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간선제를 직선제로 개헌 요구...미국과 정면대결 태세 준비내각제 개헌 실패한 한민당은 원내세력 키워 다시 내각제 개헌 추진
  • [연재] 이승만史(2) 한미동맹의 탄생 ⑥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인 보길 / 뉴데일리 대표, 이승만포럼 대표

    미국과 유엔을 향하여 ‘중대 경고’ 성명까지 발표한 이승만 대통령은 리지웨이가
    공산측의 수정제의를 받아들여 7월8일 예비접촉을 갖게 되자 즉각 또 반대 성명을 냈다.
    “우리는 전쟁을 조속히 종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38선 정전이라면 정전을 원치않는다.
    우리국민은 국토를 통일하는 성전에 승리를 얻기 위하여 목숨을 희생하고 있다.
    많은 우방국가들의 청년들도 생명을 바쳤다. 그들의 목적도 38선 정전에 있지 않고
    자유국가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이바지하는데 있다.”

    7월10일 개성에서 개막된 본회담 협상은 출발부터 순조로울 리가 없는 일,
    한달이 넘도록 신경전이 벌어지자 리지웨이도 성명을 발표한다.
     “공산측이 개성을 회담장소로 정한 것은 그들이 개성을 점령하고 있다는 위세를
    세계에 선전하려는 속셈으로 적군은 제사보다 젯밥에 목적이 있다”고 비난하였다.
  • 지금은 철거된 중앙청에서 1949년 8월15일 '대한민국 독립 1주년 기념' 축하행사. '한번 뭉처 민국수립 다시 뭉처 실지회복' 구호가 통일을 외친다. (자료사진)
    ▲ 지금은 철거된 중앙청에서 1949년 8월15일 '대한민국 독립 1주년 기념' 축하행사. '한번 뭉처 민국수립 다시 뭉처 실지회복' 구호가 통일을 외친다. (자료사진)
이승만, 2개항 개헌을 요구...대통령 직선세 및 국회 양원제
8월15일 광복절(당시엔 건국기념일:필자주) 부산 임시수도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이승만은 그동안 여러차례 거론했던 ‘결심’을 공식화한다.
“대통령 직접선거제와 양원제” 2대 개헌을 국회에 요구한 것이다.
제헌헌법에는 국회의원들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간접선거제로 되어있고
양원제(兩院制)는 미국의회와 같은 상하원제를 도입하자는 것으로
두가지 모두 배재학당 시절부터의 꿈이다.
  • 광복절 기념사에서 개헌을 요구한 이승만 대통령. 그 옆 기사는 정전협상에서 구획선 타협을 시사한 리지웨이장군.ⓒ조선DB
    ▲ 광복절 기념사에서 개헌을 요구한 이승만 대통령. 그 옆 기사는 정전협상에서 구획선 타협을 시사한 리지웨이장군.ⓒ조선DB
    [부산14일발 AP합동]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주년을 맞이하는 이승만 대통령은 미리 준비된 성명서에서 “대한민국의 탄생과 존립은 대부분 미국과 유엔에 의존한다”라고 요지 다음과 같은 기념사를 발표하였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면서 유엔이 공산군 침략자와의 협상에서 정당한 결말을 짓고 모든 자유국가를 위한 집단적 안전보장책이 수립될 것을 희구하여 마지않는다. 우리 민국정부의 탄생과 존립은 대부분 미국과 유엔에 의존하고 있다. 
    오늘 조용한 아침 우리가 이 자유의 탄생을 기념하는 이 순간에도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가 현재 목표로 하고 고난을 겪고 있는 목적은 확고부동한 평화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합심하여 노력하지 않으면 안될 희망인 것이다.
    우리가 항상 명심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공산진영과 민주진영 간에 전개된 거대한 세계적인 쟁투에 휩쓸려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이 두 사상의 공존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 중 하나만이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세계가 봉착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안되는 위대하고 비극적인 역사적 사실이다. 우리는 합심하여 민주주의를 보호해야 할 것이며 만약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공산주의의 희생물이 될 것이다.
    나는 우리정부의 진실한 기초로서 국민이 각자의 정당한 지위를 보장하기 위하여 헌법의 2개조항 수정을 국회에 요구하였다. 그중 하나는 대통령 선거를 지접선거제로 할 것이며 
    또 하나는 국회를 양원제로 할 것인데 이것은 우리 국가를 민주주의적으로 건전하고 안전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모든 국민들에게 각자가 선출한 국회의원으로 하여금 이 2개 수정언을 지지하도록 요구할 것을 바라는 바이다.“ (조선일보 51.8.16)

