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올바름’ 신봉 진보 인사 버지니아 주지사·샬롯츠빌 시장, 지역 주민 ‘도발’
  • ▲ 지난 12일(현지시간) 美버지니아州 샬롯츠빌에서 일어난 차량 돌진 장면. ⓒ美폭스뉴스 관련보도 화면캡쳐.
    ▲ 지난 12일(현지시간) 美버지니아州 샬롯츠빌에서 일어난 차량 돌진 장면. ⓒ美폭스뉴스 관련보도 화면캡쳐.


    지난 12일과 13일, 한국 언론들은 “美버지니아州 샬롯츠빌에서 백인우월주의자들에 의한 폭동이 발생했고, 이 와중에 한 백인우월주의자가 차를 몰고 군중을 향해 돌진해 1명이 사망하고 수십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대부분의 한국 언론들은 지면 또는 방송 분량의 제한 탓인지 ‘샬롯츠빌 폭동’이 일어난 배경에 대해서는 상세히 전하지 않았다. ‘뉴스1’ 등 일부 통신사만이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샬롯츠빌 폭동’의 시작은 지난 4월 버지니아 주지사 ‘테리 맥컬리프’가 “주 내의 모든 백인우월주의 상징물을 철거하겠다”고 선언한 때부터다.

    버락 오바마 前대통령의 측근이자 민주당 내에서도 ‘정치적 올바름’에 충실한 것으로 알려진 테리 맥컬리프 버지니아 주지사는 적폐 청산을 부르짖으며, 남북전쟁 당시 남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을 비롯해 남부 연맹의 상징물들을 ‘백인우월주의 상징물’로 지목했다. 이를 두고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미국 역사의 상징들”이라며 비판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샬롯츠빌 시장 ‘마이크 싱어’는 2017년 초 테리 맥컬리프 주지사의 뜻에 동조해 남부 연맹의 상징물이 있는 공원의 이름을 바꾸고,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도 철거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2017년 4월에는 샬롯츠빌 의회가 ‘로버트 리’ 장군 동상을 철거하기로 결정했지만, 반대 소송에 걸리면서 법원이 6개월 동안 철거 금지 명령을 내렸다.

  • ▲ 마이크 싱어 샬롯츠빌 시장이 철거하겠다고 밝힌 '로버트 E.리 장군'의 동상. ⓒ美NBC 지역제휴방송 WSLS 보도화면 캡쳐.
    ▲ 마이크 싱어 샬롯츠빌 시장이 철거하겠다고 밝힌 '로버트 E.리 장군'의 동상. ⓒ美NBC 지역제휴방송 WSLS 보도화면 캡쳐.


    얼핏 생각하면 로버트 리 장군은 남부군 총사령관이었고, 당시 남부 연맹은 노예제도를 지지했으므로 ‘백인우월주의자’로 생각할 수 있지만, 미국 역사를 보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로버트 리 장군은 美독립전쟁의 영웅 헨리 리 3세의 아들이다. 1825년 웨스트포인트 美육군사관학교에 입학, 차석으로 졸업한 뒤 장교로 복무했다. 1846년부터 1848년까지 美-멕시코 전쟁에 참전해 무공을 세웠고, 1852년 소령 시절에는 웨스트포인트 美육군사관학교 교장을 맡았다.

    로버트 리 장군은 1859년 버지니아州에서 일어난 존 브라운의 노예제 폐지 무장 봉기를 진압하기도 했으나 그 본인은 노예제 폐지론자였고 남부 연맹과 달리 美연방 정부를 지지했다. 버지니아州에서 평생 살면서 600여 명의 노예를 거느렸던 토머스 제퍼슨과는 조금 달랐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그의 이런 성향과 우수한 지휘 능력을 인정해 남북전쟁 직전 美합중국 육군 사령관, 즉 북군 사령관으로 취임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로버트 리 장군은 자신의 고향인 버지니아州로 돌아가 남부 연맹을 돕기로 한다.

  • ▲ '로버트 E.리 장군'의 명언 가운데 가장 유명한 말이다. "나는 자기 자신도 통제 못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SNS 핀인터레스트 화면 캡쳐.
    ▲ '로버트 E.리 장군'의 명언 가운데 가장 유명한 말이다. "나는 자기 자신도 통제 못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SNS 핀인터레스트 화면 캡쳐.


    1865년 4월 9일 버지니아州 애포매톡스 전투에서 패한 로버트 리 장군은 율리시스 그랜트 북군 사령관에게 항복, 포로가 된다. 로버트 리 장군은 남북전쟁이 끝난 뒤 고향으로 돌아가 워싱턴 칼리지(現워싱턴 앤 리 대학) 총장을 맡아 학교 발전에 여생을 다 한다. 1975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과 美의회는 그가 사망한 지 100년이 지나 미국 시민권을 다시 수여한다.

    미국 역사에 서술된 로버트 리 장군은 백인우월주의자가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전쟁을 좋아한 사람도 아니었다. 때문에 미국인들은 나중에 대통령이 된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만큼이나 로버트 리 장군의 위대함을 인정한다.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이 있는 샬롯츠빌 주민들도 그를 자기 고장의 위인으로 존경한다. 때문에 마이크 싱어 시장이 동상 철거를 주장했을 때 “동상 철거 반대”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때 마이크 싱어 시장은 자신에게 반대하는 샬롯츠빌 주민들을 가리켜 “대단히 무식한 자들 아니면 아직도 KKK단(백인우월주의 폭력단체)의 향수에 젖어 있는 자들”이라고 비아냥거렸다. 마이크 싱어 시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샬롯츠빌에 있는 ‘로버트 리 공원’을 비롯해 남부 연맹 지도자들의 이름을 딴 공원을 ‘정의 공원’ 등으로 바꿨다.

    이에 지난 5월부터 美남부 지방에서 활동하던, 진짜 KKK단 회원들이 샬롯츠빌에 모여 들어 로버트 리 장군 동상철거 반대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고, 이들에 대항한다며 美민주당 지지자를 중심으로 한 ‘진보 세력들’도 샬롯츠빌로 모여 들었다. 양측의 시위는 점점 더 격렬해졌고, 결국 지난 12일(현지시간) 유혈 충돌이 발생한 것이다.

  • ▲ 지난 12일(현지시간) 샬롯츠빌 폭동 모습. 왼쪽이 '정치적 올바름'을 신봉하는, 소위 '진보 진영'이고, 오른쪽이 경찰이다. ⓒ美폭스뉴스 관련보도 화면캡쳐.
    ▲ 지난 12일(현지시간) 샬롯츠빌 폭동 모습. 왼쪽이 '정치적 올바름'을 신봉하는, 소위 '진보 진영'이고, 오른쪽이 경찰이다. ⓒ美폭스뉴스 관련보도 화면캡쳐.


    현재 미국 내에서도 샬롯츠빌 폭동을 바라보는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고 한다. 소수인종 우대, 페미니즘, LGBT 지지 등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마이크 싱어 샬롯츠빌 시장과 테리 맥컬리프 버지니아 주지사의 주장을 지지하는 반면 샬롯츠빌의 역사에 자긍심을 갖고 있는 지역 주민과 ‘정치적 올바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동상 철거에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지난 12일(현지시간) 시위대 간의 유혈 충돌에다 20살의 ‘진짜 백인우월주의자’ 청년이 차량으로 시위대에 돌진해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된 것이 ‘샬롯츠빌 폭동의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