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객들 "대체 무슨 의도? 북한 정권 미화하겠다는 것이냐" 절레절레
  •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2일 열린 서울 도시건축 비엔날레 전시실 ⓒ 뉴데일리 방성주 기자
    ▲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2일 열린 서울 도시건축 비엔날레 전시실 ⓒ 뉴데일리 방성주 기자

     

    서울 도시건축 비엔날레 '평양전'을 둘러본 탈북자들은 이곳이 북한 주민들의 실상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에 못내 아쉬워하는 모습이었다. 서울 비엔날레를 찾은 일부 시민들은 "평양전이 북한 주민들의 삶을 미화(美化)하고 있다"는 지적도 쏟아냈다. <뉴데일리>가 논란의 중심, 평양 고급 아파트를 재현한 전시관을 확인하기 위해 비엔날레가 열리는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PP)를 2일 방문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평양전-평양살림' 모델하우스는 북한 중산층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제작됐다. 거실엔 TV·냉장고와 같은 가전제품과 소파가 놓여 있었고, 선반에는 샴푸, 치약 등 생활용품이 진열돼 있었다. 자녀 공부방에는 반듯한 책상과 침대가 있었다. 침대에는 명주로 지은 고급스러운 황금색 이불이 깔려 있었다.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만 빼면 누가 봐도 현재 서울 중산층 가정의 주택과 유사하다는 지적이다.

    평양에 가본 적이 없는 본지 기자는 평양전의 현실성을 검증하기 위해 탈북자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기자는 탈북자들에게 이 전시실이 평범한 북한 주민들의 삶을 정확히 반영하는지 물었다. 

    "진짜 북한 주민들이 이렇게 생활하고 있나요?"

    탈북자들은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이들은 모두 "이곳은 평범한 북한 중산층의 모습이 아닌 고위층의 삶을 반영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평양전 모델하우스에서 만난 탈북 웹툰작가 최성국 씨도 서울 전시실이 북한의 실상을 정확히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최 작가는 "이 모델하우스는 북한 고위층, 대략 상위 10%에서 20%를 점하는 사람들의 생활 양식을 보여준다"며 "이 정도 아파트면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항일 게릴라 투쟁에 앞섰던 인물이 사는 주택"이라고 설명했다. 

    최성국 작가는 "제대로 된 북한의 모습을 보여주려면 숨 막히고 억압받는 모습을 재현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서울 비엔날레 평양전 모델하우스 ⓒ뉴데일리 방성주 기자
    ▲ 서울 비엔날레 평양전 모델하우스 ⓒ뉴데일리 방성주 기자

     

    이곳을 찾은 시민들에게도 평양전 모델하우스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관람을 마치고 나온 시민들은 기존에 알고 있었던 북한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반응이었다. 각각의 시민들은 "평양전이 북한 정권을 미화했다",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겠다", "북한도 살만한 곳 같다" 등의 소감을 이야기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북한 체제를 선전하는 게 아닐까요?" 평양전을 찾은 대학생 최OO(23) 씨는 오히려 기자에게 반문했다. 최 씨는 "뉴스를 보면 가난에 찌든 북한 주민들이 국제사회로부터의 원조(援助)를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 모델하우스를 보면 북한도 잘 사는 것 같다"며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구현하려면 상류층의 집 뿐만 아니라 중산층과 하층민들의 삶을 함께 보여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경제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최OO(31) 씨도 "북한의 경제 실상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 씨는 "현재 북한 주민들의 1인당 국민소득이 700달러에 못 미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1970년대와 같은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에선 평범한 중산층이 전시실에 놓여 있는 냉장고나 전자 제품은 살 수 없을 것 같다"며 "결국 평범한 북한의 모습은 아닌 것 같다"고 아쉬워 했다.

    외국인들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평양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는 영국인 하슬리(Harsely·40) 씨는 "북한의 모습은 이곳과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실상을 폭로한 '태양아래' 영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일반인의 집에는 김일성·김정일 초상화 외에는 다른 예술품이 없으며, 예술은 오로지 김정은의 우상화를 위해서만 이용된다"고 설명했다. 하슬리 씨는 "이곳은 예술품을 통해 북한에서의 삶이 일상적이고, 아름다워 보이도록 조작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직장인 김OO(48) 씨는 "북한에서는 전력난 때문에 가정집의 정전이 일쑤라고 하는데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해서 갑작스러운 정전 사태도 보여주는 프로그램도 준비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내가 기획을 맡는다면 몰래 들여온 라디오에서 남한 방송을 들으며 간절히 통일을 기다리는 북한 주민의 모습도 함께 넣어 통일에 대한 염원도 그리겠다"고 했다.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이곳을 찾은 정OO(45) 씨는 아들이 북한의 실상을 오해할까 걱정이다. 정 씨는 "김정은은 오직 자신의 생존을 위해 자국민을 억압하는 인물인데 오히려 제대로 된 평양을 보여주려면 호화로운 주석궁과 평양 외각 지역에 사는 일반 주민들의 삶을 비교해 보여줬어야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썩 괜찮은 평양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보고 내 자식이 북한 정권의 실체를 오해할까봐 아들에게 최근 벌어진 북한의 도발을 설명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 황금색 명주로 만든 이불이 있는 서울비엔날레 평양전 모델하우스 ⓒ뉴데일리 방성주 기자
    ▲ 황금색 명주로 만든 이불이 있는 서울비엔날레 평양전 모델하우스 ⓒ뉴데일리 방성주 기자

