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기자회견장서 '손편지' 공개..저간의 심경 고백"피해자임에도 30개월간 고통..너무 무섭고 힘들었다""'성추행 고소' 이후 내가 지켜왔던 모든 걸 잃어버려"

  • 2015년 상영된 'OO은 없다'라는 영화에 캐스팅 돼 '강간 신'을 찍던 중 상대 배우(조덕제)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신고, 항소심에서 승소 판결을 얻어낸 배우 A씨가 24일 '손편지'를 통해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고 나섰다.

    당초 24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 변호사회 광화문 조영래홀에서 취재진과의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 입장을 밝히기로 했던 A씨는 자신의 신상에만 관심이 쏠리는 보도 행태를 우려, 주최 측에 직접 작성한 '손편지'를 전달해 이를 대독하는 것으로 심경 고백을 대신했다.

    이와 관련, 주최 측 관계자는 A씨가 직접 나오지 못한 것에 대해 취재진에게 미리 양해를 구한 뒤 이날 새벽까지 수정을 거듭했다는 A씨의 '심경 고백문'을 읽어내려갔다.

    이 글에서 A씨는 "자신을 둘러싼 자극적인 의혹들은 모두 허위사실에 기반한 것들"이라며 "피고인(조덕제)을 강제추행으로 신고한 후 상대방 측에선 저를 명예훼손 등으로 형사고소했으나, 수사기관에서는 오히려 피고인의 행위가 무고라고 판단했고, 항소심 재판부 역시 같은 판단을 내렸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A씨는 "자신은 경력이 15년이 넘는 연기자로서 연기와 실제상황을 혼동할 만큼 미숙하지 않고, 돌발상황에도 유연한 대처를 할 수 있는 전문가"라면서 "그럼에도 불구, 피고인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하게 되자 (당황한 나머지)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때 왜 성폭력 피해자들이 고소를 망설이는지 알게 됐습니다. 저는 촬영 현장에서 폭행과 추행을 당했습니다. 연기경력 20년 이상인 피고인은 제 동의와 합의도 없이 폭력을 휘두르고 속옷을 찢었고 추행을 했습니다.


    A씨는 "상대 배우의 신체에 해를 가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연기 전에 상대방에게 동의를 구하고 합의를 하는 것이라고 저는 알고 있고, 그렇게 연기를 해왔지만, 피고인은 저와 합의도 하지 않은 행위를 했고, 이에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연기를 빙자한 추행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A씨는 "애당초 저에겐 피고인을 무고할 그 어떠한 이유도 없었다"며 "나름 안정적인 연기 생활을 하고 있었고, 연인과의 사랑도 키워가고 있었고 가족들과도 화목하게 지내고 있던 자신이 단지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그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 피고인을 신고하고 30개월이 넘는 동안 법적인 싸움을 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A씨는 "배우라는 직업 특성상 성폭력 피해를 당한 사실이 알려진다면 피해자임에도 매장 당할 위험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하차 의사를 밝혔던 피고인이 의사를 번복하고 추가적인 가해 행위를 하는 한편 저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주변 압박'이 거세짐에 따라 이 사실을 신고할 수밖에 없었다"며 "그 결과 (자신이 지켜오던 모든 것을)다 잃었다"는 심경을 털어놨다.

    A씨는 "막상 재판이 시작되자 피고인과의 대면 자체가 고통스러웠던 저는 공판에 소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며 "피해자로서 법정에 나와 증언을 한 이후 재판이 곧 종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그로부터 8개월이 지나서야 재판이 마무리됐고, 1심 재판부는 자신의 예상과는 너무나 다른 판결을 내렸다"고 밝혔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피고인이 피해자의 신체 일부를 만진 사실이 인정되나 그것을 업무상의 행위로 간주했습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억울한 마음에 다소 과장해 주장한 것으로 보이며 이를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저는 제 증언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1심 결과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A씨는 "예상치도 못한 결과에 너무 무섭고 고통스러웠지만 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며 "그 과정 속에서 사건 현장을 찍은 메이킹 영상을 알게 됐고, 피고인 측에서 저를 허위 과장 여성으로 몰아갔다는 걸 알게 됐지만, 일부 허위기사들이 나오면서 지속적인 피해를 입게 됐다"고 말했다.

    A씨는 "이후 연대자들의 조언에 힘입어 제가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에 대해 집중했고, 공판 과정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등 제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했다"면서 "그 결과 10개월 가량 진행된 항소심에서 피고인의 행위는 연기가 아닌 범죄라는 판결을 듣게 됐다"고 밝혔다.

