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고 현장 취재기] 거꾸로 흐르는 시간, 다시 이 악무는 수험생들
  • ▲ 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고등학교에서 고3 학생들이 수능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호영 기자
    ▲ ▲ 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고등학교에서 고3 학생들이 수능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호영 기자

     

    "선배들이 불쌍해요. 포항에서 피해 입은 분들도 안타까워요."

    2학년 명찰을 단 한 학생은 '선배들이 다시 학교에 나와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고등학교 교정은 운동장에서 체육활동 중인 일부 저학년생을 제외하면 무척이나 한산한 모습이었다. 마치 수능이 끝난 것과 다름 없는 풍경이었다.

    이날 고3 교실 취재는 오전 10시부터 30분 간 예정돼 있었지만 25분가량 미뤄졌다.

    구석표 용산고 교감은 "어제 대부분 정리됐지만 오전에 좀 더 시간이 더 필요해서 (계획이) 늦어지게 됐다"며 기자단에 정중히 양해를 구했다. 그는 "(10시) 20분에 3교시가 시작되니 25분부터 취재하시면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입시와의 전쟁에서 불가피하게 연장전을 치러야 하는 제자들의 안타까운 실정을 알리고 싶어하는 표정이 역력해 보였다. 

    ○ "남은 수능까지 정상등교·질의응답·자율학습"

    예정됐던 16일에 수능이 치러졌다면 고3 학생들은 학교에 나와 정답을 맞추고, 등급에 맞는 대학 입시 전략을 세우거나 논술고사 대비를 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수능이 일주일 연기되면서 학생들은 다시 한번 막판 스퍼트를 올리고 있었다. 

    오늘 고3 학생들 일정에 대해 구석표 교감은 "급식 문제도 있고 불안해 하는 아이들도 있어서 사실상 정상수업할 여력은 없다"고 말했다. 수업 계획을 묻자 "담임 재량에 따라 자율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 고3 급식문제 "다음주에는 추가 발주해 배급할 것"

    갑작스럽게 수능이 연기되면서 발생한 문제 중 하나는 급식 배급이었다. 수능 연기 이후 용산고를 포함한 모든 고등학교가 똑같이 안고 있는 문제다.

    대다수 고등학교는 급식업체에 11월 16일 이후 고3 중식분을 발주하지 않았다. 수능이 끝난 고3 학생들은 학교에서 식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능이 일주일 연기되면서 급식 문제를 놓고 학교와 업체가 난감해졌다. 이날 용산고 고3 학생들도 중식을 먹지 못하는 상황이라 오전 수업을 끝내고 하교해야 했다.

    구석표 교감은 "그래도 다음주에는 중식 추가 관련 가정통신문이 학생들에게 배부될 예정이라 월요일과 화요일은 고3 학생들도 중식을 먹게 된다"고 말했다. 용산고 관계자에 따르면 학고 중식 1일분 가격은 4,100원이다. 학부모들은 2일치 추가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 ▲ 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고등학교에서 고3 학생들이 수능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호영 기자
    ▲ ▲ 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고등학교에서 고3 학생들이 수능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호영 기자

     

    ○ 고3 교실, "일주일 전으로 타임머신 돌린 듯"

    용산고에 재학 중인 고3 학생은 약 450명이다. 한 반에서 30~34명이 수업을 듣고 있다. 약속된 시간이 되자 기자들은 교감의 안내를 받으며 학교 6~7층에 밀집해 있는 고3 교실 중 한 곳으로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학생들은 교사의 감독 하에 동요하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최종 수능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모의고사 오답 정리를 하거나 EBS 수능 문제집을 풀고 있는 학생들이 많았다. 태블릿 PC 인터넷강의를 보는 학생도 눈에 띄었다. 일주일 전 막바지 정리를 하며 모든 것을 쏟아 붓던 모습을 재연하고 있었다.

    감독교사는 "수능이 미뤄졌다는 소식에 좋아하는 학생도 일부 있지만, 일주일 더 공부하게 돼서 부담스럽다는 게 대체적 의견"이라고 전했다.

    공부에 몰입 중인 고3 수험생 중 눈에 띄는 한 학생이 있었다. 그는 아서코난도일의 '그의 마지막 인사'를 읽고 있었다. 감독교사는 "수능과 관계 없이 적성고사에 이미 합격한 학생"이라고 설명했다.

    ○ 만약 수험표 분실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용산고 고3 학생들은 중식이 예정된 다음주 월요일과 화요일에 정상수업(7교시)을 받게 된다. 구석표 교감은 "지난 15일 지급받은 수험표는 가급적 잃어버리지 말고, 분실할 경우 반드시 재발급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학생들에게 당부했다.

    만일 수험표를 분실했다면 수험표와 동일한 사진 1매와 신분증을 챙겨 당일 오전 8시까지 시험관리본부를 찾아 재발급을 받아야 한다. 위급한 경우를 대비해 여분의 사진을 미리 챙겨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취재시간이 끝나 학교 본관 1층 소회의실에 맡겨 놓은 짐을 주섬주섬 챙기고 있었다. 1층까지 함께 내려온 구석표 교감이 고생했다면서 기자의 손에 귤을 쥐어줬다.

    학생들의 안타까운 표정을 뒤로 하고 교정을 나오다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불안한 와중에도 기자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아낸 학생들이 대견해 보였다.

    정작 고생한 것은 기자들이 아니라 전례없는 수능 연기 사태를 맨몸으로 겪고 있는 수험생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고3 수험생들이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를 얻길 바라는 마음에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사자성어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