    전쟁중에 처음 맞은 광복절에 이승만 대통령은 또한 서울에서 대규모 휴전반대 국민대회를 개최하면서 이를 전국규모로 확대하여 나가는 조치를 취하였다.
    조선일보는 이 대회를 사회면에 대서특필하였다.
  • 광복절을 기해 서울 시민총궐기 대회로 휴전반대 전국시위를 확대하였다.ⓒ조선DB
    ▲ 광복절을 기해 서울 시민총궐기 대회로 휴전반대 전국시위를 확대하였다.ⓒ조선DB
    탄우(彈雨)중에 마지한 감격의 8.15 / 전국민 일제히 통일 전취를 시위
    ---일제(日帝)에 대신하여 그보다 오히려 몇 배나 더 침략성이 강한 적색(赤色) 제국구주의의 마수에 걸려 1년2개월을 피투성이가 되어 싸워가느라고 몸도 고달파진 우리들이기 때문에 광복의 감격도 새롭고 침략의 마수를 걷어치우고 남북통일로 이루어갈 진실한 완전자주독립에 대한 의욕도 더 한층 강해진 것이다.....통일 없는 정전을 반대하고 남북통일의 위업완수를 위한 결의도 더 한층 새롭게 이날을 맞음에 있어서 전국 방방곡곡 기관별로 거행되는 행사에 참가하고 자중자애하여 한가지 염원인 통일과 국가민족 그리고 자신과 자손들에 태평 오기를 빌었으며 그 의기를 충천하였으니 몸과 마음을 다하여 기원하는 민족의 숙원이 달성되고야 말 것인다. 이날 각지에서는 장엄한 국민대회가 열렸으며, 서울시내에서는 집집마다 태극기 나붓기고 깨끗이 청소된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몰려나오는 잔류 서울시민들과, 내집 내고향을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서울을 찾아든 복구 서울시민들은 이날 오전10시 서울 시청광장으로 몰려들어 공산집단에게 당한 지난날의 고생을 다시금 생각하고 남북통일 전취의 기세도 드높게 국민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새로 취임한 미군 1군단장 다뉴엘 소장이 막료를 거느리고 단상에 참석하여 축사를 하자 열화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으며 김태선 서울 시장 격려사에 이어 리지웨이 사령관에게 보내는 메시지와 결의문을 낭독하였다. 대회후 수만명의 인파는 “통일 없는 휴전을 반대”한다는 프랑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치며 저녁까지 시가행진을 벌였는데 피곤한 줄도 몰랐다고 한다.....(조선일보 51.8.16)

    ▶ 전쟁중에 '직선제 개헌'을 요구한 배경과 이유

    전선에선 전투가 한창이고 개성에선 휴전 협상이 시작된 위기 국면에서 전쟁국가 대통령이
     난데없이 왜 헌법개정 요구를 들고 나왔는지 그 배경을 요약해서 훑어본다.

    제헌국회의 헌법 제정때 1차대결: 3년전 한국최초로 국민의 직접선거로 구성된 국회에서
    헌법제벙을 맡은 제헌의원들은 주저할 필요도 없이 ‘내각책임제 헌법’을 마련하였다.
    왜냐하면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할 경우 ‘대통령은 이승만’이 될 수 밖에 때문이다.
    3.1운동후 생긴 임시정부 3개 모두 정부수반은 이승만을 지명할 정도로 그때 이미 굳어진
     ‘카리스마의 거물’을 누가 꺾을 수 있겠는가. 이제 70대가 된 이승만 할아버지는 상징적 대통령으로 모시고 권력은 ‘총리’로 나눠먹는 내각책임제가 당시 정치인들에겐 이심전심 무언의 합의로서
    달리 바꿀 수 없는 선택지였던 것이다.
    이승만은 달랐다. 20대시절부터 평생 꿈꾸던 미국식 대통령중심제를 처음부터 주장하였다. 
    “신생국에다 전쟁하는 마당에 내각제는 망국의 혼란만 불러온다”는 이승만의 설득에 
    그래도 용기를 내어 맞서던 제헌의원들은 이승만이 국회의장이 “그럼 나는 다 그만두겠다”고
    선언하자 놀라서 하루밤새 대통령 중심제로 바꾸었다. 그러면서 ‘총리’는 그대로 끼워 놓아 
    ‘비빔밥 헌법’을 만들었다. 대통령 간선제도 적당한 시기가 되면 직선제로 고친다는 양해도 이루어졌다. 헌법 공포 사흘후 실시한 국회 간선에서 이승만이 180표 압도적 지지로 대통령이 된다.
  • 이승만 대통령이 초대내각 인선을 진행한 이와장 조각당.(자료사진)
    ▲ 이승만 대통령이 초대내각 인선을 진행한 이와장 조각당.(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