    A씨는 "앞으로 자신은 자기 분야에서 쫓겨나거가 삭제되는 다수의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며 "투사가 되기에는 자질도 부족하고 마음도 약하지만, 연기자로서 제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싸우고 연대하려 한다"는 향후 계획을 전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 자리에는 ▲법무법인 신세계로의 조인섭 변호사를 비롯, 이번 성추행 사건과 관련, A씨와 공동 연대를 이루고 있는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운영위원 ▲정다솔 찍는페미 공동대표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 ▲김미순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여성연예인인권지원센터 소장 등이 참석했다.

    음은 24일 한국여성민우회 등이 대독·공개한 여배우 A씨의 '손편지' 전문.

    안녕하십니까, 이 사건 피해자입니다.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기자회견에 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이번 기자회견이 사건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는 기회가 되기를, 나아가 영화계의 관행 등으로 포장된 각종 폭력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사건이 단순히 가십으로 소비되지 않고, 연기자들이 촬영과정에서 어떻게 성폭력에 노출되고 있는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 연기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은 무엇이 되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나아갈 수 있게 여러분도 함께 해주시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우선 명확하게 하고 싶은 지점이 있습니다.

    첫째, 항소심 재판부에 의해 인정된 피고인의 죄명은 ‘강제추행’과 ‘무고’입니다. 피고인은 제가 강제추행으로 신고한 후 저를 대상으로 명예훼손 및 무고로 형사고소를 했으나, 수사기관에서는 오히려 피고인의 행위가 무고라고 판단, 기소했고 항소심 재판부 역시 동일한 판단을 내렸습니다.

    둘째, 피해자인 저를 둘러싼 자극적인 의혹들은 모두 허위사실에 기반을 둔 것이며, 이와 관련해 ‘허위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등으로 기소되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임을 밝힙니다.

    셋째, 유죄확정시 신상정보등록대상이 되는 피고인이, 신상공개 후 500건이 넘는 기사를 통해 유포하고 있는 일방적인 주장은, 24페이지에 달하는 항소심 판결문을 통해 모두 사법적 판단을 받은 것임을 알립니다.

    저는 경력 15년이 넘는 연기자입니다. 연기와 현실을 혼동할 만큼 미숙하지 않으며, 촬영현장에 대한 파악이나 돌발상황에 대한 유연한 대처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전문가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촬영 현장에서 피고인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하게 되자 패닉상태에 빠져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왜 성폭력 피해자들이 침묵하고 싸움을 포기하는지, 왜 신고나 고소를 망설이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영화 촬영 현장에서 피고인으로부터 폭행과 추행을 당했습니다. 연기경력 20년 이상인 피고인은 상대배우인 제 동의나 합의 없이 폭력을 휘두르고, 속옷을 찢었으며, 상하체에 대한 추행을 지속했습니다.

    도대체 연기에 있어서 ‘합의’란 무엇입니까? 저는 상대배우의 신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연기가 예견될 경우, 사전에 상대 배우와 충분히 논의하고 동의를 얻는 것이 ‘합의’라고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연기했으며, 그렇게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피고인은 저와 ‘합의’하지 않은 행위를 했고, 그것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연기를 빙자한 추행’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런 것이 ‘영화계의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옹호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는 피고인을 무고할 그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사건 당시 저는 유명하지 않았지만 연기력을 인정받아 비교적 안정적인 배우생활을 하고 있었고, 미래의 영화인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으며, 연인과의 사랑도 키워나갔고, 가족들과도 화목하게 지냈습니다. 비교적 평탄하고 행복하며 만족스러운 삶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가, 그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불안 속에서도 단지 ‘기분이 나쁘다’라는 이유만으로 피고인을 신고하고, 30개월이 넘는 법정 싸움을 할 수 있을까요? 특히 위계질서가 엄격한 영화계에서 선배이자 나이차이도 많이 나는 피고인을 대상으로 말입니다. 고작 ‘기분’ 따위가 연기자로서의 제 경력, 강사로서의 제 명예, 지키고 싶은 제 사생활보다 소중하겠습니까? 그럴 가치가 있겠습니까?

    외부 평가에 민감한 배우라는 직업의 특성상, 성폭력 사건으로 소송이 진행 중임이 알려질 경우, 피해자임에도 매장당할 위험이 높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신고했습니다. 만약 피고인이 스스로 먼저 저에게 밝혔던 것처럼, 자신의 가해행위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하차를 실행했다면, 굳이 이런 지난한 사법절차를 밟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당시 지켜야 할 게 너무도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사건 직후 하차의사를 먼저 표명했던 피고인은, 돌연 입장을 바꿔 하차의사를 번복하고, 제게 고통을 안겨주는 추가적인 가해행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선배님’인 피고인의 추가적 가해행위와 더불어, 제게 침묵을 강요하는 주변의 압박이 더해지자 저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명백한 성폭력의 기록이 담긴 영상을 ‘영화’로 남겨 대중에게 보일 수 없었습니다. 15년 이상의 연기경력을 가진 배우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사로서 이런 인권유린을 더 이상 참아 넘길 수 없었습니다. 촬영현장에서 당한 성폭력에 대해 침묵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고했고, 그래서... 모두 다 잃었습니다.

