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간선제를 직선제로 개헌 요구...미국과 정면대결 태세 준비내각제 개헌 실패한 한민당은 원내세력 키워 다시 내각제 개헌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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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승만史(2) 한미동맹의 탄생 ⑥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인 보길 / 뉴데일리 대표, 이승만포럼 대표미국과 유엔을 향하여 ‘중대 경고’ 성명까지 발표한 이승만 대통령은 리지웨이가
공산측의 수정제의를 받아들여 7월8일 예비접촉을 갖게 되자 즉각 또 반대 성명을 냈다.“우리는 전쟁을 조속히 종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38선 정전이라면 정전을 원치않는다.
우리국민은 국토를 통일하는 성전에 승리를 얻기 위하여 목숨을 희생하고 있다.
많은 우방국가들의 청년들도 생명을 바쳤다. 그들의 목적도 38선 정전에 있지 않고
자유국가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이바지하는데 있다.”7월10일 개성에서 개막된 본회담 협상은 출발부터 순조로울 리가 없는 일,
한달이 넘도록 신경전이 벌어지자 리지웨이도 성명을 발표한다.“공산측이 개성을 회담장소로 정한 것은 그들이 개성을 점령하고 있다는 위세를
세계에 선전하려는 속셈으로 적군은 제사보다 젯밥에 목적이 있다”고 비난하였다.
- ▲ 지금은 철거된 중앙청에서 1949년 8월15일 '대한민국 독립 1주년 기념' 축하행사. '한번 뭉처 민국수립 다시 뭉처 실지회복' 구호가 통일을 외친다. (자료사진)
▶ 이승만, 2개항 개헌을 요구...대통령 직선세 및 국회 양원제
8월15일 광복절(당시엔 건국기념일:필자주) 부산 임시수도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이승만은 그동안 여러차례 거론했던 ‘결심’을 공식화한다.
“대통령 직접선거제와 양원제” 2대 개헌을 국회에 요구한 것이다.
제헌헌법에는 국회의원들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간접선거제로 되어있고
양원제(兩院制)는 미국의회와 같은 상하원제를 도입하자는 것으로
두가지 모두 배재학당 시절부터의 꿈이다. -
- ▲ 광복절 기념사에서 개헌을 요구한 이승만 대통령. 그 옆 기사는 정전협상에서 구획선 타협을 시사한 리지웨이장군.ⓒ조선DB
[부산14일발 AP합동]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주년을 맞이하는 이승만 대통령은 미리 준비된 성명서에서 “대한민국의 탄생과 존립은 대부분 미국과 유엔에 의존한다”라고 요지 다음과 같은 기념사를 발표하였다.“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면서 유엔이 공산군 침략자와의 협상에서 정당한 결말을 짓고 모든 자유국가를 위한 집단적 안전보장책이 수립될 것을 희구하여 마지않는다. 우리 민국정부의 탄생과 존립은 대부분 미국과 유엔에 의존하고 있다.오늘 조용한 아침 우리가 이 자유의 탄생을 기념하는 이 순간에도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우리가 현재 목표로 하고 고난을 겪고 있는 목적은 확고부동한 평화이다.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합심하여 노력하지 않으면 안될 희망인 것이다.우리가 항상 명심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공산진영과 민주진영 간에 전개된 거대한 세계적인 쟁투에 휩쓸려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이 두 사상의 공존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 중 하나만이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세계가 봉착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안되는 위대하고 비극적인 역사적 사실이다. 우리는 합심하여 민주주의를 보호해야 할 것이며 만약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공산주의의 희생물이 될 것이다.나는 우리정부의 진실한 기초로서 국민이 각자의 정당한 지위를 보장하기 위하여 헌법의 2개조항 수정을 국회에 요구하였다. 그중 하나는 대통령 선거를 지접선거제로 할 것이며또 하나는 국회를 양원제로 할 것인데 이것은 우리 국가를 민주주의적으로 건전하고 안전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모든 국민들에게 각자가 선출한 국회의원으로 하여금 이 2개 수정언을 지지하도록 요구할 것을 바라는 바이다.“ (조선일보 51.8.16)전쟁중에 처음 맞은 광복절에 이승만 대통령은 또한 서울에서 대규모 휴전반대 국민대회를 개최하면서 이를 전국규모로 확대하여 나가는 조치를 취하였다.조선일보는 이 대회를 사회면에 대서특필하였다. -
