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변수 ‘여론’...‘소신 판결’ 한다면, 집유·무죄 가능성도 제기
  •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 사진 뉴시스
    ▲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 사진 뉴시스


    뇌물공여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재용 부회장 1심 선고 공판이 25일(금)로 예고된 가운데, 이 사건 재판부가 읽어내려갈 판결 주문의 내용에 재계는 물론 사회 전반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1심 선고가 한국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매우 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재판부의 판단이 관련 재판들은 물론, 글로벌 기업 ‘삼성’의 대외 신인도와 한국 기업 전체의 이미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법조계에서는 지금까지 공판을 통해 드러난 증거 및 증인의 진술을 종합적으로 반영할 때, 재판부가 꺼내들 수 있는 선택지는 다음 4가지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첫 번째는, 특검이 구형한 징역 12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중형을 선고하는 경우다. 재판부가 이런 선택을 한다면 이 사건 핵심 혐의인 뇌물공여를 인정했다는 뜻이 된다.

    박영수 특검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5가지 혐의를 적용했다.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국회에서의 증언ㆍ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이 그것이다.

    핵심 혐의인 뇌물공여의 법정 상한은 5년 이하의 징역이며, 법정형이 가장 무거운 죄목은 특경가법상 재산국외도피로, 도피금액이 50억원 이상일 때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검은 바로 이 점을 감안해 이 부회장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법조계의 관측을 취합해보면, 핵심 혐의인 뇌물공여 부분이 무죄로 판단된다면, 뇌물을 건넨 수단(재산국외도피 및 범죄수익은닉)과 관련된 혐의도 함께 무죄선고를 받을 확률이 매우 높다.

    재판부가 이 부회장에게 검찰의 구형량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중형을 선고하기 위해서는, 뇌물공여 혐의에 대한 유죄 판단이 선행돼야 한다.

    다만, 이런 결과가 나을 가능성은 비교적 낮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약 5개월 동안 50차례가 넘는 공판이 열렸지만, 특검은 마지막까지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를 명확하게 입증하는데 실패했다.

    특검은 정황증거인 ‘안종범 수첩’과 ‘청와대 말씀자료’를 뇌물공여 혐의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지만,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직접증거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정황증거만으로 피고인에게 유죄판단을 내리기에는 재판부의 부담이 너무 크다.

    무엇보다 ‘안종범 수첩’에는 ‘이재용 최순실 정유라 삼성합병’과 같이, 이 사건 피고인들의 범행을 유추할만한 표현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 박영수 특별검사가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 뉴시스
    ▲ 박영수 특별검사가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 뉴시스


    특검이 막판 변호인단의 지적을 받고 공소장을 변경한 사실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중요한 대목이다.

    특검은 수사단계에서부터 공판 마지막까지 ‘박근혜-이재용 2차 독대’가 열린 시점을 오후라고 못 박았으나, 증인들에 대한 신문 결과 그 시점은 당일 오후가 아닌 오전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독대의 시점이 오전인가 오후인가 하는 것은 겉보기에 중요한 논점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이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차고 넘친다'는 박영수 특검의 주장과 달리, 뇌물공여를 입증할 직접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재판부가 뇌물죄 유죄를 선고하려면 정황증거의 신뢰도가 그만큼 높아야만 한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특검이 독대의 시점을 오인해 막판에 공소장을 변경했다는 사실은, 특검 주장 전체의 신뢰도를 훼손하는 악재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경우의 수는 ‘3년 이내의 실형’을 선고할 가능성이다. 

    이는 법조계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는 세부적으로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한다. ①재판부가 뇌물공여 부분과 국회증언감정법 위반만을 유죄로 인정하는 경우 ②뇌물공여 및 그 수단과 관련된 혐의에 대해서는 전부 무죄를 선고하고, 횡령 및 국회증언감정법 위반만을 유죄로 보는 경우 ③국회증언감정법 위반을 제외한 나머지 혐의를 모두 무죄로 판단하는 경우 등이다.

    위 ①의 파생형으로, 뇌물죄 공소사실 중 일부만 유죄로 인정하는 ‘갈라치기’ 판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특검이 주장한 433억원의 뇌물 중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기금 출연’ 부분만 따로 떼어내 무죄로 판단하는 경우다.

    ①과 ②의 경우라면 선고형량은 3년 이내, ③의 경우라면 선고형량은 2년 이내로 나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형의 집행을 유예하지 않고(집행유예), ‘실형’을 선고한다는 점에서, 재판부는 이른바 ‘촛불’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동시에 범죄의 책임을 엄중하게 물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세 번째는 3년 이내의 실형과 함께 형의 집행을 유예하는 경우다.

    또 네 번째는 전부 무죄를 선고하는 경우다.

    재판부가 여론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증거만으로 ‘소신 판결’을 내린다면, 세 번째와 네 번째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특검이 이 사건 핵심 혐의인 뇌물공여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고, 그나마 유력한 정황증거인 ‘안종범 수첩’에 범죄사실을 ‘미루어 짐작할만한’ 주요 단어 혹은 표현이 전무(全無)한 점, 특검이 공판 막바지 ‘사실 오인’을 이유로 공소장 내용을 일부 변경한 점, ‘박근혜-이재용 독대’ 과정에 부정한 청탁과 대가관계에 대한 명시적 혹은 묵시적 합의가 있었음을 간접적으로라도 유추할만한 증거가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한다면, 이 두 가지 경우의 수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재판부는 앞선 조의연 부장판사나 황병헌 판사처럼, 무자비한 여론의 마녀사냥 앞에 노출된다는 부담이 있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특검의 1차 영장 청구를 기각한 조의연 부장판사는, 속칭 진보를 자처하는 누리꾼들로부터 인격살인 수준의 협박과 비난을 받았다. 심지어 일부 누리꾼은 조 부장판사의 아들이 삼성에 특혜 입사를 했다는 근거도 없는 허위소문을 퍼뜨리면서, 조 부장판사의 가족마저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황병헌 판사도, 조의연 부장과 비슷한 일을 겪었다.

    황 판사는 조윤선 전 장관에게 무죄가 아닌 유죄판결을 내렸음에도, 단지 형의 집행을 유예했다는 이유만으로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서초동 법조타운의 로펌 파트너변호사 A씨는 “특검이 주장한 범죄사실은 그 연결고리가 중간에서 끊긴다. ‘박근혜-이재용 독대’ 과정에서 부정한 청탁과 대가관계가 있었음을 인정하기 쉽지 않다”며, 특검 주장이 안고 있는 논리적 허점을 짚었다.

    다만 A변호사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무의미해진지 이미 오래됐고, 이런 사건에서 재판부가 여론의 눈치를 보지 않기는 힘든데, 법조인으로서는 재판부의 소신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