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독재’ 밥숟갈이라도 떠 넣을 수 있게 된 이유는…
  • 그 시절 ‘새벽종’... 그리고 ‘낭만독재’
    밥숟갈이라도 떠 넣을 수 있게 된 이유는?

    李 竹 / 時事論評家

    그가 태어난 지 100년이 되었다고 한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언제나 말이 없던 그 사람... ” 그 노래를 인구(人口)에 유난히 회자(膾炙)하게 했던 날도 38년하고 며칠이 지났다. 당시 스무 살 남짓의 처녀 총각도 이젠 환갑을 넘기고 있다. 호래이 담배 피던 시절 같은 까마득한 옛날인 듯하지만, 역사의 큰 흐름 앞에서는 찰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엊그제 저 난지도 공원 옆에서는 그의 동상(銅像)을 세우니 마니로 편이 갈렸다. 그것도 역사의 현장이 될듯하여 그저 둘러봤다. 
      
    욕설과 함께 “동상 반대”를 짖어대는 편을 향해... 아마도 그 시절, ‘경험에 의한 학습’과는 거리가 먼 청춘들이 지옥(地獄)처럼 여기는 유신(維新)의 시절에 ‘공순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을 이 땅의 기적(奇蹟)을 이룬 중흥(中興)의 주역들은 그 현장에서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지금까지 너희들이 그 나마 입에 밥숟갈이라도 떠 넣을 수 있었던 게 누구 덕인 줄 알아?” 물론 그들의 손에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들려있었다. 

  • 그렇다. 그 ‘근본 없는 군바리’가 이 땅에서 5천년을 쭉 이어온 가난을 떨치겠다고 나섰었다. 반만년을 이어 내려온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 갑자기 새벽종을 울려 대서 온 동네가 시끄럽게 됐다. 
      
    아파트 층간 소음(騷音)이 살인(殺人)의 원인까지 되곤 하는 각박한 현재의 시류에 편승하여 그 종소리를 ‘적폐’(積弊)로 몰아가는 세력이 있다. 하지만 그 종소리가 ‘한강의 기적(奇蹟)’을 일군 성대한 울림이었다는 사실(史實)은 오히려 저 먼 나라들이 평가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새벽종 독재(獨裁)’가 있었다고 말들을 한다. 그렇다... 

    그 지옥(?) 같던 유신(維新)의 시절에는 영장 없는 체포·구금이 많았다. 그 시절 어느 도시던 역전(驛前) 광장에는 가막소가 자주 설치되었었다. 새끼줄로 사각 줄을 치고, 그[권투시합하는 링 같았다] 안에 양민 범법자(?)를 가뒀다. 
      
    장발(長髮) 대학생과 젊은이, 길거리에 담배꽁초를 버렸거나 침을 뱉은 행인, 그리고 신호등을 보고 횡단보도를 잘 못 건넌 [그 당시 횡단보도 신호등이 처음 생겼는데, 파란 불일 때 건너는지 빨간 불일 때 인지 헷갈리는 국민들이 많았다] 노인네 등등을 영장 없이 체포하고 무단으로 그 가막소에 감금했다. 그리고 경찰 1∼2명이 지키고 있었다. 노인네들은 겁에 질려 서너 시간 꼼짝 못하고 있었지만, 장발(長髮) 청년들은 잠시 서로 눈을 마주 치며 기회를 보다가 일시에 사방으로 튀었었다. 물론 소수인 경찰들은 이들을 잡을 수가 없었고... 
      
    하지만 이후에는 경찰이 도주하는 청년 딱 한명만을 집중 추적했고, 검거(?)한 후에는 몇 대 쥐어박았다. 고문(拷問)이라면 고문이었다.

  • 그 시절 이 나라의 민주화를 염원하던 국민들도 꽤 많았다. 그러나 그러한 국민들 대부분은 세월이 지난 후에 그 시절을 용서(?)했다. 긴 머리를 했다고 ‘영장 없이 체포’(?) 당해 머리를 짤렸던, 그리고 도망가다 잡혀 뒷머리를 쥐어 박히는 고문(?) 당했던 그 세대도 대부분은 허허 웃으며 그 시절을 얘기한다. 시대의 아픔, 이 나라 민주발전의 진통(陣痛) 쯤으로 가슴에 안고 가고 있는 것이다. 용서라고 표현하기도 좀 멋쩍지만...

    그런데 입으로 ‘민주화’를 외치면서도 내심 북녘의 독재자를 숭모(崇慕)했거나, 정치적 야심을 갖고 있었던 이들은 이후에 국민의 세금으로 치러진 거액의 그 무슨 ‘민주화 보상금’을 악착같이 받아냈다. 
      
    현재는 자신들의 ‘북녘 독재자 숭모’ 진심과 정치적 야심을 교묘히 은폐한 대가로 높은 자리에 올랐거나 아주 잘 먹고 잘 살며 활갯짓을 하고 있다. 그리고...

    ‘자유’를 떼어내고 괴상한 수식어, 이를 테면 ‘민중’ 또는 ‘인민’을 생략한 ‘민주주의’를 위해 또다시 오늘도 ‘민주화’를 짖어대고 있다. 
      
    그래서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시절을 기적(奇蹟)의 ‘낭만 독재’(浪漫 獨裁)라고 부른다.
      
    <이 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