- ▲ 광복절을 기해 서울 시민총궐기 대회로 휴전반대 전국시위를 확대하였다.ⓒ조선DB
▶탄우(彈雨)중에 마지한 감격의 8.15 / 전국민 일제히 통일 전취를 시위---일제(日帝)에 대신하여 그보다 오히려 몇 배나 더 침략성이 강한 적색(赤色) 제국구주의의 마수에 걸려 1년2개월을 피투성이가 되어 싸워가느라고 몸도 고달파진 우리들이기 때문에 광복의 감격도 새롭고 침략의 마수를 걷어치우고 남북통일로 이루어갈 진실한 완전자주독립에 대한 의욕도 더 한층 강해진 것이다.....통일 없는 정전을 반대하고 남북통일의 위업완수를 위한 결의도 더 한층 새롭게 이날을 맞음에 있어서 전국 방방곡곡 기관별로 거행되는 행사에 참가하고 자중자애하여 한가지 염원인 통일과 국가민족 그리고 자신과 자손들에 태평 오기를 빌었으며 그 의기를 충천하였으니 몸과 마음을 다하여 기원하는 민족의 숙원이 달성되고야 말 것인다. 이날 각지에서는 장엄한 국민대회가 열렸으며, 서울시내에서는 집집마다 태극기 나붓기고 깨끗이 청소된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몰려나오는 잔류 서울시민들과, 내집 내고향을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서울을 찾아든 복구 서울시민들은 이날 오전10시 서울 시청광장으로 몰려들어 공산집단에게 당한 지난날의 고생을 다시금 생각하고 남북통일 전취의 기세도 드높게 국민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새로 취임한 미군 1군단장 다뉴엘 소장이 막료를 거느리고 단상에 참석하여 축사를 하자 열화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으며 김태선 서울 시장 격려사에 이어 리지웨이 사령관에게 보내는 메시지와 결의문을 낭독하였다. 대회후 수만명의 인파는 “통일 없는 휴전을 반대”한다는 프랑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치며 저녁까지 시가행진을 벌였는데 피곤한 줄도 몰랐다고 한다.....(조선일보 51.8.16)▶ 전쟁중에 '직선제 개헌'을 요구한 배경과 이유전선에선 전투가 한창이고 개성에선 휴전 협상이 시작된 위기 국면에서 전쟁국가 대통령이
난데없이 왜 헌법개정 요구를 들고 나왔는지 그 배경을 요약해서 훑어본다.★제헌국회의 헌법 제정때 1차대결: 3년전 한국최초로 국민의 직접선거로 구성된 국회에서
헌법제벙을 맡은 제헌의원들은 주저할 필요도 없이 ‘내각책임제 헌법’을 마련하였다.
왜냐하면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할 경우 ‘대통령은 이승만’이 될 수 밖에 때문이다.
3.1운동후 생긴 임시정부 3개 모두 정부수반은 이승만을 지명할 정도로 그때 이미 굳어진
‘카리스마의 거물’을 누가 꺾을 수 있겠는가. 이제 70대가 된 이승만 할아버지는 상징적 대통령으로 모시고 권력은 ‘총리’로 나눠먹는 내각책임제가 당시 정치인들에겐 이심전심 무언의 합의로서달리 바꿀 수 없는 선택지였던 것이다.이승만은 달랐다. 20대시절부터 평생 꿈꾸던 미국식 대통령중심제를 처음부터 주장하였다.“신생국에다 전쟁하는 마당에 내각제는 망국의 혼란만 불러온다”는 이승만의 설득에그래도 용기를 내어 맞서던 제헌의원들은 이승만이 국회의장이 “그럼 나는 다 그만두겠다”고선언하자 놀라서 하루밤새 대통령 중심제로 바꾸었다. 그러면서 ‘총리’는 그대로 끼워 놓아‘비빔밥 헌법’을 만들었다. 대통령 간선제도 적당한 시기가 되면 직선제로 고친다는 양해도 이루어졌다. 헌법 공포 사흘후 실시한 국회 간선에서 이승만이 180표 압도적 지지로 대통령이 된다.- ▲ 이승만 대통령이 초대내각 인선을 진행한 이와장 조각당.(자료사진)
★초대 내각에 ‘김성수의 총리 요구’ 배제: 8월15일 건국선포식을 앞두고 이승만이 이화장(梨花莊)에서 건국내각 구성작업을 할 때, 한국민주당(한민당:韓民黨)의 김성수(金性洙)는 “총리와 장관6명”의 입각을 요구하였다. 이 숫자는 당시 내각의 과반수로 새나라 정권은 한민당이 잡겠다는 카드를 던진 것이다. 해방후 이승만의 건국운동을 적극 지원한 인촌(仁村)으로선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고 생각하였으나 뜻밖에도 이승만은 이를 거절하는 것이었다.한민당은 “오늘부터 이승만정권의 감시자가 되겠다”는 성명을 냈고, 인촌의 신문 동아일보는1면 머리 사설로 이승만을 비판하기 시작하였다.이승만은 “총리는 북한 몫”이라며 평북 출신의 독립운동 목사 이윤영(李允榮)을 지명하였으나
국회가 보이콧, 다시 청산리전투의 이범석(李範奭)으로 바꿔 가까스로 인준을 받았다.
