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10·4 선언 정신 되새겨야…정치적 판단 말라"
  •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10일 공개한 '핵 과학자·기술자 축하공연' 배경영상 일부로 수소폭탄 탄두로 추정되는 물체를 北기술자가 조립하고 있다.ⓒ北선전매체 보도영상 화면캡쳐
    ▲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10일 공개한 '핵 과학자·기술자 축하공연' 배경영상 일부로 수소폭탄 탄두로 추정되는 물체를 北기술자가 조립하고 있다.ⓒ北선전매체 보도영상 화면캡쳐

    북한 김정은의 6차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이후 트럼프 美대통령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경고로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위기라고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정부가 10·4 정상회담 남북공동선언(이하 10·4 공동선언) 기념 행사를 성대하게 열기로 해 논란을 빚고 있다.

    정부는 노무현 재단·서울시와 공동으로 26일 오후 6시 30분 ‘10·4 남북공동선언 1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는 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 특보의 강연에 이어 기념식과 만찬을 진행한다. 기념식에는 조명균 통일부 장관, 박원순 서울시장, 故노무현 前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와 아들 노건호 씨 등 각계 인사와 시민 600여 명이 참석한다.

    북한의 도발이 빈번해진 뒤 '10.4 공동선언' 기념 행사를, 그것도 정부와 지자체·민간이 공동 주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10.4 공동선언'의 내용대로 찬찬히 살펴보면, 문재인 정부와 노무현 재단 측은 북한을 강력히 비난하는 게 맞다. 북한이 공동선언한 내용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어서다.

    10·4 선언 1항 <남과 북은 6·15 공동선언을 고수하고 적극 구현해 나간다>

    10·4 공동선언의 정식 명칭은 ‘남북 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이다. 2007년 10월 4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이 합의한 뒤 나온 선언이다.

    10·4 공동선언은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간 합의인 ‘6·15 남북 공동 선언문(이하 6·15 공동선언)’을 바탕으로 남북관계를 설정하고, 이를 성실히 이행하자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문제는 6·15 공동선언, 10·4 공동선언 등을 먼저 무시하고 파기한 것은 북한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북한은 한국 측에 기회가 될 때마다 "해당 선언들을 준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난 5월 23일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이하 6.15 남측위)’는 6·15 공동선언 17주년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통일부에 대북 접촉을 신청했다. 통일부는 5월 31일 대북 접촉을 승인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두 번째 대북 민간 접촉 승인이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 6.15 공동행사를 마지막으로 치른 이후 9년 만에 남북공동행사가 재개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기대감은 북한의 태도로 물거품이 됐다. 민간단체가 북한을 방북하려면 통상 7일 전에 통일부에 방북 승인을 요청해야 하며, 이때 북한 측의 초청장과 신변안전각서 등의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데 북한이 초청장을 보내지 않은 것이다.

    북한은 그러면서 공동행사 개최 실패가 한국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北민족화해협의회는 지난 6월 16일 대변인 담화를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6·15 공동선언 발표 17돌을 맞아 진행하기로 했던 북과 남, 해외의 민족 공동행사가 남조선 당국의 우유부단하고 모호한 태도로 하여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 2007년 10월 3일 오전 백하원 영빈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을 마친 당시 노무현 대통령(왼쪽)과 김정일이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나오고 있다.ⓒ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07년 10월 3일 오전 백하원 영빈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을 마친 당시 노무현 대통령(왼쪽)과 김정일이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나오고 있다.ⓒ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10·4 공동선언 6항 <남과 북은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우수한 문화를 빛내기 위해 역사, 언어, 교육, 과학기술, 문화예술, 체육 등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다>

    10·4 공동선언 7항 <남과 북은 인도주의 협력사업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10·4 공동선언이 제대로 이행되려면 남북 간 대화 채널이 유지돼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2016년 핵실험과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뒤 서해 군 통신선과 판문점 연락 채널 등을 일방적으로 끊었다.

    현재 남북은 판문점에서 핸드 마이크나 육성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 외에는 다른 소통 수단이 없는 상태이다.

    정부는 지난 17일 남북 적대행위를 중지하는 군사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회담을 열자고 북한에 제안했다. 하지만 북한은 정부의 요청을 철저히 무시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8월 31일 ‘주제넘은 대화 조건 타령을 거둬치워야 한다’는 논설을 통해 “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고 군사적 실권마저 미국에 통째로 내맡긴 남조선 집권세력이 그 누구의 추가적인 핵·미사일 도발 중단을 '대화 조건'으로 내들고 있으니 이 얼마나 가소로운 추태인가”라고 주장했다.

    北‘노동신문’은 “남조선 당국이 들고 나오는 대화 조건이라는 것은 북남 관계에서 도저히 성립될 수 없는 것으로써, 대화 그 자체를 부정하는 자가당착적인 것”이라면서 “남조선 당국자들이 지금처럼 ‘대화 조건’ 타령이나 하면서 반공화국 대결을 고취한다면 북남 대화의 길은 영영 가로막히고 파멸의 시각만 앞당기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위협했다.

