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단독 군사행동에 '코리아 패싱' 우려 증가하는데…우리 정부, 명확한 입장 없어
  •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4일 NSC 전체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4일 NSC 전체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미국과 북한의 극으로 치닫는 전쟁 위기 속에서 청와대가 좀처럼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대화냐 제재냐 라는 기본적인 방향성에서부터 갈팡질팡 하더니, 미국 B-1B 전략폭격기가 NLL을 비행한 이후에도 딱 부러지는 설명보다 아전인수격 해명에만 집중하는 모습이다.

    죽음의 백조라 불리는 B-1B가 한미 양국이 어떤 협의를 거쳐, 어떤 경로로 날아갔는지 설명하지는 못한 채, 단순히 '미국의 작전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얘기만 반복 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25일 오전 기자들과 만나 미국 전략폭격기의 북한 공해상 비행과 관련해 "NSC의 공식적 입장은 사전에 충분히 협의 됐고 비행 작전과 시기도 공조하에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대통령께 보고됐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NSC가 정부 출범 이후,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실험이 있을 때 사후 대응조치를 강구하기 위해 열렸는데, 대통령께서 사전에 충분히 점검하고 분석해서 대응책을 대비하는 NSC도 필요하다는 말씀이 있었다"고 했다.

    청와대의 NSC 소집이 미국의 북한 공해상 비행 소식에 부랴부랴 이뤄진 것이라고만 해석하기는 곤란하다는 주장이다.

    앞서 미국은 지난 23일 밤부터 24일 새벽까지 '랜서'라 불리는 미국의 B-1B 전략폭격기를 북한 동해상에 급파했다. '랜서'는 미국이 보유한 전략폭격기 중 가장 많은 폭탄을 탑재할 수 있으면서 속도도 가장 빠른 기종으로 손꼽히는 기종이다.

    간밤에 이뤄진 기습작전에 뒤따라 NSC까지 소집되자 배경을 두고 여러 해석이 뒤따랐다. 미국이 독자적인 군사작전을 수행할 수도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시각부터 단순히 북한에 힘을 과시하려는 것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미리 알고 있었다'는 입장만 반복할 뿐, '통보냐, 협조냐'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이 관계자는 미군의 비행이 청와대가 동의한 사안이냐는 질문에 "공조가 됐다는 표현 자체는 동의가 됐다는 표현이 아니겠느냐"면서도, 이후 질문이 잇따르자 "풍부한 해석을 존중하겠다"고 언급했다. "추가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제안해보겠다"고도 했다.

    이처럼 청와대는 사후브리핑을 통해 미군의 움직임을 사전에 감지하고 있었다는 사실만 밝혔을 뿐, 이에 대한 입장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구체적인 사실 관계 자체에 대한 의문도 아직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먼저 랜서 폭격기가 우리나라의 영공을 지나갔는지 여부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청와대는 미국의 전략 폭격기가 북한의 영해에서 비행했음을 언급했을 뿐, 영공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카디즈'(KADIZ)라는 방공식별구역을 두고 있다. 때문에 B-1B가 우리나라의 방공식별구역을 가로질러 북한 해안선 근처를 비행했다면 사전에 우리 정부의 허락을 득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그간 피력해온 기조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부분이다. 문 대통령이 미국의 군사행동을 받아들였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8·15 경축사에서 "한반도에서의 군사 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며 "정부는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을 것"이라고 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영공을 통과하지 않았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 경우 미국은 우리 정부에 반드시 동의를 구할 필요가 없다. 언제든 우리 정부에 통보만 한 뒤 북한에 작전을 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다. 우리 정부가 아무리 '전쟁 불가론'을 펼친다고 하더라도 계속 북한과 미국이 군사적 대치를 계속한다면 한반도 상황은 더더욱 전쟁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청와대의 명확한 입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당장 이번 작전이 우방국이 참여가 없는 단독 작전이라는 점 때문에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군사적 패싱'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그간 미국의 전략자산이 한반도에 출격할 때에는 항상 우리 공군 전투기의 호위를 받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실제로 청와대 역시 NSC에서 미군의 군사행동을 '보고' 받았다고 했지만, 보고 받은 뒤 구체적인 지시사항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과 사전에 협의한 것이 맞다면 이에 대한 대응책이나 지시사항이 응당 하달됐어야 하지만, 여기에 대한 언급은 빠진 셈이다.

    '코리아 패싱' 등을 일찍이 언급한 야당의 발언도 재조명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코리아 패싱'을 언급한 데 이어 최근에는 '문재인 패싱'이라고 언급, 문재인 정부의 외교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지난 8월 말에는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역시 "코리아 패싱이 실제로 일어나면 안 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