이승만에게 김성수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첫째 미국과 싸우고 유엔의 도움으로 건국한 반토막 조국에 남북통일과 한반도의 정통성 확보를 위한 포석이 필요하다. 그래서 헌법3조에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로 못 박고 국회 100석을 북한 몫으로 배정해 놓았고, 초대내각만이라도 독립운동가 남북인사들로 초당적 정부를 만들어 유엔에 보여줘야 할 의무감이 우선적이었다.
둘째 농지개혁 등 국가개조가 시급한데 ‘지주들의 모임’같은 ‘한민당 정권’이란 어불성설,
반공주의자 이승만은 농림부장관에 공산당 출신 조봉암을 불러 앉힌다.
셋째 일본지배에서 벗어난 독립국가의 첫 정부를 일제하에서 성장한 국내파 정당으로 꾸린다면 국제사회 특히 일본과 미국에서 뭐라 하겠는가. 게다가 정당 정치는 시기상조라며 이승만 자신이 어느 정당소속도 거부해온 터이다. 이승만은 김성수가 요구한 7명중 1명만 입각시킨다.
내각 명단이 발표되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여론을 무시한 ‘약체 내각’이라 집중공격,
유력한 인사들로 교체 보강하라고 끈질기게 요구하며 새 정부를 비아냥거리기 예사였다.- ▲ 김성수와 이승만 '좋았던 한때'(자료사진)
★ 한민당의 내각제 개헌 시도: 집권에 실패한 김성수의 한민당은 실망과 좌절에 빠져 날마다
계동의 김성수 집에서 당직자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하는 가운데 내각제로 개헌하는 길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조직을 확대한다. 신익희(申翼熙)의 대한국민당, 지청천(池靑天)의 대동청년단등과 합쳐 1949년 2월 민주국민당(민국당:民國黨)을 창당, 원내 제1당으로 나선다.
내각제 개헌에 조바심치는 나머지 “제헌의원 임기 2년을 4년으로 연장”하는 개헌을 하자는 꼼수를 써서 내각제 개헌안을 붙여 돌파하려 하지만 운이 따라 주지 않았다.
미군철수를 결의한 좌익의 ‘국회 프락치사건’에 부딪쳐 자진 취소하고 그 대신 새해 들어 내각제 개헌안을 제출하였으나 이것도 두 달 만에 큰 표차로 부결되었다.
해방후 상해에서 들어온 김구파로부터 ‘친일파’로 집중공격을 받자 이승만 지지로 돌아섰던
한민당은 ‘늑대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 격’이 되었다고나 할까. 역사인식-국가의식의 멀고도 깊은 갭이 불필요한 비극을 낳는다.
