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때 만큼은 내 뜻대로.." 작년부터 마지막 가는 길 준비"이가 안좋아 식사도 제대로 못해..주변에 친구도 거의 없어"퇴임 후 수입 감소..경제적 궁핍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진 듯

  • 지난 십수년간 故 마광수 교수의 작품을 무대 위에 올리며 고인과 오랫동안 친분을 다져온 극단 예술집단 참 강철웅 대표가 "지난해 9월 이미 고인이 작성한 유서를 본 적이 있다"며 "아마도 마 교수가 오래 전부터 자신의 마지막을 직감했던 것 같다"고 밝혀 주목된다.

    강철웅 대표는 7일 뉴데일리와의 단독인터뷰에서 "지난해 9월 연극 '즐거운 사라'에 대한 논의를 하기 위해 교수님을 찾아 뵀었는데 우연히 교수님께서 작성한 유서를 보게 됐다"며 "거기에는 '누구든지 내 시신을 발견하면 잘 치워주고 정리해주면 고맙겠다. 발견한 분에게 유산을 넘기겠다'는 내용이 써 있었다"고 말했다.

    언론에 보도된 유서를 저는 이미 작년 9월에 봤어요. 그때 교수님께 '이런 거는 왜 쓰셨냐'고 여쭤보니 '앞으로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어요'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이런 건 쓰시면 안돼요'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태어난 건 내 뜻대로 태어난 게 아니지만, 갈 때 만큼은 내가 결정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담담하게 얘기하시더라고요.


    강 대표는 "그때엔 제가 '연세도 얼마 안드신 분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냐'고 다그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사는 게 힘드셨으면 그런 유서까지 썼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며 "워낙 건강이 안좋으셨고 주변에 친구도 거의 없어, 오랫동안 고독하게 지내오셨던 게 결국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가 정말 안좋으셨어요. 누가 김치를 담가줬다는 얘기를 하시던데, 말도 안됩니다. 김치를 원래 좋아하지도 않으셨고 그런 건 잘 드시지도 못해요. 저하고 만날 때에도 빵집에서 빵과 우유를 드실 뿐, 제대로 식사를 하시지도 못했어요. 제가 교수님을 한 두해 뵌 게 아닌데요.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전화 한 통 없더라고요. 유일하게 동창이라고 가끔 전화를 주시는 분이 계시고, 연배가 지긋한 형님이 한 분 계신데. 그 정도예요. 주변에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했죠.


  • 강 대표는 "지난해 뵀을 때 연극 '즐거운 사라'에 대한 인센티브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교수님께서 대뜸 '돈 천만원 정도를 미리 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해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며 "당시 '비선실세 순실이'라는 작품을 하느라 수중에 있는 현금을 다 써버려 도와 드리기가 힘들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때 교수님의 부탁을 들어드리지 못했던 게 천추의 한"이라고 말했다.

    정년 퇴임하시고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으셨던 모양이에요. 보통 교수님 작품을 하게 되면 제가 입장 수익의 10%를 입금하거나 봉투에 넣어 직접 드리곤 했는데요. 그날도 그런 얘기를 했던 건데 갑자기 돈을 미리 줄 수 없겠느냐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집을 좀 작은 곳으로 옮기고 가정부도 파트 타임으로 고용하시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씀드렸더니 생각해보겠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나네요. 아마도 자존심 때문에 누구에게 선뜻 빌려달라는 말씀을 잘 못하셨던 것 같아요.


    강 대표는 "아마 교수님을 마지막으로 본 사람도 저일 것"이라며 지난 2일 '즐거운 사라' 대본을 보여드리기 위해 동부이촌동 자택을 찾아가 뵀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너무 말라 계셨어요. 하지만 별다른 징후는 없었죠. 대본 얘기를 주로 나눴는데요. 이번에는 당신의 작품 위주로 대본이 나왔으면 한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최대한 원작에 충실해달라고. 그래서 이번 작품은 원작의 내용을 많이 반영했다고 말씀드리고 앞으로의 계획 등을 설명드렸죠.


    강 대표는 "그 전에도 교수님을 수차례 뵀었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며 "막상 작년에 말씀하셨던 그대로 일이 벌어지니, 정말 말이 안나오더라"고 말했다.

    "오늘도 영결식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밝힌 강 대표는 "사람의 앞날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며 "단 돈 만원이 없어서 생명의 끈을 놓아버리는 사람도 있다. 우리 주변을 좀 돌아보고,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왈가왈부하는 일들이 좀 없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 [사진 제공 = 극단 예술집단 참 강철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