민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자랑질 한다. 그래야 인기가 오르고 표(票)가 모인다? 기사 두 토막이다.

    =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이날 조계종 총무원장을 예방한 뒤 “북한 군인도 저런데 북한 주민은 얼마나 참혹하겠냐. 이번 기회에 구충제 지원에 대해 검토해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말씀을 나눴다”고 말했다...=
    = 하태경 바른정당 최고위원도 최고위원회의에서 “인도적 대북 지원 문제는 정세와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최대한 협조하겠다”며 “회충 문제는 이번 병사 한 사람이 아니라 북한 주민 전체 문제다. 북한 주민들의 장 위생은 바른정당이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엄청나게 ‘국민적’이고 ‘바르다’. 허나, 북녘의 독재자는 ‘구충제’보다 ‘구충제를 살 현금’을 더 좋아한대나 어쩐다나. 혹시 ‘구충제’나 ‘화학무기’나 비슷한 성분 아닌가.

    ➄ 얍삽 안달이
      이 어르신들, 특히 현재 이 나라의 높은 자리에 계신 분들의 심정은 아슬아슬하다. 총 맞은 북녘 병사를 치료한 ‘외상외과’ 의사가 한편으로 무지하게 밉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니 훈장(勳章)을 내려야 할 듯도 하다. 특히, 그 ‘회충’을 널리 알려준 공적이 매우 크다.
      흔히 “기회는 찬스다”라는 엉뚱한 말도 있듯, 드디어 북녘 세습독재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화장실에서 웃는다. “얕은꾀를 쓰면서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한다”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벌써...

  • 그 ‘회충’으로 인하여 북녘의 핵미사일은 국민들 뇌리에서 상당부분 지워지고, 이른바 ‘보수 언론’이라는 데에서조차 이런 기사를 띄운다. 하지만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속마음이야 안달박달이지만 말이다.
    = “상수도 시설 개선과 급수 관리, 영양 증진을 통한 면역력 상승 등 인프라 구축 같은 근본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 어르신들의 심정은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렇지 않을까?
     “물론 현금으로 지원해야 되지 않겠어? 양키나라가 태클을 걸 명분도 약하잖아. 당면해서는,
    그렇게도 공을 들이고 있는 북녘 선수단·응원단을 ‘평창’에 올 수 있게 하는 빅 카드가 될 수도 있을 테니...”

    더욱이, 정체가 불분명한 이른바 ‘국제사회’라는 데서도 덩달아 “인도적” 어쩌구 저쩌구 할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연례적인 ‘가뭄’과 ‘홍수’와 ‘흉작’에 뒤이어, 북녘 세습독재자와 그 졸개들에게는 ‘회충’도 돼지저금통을 채우는 방편으로 추가될 개연성이 높아진다는 예측이 쓸데없는 헛걱정으로 끝날까? 그러나...

  • 어차피 ①∽⑤의 군상(群像)들이 이 나라 국민의 전부일 수는 없다. 소수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저들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들의 속내는 분명 다르다.

    “정부는 대북 지원을 말하기 전에 북녘 세습독재자에게 경고부터 하라! 핵미사일 만드는데 드는 막대한 자금을 북녘 주민들의 민생과 인권 신장에 쓰지 않는다면 불벼락을 맞을 거라고 강력하게 규탄하라!”고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런 질문도 하고 싶을 게다. “소위 ‘인도적 지원’ 명목으로 건네졌거나 건네지는 현금·물품이 과연 어떻게 쓰였는지, 쓰일지 모르는가?” 질문이기보다는 반문(反問)이 맞지만...
      

    한편으로는 아무리 ‘회충’이 징그럽다지만, 지금 이 시각에도 북녘 돼지우리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을 핵미사일을 결코 잊지 않는다.

    아무개 조간(朝刊)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북한 귀순 병사 오 모씨(25)의 상태가 호전돼 24일 오후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하루 빨리 완전 쾌차하기를 기원한다. 그래서 북녘의 실상을 이 나라 국민들에게 낱낱이 알려주기 바란다. 그 징그러운 ‘회충’이 왜·어떻게 몸속에서 자라게 됐는가와 그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를 포함하여...

    허나, 걱정이다. 북녘의 실상을 알리는 것도, 그의 완전한 쾌차마저도 ‘적폐’(積弊)로 몰리기 십상인 게 현재 이 나라의 형편 아닌가.

    북녘 세습독재자의 비릿한 웃음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는다. 어디에선가 본 그 ‘회충’의 사진처럼...
    <이 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