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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적을 망각한 죄...'진짜 진보'의 궤도에 올라타라

보수 재정립의 출발점은 이것!

류근일 칼럼 | 최종편집 2017.07.21 09: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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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수진영이 철저히 망하자 이제는 보수 가치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어나고, 

자유한국당도 혁신위원회라는 걸 만들어 새로운 보수정당으로 거듭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보수란 어떤 것인가?
사람마다 대답이 다를 것이다.
일부는 보수가 보수를 벗어나 중도 쪽으로 좌(左)클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만들고 발전시킨 세력은 사실은 처음부터 보수인 적이 없었다.
늘 진보적이고 변혁적이었다.
공산주의-좌파 민족주의와 대립하다 보니 우파로 자리매김 당했고,
그렇게 되다보니 보수라고 불리게 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한국 자유-민주-공화 세력으로선 보수라고 낙인찍히는 게 억울할 수도 있다.

 

 한국 자유민주주의 사상의 원류(源流)를 조선왕조 말기의 문명개화 운동에 둘 경우
그 선각자들에겐 당시의 조선왕조 또는 조선사회는 변혁의 대상, 개혁의 대상이지
온존(溫存) 시켜야 할 대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의 근대의식은 물론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예컨대 이승만 박사는 조선왕조의 정치 사형수였다.
김구 선생도 동학군 즉 혁명가였다. 그들은 시체 말로 하면
당시의 변혁운동권 즉 진보였던 셈이다.
일제 치하에서도 그들은 반일(反日) 혁명가 즉 진보 인물들이었지, 보수 인사가 아니었다.

 1948년의 대한민국도 우리 역사상 최초의 자유-민주-인권-공화-개인-개방-시장 원리에
기초한 근대적 국민국가의 본격 탄생이었다.
이건 보수가 아니라 진보다.
왕조국가-봉건사회-유교 원리주의-중화주의-쇄국주의-사농공상(士農工商)-신분제-양반지주 지배를 타파하고 서양이 선도한 근대국민국로 나아갔다는 것은
‘진보적’을 넘어 엄청난 혁명적 사태였다.
게다가 그 직후엔 이승만 대통령의 성공적인 농지개혁이 있었다.
이것도 대단한 사회혁명이었다.


 1960년대~1980년대의 산업화는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와 천지개벽 같은 변혁이었다.
이처럼 대한민국 자유-민주-공화 세력은 시종 모더니티(modernity, 근대성) 혁명의 길을 따라
끊임없이 ‘진보’를 이룩해 온 비(非)보수 혁신세력이었다.

 이에 비한다면 대한민국적 근대화를 서구에 종속되는 '식민지 근대화'라고 배척한
좌파 민족주의자들과 주체사상 파는 겉으로는 ‘진보’를 자처하면서도
콘텐츠에 있어서는 근대화-산업화-개방-자유시장에 반대한 수구꼴통이었다.
현대판 척사위정(斥邪衛正) 파였던 셈이다.
이들은 1980년대 후반엔 한국의 ‘식민지 반봉건사회’가 망할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나 막상 망가진 건 북한 ‘주체’ 체제였고, 대한민국은 선진국 문턱까지 도달했다.

 근대화라고 해서 물론 다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인간 소외(疏外), 양극화, 환경파괴, 대량살상무기, 타락한 이성의 산물인
좌-우 극단의 전체주의 같은 비극이 파생되었다.
이래서 오늘날엔 이런 부작용을 치유하기 위한 성찰적 철학, 사회과학, 정책학들이
대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부정적인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선각자들은
북한 김씨 일족의 천황제 파시즘에 비해 월등히 우수한 변혁노선을 걸었다고 할 수 있다.
맞다. 그들이 걸은 길은 수구나 보수라기보다는 변혁적이고 진보적이고 혁신적이며
끊임없는 변신의 길이었다. 그래서 대한민국 자유-민주-공화 진영은
자부심을 가지고 천명해야한다. 우리는 참 진보세력이라고.

 

 오늘의 한국 자유민주 진영의 재기 노력은 바로 이런 진보적 자기 정체성에 대한
재발견과 긍지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대한민국 자유-민주-공화 세력은 밀리고 쫓기고 몰리고 추궁당할 과거의 세력이 아니다.
그들은 박차고, 구(舊)를 깨고, 혁신하고, 변동하고, 창출하고,
성취한 미래의 선취(先取)자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임을 자임해야 한다.

 그럼에도 오늘의 국면에서 한국 자유-민주-공화 진영은
왜 이렇게 참담한 나락으로 굴러 떨어졌는가?
지도층이 공부를 하지 않았고, 나태했고, 이상과 기상(氣像)을 잃었고,
후대를 양성-교육하지 않았으며, 문약(文弱)에 빠졌고,
위기의식이 없었고, 주적(主敵)을 망각했고, 그에 대한 투철한 투쟁의식을 상실했고,
시류(時流)에 영합하고 비겁했으며,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도층의 타락과 더불어 대중사회(mass society)도 함께 타락해 갔다.

 

 따라서 대한민국 자유-민주-공화 진영 재활의 길은
선배 세대가 대한민국 네이션 빌딩 과정에서 보인 탁월한 방향선택과
변혁적-진취적 발상 자체는 계승하면서 그것을 오늘의 시대적 요구에 맞게
좌파보다 앞서(그러나 좌파보다 현명하게) 재조정하는 작업과 함께,
우리가 그 동안 방기했던 시퍼런 윤리적-정신적-미학적 기상과 서슬을
갖추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결론은 자명하다.
한반도의 싸움은 정태(靜態)적이고 전(前)근대적이고 수구적인 전통사회를 마치
‘민족적’인 양 설정하는 쇄국적 반(反)근대문명 세력에 대한,
대한민국적 근대문명 세력의 투쟁이다.
이 투쟁이 오늘의 담당세대가 잘못한 탓으로 궤도에서 탈선했다.
정신을 가다듬어 과오를 반성하고 다시 본 궤도에 올라타야 한다.
그리하여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의 문명개화를 향한
100년래의 변혁투쟁을 다시 이어가야 한다.
이런 화두만 서면 그 다음부터는 실마리가 하나하나 풀릴지 않을까?


류근일 / 전 조선일보 주필 /2017/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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