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반문명체제와 함께 할 민족주의란 있을 수 없고, 민족과 문명 유린세력에 대해서는 해방투쟁과 광복(光復)투쟁의 대상이지 결코 평화와 공존이란 있을 수 없다.
  • 충호안보연합 '제4회 안보·통일 대토론 한마당'
    주제발표 ❶

    대한민국 건국과 건국이념

    김 광 동 / 나라정책연구원장


  • I. 봉건-식민-공산주의 극복과 건국
     
      대한민국은 a.중국의 봉건폐쇄적 종속(속방)화를 극복하고, b.일본 제국의 식민지화를 극복하고, c.러시아(소련) 제국의 공산전체주의화를 극복하고 건국한 근대적 독립국가다.

      1945년 일본 패망과 한반도 해방은 제국을 지향하던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미국과 연합국의 태평양전쟁 승리 결과이다. 그것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일본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아시아‧태평양 지역전체의 해방이기도 했다. 그러나 또 다른 전체주의이자 제국주의인 소련은 공산체제를 통해 주변국인 중국과 한반도 등으로 영향력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소련은 점령지역을 곧 전쟁 수행의 대가로 판단하였고, 한반도 진출을 러-일전쟁(1905)이후 질서의 회복, 나아가 공산주의라는 또 다른 제국으로의 편입과 제국 확대로 보았다. 제2차 세계대전 종결과 함께 전승국의 일원이 된 스탈린(J. Stalin)의 공산주의는 전 세계로 폭발적으로 확산되었고, 한반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폭력적 계급혁명을 사상적 기반으로 하는 공산주의혁명(1917)이 러시아에서 성공한 이래 소련은 제국주의적 방식으로 공산주의체제를 퍼뜨렸으며, 스탈린시기에 이르러 공산제국주의는 주변국가에 마치 쓰나미처럼 확산되었다. 소련은 폴란드·체코 등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그리고 중국·몽고·북한 등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역에 공산제국주의를 형성하여 유라시아대륙만 약 40개국이 공산제국주의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따라서 대한민국 건국과 그 이후 전개된 역사에 자유민주 및 국가번영에 가장 커다란 장애를 만들고 부정적 영향을 미쳤던 것은 공산제국주의였고, 오늘의 번영된 대한민국은 공산주의의 길을 가지 않은 결과다. 1917년 레닌과 스탈린에 의한 공산폭력혁명이 소련에서 성공한 이래 유라시아대륙 전체는 폭력혁명의 파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고 하나같이 소비에트(Soviet)식 공산주의의 물결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한반도는 세계 공산주의와 아시아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과 중국과 국경을 함께하는 나라로서 가장 공산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였고, 유라시아대륙 끝에서 쓰나미처럼 밀려 내려오는 공산주의의 물결을 막아내야 했다. 제2차대전 이후 지난 60여년간 다른 나라는 냉전(冷戰, Cold War)체제를 겪었는지 모르지만, 한국은 냉전은 물론이고 6·25전쟁이라는 열전(熱戰, Hot War)을 포함하여 열전과 냉전을 반복하며 겪어야 했던 유일한 나라였다. 공산주의 확산에 맞서 대한민국은 유라시아대륙의 동아시아 끝에 붙은 자유민주의 보루가 되었다. 또한 한국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아직까지도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개인숭배적이고 전제적인 가장 극악한 공산전체주의체제와 대치해야 하는 세계유일의 국가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건국과 존속 발전이란 공산 제국주의(帝國主義) 확산을 저지, 극복한 결과이기에 대한민국 건국 및 건국 이후 70년 역사는 공산제국주의와 투쟁과 극복사, 그 자체이다.


    II. 민주공화제 혁명과 반공-민주투쟁

      1945∼1948년 대한민국 건국은 한반도와 한민족에게 근대적 민주혁명이었으며, 그 이후의 역사는 민주공화제를 확립시키며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성숙시켜가는 과정이었다.