★ 2대 국회에 중간파 대거진출: 당시 ‘중간파’로 불린 세력은 남북좌우합작을 주창했던 김구파, 혁신세력으로 잠칭되던 사회주의, 친공 또는 친북세력을 아우른다.6.25의 해 1950년 5월 30일 실시한 2대총선 결과는 민국당이 최악의 참패(24석)를 기록하고
친이승만계도 겨우 57석에 불과, 한마디로 좌파 다수 국회, 나아가 반(反)이승만 국회로 변해버렸다. 2대 국회는 그러나 개원하자마자 북한의 6.25 남침이 일어나 부산으로 피란, 경남도청에 임시국회의사당을 차렸고,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한때 서울로 돌아왔다가 중공군의 서울 침공에 다시 쫓겨서 다음해1952년 ‘부산 정치파동’을 겪게 된다.‘좌파 세상’이 된 국회는 대통령의 국회 간접선거제도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실증이지만, 민국당(한민당 후신)의 입장에서는 이승만 반대세력이 더욱 커졌으니 내각제 개헌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 것으로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승만은 직선제 개헌을 더 미룰 수 없게 되었다.▶ 낙선이 뻔한 이승만, 개헌으로 출마 결심2대 대통령 선거는 다음해 1952년 6월중, 당시 국회의원들이 투표한다면 이승만의 낙선은
선거 하나마나 뻔하다. 작심한 듯 광복절 기념사로 공표한 직선제 개헌 요구중에 특히 마지막 대목이 눈길을 끈다.
“나는 모든 국민들에게 각자가 선출한 국회의원으로 하여금 이 2개 수정안을 지지하도록 요구할 것을 바라는 바이다.” 대통령 직선제와 국회 양원제 개헌을 국회의원들이 아닌 국민들에게 직접 당부한 것이다. 일찍이 국민의 힘을 활용해온 이승만 다운 어법이다.독립협회 20대시절 종로네거리와 광화문, 황제의 경운궁 앞에서 기생 백정까지 동원하여
왕정개혁을 부르짖으면 매번 성공하였던 민중데모꾼의 원조 이승만, 77세 대통령이 되어서도
휴전반대 시위를 전국적으로 확대함과 동시에 “국민이 뽑는 대통령 직선제는 국민 손으로 만들어내자”며 개헌 시위까지 요구하고 나선 것이었다. 그 말 그대로 다음해 부산정치파동에서는 각지방 주민들이 부산 피란국회에 몰려와 “직선제 개헌”을 한 달 내내 외치게 된다.
흔히 이승만 비판세력은 부산정치파동을 두고 “자기가 대통령 하려고 헌정을 짓밟고 독재자가 되었다”고 질타한다.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린 말이다. 이승만은 부산정치파동 중에 헌법 규정을 지키려고 무진 애를 쓴다. 국회 해산 협박도 말과 데모로만 했지 “헌법에 해산 조항이 없다”며 끝내 해산하지 않았다. 비상계엄령을 내리면서도 언론 검열은 하지 말라고 취소시켰다.
이렇게 인심 좋고 나약한 독재자도 있을까. -
- ▲ 부산 대통령 임시관저로 이승만 부부를 방문한 올리버 박사 부부.(자료사진)
▶ "국회의원들은 외국의 노물도 받고 압력도 받고 있으니..."“각하께서는 국회의원들이 각하를 재선출하지 않으리라는 의견에 동의하십니까?”로버트 올리버가 이승만에게 물었다. 그는 30년대 말 미국에서 이승만 팀에 합류한 정치외교고문으로 펜실바니아 주립대 교수였다. 이승만이 불러서 부산으로 날아온 참이다.이승만이 올리버의 눈을 물끄럼히 쳐다보며 대답하였다.“그럴지도 모르지요. 그 이유를 아시오?미국과 일본은 제각기 나름대로의 이유로 한국의 대통령이 바뀌기를 원하고 있소.우리 국회는 우리 국민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외국인들의 이해관계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뇌물도 받도 압력 같은 것도 받고 있는 형편이라오.“이승만은 일본이 그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기를 원한다고 확신한다고 했다.이승만은 미국의 계속적인 압력에도 불구하고 한일강화조약 체결을 거부하고 있는 중이다.만일 그가 요구해온 거액의 배상금과 강탈해간 문화재 유물들을 돌려준다면 협상은 가능하지만, 미국의 일본 편애 정책 때문에 경계심을 늦출수 없다. 미국은 한국엔 소비재만 원조하고 일본엔 막대한 산업개발 부흥원조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에도 미국에도 강력한 비판자인 이승만이 물러난다면 두 나라에겐 골치덩어리가 사라지는 셈이 된다.더구나 판문점 휴전협상을 조속히 끝내려는 미국을 붙잡고 남북통일 될 때까지 싸우자고 떼쓰며 매일 국민데모를 선동하는 이승만 때문에 백악관에서 국무성까지 골머리를 앓고 있잖은가.“각하, 휴전에 반대하시기 때문에 미국이나 세계적으로 각하의 인기가 좋지 않습니다.”“나는 인기 대회에 나와 있는 사람이 아니오." 이승만은 한마디로 잘랐다."간단히 말해서 현행 헌법에 의한 대통령 선출은 사실상 한국 국민대표들이나 국민들의 선택이
