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본성에 배치되는 자는 한 때 득세할 수 있어도 결국은 무너진다
  • “MBC 파업 사태가 장기화 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경력 기자 중심으로 구성된 MBC노동조합(제 3노조=파업 반대 측)에서 현 시기를 '흑사병'이 창궐하던 시대에 비유, 지금의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해 주목된다.” - 뉴데일리 9/14

  • 인간에게 가장 절망하는 때는 우세한 쪽의 갑(甲)질을 목격할 때다.

    약한 쪽이 강한 쪽에 대드는 게 아니라, 한창 득세하고 있는 쪽 ‘쫄따구’들이 ‘형’ 빽 믿고 약한 쪽에 알통자랑 하는 건 정말 보기 메스껍고 추하다.

    세상이 바뀌면 그런 완장부대가 의례 나타나 상대방에 집단 스토킹을 해대고 행패를 부린다.

    반면에 인간에 대한 희망과 신뢰를 잃을 뻔 했다가도 되찾게 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MBC 제3 노조 성명처럼, 자신들에게 썩 이롭지 않은 상황을 의연한 마음가짐으로 견뎌내려는 사례를 목격할 때 바로 그렇다.

    MBC 제3 노조의 ‘위기=전화위복의 기회’란 말은 그래서, 오늘을 사는 우울한 마음들에겐 이 시대를 어떻게 살 것인가와 관련해 의미 있는 화두를 던져준다.

    흑사병이 돌 당시 유럽은 절망 그 자체였다.

    그러나 MBC 제3 노조 성명대로라면 그 당시 유럽인들은 그 황폐한 시대가 던져주고 있던 이면(裏面)의 교훈-즉 “인간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읽고 새로운 희망의 출구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런 흑사병 시기 유럽인들의 통찰력이야말로 오늘을 아파하는 암울한 심정들에게도 큰 위안과 치유가 되고 남는다. 
     
    직장과 직무의 계속성을 지키려 애쓰는 MBC 제3 노조로서는 지금 누구보다도 위안과 치유의 말을 가장 필요로 하는 당사자일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오히려 바깥의 동병상련(同病相憐) 하는 사람들에게 위안과 치유가 될 메시지를 던졌으니, 그 만큼 그들이 정신적으로 건재하다는 뜻일 게다.

    그런 마음이라면 이 어려운 국면을 능히 잘 참아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에 가서 패하는 자는 누구인가?

    인간본성에 배치되는 자는 한 때 득세할 수 있어도 결국은 무너진다.

    실존주의자 메를로 퐁띠가 내비친 생각이다.

    스탈린주의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스탈린은 한 때 강자였으나, 결국은 그의 사후에 후르시초프에게 격하 당했다. 그는 인간본성을 너무 거역했다.

    같은 공산주의자도 견딜 수 없었을 만큼. 이걸 믿는다면 인간은 그 어떤 경우에도 인간본성의 자연스러운 정서와 보편적인 느낌을 위배해선 안 될 일이다.

    인간이 그런 자연스러움과 보편적 느낌을 가장 잃기 쉬운 때가 바로 전쟁, 내전, 혁명 같은 환란의 시기다. 프랑스 혁명 때, 혁명 진영은 너도 나도 급진과격 경쟁을 벌이다가 혁명 전체가 괴물처럼 타락하고 말았다.

    스페인 내란 때도, 중국 홍위병 사태 때도, 심자군 전쟁 때도, 중세기 종교재판 때도, 크메르의 폴 포트 혁명 때도 그랬다. 사람들이 완전히 미쳐 돌아갔던 것이다.

    이래서 우리는 MBC 제3 노조의 성찰적 발언에 각별히 주목한다.

    “흑사병 환란 때처럼 인간의 소중함을 깨치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자”

    힘겨운 싸움의 현장에서도 인간본성의 자연스러움과 보편적 느낌을 잃지 말자는 다짐으로 들린다. 가장 시끄러운 때 가장 온유하게, 가장 차분하게 말한 그들에게 복이 있다.
     
    류근일 / 전 조선일보 주필 / 2017/9/15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