      대한민국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단기간에 성숙시켜 나갈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의 출범인 건국부터 획기적인 민주적 제도를 도입하고 정착시켜 나갔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1948년 건국체제는 민족사의 획기적 민주주의 발전이자 위대한 민주혁명(民主革命)의 시기였다. 한국은 조선의 쇄국정책과 봉건제의 지속으로 인해 민주주의적 역사와 경험을 갖지 못했고, 서양 근대문물과의 교류는 1876년을 기점으로 비로소 시작되었다. 더구나 봉건체제의 해체, 부분적 근대화도 타율적이거나 일본 식민체제를 통해 비로소 이루어짐으로써 우리 스스로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정착시켜나갈 기회와 경험을 박탈당한 상태였다. 따라서 한국은 민주주의 토대나 경험이 전혀 없었던 상태에서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공산제국주의와 전쟁을 겪고 대결해가면서 키워나가야 했다.
      우리 민족은 1948년 대한민국을 건국하면서 비로소 근대 민주주의를 도입시키고 정착시킬수 있었다. 대한민국 건국과정은 민족사에 유래가 없는 ‘혁명적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정착시킨 시기다. 왕조제를 폐지, 헌정체제와 의회민주주의에 입각한 민주공화제를 확립시킨 것도 대한민국 건국을 통해 가능했다. 급격하게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제가 사라지고, 남녀 및 재산 등에 차별없이 성인 투표권을 부여하며 완전한 참정권을 보장한 보통선거제와 경쟁적 복수정당제를 시작한 것도 바로 1948년 건국체제에서였다. 건국체제를 통해 한국에서 비로소 삼권분립에 입각한 견제와 균형의 법치제도, 그리고 종교·언론·집회·결사의 자유 등 국민기본권이 보장되기 시작하였다. 마찬가지로 삼권분립에 의한 삼심급(三審級)제도에 따른 독립된 사법(司法)제도가 확립되고 1952년 대통령직선제와 지방자치제를 도입한 것도 모두 1948년 건국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은 1948년 건국체제에서 시작되고 경험과 시행착오를 거쳐 지속적으로 정착‧성숙된 것이다. 건국이후의 민주주의 시련이란 민주적 경험을 쌓고 빈약한 사회경제적 토대에 따른 문제를 극복하며 성숙시키고 발전시켜나가는 정치발전 과정이었을 뿐이다. 다른 민주주의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성숙과정에서 굴곡과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사회경제적 기반 부족과 민주주의 경험 부족에도 한국은 서유럽 수준으로 민주주의 체제가 정착되었고, ‘민주주의 과잉’이라 할 만큼 경쟁적 선거가 반복되어온 나라였다. 이는 건국 이후 불과 12년 동안 무려 15회의 전국규모의 선거가 진행되었다는 점에서도 과잉된 선거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대한민국은 서구 민주주의 투쟁과 전혀 다른 한국적 민주투쟁과 발전의 역사를 가진다. 서양의 민주주의 역사는 봉건제의 해체와 왕권 견제, 그리고 국민세금을 국민 대표자를 통해 통제하는 과정이었다. 또한 서구 민주주의 발전은 주권재민(主權在民)의 확대 과정으로 보통선거권을 부여받는 참정권 확대 과정이자 여성과 문맹자 및 세금 못내는 사람에 대한 신분차별이 극복되어가는 긴 과정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건국으로 봉건왕조제와 신분제 철폐가 이루어졌고 1948년 보통선거권이 전면적으로 주어진 상황이었기에 한국사회에서는 ‘민주적 제도 도입과정’의 민주주의 투쟁이란 있을 수 없었고, 한국에서 민주주의 투쟁이란 공산전체주의로부터 이미 만들어진 자유민주체제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민주투쟁은 민주공화제를 건립된 이후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침략해온 공산체제에 대한 반공산투쟁을 통해 민주주의가 지켜지고 발전된 것이다.
      한국의 민주투쟁이란 곧 만들어진 자유민주체제를 파괴‧붕괴시키고자 하는 공산전체주의와 맞서 싸우는 투쟁사였다. 자유민주 발전은 공산 제국주의와 자유민주를 부정하는 전체주의와의 대결과 극복과정이다. 대한민국 70년사 동안 우리를 침략하고 위협해온 실체로서의 북한체제는 평범한 다른 경쟁적 나라가 아닌 지구상에 가장 폐쇄적이고 적대적일 뿐만 아니라 가장 반민족적이고 반문명적 체제였기에 우리 민주주의 발전도 순탄하지 못했다. 대한민국은 다른 국가들과 달리, 북한과 같은 국가로부터의 체제 위협은 물론이고 전쟁과 도발을 딛고 번영과 민주주의를 일구어낸 나라라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 북한체제는 전제군주(專制君主)체제가 지속되고 있고 일본 식민시대에도 못 미치는 기본권 침해, 그리고 자유와 민주주의가 부정되는 체제다. 따라서 민주(화)투쟁과 반공투쟁은 분리된 것이 아니며, 한국 민주주주의 투쟁의 중심은 반공투쟁이고 그것으로 민주발전과 근대번영도 가능했다. 


