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 대처, 박정희, 등소평이 타협하지 않고 지켜낸 것

"자유한국당은 그런 가치와 비전을 가지고 있는가?"

지영해 칼럼 | 최종편집 2017.11.13 17: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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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출당을 보며> 보수 야당이 나아가야 할 길


자유한국당이 결국 박근혜 출당을 결정했다.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 있으니까, 자기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보이지가 않는가 보다.
커피 한 잔의 여유가 필요한 당이다.

탄핵사태는 이제까지 정치의식이 없던 수많은 보통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 안에 잠재해 있던 우파적 정체성을 발견케 하여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정치사에 한 획을 그은 중대사다.
하지만 이런 정치의식의 자각을 박근혜라는 개인에 대한 지지와 동일시 하면 안된다.
이런 자각은,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언론-국회-검찰의 기만적 소행과, 헌법재판소의 [여론조사적] 탄핵판결에 분개하여 일어난 시스템 위기에 대한 자각이다.
다시 말해 평범한 회사원, 가정주부, 중장년 보수층, 심지어 은퇴한 노년층이 국가적 시스템이 총체적으로 허물어지고 있다는 '본능적 위험'을 느끼고 길거리에까지 나서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한국당은 국가 시스템의 운명이 걸린 거대한 이슈를 촛불시위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여 박근혜라는 개인에 대한 호.불호 및 공인으로서의 적합성 여부 프레임으로 축소시켰다.
평범한 우파 시민들의 시각도 의도적으로 이 프레임 속에 집어 넣어 스스로를 오도하도록 하였다. 


자한당은 박근혜를 떨쳐버리지 않으면 우파 통합은 불가능하며, 우파통합 없이는 곧 다가오는 지방선거에 패배한다는 단순논리로 박근혜를 출당시켰다.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현재의 망국적인 여당 독주는 막을 수 없다는 그럴싸한 이유에서였다.
거기에 친박정서를 가진 사람들을 달래기 위해, 탄핵의 위법성을 알리는 것도 자한당이 21대 총선에서 이겨서 원내에서 다수를 점해야 가능하다는 논리도 슬쩍 집어 넣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보수의 통합은 박근혜 출당을 필연적으로 요구하지 않는다.
날개 떨어져 아무 힘도 없고, 아무 세력도 없는 한 사람 때문에 야권 전체가 통합을 못하고 있다고 말하면, 아무도 안 믿는다.
탄핵의 부당함을 알리고 박근혜의 명예를 회복한다는 주장도 우파 통합하고 아무 관계가 없다.
탄핵에 찬성한 사람들이 돌아와 우글거리는 당이 탄핵의 위법성을 규명하자며 적극적으로 나서 자기 발등 찍을 확률은 제로다.

결국 큰 그림에서 보면, 우파정당에는 두 가지 선택이 있을 뿐이다.
탄핵을 제도적 절차 속에서 정당화될 수 없는 불법행위로 보고, 박근혜의 명예를 회복할 것이냐, 아니면, 촛불시위의 논리를 쫓아 탄핵을 주권자의 의지로 보고 합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한편, 이제 잊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냐다.
박근혜 강제출당은 자한당이 두 번째 길을 택했다는 얘기다.


여기에 명심할 점이 있다.
정당은 선거에 이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믿는 정치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집단이다.
선거에서의 승리는 그 가치를 숭고히 여겨서 그들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가져다 주는 하나의 부산물로 따라 와야 한다.
선거에 이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좌파가 되었다 우파가 되었다 하는 정당이나 정치가는 단순히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가치를 무시하는 존재들이며, 그런 존재들은 영원히 굳건한 지지 기반을 확보할 수 없다.

우파정당의 가치는 전형적인 우파의 노선을 확고히 함으로써 보여줄 수 있다.
소위 시장의 자율성과 개인의 재산권 및 권리의 수호, 자유의 존엄성과 전통적 가치의 존중, 그리고 미일 및 서구 우방과의 돈독한 동맹관계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 위에 더해야 할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길거리 폭력과 떼법을 거부하고 의회주의적 의사결정 절차를 따르며 자유민주주의적 법치주의를 수호한다는 자세다.
결과적으로 우파정당은 떼법에서 태어나 반이성으로 점철된 촛불시위는 이러한 민주적 법적 안정성을 완전히 파괴한 것으로 명백히 선언하고, 문명사회의 정치과정에서 완전히 배제해야 할 의무가 있다.

촛불혁명을 주도한 세력이 범한 가장 큰 실수는 언젠가 반대쪽 군중이 반이성적 분노에 휩싸여 동일한 떼법으로 그들의 목에 죽창을 겨누었을 때, 그들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보루, 즉 법과 제도의 권위를 스스로 파괴해 버렸다는 것이다. 
법과 제도의 권위는 적의 생명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고, 나의 생명, 우리 모두의 생명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다.
자한당이 박근혜 출당을 통해 촛불혁명의 위법성에 눈을 감는 순간, 여당과 야당을 통틀어 보호하는, 아니, 정치권뿐만이 아니라, 국가의 경제, 문화, 교육, 국방의 모든 것에 질서를 주는 법체제의 안정성을 논리적으로 허물어 버리는 것이다. 

법체제의 안정성은 지금 살아있는 세대만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모든 세대들도 향유하는 공유재산이다.
그래서 정치적 정의에 대한 논의는 제세대가 공유하는 공동체의 전통적 가치에 대한 논의와 떼려고 해야 뗄 수가 없다.
촛불시위가 저지른 해악은 우리세대의 법체제의 안정성과 질서를 파괴한 것뿐만이 아니라, 미래의 세대들이 마땅히 향유해야 할 법적 권위와 안정성마저 파괴한 것에 있다. 
그리고 코메디에 가까울 정도의 비극은, 촛불을 든 자들이 스스로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아직도 깨닫지 못하며, ‘노벨 평화상’을 운운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출당문제는 이런 커다란 테두리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지금 이 순간 좌파의 독주를 막느냐 못 막느냐의 문제를 넘어서는 문제다.
앞으로 태어날 제세대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이며, 이런 점에서 자한당의 결정은 한국정치를 백 미터 달리기로만 파악했지 마라톤의 긴 호흡으로 보지 못한 처사다. 

유권자가 이 위대한 가치를 몰라 보고, 길거리 떼법을 숭상한다거나 그런 이유로 우파 야당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아직 그들은 이 위대한 가치를 향유할 자격이 없다고 보면 된다.
표를 얻어야 한다는 점에서 정당은 유권자 밑에 있지만, 정당이 추구하는 비전과 가치 때문에 유권자 앞에서 사과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유권자 위에 있다.
유권자는 왕이 아니며, 때로는 유권자들이 위대한 비전과 가치를 알아보고 돌아올 때까지 정당이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뚝심과 고집이 없는 정당은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국가의 운명을 개척해 나갈 수 없다.

정당이 할 일은, 바람처럼 좌우로 흔들리는 유권자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그 순간을 찾는 것이 아니다.
목숨을 바치더라도 사수해야 할 정치적 비전과 가치를 찾아 내고, 몇 백 년이 걸리더라도 그것을 국가와 사회가 설득당할 때까지 줄기차게 호소하는 일이다. 
에이브러햄 링컨과 마가렛 대처와 박정희와 등소평이 그랬다.

지금 보수우파는 박근혜의 운명을 놓고 고민할  때가 아니다.
그것은 조잡스러운 일이고 필요하지도 않다.
지금은 이 정치적 비전과 가치를 어떻게 정의하고 국민들에게 제시할 것이냐에 집중할 때다.


지 영해

영국 옥스퍼드대학 동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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