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A 인터뷰서 “美본토 공격해 피해주려면 핵미사일 20발 쏴야”
  • ▲ EMP 폭탄이 터졌을 때 전자기파의 확산을 형상화한 일러스트. ⓒ美서바이벌피디아 화면캡쳐.
    ▲ EMP 폭탄이 터졌을 때 전자기파의 확산을 형상화한 일러스트. ⓒ美서바이벌피디아 화면캡쳐.


    북한은 지난 9월 3일 6차 핵실험을 실시한 뒤 “수소폭탄으로 EMP를 일으키는 공격을 가할 수 있다”고 협박했다. 이후 국내외 언론들은 북한의 EMP 공격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그 위험성에 대해 보도했다.

    이를 두고 미국과 영국의 전문가들이 “북한이 주장하는 EMP 공격 능력이 매우 과장돼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놨다고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지난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의 소리’ 방송은 “제임스 울시 前CIA 국장과 올리 하이노넨 前IAEA(국제원자력에너지기구) 사무차장 등은 북한의 EMP 공격이 핵공격보다 치명적일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오랫동안 관련 분야를 연구해 온 학자들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북한의 관련 능력이 과장됐을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소리’ 방송이 인터뷰한 전문가는 웨이드 앨리슨 英옥스포드大 물리학과 명예교수와 제임스 보거트 美주니아타大 물리학과 교수, 딘쇼 미스트리 美신시내티大 정치학과 교수, 하워드 스토퍼 美뉴헤이븐大 교수 등이었다.

    전자기파와 핵물리학 전문가인 웨이드 앨리슨 명예교수는 ‘미국의 소리’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핵공격을 바탕으로 한 EMP 공격 때 전자기파가 긴 시간 생기도록 하려면 많은 전류가 필요한데 핵분열 과정에서 어느 단계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웨이드 앨리슨 명예교수는 “EMP 공격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것인지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소개된 교과서조차 본 적이 없다”면서 “EMP에 대한 우려와 경고는 군사적 이유로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EMP 공격으로 각종 통신시설과 반도체를 사용한 장비들이 망가진다는 주장을 퍼뜨려, 적은 비용을 들여 상대방에게 겁을 줘 쉽게 이기려는 군사 전략의 일환이라는 지적이었다.

    제임스 보거트 교수는 “핵무기는 1,000번이 넘는 실험을 거친 반면 EMP는 실제 실험에 기반을 두지 않은 과학 영역으로, 깊은 지식이 축적된 상태가 아니다”라며 “북한의 EMP 공격 가능성은 아직 이론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제임스 보거트 교수는 1963년 미국과 소련, 영국 등을 시작으로 국제사회가 만든 ‘부분적 핵실험 금지조약’의 결과로, 대기권에서의 핵실험이 대폭 줄어들었고, 이 때문에 EMP의 영향이나 발생 등에 대한 실험 결과가 일반적인 핵실험에 비해 훨씬 적다는 지적이었다고 한다.

    제임스 보거트 교수는 다만 “북한이 EMP 공격 역량을 가졌을 수도 있다”면서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떨지는 알 수 없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대기권에서 핵폭발이 일어날 경우에는 EMP가 발생하는 것이 맞지만, 그 영향 범위가 어디까지 미칠지는 알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미국의 소리’ 방송에 따르면, 제임스 보거트 교수는 “(EMP로) 목표를 정확히 타격하기 위해서는 폭발 고도와 강도 등 많은 부분을 조정해야 한다”며 “EMP 관련 실험들도 실제 핵폭발 상황과 동일한 조건이 아니라 소규모 실험실 등에서만 이뤄졌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 ▲ 한국과 미국 언론 등에서 유행했던, 美본토 상공 핵폭발 시 EMP 영향권 묘사 지도. 출처가 1997년 7월 16일 美하원 안보위원회에 제출한 'EMP 위협'이라는 보고서라고 돼 있다. ⓒ유튜브 '북한의 EMP 공격' 관련영상 화면캡쳐.
    ▲ 한국과 미국 언론 등에서 유행했던, 美본토 상공 핵폭발 시 EMP 영향권 묘사 지도. 출처가 1997년 7월 16일 美하원 안보위원회에 제출한 'EMP 위협'이라는 보고서라고 돼 있다. ⓒ유튜브 '북한의 EMP 공격' 관련영상 화면캡쳐.


    대량살상무기 확산 문제 전문가인 딘쇼 미스트리 교수는 “EMP 공격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위치 상공의 정확한 고도에서 정확한 폭발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고도의 정확성을 필요로 한다”면서 “북한은 제한적인 EMP 공격 능력만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고 한다.

    딘쇼 미스트리 교수는 “북한이 美본토를 향해 EMP 공격을 가했을 경우 사회기반시설 붕괴와 이로 인한 전염병 등으로 미국인의 90%가 사망할 것이라는 일부 언론의 보도와 같은 일은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했다고 한다.

    딘쇼 미스트리 교수는 “그 정도의 파괴적 상황은 이론적 최대치로, 만약 북한이 미국에 그 정도의 EMP 공격을 가하려면 아마도 10~20발의 핵무기를 쏘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美국무부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테러 위원회 부국장을 역임한 안보 전문가 하워드 스토퍼 교수는 “대체 어디서 그런 생각이 시작됐는지 모르겠지만, 북한의 EMP 공격 위협은 전혀 우려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고 한다.

    하워드 스토퍼 교수는 “EMP 공격으로 광범위한 지역에 영향을 끼치기는 매우 어렵고, 미국과 동맹국들은 이런 유형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주요 컴퓨터 시스템에 방어 시설을 설치해 놨다”면서 “그리고 북한이 미국에게 EMP 공격을 하려면 핵폭탄을 터뜨려야 하는데, 이는 곧 미국과의 핵전쟁을 의미하므로, 북한이 이런 결정을 내릴 가능성은 적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미국의 소리’ 방송이 전한 미국과 영국 전문가들의 의견은 합리적이다. 다만 이는 미국, 영국과 같이 수십 년 전부터 ‘핵전쟁’에 대비한 경험이 있는 나라들의 입장이다. 재난대피시설부터 EMP에 대비한 보관 장비까지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을 정도다.

    반면 한국은 ‘핵전쟁’에 대한 대비는커녕 20년 전부터 ‘민방위 훈련’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나라여서, 이들 전문가가 지적한 규모가 아니라 소규모의 EMP에도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