     

    일부 관람객들은 서울시 측의 기획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대학생 조OO(28) 씨는 "어떻게 연일 미사일로 우리 국민을 두려움에 떨게하는 북한을 어떻게 이렇게 미화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연거푸 내쉬었다. 조 씨는 "북한 정권이 운영하는 방송에 의해 기만당하는 주민들의 모습도 간접적으로라도 넣어야 관람하는 시민들이 북한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을텐데, 이러한 기획은 김정은 정권 아래서 고통 받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무책임한 행동이며 수년간 북한인권법을 통과시키지도 않은 무책임한 정치인과 다를 바가 없다"고 꼬집었다.

    하OO(31) 씨는 "서울시가 평양전을 설명하기 위해 탈북자들로 구성된 도슨트(Docent·안내원)를 배치했는데 이들은 모델하우스가 평양의 중산층의 모습이라고 강조한다"고 했다. 하 씨는 "비엔날레 개최 전부터 평양 전시실이 북한 정권을 홍보한다는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탈북자들의 입을 빌려 논란을 덮기 위한 것이 아니냐"고 했다.

    "평양도 살만해 보인다"는 평가도 나왔다. 비엔날레를 찾은 대학생 한OO(26) 씨는 기자에게 "여태껏 학교에서는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의 폭압 아래 가난하게만 사는 줄 알았는데 실제 공간을 재현한 곳에 와보니 북한에서도 살만 한 것 같다"고 했다. 다른 관람객은 "공간이 앤티크(Antique·고풍스러움)하고 예술적이다"라고 말했다.

    시민들의 지적에도 서울시 측은 "(평양전은) 북한 중산층 주민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시 관계자는 "북한 전문가의 의견에 따르면 모델하우스에 설치된 커튼은 주로 중산층이 사용하는 커튼이며 베란다에 쓰이는 타일도 평양의 주민들이 쓰는 타일"이라고 평양전 모델하우스를 홍보했다.

    나아가 서울시는 이곳을 중·고등학생들의 북한 교육 현장으로 이용한다는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현장 취재 기자들에게 "이 공간을 학생들의 교육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해 교육청과도 협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 관계자는 "10월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북한영화를 상영할 계획도 있다"고 했다.

     

  • 평양의 고층빌딩을 배경으로한 서울비엔날레 평양전 모델하우스 ⓒ뉴데일리 방성주 기자
    ▲ 평양의 고층빌딩을 배경으로한 서울비엔날레 평양전 모델하우스 ⓒ뉴데일리 방성주 기자

     

    ▽ 서울 도시건축 비엔날레는?

    '서울 도시건축 비엔날레'는 9월 2일부터 11월 5일까지 돈의문 박물관·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PP)를 비롯한 서울의 역사·산업 현장에서 열린다.

    서울시는 '공유도시'라는 주제로 300여개 전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서울시는 전 세계 도시가 마주한 문제를 풀어나갈 방법을 공유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비엔날레를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비엔날레의 총감독은 배형민 서울시립대 교수와 자에라-폴로(Zaera-Polo)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맡았다.

    '공유도시'를 다룬 주제 전시는 4가지 공유자원과 5가지 공유양식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공유자원은 공기, 물, 불, 땅이며 공유양식은 만들기, 감지하기, 움직이기, 다시쓰기, 소통하기로 구성된다.

    세계 도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평양전'은 실제 평양의 아파트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기획됐다는 주장이다. 평양전과 관련한 설명회는 10월 18일 열릴 예정이다.

    서울시는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도 준비했다. △도시 탐험대 △ 공유도시 서울투어 △ 보행놀이터 등의 프로그램이다.

    배형민 총감독은 "공유도시 서울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서울 비에날에 시민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 증강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서울비엔날래 체험 전시장 ⓒ뉴데일리 방성주 기자
    ▲ 증강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서울비엔날래 체험 전시장 ⓒ뉴데일리 방성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