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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한국당 혁신위원회가 선언문 발표를 미뤘다고 한다.
    당(黨) 경제정책을 ‘서민중심 경제’로 특정하자는 주장과,
    그렇게 한 가닥으로 특정 하는 건 좌파의 ‘민중주권론’과 무엇이 다르냐는
    반론이 부딪혔기 때문이라 한다.

     결론을 어떻게 내느냐는 자유한국당 혁신위원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국외자로서는 다만 영국 보수당과 노동당이 1997~2005의 기간에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뤘는지를 예시(例示)함으로써 약간의 참고가 되기를 기대할 따름이다.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 펠로 앤터니 다운스는 1957년에 ‘중간 유권자 정리(定理, median voter theorem)'란 논문을 발표했다. 민주국가 유권자들이 갈수록 보수-진보의 첨예한 분계선을 흐리면서 중간지대(middle ground)로 이동하고 있다는 관찰이었다. 이에 영향을 받아서였는지 영국 보수당의 카메론 당수와 노동당의 블레어 당수는 자기들의 당 기조를 중간 지대에 맞춰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앤터니 다운스의 논문과 함께 1990년대 영국에서는 토니 블레어 노동당수의 멘토 앤터니 기든스가 ‘제3의 길’을 설파했다. 이 두 사람의 이론에 따라 영국의 보수당과 노동당의 경제정책은 거의 동시에 중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래서 영국 정당들의 경제정책은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서로 극단적으로 대립하지 않는 '상호 수렴(收斂, convergence)'의 모습으로 접근하게 되었다. 양쪽이 다 자유시장 경제를 기본으로 하되, 제한된 경우에 한해서 국가개입의 여지를 둔 것이다.
  •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이 중간지대는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중간(이런 게 있을 수 있나?)"이란 뜻 아니라, 전체적으로는 비(非)시장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우경(右傾)하는 과정이다. 노동당이 구태(舊態)의 국가통제적 경제에서 자유시장 경제로 넘어오는 과정인 것이다. 보수당은 기존의 자유주의 경제원칙을 그대로 견지하는 가운데 다만 정책적-기술적으로, 저소득층을 위한 일련의 조치들을 취한다는 것이다. 
     
     한국과 영국은 물론 상황이 같지 않다. 더군다나 한국 집권측은 지금 '중간‘보다는 ’좌(左)‘로 클릭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 우파로서는 우선은 '좌 클릭'을 견제하고 그 폐단에 대처하는 게 더 화급한 상황이다. 다만 그래서, 성장-분배-복지-세제(稅制)-기업-고용 등과 관련해 세계적인 추세가 어떤지를 보자는 차원에서는 영국 사례가 하나의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이런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서민중심 경제’란 용어만은 적절할 것 같지가 않다. 서민(庶民)이란 단어부터가 전(前)시대적인 사어(死語)가 아닐까 한다. 오늘의 사회엔 서민이란 신분이 존재하는지도 불확실하다. 그보다는 ‘소외층’ '저소득층'이란 말이 더 맞을 듯 싶다. 다른 더 적절한 용어가 있으면 물론 더 좋다. 더군다나 ‘서민중심 경제’라고 하면 경제 체제와 구조를 온통 그렇게 한 가닥으로, 배타적으로 짜자는 뉘앙스로 들리기 때문에, 이게 과연 자유사회-자유시장 경제라는 보편적 당위와 어울릴 수 있을지 검토해 봐야 한다.

     ‘서민’ 즉 ‘소외층’ '저소득층'을 위하자는 선의(善意) 자체는 물론 좋다.
    우파라고 해서 “어려운 이웃을 돕고 돌보자”는 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걸 ‘서민중심 경제’라고 못 박기보다는 ‘소외층’ '저소득층'에 대한 배려를 ‘자유시정 경제 나름의 보다 나은 방법’으로 추구하자는 식으로 표기해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가난한 자'를 위한답시고 그것을 반(反)시장적 방법으로 추구한 사회주의적 통제경제-계획경제-명령경제는 참담한 실패로 귀결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유시장 경제의 테두리 안에서'라는 대전제를 깔아두면 자유한국당 혁신위원회 내부의 논란도 수사학적 정리(整理)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기 바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적(黨籍)을 둘러싼 논쟁은 어떻게 하느냐고요?
    아이고! 자유한국당이 알아서들 하시오.

    류근일 / 전 조선일보 주필 /2017/7/29
    휴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