    III. 자유-민주-민족 가치의 성지(聖地) 형성

      자유와 개방체제라는 보편가치에 입각한 건국과 그 이념에 입각한 결과, 불과 반세기만에 대한민국은 자유와 민주, 개방과 번영 등 모든 영역에서 개발도상국, 신생독립국,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의 길을 갔던 나라들의 모델, 지향해야할 이정표(里程標)를 만들어 세계사에 기여해 왔다.

      개인을 중심으로 한 자유(自由)와 자유시장체제는 서구문명과 결합하며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었고, 대한민국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사에서 최고의 성취를 이룬 나라로 만들었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1998년도 조사 가능한 전 세계 174개국을 대상으로 36년간(1960-1995년)의 경제성장률 및 인간개발지수(HDI)의 성장 결과에 대한 발표에서, 대한민국은 1960년 이후 36년간의 성장률 변화가 연평균 7.1%로 조사되었고 세계 모든 국가 중 경제성장율 1위를 차지하였다. 한국을 뒤이은 경제성장률 최상위 국가는 싱가포르·홍콩· 사이프러스·몰타 등이었는데 한국과는 달리 하나같이 도시국가 수준의 소규모 국가들일 뿐이다. 한국은 경제성장뿐만 아니라 UN이 작성한 가운데 인간개발지수(HDI)에서도 가장 빠른 성장을 이룬 나라의 하나로 기록됨으로써 20세기 후반, 세계에서 삶의 질(quality of life)이 가장 성장한 나라가 되었다. 한국의 일인당 평균국민소득 또한 연 2만 8천 달러에 달하며, 제3세계 국가 혹은 개발도상국로 출발한 나라로서는 유일하게 선진국 반열에 와있다.   
      대한민국이 경제규모나 사회문화 수준에서 세계 11위권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은 인구와 영토 규모를 감안할 때 짧은 시간에 가장 역동적이고 가장 빠른 사회경제적 성장의 결과이다. 불과 60년 전만해도 국가주권도 없던 나라의 경제규모가 1970년에 세계 33위 수준으로 발돋움하더니, 대한민국은 세계 11위의 수준까지 도달하여 세계 7위 전후의 무역국가이자 경제규모를 가지며 세계를 좌우했던 러시아보다도 큰 경제국가가 되었다. 게다가 한국은 주요 산업수준에 있어서도 거의 모든 영역에서 세계적 규모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일례로 세계 속에서 한국의 산업별 규모는 선박 1위/반도체 3위/자동차 4위/전자 4위/섬유 6위/영화·출판 7위/철강 8위/기계 9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한국은 거의 모든 산업분야에서 세계 10위권 이내의 산업국가임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은 자유와 민주발전에 있어서도 짧은 기간에 세계적 비약을 이룬 나라가 되었다. 봉건체제과 식민국가를 딛고 건국한 이래 한국은 민주발전을 거듭하여 약 40년만인 1980년대 중후반부터는 거의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 수준에 있다. 세계 모든 국가의 정치발전과 민주주의 수준과 지표에서 한국은 일본과 함께 서유럽(미국·캐나다·호주 포함)을 제외한 가장 높은 최고 수준으로 평가되었으며, 서유럽국가와도 큰 차이가 없을 정도이다. 한국은 개발도상국 내지 주변의 다른 나라가 갖지 못한 수준의 안정된 민주주의를 개척해 온 나라이다. 한국의 정치발전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인 싱가포르·태국·필리핀보다도 앞서 있으며, 주변국들인 중국·러시아·북한 등은 하나같이 민주주의가 보장되지 않은 거의 최악의 수준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북한·중국 등 민주주의의 기준으로 볼 때 최악의 국가들 사이에서 남들이 가지 못한 전인미답(前人未踏)의 민주주의 발전을 거듭해 온 나라라고 평가할 만하다.
      대한민국은 세계적 성공모델의 상징이고 한국의 발전모델은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한국의 성공은 세계 개발도상국들이나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의 길을 걸었던 나라들이 가야할 길과 이정표를 제시한 나라가 되었고, 세계 여러 국가들은 각종 협력사업과 국제기구의 지원으로 한국식 모델을 배우고 있다. 한국은 우리 민족에게 1948년 건국이후 자유와 민주, 민족의 성지(聖地)가 되어왔다. 물론 3만 명의 탈북자로 표현되듯 북한의 우리민족에게도 목숨을 걸고 가야할 성지이고, 이는 전 세계 한민족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대한민국은 지난 60년간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국가였지만, 향후에도 가장 커다란 잠재력을 지닌 밝은 전망을 가진 나라다. 한국은 향후 15년 내에 이탈리아·스페인 보다 앞서는 세계 8위권 전후의 경제 대국으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골드만삭스 등 일부 조사기관에서는 한국이 지속적인 고성장으로 2050년에 일인당 국민소득에서 전 세계 국가 중 2위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그만큼 앞으로도 역동적 발전을 계속할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 Ⅳ. 글을 마치며

