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이 내다 본 오세아니아, 북한, 그리고 한국
  • 趙甲濟  /조갑제닷컴 대표
  • 1948년 8월15일의 정부 수립에 의하여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소련군이 아니라 김일성이 북한을 해방하였다는 거짓말과 쌍벽을 이룰 만하다. 광주사태 때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여러 차례의 국가적 조사(수사, 재판 포함)를 권력의 압박으로 왜곡하거나 조작한다면 이는 과거에 대한 기억을 통제하여 권력을 유지하려는 전체주의적 수법이 될 것이다.
      
      조지 오웰이 폐결핵으로 죽어가면서 쓴 소설 '1984'는 오세아니아라는 미래의 전체주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인간말살을 그린 것인데 오늘의 북한을 예언한 듯하다. 특히 오세아니아와 북한의 작동 원리가 거의 같다. 
      
      *오세아니아는 두 적대국과 전쟁 상태이지만 서로 적당히 싸운다. 치명상을 주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리하여 전쟁상태는 승자도 패자도 없이 영구적으로 계속된다. 이 전쟁은 두 가지 목적을 가진다. 첫째, 전쟁은 소비 상품의 생산력을 감소시켜 주민들을 가난하게 만든다. 주민들을 가난하고 배고프게 만들어야 반란을 예방할 수 있다. 전쟁으로 인한 긴장상태를 이용, 계급사회의 유지에 필요한 특별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 진정한 의미의 전쟁은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전쟁의 목적은 영토를 차지하거나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지배구조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처럼 지속적인 전쟁은 지속적인 평화와 같다. 즉, 지속적인 전쟁상태를 유지하여야 지배층에는 지속적인 평화(이런 평화를 공동묘지의 평화라고 부른다)가 유지된다. 오세아니아의 당에서 내건 슬로건, '전쟁은 평화이다'는 말뜻이 바로 이것이다. 
      
      *조지 오웰의 천재성은 전체주의 체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텔레비전 등 전자 기술이 이런 체제를 위하여 어떻게 악용될 것인가를 내다 본 데서도 드러난다. 그는 과거의 어떤 정부도 시민들을 24시간 감시체제 하에 둘 수 있는 힘이 없었다고 했다.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상황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의 개발과 같은 장치로 송수신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기술의 발전에 의하여 사생활은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오세아니아의 모든 시민들은 집집마다, 방마다, 거리마다, 작업장마다 설치된 '텔레스크린'의 감시하에 놓이게 되었다. 텔레스크린은 경찰의 눈이고 선전부의 입이다. 텔레스크린을 제외한 다른 모든 통신수단은 금지되었다. 텔레스크린의 등장으로 국가의 의지에 대한 완전한 복종뿐 아니라 모든 주제에 대한 완전한 의견 일치를 달성하는 것이 역사상 처음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북한에서는 텔레스크린은 없지만 모세혈관 같은 노동당 세포 조직과 집집마다 걸려 주민들을 내려다 보는 大兄(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가 주민들에게 같은 역할을 한다. 당의 세포 조직과 상호비판 제도가 텔레스크린의 감시 역할을 한다. 조지 오웰이 1984를 쓰던 1948년 무렵엔 아직 텔레비전이 보편화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웰은 이것의 가공할 정치적 의미를 간파한 것이다. 
      
      *오세아니아는 주민들의 저항을 막기 위하여 텔레스크린을 이용한 감시뿐 아니라 다양한 선동 방법을 동원한다. 당의 존립 목적은 오로지 권력유지이다. 
      
      1. 기억의 조작: 정권 유지에 불리한 정보를 차단하고 주민들이 진실에 눈을 뜨는 것을 막기 위하여 사람들의 기억을 통제한다. 특히 정권 유지에 불리한 역사적 기록을 왜곡, 날조한다. 과거는 실체가 아니라 인간의 기억이므로 기록을 조작하면 기억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1984년의 오세아니아를 다스리는 黨은 과거나 역사는 객관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거는 기록과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과거는 기록과 기억이 합의한 그 무엇이다. 당이 모든 기록을 통제하고, 모든 구성원의 마음을 통제하므로 과거는 무엇이든 당이 선택한 대로여야 한다. 과거는 또 당이 원하는 대로 변조되고 바꿔치기 될 수 있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나오면 그 전의 과거는 지워진다. 같은 역사적 사건이 당의 필요에 따라 여러 번 바뀌기도 한다. 
      
      대형이 수령으로 있는 당의 슬로건은 이렇다. 
      
      <과거를 지배하는 이가 미래를 지배하는데, 현재를 지배하는 이가 과거를 지배한다.>
      
      현재의 독재권력으로 과거와 역사를 멋대로 조작할 수 있어야 사람들의 역사관과 가치관을 통제하여 영원히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2. 언어의 조작: 용어혼란 전술과 새로운 문법을 병용한다. 비판정신을 일깨우는 단어, 예컨대 '과학'이라는 낱말은 사전에서 지워버리고 못 쓰게 한다. 언어가 인간의 思考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오세아니아에선 2중적 언어 해석의 법칙이 엄격하게 시행된다. 한 단어가 상반된 두 의미로 쓰인다. 사람들은 당이 원하는 방향으로 해석한다. 전쟁을 일삼는 부처는 평화부이다. 전쟁과 평화의 두 상반된 의미를 적절하게 쓰도록 훈련된다. '자유는 노예이다'는 구호는 모순된 것 같지만 개인의 자유를 大兄에게 바쳐서 노예가 되어야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고문을 자행하는 검찰 기관은 愛情部이다. 거짓선동이 전문인 부서는 眞實部이다. '무식이 힘이다'는 구호도 '힘이 무식이다'는 의미로 바꿀 수 있다. 
      