    경찰에 신고 후 피고인이 저를 대상으로 보복성 고소를 단행했지만 수사기관은 피고인의 행위에 대해 ‘강제추행치상’으로 판단했고, 보복성 고소에 대해서는 ‘무고’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렇게 2015년 말에야 1심이 시작되었습니다. 피고인과의 대면 자체가 고통스러웠던 저는 공판에 소극적으로 임할 수밖에 없었고, 전문가들 역시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며 안심시켰습니다. 그래서 2016년 4월, 저는 피해자로서 법정에서 증언한 이후 재판이 곧 종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차일피일 미뤄지던 1심은 그로부터 8개월이 넘어서야 마무리가 됩니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피고인이 피해자의 신체 일부를 만질 사실이 인정된다’라고 판단하면서도, 그것을 ‘업무상 행위’로 본 것에서 나아가 ‘(피해자가) 억울한 마음에 다소 과장하여 표현한 것으로 보이며 이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라고 했습니다. 피해에 대한 증언만으로 충분하다는 주위의 조언에 충실히 따랐던 저는 1심 결과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재판기록을 복사하여 처음부터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섭고 고통스러워 외부에 피해사실을 알리는 거조차 꺼려했던 제가 공론화를 시도하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저는 사건 당시의 메이킹 여상 및 사고 영상에 대해 알게 되었고, 제 증언 후 8개월 동안 피고인 측에서 저를 ‘허위 과장의 진술 습벽이 있는 여성’으로 몰아갔음을 확인했습니다. 피고인의 지인이 1심 공판기간 중 단기간 취업한 언론사에서 낸 허위 기사들이, 제가 ‘어떤 여성’인지를 보여주는 자료로 공판과정에 활용되었고, 영화촬영현장의 특수성은 제대로 반영되지도 않았습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는 각종 현상을 동일하게 겪었던 피해자로서의 제 상황도 무시되었습니다. 영화계의 특수성 등 ‘다름’을 재판부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성폭력 피해자로서 제가 다른 피해자들과 ‘같음’은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강제추행 및 피고인의 보복성 고소로 인한 고통에, 허위기사로 인한 추가피해까지 겹쳐지면서 저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울면서, 넘어지면서도 주변에 도움을 청하고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항소심이 시작된 이후 공판과정에 빠짐없이 참석했고 제 피해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어떤 여자’인지, 피해자의 자격이 있는지를 여전히 묻는 피고인 측의 공격에 많은 상처를 받으면서도, 저는 연대자들의 조언에 힘입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에 집중해 대응했습니다. 영화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고, 성폭력 피해자로서 동일하게 겪는 현상에 대해 알렸습니다.

    항소심 첫 공판부터 재판부는 ‘피해와 관련된 사실관계 파악에 집중하겠다’라고 선언하였기에, 저는 고통스럽지만 가해행위가 고스란히 담긴 사고영상을 보면서 하나하나 다시 분석했습니다. 죽을 것같이 힘들어 다 포기하고 싶을 때는 연대자분들께서 용기를 주셨고,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저를 살아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30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어떻게 버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연기에 대한 열망도, 교육자로서의 책임감도 다 부질없다고 느껴졌습니다. 피해자임에도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울고만 지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연대자 한 분이 제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이 잘못한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래요, 당신 탓이 아닙니다.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잘못은 오롯이 가해자에게 있습니다. 가해자의 공격논리에 휘말려 ‘어떤 여자’인지 입증하려 애쓰지 말고,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차분하게 하나씩 다시 입증해가요. 곁에 있을 테니까.” 그리고 오히려 연대자 분은 “이렇게 공론화를 시도하고 수년간 싸움을 포기하지 않아 고맙습니다. 이 사건은 당신 개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니까요”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히려 고맙다는 그 말에 저는 다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싸움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렇게 항소심도 10개월 정도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10월, 13일의 금요일, ‘그것은 연기가 아니라 범죄’라는 재판부의 판단을 직접 들었습니다. 30개월 만에 드디어 같음을 인정 받고 다름이 이해되었습니다. 피고인의 행위는 ‘연기에 몰입하다 발생하는 부수적인 피해나 과실’이 아니라 명백한 폭력이라고 한국의 사법시스템이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성폭력 피해자였음이 연기 활동에 장애가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를 입고 자기 분야에서 삭제되거나 쫓겨나는 피해자들에게 저는 희망이 되고 싶습니다. 연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성폭력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제 방식이 될 것입니다. 저는 단단하거나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투사가 되기에는 자질도, 능력도 부족하며 마음도 약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 연기를 포기하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싸우고 연대하려 합니다.

