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누리꾼, '北에서 지령 받고 넘어온 간첩 아니냐' 의심도
  • 돌아온 흥진호 선원들이 대기 중이던 미니버스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돌아온 흥진호 선원들이 대기 중이던 미니버스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난 10월 28일 오후 12시 30분. 북한에 나포됐다가 6일만에 풀려난 '391 흥진호'가 경북 울진군 후포항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린 흥진호 선원 10명(한국인 7명·베트남인 3명)은 후포항에 대기 중이던 미니버스에 타기 위해 이동했다.

그러나 그곳엔 이들을 맞이하는 가족도, 지인들도 없었다. 선원들은 하나같이 마스크를 끼거나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나타났다. 과거 납북됐던 어부들이 돌아올 때 가족과 언론들이 반기던 것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정부의 발표에도 미심쩍은 부분들이 많았다. 해양경찰 측은 청와대 등에 보고했다고 주장하고, 청와대와 국방부, 국정원 등은 흥진호 납북 사실조차 몰랐다고 밝혔다. 북한이 "영해를 침범한 남조선 어선을 나포했지만 인도적 차원에서 송환하겠다"고 밝힌 뒤에야 뒤늦게 알았다고 했다.

네티즌은 이를 두고 ‘북한에서 지령을 받고 넘어온 간첩 아니냐’는 의심마저 하고 있다. 네티즌이 주장하는 ‘흥진호를 둘러싼 수상한 점’ 몇 가지를 살펴봤다.

* 대승호·흥진호, 같은 납북 다른 반응

  • 지난 2010년 납북됐던 대승호와 선원들의 복귀 당시 방송화면. ⓒMBC 관련보도 화면캡쳐.
    ▲ 지난 2010년 납북됐던 대승호와 선원들의 복귀 당시 방송화면. ⓒMBC 관련보도 화면캡쳐.

    오징어 잡이 어선 대승호는 지난 2010년 8월 8일 동해상에서 조업하던 중 북한 경비정에 나포됐다. 당시 배에는 선장 김칠이 씨 등 4명과 중국인 3명 등 모두 7명이 탑승해 있었다. 

  • 나포 사실을 확인한 정부는 북한에 연달아 '송환하라'는 전통문을 보냈지만, 북한은 정부가 대북 쌀 지원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뒤 한 달 만에야 대승호를 한국에 돌려보내겠다고 밝혔다. 

    같은 해 9월 7일 오후 5시 20분, 대승호가 속초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속초항에는 한 달 동안 북한 당국에 의해 갇혀 있던 대승호 선원들의 가족들과 언론으로 붐볐다. 배가 부두로 다가올수록 가족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지상에 발을 디딘 대승호 선장은 “국민들의 성원으로 일찍 돌아왔다. 죄송하다”며 짧은 인사말을 남기고 가족들 품으로 돌아갔다. 

    이런 게 지금까지 북한에 끌려 갔다 돌아온 어선들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번 흥진호는 달랐다. 북한에 나포된 뒤 일주일 만에 돌아왔으나 후포항에는 선원들의 가족도 지인들도 보이지 않았다. 언론과의 현장 인터뷰도 없었다.

    더 이상한 점은 베트남인 선원 3명만 얼굴을 드러냈고, 한국인 선원들은 모두 모자와 마스크,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렸다는 것이다.

    * GPS는 왜 꺼두었나

  • 후포항에 들어온 흥진호.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후포항에 들어온 흥진호.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선박안전조업규칙 23조에 따르면 2톤 이상의 어선은 출항할 때 하루 1회 이상 어업 통신국에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흥진호는 20일 오전 10시 19분, 출항 후 단 한 번만 조업 위치를 보고한 뒤 통신이 두절됐다. 

    해경은 흥진호가 마지막 위치를 보고한 지 36시간이 지난 21일 오후 10시 39분부터 ‘위치보고 미이행 선박’으로 지정하고 수색에 들어갔다.

