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도 말로 타이르면 도둑질을 멈춘다?
  • 힘이 약한 녀석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도둑도 말로 타이르면 도둑질을 멈춘다?

    이 덕 기 / 자유기고가 

      ① 이 나라에 대대로 내려오던 ‘보릿고개’를 넘어 끼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시절이 왔다.
    그 즈음 동네 골목에서는 국민학교 다니는 또래들이 모여 딱지치기, 구슬 따먹기, 비석 맞추기 등의 놀이를 하곤 했다. 그 또래들 중에 힘이 제일 약한, 그래서 싸움을 하면 늘 상 얻어터지던
    아이가 있었다. 
      그날도 골목 후미진 곳에서 코피를 닦고 있던 참이다.
    마침 그 곳을 지나던 동네 할배가 걸음을 멈추고 그 아이에게 다가왔다.
    그 할배는 개울 건너에서 유명한 서당을 다닌 적이 있었다.
    그 할배가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개울 건너에 이 동네에서 싸움을 제일 잘하는 네 또래가 있는데,
    그놈하고 친구를 한 번 해봐라.” 
      며칠 후 그 할배가 직접 그 또래 놈을 만나게 주선해 주고,
    이런 저런 말씀으로 어르고 달래서 서로 친구를 하게끔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늘상 얻어터지던 아이를 괴롭히던 골목 친구들이 이제는 슬슬 그 아이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런 원리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세월이 지나지 않았다. 
      골목 놀이판에서 다른 애들한테 얻어터지지 않으려면,
    가장 힘이 세고 싸움을 제일 잘하는 녀석을 친구로 삼아야 한다고...

      ② 매미 울음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초가을 밤... 어느 배다른 형제의 대화가 이어진다.
    집 담 밖에서는 도둑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동생이 얕은 잠에 빠진 형을 황급히 흔들어 깨우며 하는 말.
    “도둑이 담 밖에 있어!” 게슴츠레한 표정으로 형이 대꾸한다. “담만 넘어 봐라!”
    ▶동생 : 담을 넘었어! 
    ▶형 : 방에 들어오기만 해 봐라.
    ▶동생 : 방에 들어왔는데...
    ▶형 : 물건 가져가면 혼 내킨다고 니가 말해!
    ▶동생 : 들은 척도 안하고, 물건 가지고 나가네...
    ▶형 : 고오래? 다시 오기만 해 봐라!!
    ▶동생 : 형! 찜찜한데 대문에 소금이라도 뿌릴까?
    ▶형 : [하품과 함께 다시 잠자리에 들며] 뭐, 그러던가... 

      그런데 며칠 후 다시 도둑이 들었다.
    엊그제 그 놈이다.
    형이 집에 준비해 둔 몽둥이를 들고 도둑을 때려잡겠다면서 방문을 박차고 나서려는 찰나...
      동생이 형을 가로막으며 한마디 한다.
     “도둑도 먹고 살아야 하잖아. 오죽했으면 남의 집을 털겠어. 그냥 말로 타이르자.”
      그날 밤 이후 그 도둑은 제집 드나들 듯 했다나, 어쨌다나...


  ③ 동네 어귀에서 마을 꼬마 두 녀석이 맞짱을 뜰 거라는 소문이 돌자,
 동네 어른과 애들은 물론이고 이웃 마을 어른들까지 구경을 왔다. 
  누더기 옷을 입은 인상 험악한[완벽한 돼지꼴이다] 녀석은
자기 체구에 비해 엄청 큰 주먹을 휘둘러대며 한 방 날릴 기세다.
이에 맞서, 곱게 차려입은 모범생 얼굴을 한 녀석은 기마(騎馬) 자세를 취한 채,
주먹 꽉 쥔 두 손을 얼굴까지 올렸다. 상대를 째려보면서 여차하면 받아치겠다는 표정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모범생 얼굴을 한 녀석이 주먹 쥔 손을 풀고 팔을 내리면서
“나는 너를 이길 마음이 없어. 마을의 평화를 위해서야!”라고 외친다.
그리고는 허허로운 웃음 띤 얼굴로 오른손을 인상 험악한 녀석에게 내밀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동네 어른과 애들, 그리고 이웃 마을 어른들은
일제히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의 속내를 금세 파악한 양, 또한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측이나 한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뿔뿔이 흩어졌다. 누군가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쟤가 항복한 거 맞지?”

  ④ 아무리 ‘쓰고 읽는’ 역사를 자신의 구미에 맞게 왜곡한다고 해도
실체로서의 역사는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 실체로서의 역사는 언젠가 현재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나쁜 역사’는 과연 반복되는가?
반복된다면, 그 이유가 그 ‘나쁜 역사’에 대한 무지(無知)·망각(忘却), 그리고
무시(無視) 때문은 아닐는지...
<더  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