아니지요.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가해지는 압력이 선택하는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올리버는 알고 있다. 이승만이 말하지 않아도 이승만의 내면을 누구보다 잘 안다.처음 이승만을 만나서부터 수많은 편지와 지시를 받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홍보와 선전을 비롯하여 외교서한은 물론 이승만의 활동을 도왔던 올리버는 이승만의 저서들도 다 읽었다.그중에도 영문저서 [일본의 내막: Japan Inside-Out]과 이승만이 29세때 한성감옥에서 쓴
[독립정신]에 감동한 올리버는 비로소 이승만의 한결같은 신념의 실체가 무엇인지 깨닫는다.부산에서 이승만의 전기 [이승만, 신화속의 인물 (Syngman Rhee: The Man behind the Myth)]를 썼고 4.19후 미국에서 [이승만의 대미투쟁(Syngman Rhee and American Involvement in Korea 1942-1960) 번역본; 비봉출판사, 1913]을 펴낸 올리버는 그의 저서속에도 [독립정신]의
감명받은 대목들을 다음과 같이 길게 인용하고 있다. -
“....대한의 동지들이어, 여러분은 나이나 성별 또는 직위와 관계없이 모두 대한제국에 속하고
이 나라 백성의 일원입니다. 여러붙 각자의 어깨 위에는 나라를 세워야할 책임이 지워져 있습니다. 국민이 함께 협력하지 않는 주된 원인은 이 나라가 누구의 나라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이 남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이 진실로 자기 자신을 위해 알하는 것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무도ㅛ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다른 사람이 해주기를 기다립니다. 여러분의 집에 불이 나면 다른 사람들이 모른척한다고 서둘러 불을 끄지 않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도와주든말든
불길에 뛰어들어 무엇이라도 건질 수 있는 것을 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여러분의 마음 속에 애국심이 없다면 그 마음은 여러분의 적입니다.여러분의 생각이 공동 대의를 위한 투쟁을 포기하도록 한다면 여러분은 그런 자신의 생각과
싸워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 우리 자신의 생각을 시헙해 봅시다.
만약 조국의 안녕을 저버릴 생각이 조금이라도 든다면 당장 그러한 생각을 잘라내 버리십시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다른 사람이 앞장서거나 해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여러분 스스로 일어나야
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라를 세우는 일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우리 모두 힘을 모아 우리나라를 부유하고 힘 있고 문명된 국민의 나라로 만듭시다.마음속에 독립이라는 두 글자를 품으십시오. 가장 중요한 것은 절망감을 버리는 것입니다.우리는 반드시 부지런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하나의 개별적 헌신이 굳건한 국가라는 수확으로 성장하게 될 씨앗입니다....(중략)....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이 나라에서 사는 것은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배 위의 승객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자기나라 일에 관심도 보이지 않고 그것은 고위관리들의 일이라고 주장할 만큼