      3. 외부 및 과거와 단절: 비교 대상이 되는 외부 및 과거 정보와 단절시킨다. 인간은 비교 대상이 없어지면 무중력 상태에서 떠다니는 사람들처럼 방향감각과 비판의식을 잊는다. 
      4. 전쟁상태의 유지: 긴장된 분위기를 유지하고, 주민들을 배고프게 만들어 비판의식 자체를 가질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한다. 
      5. 증오심의 분출: 생길 수 있는 불만을 외부로 표출시키기 위한 '매일 2분간 미워하기' 같은 스트레스 해소 기회를 만든다. 
      
      1984의 가장 핵심적인 장면은 사상 경찰의 심문관 오브리언이 反체제 지식인 윈스턴을 고문하면서 뱉어내는 이야기이다. 
      
      '우리 당은 순전히 우리 자신을 위하여 권력을 추구하는 거야.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다는 것에 대하여는 아무 관심도 없어. 우리는 오로지 권력에만 관심이 있어. 부(富)나 사치, 오래 사는 것, 혹은 행복, 그런 것들이 아니라 권력, 순수한 권력에만 관심이 있다구.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안다는 점에서 과거의 어떤 독재 체제와도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해. 우리와 비슷하였던 자들을 포함하여 그 어느 누구와도 우리는 달라. 그들은 비겁하고 위선자들이었어. 나치 독일과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은 방법론에선 우리에게 매우 근접하였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동기를 인정할 용기가 없었단 말이야. 그들은 원하지 않았는데도 일시적으로 권력을 잡게 된 것처럼 가장하고 저 모퉁이만 돌면 거기엔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천국이 있는 것처럼 속였지. 그렇게 실제로 믿었을지도 몰라. 우리는 그렇지 않아. 우리는 아무도 권력을 넘겨주기 위하여 권력을 잡지는 않는다는 점을 잘 알지. 권력은 수단이 아니고 목적이야. 혁명을 수호하기 위하여 독재를 확립하는 게 아니야. 독재를 하기 위하여 혁명을 하는 거라구. 탄압을 하는 목적은 탄압이다. 고문의 목적은 고문 그 자체라구. 권력의 목적은 권력이고. 이제 알겠어?'
      
      권력의 본질에 대한 이런 정의(定義)를, 권력유지를 위하여 충실하게 적용하고 있는 것이 바로 북한 노동당 정권 아닐까? 그렇기에 북한정권은 소련과 동구권이 무너져도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권력을 목표로 하는 권력, 순수한 권력, 모든 것을 권력에 종속시키는 절대권력, 인류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1984'에서만 상상하였던 권력이 북한에 있는 것이다. 이런 북한체제를 동경하였던 자들이 전향했다는 증거도 없이 국가기관에 들어가 있다면 한국도 머지 않아 과거 조작 등 북한 식 행태를 보이게 될 것이다. 
      
      오브리언은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권력의 성직자들이야. 너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권력은 집단적이란 점이야. 개인은 개인이기를 포기할 때 권력을 가질 수 있어. 너는 당의 구호인 '자유는 노예이다'를 알지. 이것을 거꾸로 돌려 볼 생각은 안 했어? 노예가 자유이다. 혼자이고 자유로운 인간은 늘 패배한다구. 모든 인간은 죽게 되어 있기 때문이지. 그것이 인간의 최대 실패야. 그러나 그가 완벽하고 최종적인 복종을 하고, 자아(自我)로부터 벗어나 당과 일체가 된다면, 그는 전능한 불사(不死)의 존재가 되는 거지. 다음으로 너는 권력이란 인간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이란 점을 알아야 해. 신체에 대한 권력, 그러나 무엇보다도 마음에 대한 지배이지. 물질, 즉 외부적 현실을 지배하는 권력은 중요하지 않아. 이미 물질에 대한 우리의 지배는 절대적이니까.'
      
      당에 헌납한 개인의 생명은 영원하다는 점을 북한에선 '정치적 생명'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북한정권이 1984를 연구하여 실천에 옮긴 것이 아닌가 전율이 돌 정도이다. 
      
      북한에선 수령에 대한 사랑만 진정한 사랑으로 여긴다. 1984도 마찬가지이다. 오브리언이 하는 말도 같다. 독재의 최종 단계는 인간의 마음, 특히 감성에 대한 지배이다. 
      
      '舊시대의 문명은 사랑과 정의에 기초한다고 선전하곤 했지. 우리의 문명은 증오심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 세상에선 공포, 분노, 승리, 그리고 자기모멸감 이외의 감정은 허용되지 않아. 혁명 전부터 내려오던 사고방식을 우리는 부수고 있는 중이야. 자녀와 부모, 남자와 남자,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단절시켰지. 아무도 아내, 자녀, 그리고 친구를 믿지 않아. 장래엔 아내와 친구도 금지될 거야. 아이는 태어나자 마자 어머니로부터 떼내어질 것이야. 암탉으로부터 계란을 가져오듯이 말이야. 性的 본능도 말살될 거야. 오르가즘도 폐지될 거라고. 정신과 학자들이 그 방향으로 연구를 하고 있어. 당에 대한 충성 이외의 충성은 없어. 大兄에 대한 사랑 이외의 사랑은 금지야.'
    [조갑제닷컴=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