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민주당 측 주도로 이사장 불신임안 의결... 高 이사장 덤덤히 "거취 고민"
  • ▲ 10월 27일 국회 과방위의 방문진 국감에 참석한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10월 27일 국회 과방위의 방문진 국감에 참석한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고영주 MBC 방송문회진흥회(방문진) 이사장에 대한 불신임안이 가결됐다.

    방문진은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율촌빌딩 6층 회의실에서 '제19회 정기 이사회'를 열고 더불어민주당 추천 이사들이 안건으로 상정한 '고영주 이사장 불신임 및 이사 해임 건의 결의안' 중 불신임안을 찬성 5명, 기권 1명으로 통과시켰다.

    이날 불신임안이 가결되면서 해임안에 대한 의결도 곧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고영주 이사장이 2018년 8월까지 예정된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여권 측의 정치적 압력을 받아 퇴진하게 되는 셈이다.

    고영주 이사장의 해임 배경에는 최근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방문진 보궐이사 선임 강행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자유한국당 추천 몫 이사 2명이 연이어 자진사퇴를 하며 발생한 2자리 공석에 방통위는 지난달 26일 민주당 추천 인사 2명을 선임했다.

    이로써 방문진 여야 구도는 4대5로 뒤집혔고 과반 이상의 다수를 점한 민주당 추천 이사들의 의견에 따라 고영주 이사장이 해임된 것이 전반적 배경이다.

    고영주 이사장은 민노총 산하 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MBC·KBS 본부의 파업 직후 줄곧 여당의 자진사퇴 요구를 받아왔으나 '자진 사퇴는 결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개인비리 등 퇴진할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물러나면, 오히려 잘못된 해석을 남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친문(親文) 세력이 고영주 이사장을 공격하게 된 발단은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는 과거 발언에서 비롯됐다.


    여러분은 설마 대한민국이 실제로 적화되겠느냐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제 경험을 통해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1982년 부산지검 공안부에 있을 때, 부림사건의 수사검사를 맡았습니다. 
    이 사건 변호인 중에는 노무현 대통령도 있었으며 그는 나중에 ‘이 사건을 계기로 인권에 눈을 떴다’고 해서 아주 유명해졌습니다.

    사건 내용을 축약하면, 부림사건은 널리 알려진 것처럼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공산주의운동이었습니다. 부림사건을 공산주의운동이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바로 사건 피의자가 제게 한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피의자 중 한명이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검사님한테 조사를 받고 있지만 곧 공산주의 사회가 옵니다. 그러면 역사가 바뀌고 기록도 바뀝니다. 곧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할 텐데, 그때가 되면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할 것입니다.’

    부림사건이 공산주의운동이라는 사실, 어떻게 이 이상 더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노무현, 문재인 변호사는 모두 부림사건이 공산주의운동이란 걸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사건 변호인으로서 기록을 다 봤는데 어떻게 부림사건이 공산주의운동이란 걸 몰랐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두 사람은 (부림사건이) 공산주의운동이란 걸 알고 변호를 한 것입니다.

    그 후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5년 내내 핍박을 받고, 검사장직에서 물러나 변호사로 개업을 했습니다. 당시 청와대에 있으면서 저에 대해 비토권을 행사한 자가 바로 문재인 비서실장입니다.

    노무현 정부에는 부림사건 관련 인맥이 상당수 있었습니다. 이들 모두가 공산주의운동을 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문재인 후보도 공산주의자이고, 이 사람이 대통령되면 대한민국이 적화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확신합니다.

    - 2013년 1월 4일 '애국시민사회진영 신년하례회' 고영주 발언 全文


    고영주 이사장은 2013년 문재인 당시 새정치연합 대표를 '공산주의자'라고 표현했다. 과거 부림사건을 맡았던 공안검사로 해당 사건 주동자들의 발언을 미루어 명백한 공산주의 운동임을 확신한다는 것이다.

    발언에 따르면 당시 부림사건의 주동자들은 검찰 수사를 받던 도중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지금은 검사님한테 조사를 받고 있지만 곧 공산주의 사회가 온다. 그러면 역사가 바뀌고 기록도 바뀐다. 그때가 되면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할 것이다."

    고영주 이사장의 발언은 "한국 내 대한민국 적화 세력은 분명 존재하며 자유진영은 이러한 위기 속에서 반드시 대한민국을 수호해야 한다"는 논리적 표현으로 추측된다.

    고영주 이사장의 발언이 논란이 된 것은 2년이 지난 2015년이었다. 2015년 9월 당시 문재인 대표는 '허위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훼손' 혐의로 고영주 이사장을 고발했다. 고 이사장이 방문진 이사장직에 취임한 지 1개월만의 일이다.

    문재인 대표의 고발 후 '공산주의자' 발언은 재조명됐고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은 2015년 10월 방문진 감사에서 "대한민국 사법부가 좌경화 됐다고 생각하느냐", "문재인 대표가 공산주의자라고 확신하느냐"는 호전적인 질문으로 고영주 이사장에게 사퇴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일부 의원들은 고영주 이사장을 향해 "정신이 나갔다"는 조롱도 서슴지 않았다. "나치 정권에 괴벨스가 있었다면 박근혜 정부에는 고벨스(고영주+괴벨스)가 있다"는 등의 발언으로 마녀사냥을 방불케 하는 인신공격을 가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논란에도 고영주 이사장은 꼿꼿했다. 그는 "우리나라 역사학자 중 90%가 좌편향 됐다는 소견에는 변함이 없으며 사법부는 물론 공무원조직이나 정계에도 '김일성 장학생'들이 존재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김일성 장학생'이란 1964년 북한 김일성이 "남조선에서 똘똘한 사람은 데모에 내보내지 말고 고시공부를 시켜 사법부에 침투시켜야 한다"는 교시와 함께 채택한 '대남적화혁명공작강화노선' 방법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 ▲ 10월 27일 국회 과방위의 방문진 국감에 참석한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10월 27일 국회 과방위의 방문진 국감에 참석한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같은 발언인데 정권 바뀌자 달라진 해석

    그로부터 다시 2년이 지난 2017년 10월, 정권교체로 여야가 뒤바뀐 상황 속에서 똑같은 장면이 연출됐다.

