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장악 '내로남불' 운동권은 된다고?
  • '방송장악'도 내로남불인가?

“이사회 참석을 폭력으로 방해하며 부상을 입힌 것.
법인카드 사용내역의 불법적 공개. 
이것들이 공영방송 KBS 직원으로서 할 짓인가? 
과연 그대들이 기자와 피디가 맞나? 부끄러울 뿐이다.
이 나라 공권력은 뭐하고 있나? 
시민이 백주에 테러에 가까운 위협을 받아도 보호받지 못하는 나라, 이것이 법치주의 대한민국 맞나?”

이것은 KBS 공영노조가 발표한 성명서의 한 대목이다. 
필자는 KBS 사태에 너무 자세하게 개입할 생각은 없다.
다만 거시적으로, 방송장악이라는 논점 자체에 대해서만 의견을 밝히려 한다.
어느 한 정파가 공영방송을 장악하는 건 물론 옳지 않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박정희 대통령 시절, 신군부와 5공 시절을 통해 공영방송이
모든 정파가 다 수긍할 수 있을 정도의 공정성을 갖췄다고 볼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과 노무현 대통령 시절은 어땠느냐 하는 것이다.
이때도 공영방송 사장이 국민투표로 당선된 건 아니었다.
국민투표로 공영방송 사장을 뽑아야 한다는 걸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이때도 공영방송 사장은 정권 즉 대통령의 낙점을 받은 사람이
낙하산을 타고 사장직에 내려앉았다.
그러면 사장은 고위직과 요직을 신(新)권력 진영에 우호적인 사람들로 메웠다.
시사 프로그램도 신 권력 진영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편성하는 경향이 현저했다.

김대중 노무현 시절의 공영방송에서 특히 두드러져 보였던 것은
노조의 입김이 셌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진보’ 운동권적 성향이 현저했었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서도 깊이 논의하진 않겠다. 다만 묻고 싶은 건,
권위주의 시대에 그 주역들이 공영방송을 장악하는 것만 ‘방송장악’이고
‘진보’ 정권 시절에 그 진영 사람들이 공영방송을 장악하는 건 ‘방송장악’이 아니냔 것이다.
후자는 ‘방송장악’이 아니라 그 무슨 ‘방송해방’ ‘방송 분리-독립’이라도 되었느냔 물음이다.
새로 집권한 더불어 민주당도 '방송장악' 기도라고 할 문건을 작성했다고 해서 논란을 빚고 있다. 어째서 남이 장악하는 건 ‘방송장악’이고 자기들이 장악하는 건 ‘방송장악’이 아닌가?
이런 일방적 논리가 어디 있나?

이상적인 상태는 물론 영국의 BBC 같은 방송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수준으론 그걸 바라기가 아주 어려워 보인다.
우리 사회에선 심지어는 가장 객관적이어야 할 재조(在朝) 법조계에서조차
“사법행위는 정치행위다”라며, 자유민주주의 철학보다는 다분히 운동권적인 철학으로
재판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공연히 대두하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공영방송계에서도 헌법적 객관성보다는 그 어떤 ‘운동권적’ 기준에서 방송을 구성하고 조직하고 경영하고 편성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게 대두하고 있다.

이런 의지는 ‘운동권적’ 명분과 당위면 무엇이든 정당화할 수 있다는 식의 정서와 논리로
폭주하고 있다. 자기들 ‘진보’와 운동권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다 옳고,
그렇지 않은 쪽이 하는 일은 무조건 다 반(反)역사적이고 수구적이며 ‘적폐’이고
반(反)민주-민족-민중, 다시 말해 자기들만이 정의(正義)-정당-도덕 그 자체이고,
자기들에 반대하는 쪽은 불의-부당-부도덕이라는 낙인인 셈이다.

이따위 ‘내로남불’은 한 마디로 개 코 같은 소리다.
방송장악은 안 된다.
그러나 그 ‘안 된다’는 노조나 운동권이나 ‘진보’에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류근일 / 전 조선일보 주필 /2017/10/16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r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