      대한민국의 침체와 좌절은 바로 성공을 성공으로 여기지 않고, 거부하며 오히려 실패의 길을 따라갔기 때문이다. 보편적이고 민족주의적인 건국과 성공의 길에 대한 국민적 자부심이 계승되지 않고, 마치 잘못된 길을 걸어온 나라였기에 청산되어야할 역사를 가진 것처럼 만들어내는 것이 대한민국의 성공 계승과 번영 지속에 심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민주주의나 정치발전에서 그 어느 나라도 민주주의를 기성된 완성품처럼 수입하여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적된 경험과 제도적 축적 과정을 통해 발전하는 것이고 한국도 마찬가지였지만 가장 빠르고 가장 안정화되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건국의 의미와 정당성을 보지 않고, 대한민국 성공역사를 계승하지 않거나 부정하거나 ‘역사 청산(淸算)’ 대상으로 보는 것은 곧 실패 국가로 가는 길이다.
      특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나 민족주의에 반하는 길을 걸었다고 잘못 생각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민주(화) 세력’이란 잘못된 인식론이 확산되어 있다. 그런 인식은 대한민국이 이룬 성공과 성취를 계승하지 않고 오히려 그 성취와 성공을 청산하려는 것이고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이다.
      민족주의란 대한민국처럼 민족을 발전시키고 더 많은 자유와 번영을 만드는 것이자, 전체주의 북한체제를 극복하여 북한에 있는 또 다른 우리 민족들도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번영을 함께 누릴 수 있게 만드는 것일 뿐이다.
      북한의 반문명체제와 함께 할 민족주의란 있을 수 없고, 민족과 문명 유린세력에 대해서는 해방투쟁과 광복(光復)투쟁의 대상이지 결코 평화와 공존이란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