    여당이 된 민주당은 9월 4일 민노총 산하 MBC·KBS 언론노조가 파업을 강행하자 이를 빌미로 고영주 이사장을 향한 전방위 공세를 퍼부었다.

    10월 2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의 방문진 국감장에서 여당 의원들은 고영주 이사장을 향해 "애국지사인 척 하며 잿밥에 눈이 멀어 사기 행각을 벌였다", "과대망상 장애가 있다", "증인은 묻는 말에만 답해라", "신념이 화석 수준이다", "그냥 관두고 애국시민 곁으로 가서 편히 쉬시라" 등의 폭언을 쏟아냈다.

    특히 상임위 민주당 간사를 맡고 있는 신경민 의원은 "고영주 이사장은 10년 간 방송을 추행하고 강간했던 강간범이고 그를 사람으로 생각했던 것이 내 잘못"이라는 극언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방송통신위원회'의 달라진 해석이었다.

    2015년 '문재인 공산주의자' 발언이 처음 논란으로 떠오른 당시, 방통위는 "개인적 신념과 방문진 업무 수행은 별개 문제로 국가관 발언은 양심의 자유"라고 규정하며 고영주 이사장에 대한 해임권한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다시 말해 해당 발언과 관련한 문제는 '개인의 정치적 소신으로 문재인 대표 명예훼손 문제는 법정에서 가릴 일'이라며 선을 긋고 중립 입장을 취한 것이다.

    당시 계속되는 야당(민주당)의 고영주 이사장 해임 요구에 최성준 방통위원장은 "방송문화진흥회법에는 임명 규정만 있고 해임 규정이 없어 해임 권한 여부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도 법률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 ▲ 이효성 방통위원장.ⓒ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이효성 방통위원장.ⓒ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이에 반해 2017년 방통위는 정반대의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효성 현 방통위원장은 취임 직후부터 민주당의 오더(주문)에 즉각 화답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파업을 빌미로 야당이 방송 이사회 감사를 요구하자 전례 없이 방문진에 대한 직접 감사에 착수해 논란에 불을 붙였다.

    '민주당발(發) 방송장악 문건'과 관련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되레 "방송종사자들이 파업으로 언론을 바로 잡기위해 노력 중"이라며 방송파업을 장려·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지속적으로 던지기도 했다.

    나아가 이효성 위원장은 고영주 이사장을 향해 "명확한 근거없이 특정인을 폄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한국같은 반공국가에서 공산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명예훼손"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고영주 이사장은 "내 발언이 근거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누차 근거를 피력하는 등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이러한 소신은 최근 국감장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는 여당 의원들의 십자포화 속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평소 소신이었다면 적화의 길을 갔을 것"이라며 "미국보다 북한을 먼저 방문하고 사드 배치를 안하겠다고 했던 문 대통령이 지금 본인이 소신과 반대로 행동하고 있지 않느냐"고 맞받았다.

    아울러 "MBC 운영 어려움은 파업 때문이 아니라 민주당의 '언론장악 문건'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상당히 인위적 작용이 있다"고 역공을 폈다.

    이러한 소신 탓에 괘씸죄가 적용되는 모양새다. 당초 고영주 이사장을 향해서는 '방문직 이사장직' 해임안만 상정될 예정이었으나 민주당은 "고 이사장의 평이사직도 해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본래 방문진법에 따르면 불신임 결의안이 통과도더라도 평이사직은 유지된다. 그러나 방문진 이사들은 이사직 해임 안건도 방통위에 제출한 상황이며, 방통위는 "적극 검토하겠다"고 화답한 상태다.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율촌빌딩 방문진 사무실에는 고영주 이사장을 제외한 방문진 이사 8명이 참석해 이사회를 개최했으나 이인철 이사 등은 고 이사장 해임에 반대하며 이사회 도중 퇴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로부터 자진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우파 성향의 김광동 이사 역시 이사회에서 "이사장을 해임할만한 중대한 업무 위반이 없었고, 문제 제기된 사안은 고영주 이사장이 취임하기 전인 2013년 발언과 관련된 것"이라며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집권여당, 방통위,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 등 반대진영에 포위당한 상태에서도 공안검사 출신 고영주 이사장은 예상했다는 듯 덤덤히 향후 거취를 고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사직 해임 논란과 관련해서는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법적인 부분도 검토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최근 자신을 둘러싼 논란을 두고 "법원이 내게 '문재인 대통령 명예훼손 판결'을 내린다면 결정을 수용할 것이지만 나의 과거 발언이 잘못됐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며 외압에 의해 소신을 꺾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고영주 이사장은 1976년 제18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78년 청주지검 검사를 시작으로 부산지검 부장검사, 대검찰청 공안부 공안기획관, 대구고검 차장검사, 서울남부지검 검사장을 거쳐 제9기 방문진 감사를 역임하고 2015년 8월 방문진 이사장에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