여러분은 어떻게 그처럼 무관심할 수가 있습니까? 혼자만 살려고 애쓰거나 배의 선장만을 구하려고 하다가는 그 배는 난파당하고 말 것입니다.통치자가 아무리 현명하더라도 국민의 도움이 없으면 나라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국민의 책임은 막중합니다. 국민을 통치자의 노예로 만드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백성들은 경외심을 가지고 올바른 원칙에 따라서 통치자에게 봉사해야 하고 현명한 말로 간언을 해야 합니다. 통치자는 국민이 마음속으로부터 복종하도록 덕을 가지고 국민을 교화시켜야 합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나라 사이의 관계가 너무나 거리가 멀어서 나라를 사랑하거나 나라를 구하기 위해 노력해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그러므로 반드시 두 종류의 적을 경계해야 합니다.첫째는 나라를 파괴햐려는 자들이고,
둘째는 아무런 희망이나 책임감도 없이 피동적으로 앉아서 수수방관만 하는 사람들입니다....“올리버는 [독립정신]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승만의 전 생애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구한말 기울어진 대한제국의 백성들을 가르치고 호소하여 독립교과서로 독립운동가들이몰래 몰래 구해 읽었던 [독립정신]은 대한민국 건국기 국민들에게도 절실한 책이며
그 국민들 가운데서 특히 권력만 쫓는 정치인들이야말로 꼭 읽어야할 필독서라고
올리버는 간접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자기 집에 불이 났으니 다른 사람 기다리지 말고 불길에 뛰어들라”전화의 불길에 불타고 있는 이승만은 지금 또 하나의 불길 속에 뛰어들려 한다.맥아더가 없어진 전쟁에서 이승만과 뜻을 함께하여 싸워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판문점에서 휴전협상을 서두르는 미국에게 “완충지대는 압록강과 두만강에 만들어야한다”고
아무리 졸라보았자 약소국의 요구를 들어줄 강대국은 세상에 없다것을 이승만도 안다.국가 존망의 갈림길이다. 3년전 그렇게 붙잡아도 들은척도 않고 일방적으로 철수해버렸던
미국이 지금 하는 짓이 똑 같다. 없어진 38선을 또 만들어서 국토를 잘라놓고 떠날 미국이다.미국과 또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돌아보면 독립운동도 건국투쟁도 미국과 싸운 한평생이다.누가 싸울 수 있겠나,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이 떨어지면 누가 미국과 싸울 것인가.미국이 좋아하는 사람들, 장면이나 김성수나 조병옥이 미국과 싸워 무얼 얻어낼 수 있겠나?
아니다. 이승만을 대신할 싸움꾼이 안보인다. 후계자를 키우라고? 후계자라...후유.“마미, 내가 또 미치광이가 돼야겠어.”
부인 프란체스카를 이승만은 마미라고 부른다.벌떡 일어난 이승만은 정원에 나가 도끼질로 장작을 패기 시작한다.
오래 된 이승만식 스트레스 해소법, 나무토막이 짝짝 갈라지는 솜씨가 노인 같지 않다..‘독립 미치광이’--미국무성 실세 앨저 히스가 이승만을 멸시해서 부르던 욕이다.
그가 소련 간첩인줄도 모르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미국이 지금 승인해줘야 소련이 한반도에
못 들어오게 할 수 있다고 그토록 호소했건만 미국 신문들까지 ‘독립 미치광이’라고 썼다.건국 때는 미군정 하지사령관과 좌우합작을 반대하며 싸울 때도 듣던 소리 ‘독립 미치광이’는
어느새 ‘통일 미치광이“가 되었다. ’통일 없는 휴전 결사반대‘를 부르짖는 전국민들도
이제 이승만을 닮은 ’통일 미치광이‘로 변해가고 있는 중이다.- ▲ 이승만의 스트레스 해소법 도끼질. 서울 경무대 뒷산 나무 그루터리를 찍고 있다.(자료사진)
“지금 우리에게 급하고, 급하고, 또 급한 일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목숨을 바칠 각오로 우리나라의 자유와 독립을 나 혼자라도 지키며,
우리 2천만 동포중 1천9백9십9만9천9백9십9명이 모두 무릎을 꿇게 되더라도
나 한 사람이라도 태극기를 받들어 머리를 높이 들고 앞으로 전진하며,
한 걸음도 뒤로 물러나지 않을 것을 각자 마음속에
맹세하고 다시 맹세하고 천만번 맹세합시다!”
(이승만 저 ‘독립정신’ 현대어판 p238, 동서문화사 2010)1904년 러일전쟁이 한창일 때 감방서 피를 토하듯 써내려간 청년의 맹세!‘러시아가 이기면 러시아 속국, 일본이 이기면 일본 속국'으로 자멸할 조국의 운명 앞에서
통곡하던 그 맹세를 반세기가 지난 독립국 대통령 이승만은 도끼질 하며 되풀이 한다.그렇다. 미국과 싸울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어쩌랴. 남은 목숨 바치리라.“이대로 휴전하면 또 전쟁 난다. 다시는 전쟁 없는 통일조국 만들리라!”<계속> -
- ▲ '정전 회담과 우리의 각오' 사설에서 남북통일을 촉구한 조선일보 ⓒ조선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