    억울하고 분하며 여전히 고통스럽지만, 그럼에도 숨을 고르며 말하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시원하지는 않아도, 차분하게 제가 할 수 있는 말부터 하겠습니다.

    네, 그 첫마디입니다.

    “그건, 연기가 아니라 성폭력입니다.”


    다음은 한국여성민우회 등이 24일 배포한 기자회견문 전문.

    영화를 만드는 상식은 삶의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남배우A 성폭력 사건’ 항소심 유죄 판결을 환영하며


    2016년 12월 2일 본 사건의 1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에도 불구하고 “억울한 마음에 상황을 다소 과장하여 표현한 것으로 보이며, 이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며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했습니다. 그리고 피고인의 행위를 “배역에 몰입해 연기”한 것이고 이는 “업무상 행위”임으로 “강제추행”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고 불합리 하거나 모순된 점이 없음”을 확인하고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며, 2017년 10월 13일 원심의 무죄판결을 파기했습니다.

    피고인에게 강제추행 및 무고로 징역1년(집행유예2년, 수강명령 40시간, 신상정보등록)의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영화촬영 과정에서의 성폭력 사안에 대한 최초의 판례라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본 사건에 대해 “피고인은 이 사건의 영화를 촬영하는 과정에서 연기행위를 벗어나 피해자와 아무런 합의도 없이 연기를 빌미로 피해자의 상체와 하체를 만지는 강제추행 범행을 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양형 이유에서 “이 사건 영화와 같이 신체의 일부 노출과 성행위가 표현되는 영화 촬영과정이라고 하더라도 연기를 하는 행위와 연기를 빌미로 강제추행 등의 위법행위를 하는 것은 엄격히 구별되어야 한다.”며 피고인의 주장대로 감독의 지시로 연기를 했다고 하더라도 “상대 배우의 승낙이 없었던 부분은 연기로 볼 수 없다”며 배역에 몰입한 연기가 아니라 “연기를 빌미로 한 범죄행위”임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이는 사전 합의 속에서 영화 촬영이 이루어지는 것이 상식이며, 합의되지 않은 연기는 연기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피해자로 하여금 형사처벌을 받게 할 목적으로 피해자가 허위로 피고인을 고소하였다고 피해자를 무고하였고, 피해자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등으로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이 가중되게 하였다. 그럼에도 피고인은 이 사건 범행을 부인하면서 잘못을 반성하고 있지 않다. 피고인에게는 이에 상응하는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명시했습니다. 이는 최근 많은 성폭력 가해자들이 자신의 범죄에 대한 책임을 피하고 형벌을 면할 목적으로 피해자를 무고하는 보복성 역고소 행위에 대한 일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해야할 과제들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본 사건의 피고인은 항소심 재판부의 이런 판결에도 불구하고 항소심 판결 직후 “세상이 무섭다”, “단체 시위로 무죄에서 유죄”, “억울하다”며 여전히 자신의 가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사실과 다른 일방적인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는 영화 속 피해자 배역 이름을 거론하며 피해자의 신상을 노출하는 등 2차 피해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언론 또한 이런 가해자의 주장을 거르지 않고, 제대로 취재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보내며 2차 피해를 확산하고 있습니다. 피고인은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을 받아들이고,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중단해야 합니다.

    한국영화가 만들어진지 100년이 다되도록 영화는 과정의 온당함 보다 만들어진 결과를 중시해 왔습니다. 천만관객 혹은 해외 유명영화제의 수상에 초점을 맞춰 “재밌는 영화”, “좋은 영화”만 대중의 기억에 남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흥행”과 “작품성”에 치중하여 함께 영화를 만드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없었습니다. 사실적인 연기를 유도한다는 미명 하에 상대 여자배우 모르게 남자배우에게만 연출지도를 하고 그럴듯한 화면을 위해 실제 위험으로 내모는 일이 자행되어 왔습니다. 남배우A 사건의 항소심 판결이 계기가 되어 영화를 위해선 뭐든 용인 될 수 있다는 이러한 생각과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어온 폭력은 중단되어야 할 것입니다. “좋은 영화”는 “좋은 현장”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영화를 만드는 상식 또한 삶의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향후에도 남배우A사건 공동대책위 참여 단체들은 남배우A사건에 그치지 않고 영화계 내 성폭력 사건이 사라지고 성평등한 현장이 정착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활동을 전개해 나갈 것입니다.
     
    2017. 10. 24.

    여성영화인모임, 장애여성공감,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125개소),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찍는페미, 평화의샘,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한국여성민우회 여성연예인인권지원센터,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사진 출처 : 한국여성민우회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