    해경은 22일 오전 8시 20분 흥진호 선주와 통화했다. 선주는 "(내가) 22일 오전 8시 20분께 흥진호와 통화했다. 안전상 이상이 없다. 흥진호는 독도 북동 170해리에서 조업하고 있다. 경비 투입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에 끌려갔다 돌아온 뒤 흥진호의 이동 경로를 확인한 결과 선주의 주장과는 달랐던 사실이 드러났다. 흥진호는 10월 21일 오전 1시 30분경 북한 해역에서 조업 도중 북한 경비정 2척에 나포됐다.

    누리꾼 수사대는 이를 두고 “흥진호는 애초부터 출항 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흥진호가 출항한 척 해놓고 공해상으로 나간 뒤 북한 공작원 등을 태워 흥진호로 데려온 게 아니냐는 과격한 주장까지 펴고 있다.

    박경민 해양경찰청장은 이와 관련해 “선주가 흥진호 '위치보고 미이행'으로 되면 불이익을 당할까 봐 거짓 진술을 했다고 말했다”고 해명했다.

    해경청장까지 나섰지만 흥진호가 GPS를 꺼둔 이유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 30톤급 어선에 X밴드·S밴드 2개의 레이더가?

  • 흥진호의 사진. 여러 개의 레이더와 통신장비 안테나가 보인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흥진호의 사진. 여러 개의 레이더와 통신장비 안테나가 보인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흥진호 미스테리'를 제기하는 누리꾼의 지적 가운데 하나는 "소형 어선에 어울리지 않는 장비들이 달려 있다"는 점이다.

    흥진호 사진을 보면 여러 개의 ‘레이더’가 눈에 띤다. 누리꾼은 흥진호가 일반 어선답지 않게 많은 통신장비를 장착한 것 같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선박안전기술공단에 따르면 흥진호는 38톤의 연승어선으로 등록돼 있다. 이 정도 배수량의 어선들은 대부분 유사시 해경이나 다른 배와 통신하기 위해 VHF-DSC라는 장비를 탑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흥진호는 100톤급 이상 되는 일반 선박이 주로 장착하는 레이더와 위성전화 장비가 탑재돼 있다. 

    사진을 보면 흥진호 상단에는 안테나가 2개나 달려있다. 조그마한 안테나는 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X-밴드 레이더고 그 옆에 큰 안테나는 S-밴드 레이더다. 

    X-밴드가 근거리 탐지를 한다면 S-밴드는 중장거리 탐지가 가능하다. S-밴드는 주로 중장거리 대공감시, 원거리용 항공기 탑재 펄스 도플러, 군용 3D 및 고도측정, 정확한 강우량 측정을 요구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어선들이 첨단 장비를 많이 이용한다고는 하지만 연근해 어업을 하는 흥진호가 X-밴드 레이더에 S-밴드 레이더까지 사용하는 이유는 걸까.

    * 선원들의 나이와 복장이 수상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산업 일꾼들이 늙어간다' 보고서에 따르면, 농림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평균 나이는 45.1세다. 

    최근에는 외국인을 선원으로 모집하면서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지방 어항을 직접 가보면 어선 선원의 대부분은 나이가 최소 40대 이상으로 보인다.

    반면 흥진호에 탑승한 10명의 선원들은 평균 20~30대로 보인다. 게다가 체격도 상당히 좋아 보인다. 이들이 배에서 내릴 때 입고 있던 옷 또한 어로작업을 하던 선원처럼 보이지 않는다.

    후포항에 도착했을 당시 흥진호 선원 대부분은 청바지를 입고 등에 가방을 메고 있었다. 웃도리나 신발도 어부들이 흔히 착용하는 것과는 달라보였다.

    군 관계자는 이런 누리꾼들의 의혹 제기가 계속되자 흥진호와 그 선원들에 대해 "추가 조사를 통해 상세한 경위를 파악 중"이라고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