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도입 압박하는 블라인드 채용, 취준생·기업도 꺼리는 이유
  • 시사웹툰 - 윤서인의 조이라이드. ⓒ조이라이드 화면 캡처.
    ▲ 시사웹툰 - 윤서인의 조이라이드. ⓒ조이라이드 화면 캡처.


    “직무능력 중심으로 인재를 뽑겠다는 것이 블라인드 채용의 핵심입니다. 다만 중·고등학생 때부터 착실하게 준비해서 명문대에 진학한 학생들은 기업에서 말하는 ‘성실성’이라는 덕목을 갖춘 인재들입니다. 이것이 직무능력과 관계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 박OO 서울소재 사립대 4학년.

    “부모님의 직업이나 지역출신 등은 개인의 노력과도 관계가 없고 직무능력과도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에 입사에 영향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차별적인 요소와 능력은 명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개인이 노력해서 이룬 성과를 회사에 보여줄 수 없다면 이것이야 말로 차별입니다.”

    - 홍OO 한남대 4학년.

    정부가 공기업은 물론 민간기업으로까지 이른바 ‘블라인드 채용 방식 도입 확대’를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이 방식이 구직자들의 장점을 가리는 것은 물론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가려내는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5일 발표한 ‘평등한 기회・공정한 과정을 위한 블라인드 채용 추진방안’을 살펴보면, 공공부문은 올해 하반기부터 블라인드 채용방식을 도입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하반기 공기업 공채 입사지원서에서는 출신지역, 가족관계, 신체적 조건(키·체중 등), 학력 등을 묻는 항목이 사라진다. 용모를 가늠할 수 있는 지원자의 사진도 붙일 수 없다.

    이 가운데 구직자들이 가장 불만을 나타내는 항목은 ‘학력’이다.

    일부 구직자들은 상위권 대학을 졸업했다는 이유만으로 남들과 차별 받는 것은 오히려 역차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명문대 졸업장은 노력의 산물이지 공평성에 어긋나는 차별 요인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박OO(숭실대·3학년) 씨는 “블라인드 채용 방식이 도입되면 지원자의 정보가 최소화되기 때문에 기업에서 어떻게 옥석을 가릴지 우려된다”며, “개개인의 성실성을 평가하고 옥석을 가리는 데에는 성적과 학력도 함께 살펴보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위 학생처럼, 서울 및 해외 소재 대학교 재학생이거나 이들 학교를 졸업한 취업준비생일수록, ‘블라인드 채용의 취지’에 공감하지 않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10일 인크루트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블라인드 채용 방식에 반대하는 비율은 △전문대학 출신 7% △지방 사립대는 9% △수도권 소재 대학은 10% △지방 국립대는 20% △서울 및 해외 대학교 출신은 30%로 나타났다.

    취업 문턱에서 상대적으로 탈락률이 높은 지방 사립대  출신이 블라인드 채용 방식에 우호적인 반면, 상위권 대학 출신일수록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블라인드 채용 방식은 기업에서도 외면을 받고 있다. 취업 포털 ‘사람인’이 지난달 5일 400여 개 기업인사담당자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현재 블라인드 채용을 시행 중인 기업은 6.1%에 불과했으며, 도입 의사를 가지고 있는 기업도 48%에 그쳤다.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블라인드 채용을 채택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응시자에 관한 정보 부족’을 꼽았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인지 여부를 가려낼 수 있는 정보를 알 수 없어, 별도의 직무능력 평가나 심층면접 방식을 추가로 실시해야 한다는 점도 인사담당자들이 이 방식을 기피하는 주요 이유다.

    시민단체 ‘청년이 여는 미래’ 관계자는 “학벌이 좋다고 실무능력이 뛰어나다거나 성과가 좋을 것이라고 예단할 수는 없지만, 학창시절 그 사람의 성실함을 보여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나서 이 제도(블라인드 채용)를 장려하면 역차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전문적 실력이 요구되는 분야일수록 블라인드 채용의 모순이 드러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취업포털 인크루트 관계자도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억지로 밀어붙이면 또 다른 편견과 차별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그는 “출신지나 가족관계, 신체조건 등은 가리더라도 성장과정의 성실도가 스며든 학교와 학점까지 무시하려면 마땅한 대안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