  • 북한 '조선중앙TV'는 김정은이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 발사 현장을 찾았다고 지난 15일 보도했다. 사진은 관련보도 일부.ⓒ北선전매체 보도영상 화면캡쳐
    ▲ 북한 '조선중앙TV'는 김정은이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 발사 현장을 찾았다고 지난 15일 보도했다. 사진은 관련보도 일부.ⓒ北선전매체 보도영상 화면캡쳐

    10·4 공동선언 3항 <남과 북은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한반도에서 긴장완화와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하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은 지금까지 10번의 도발을 자행했다. 북한은 지난 7월 이후 美본토를 목표로 한다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을 2차례 발사했고, 8월에는 미국령 괌을 향해 '화성-12형'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로 포위공격을 하겠다고 협박했으며, 9월 3일에는 6차 핵실험까지 실시했다.

    북한은 자신들의 핵·탄도미사일 활동이 한반도 평화·안정을 위한 것이며 자위적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김정은의 통치 전략인 ‘핵·경제 병진노선’을 지속할 것이라는 뜻을 밝히고 있다.

    반면 북한 김정은 정권의 타도 대상 '0순위'인 한국 정부는 인도적 목적이라며 800만 달러(한화 약 91억 원)를 대북지원한다고 결정한 데 이어, 북한 김정은이 이미 무시해버린 '10·4 공동선언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치르겠다고 밝히고 있다.

    때문에 문재인 정부에 우호적인 측에서조차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기류와는 어긋나는 행보’가 아니냐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통일부 당국자는 26일 “오히려 현 시점에서 10·4 공동선언의 원 플레임인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 부분이 더 중시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런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고 본다. (정부 주최 행사 개최에) 너무 정치적으로만 판단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10·4 공동선언을 두고 그동안 등한시 돼 온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면서 “평화통일 실현을 위한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는 게 정부의 책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EU까지도 북한을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보는 와중에 한국 정부의 현실 인식은 뭔가 이상해 보인다.

    다음은 문재인 정부가 기념하는 10·4 공동선언 전문이다.

    <10·4 남북공동선언>

    1. 남과 북은 6·15 공동선언을 고수하고 적극 구현해 나간다.

    남과 북은 우리민족끼리 정신에 따라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며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중시하고 모든 것을 이에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6·15 공동선언을 변함없이 이행해 나가려는 의지를 반영하여 6월 15일을 기념하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남북관계를 상호존중과 신뢰 관계로 확고히 전환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않으며 남북관계 문제들을 화해와 협력, 통일에 부합되게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남북관계를 통일 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각기 법률적·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남북관계 확대와 발전을 위한 문제들을 민족의 염원에 맞게 해결하기 위해 양측 의회 등 각 분야의 대화와 접촉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한반도에서 긴장완화와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서로 적대시하지 않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며 분쟁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해결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한반도에서 어떤 전쟁도 반대하며 불가침의무를 확고히 준수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해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하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과 각종 협력사업에 대한 군사적 보장조치 문제 등 군사적 신뢰구축조치를 협의하기 위하여 남측 국방부 장관과 북측 인민무력부 부장간 회담을 금년 11월중에 평양에서 개최하기로 하였다.

    4.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하였다.

    5.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의 번영을 위해 경제협력사업을 공리공영과 유무상통의 원칙에서 적극 활성화하고 지속적으로 확대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위한 투자를 장려하고 기반시설 확충과 자원개발을 적극 추진하며 민족내부협력사업의 특수성에 맞게 각종 우대조건과 특혜를 우선적으로 부여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해주지역과 주변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고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개성공업지구 1단계 건설을 빠른 시일안에 완공하고 2단계 개발에 착수하며 문산-봉동간 철도화물수송을 시작하고, 통행·통신·통관 문제를 비롯한 제반 제도적 보장조치들을 조속히 완비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개성-신의주 철도와 개성-평양 고속도로를 공동으로 이용하기 위해 개보수 문제를 협의·추진해 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안변과 남포에 조선협력단지를 건설하며 농업, 보건의료, 환경보호 등 여러 분야에서의 협력사업을 진행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남북 경제협력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현재의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를 부총리급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로 격상하기로 하였다.

    6. 남과 북은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우수한 문화를 빛내기 위해 역사, 언어, 교육, 과학기술, 문화예술, 체육 등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백두산관광을 실시하며 이를 위해 백두산-서울 직항로를 개설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2008년 북경 올림픽경기대회에 남북응원단이 경의선 열차를 처음으로 이용하여 참가하기로 하였다.

    7. 남과 북은 인도주의 협력사업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흩어진 가족과 친척들의 상봉을 확대하며 영상 편지 교환사업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금강산면회소가 완공되는데 따라 쌍방 대표를 상주시키고 흩어진 가족과 친척의 상봉을 상시적으로 진행 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자연재해를 비롯하여 재난이 발생하는 경우 동포애와 인도주의, 상부상조의 원칙에 따라 적극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8. 남과 북은 국제무대에서 민족의 이익과 해외 동포들의 권리와 이익을 위한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이 선언의 이행을 위하여 남북총리회담을 개최하기로 하고, 제 1차회의를 금년 11월중 서울에서 갖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정상들이 수시로 만나 현안 문제들을 협의하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