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찬 오프닝 공개, 링컨 책상서 "사진 찍어보라"… 파격적 친근감 과시
  • ▲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오전(한국시각) 국빈만찬에 제공되는 공간인 백악관 스테이트다이닝룸에 안내된 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파안대소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오전(한국시각) 국빈만찬에 제공되는 공간인 백악관 스테이트다이닝룸에 안내된 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파안대소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국빈에 준해 부부동반 환영만찬을 베풀고, 백악관 내의 사적 공간에까지 손수 안내하는 등 파격적일 정도로 문재인 대통령을 극진히 예우했다.

    △국빈에 준한 환영만찬 △의장대 도열 △사적 공간 안내 등의 예우를 받은 것이 기분은 좋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다가올 정상회담에서 상응하는 '청구서'를 준비한 반증이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아, 문재인 대통령의 부담감도 커졌다는 관측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30일 오전(한국시각)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 환영만찬을 통해 첫 만남을 가졌다.

    공식실무 방문에 백악관 부부동반 환영만찬이 포함된 것은 이례적이다. 공식실무 방문에는 미국 대통령과의 실무오찬이 포함되며, 이 실무오찬에는 배우자를 동반하지 않는 게 관례다.

    이날 부부동반 환영만찬은 백악관의 스테이트 다이닝룸(State Dining Room)에서 이뤄졌는데, 이는 말그대로 국빈방문(State Visit)에만 제공되는 격식이라는 지적이다.

    백악관 의장대가 문재인 대통령이 입장한 백악관 남동문으로부터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는 지점인 남쪽 현관까지 도열했는데, 이 또한 국빈방문에 제공되는 예우다.

    트럼프 대통령 내외는 남쪽 현관에서 기다리다가 이날 오전 7시 2분(한국시각) 남동문을 통해 경내로 들어온 문재인 대통령 내외를 미소 띈 표정으로 맞이했다.

    두 정상 간의 첫 악수에 우려했던 '밀당'은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4초간 가벼운 악수를 나눴다.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오른손을 맞잡고 악수를 나누는 가운데, 왼손으로 살짝 트럼프 대통령의 오른팔꿈치를 잡는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의 방식으로 대응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을 정도였다.

    환영만찬에 배석한 청와대 고위관계자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두 분이 자연스럽게 악수했다"며 "(에피소드는) 없었다"고 단언했다.

  • ▲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오전(한국시각) 백악관 환영만찬에 초대돼 남쪽현관에 마중나온 트럼프 대통령과 가볍게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오전(한국시각) 백악관 환영만찬에 초대돼 남쪽현관에 마중나온 트럼프 대통령과 가볍게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이례적인 예우는 계속됐다. 한미 정상 간의 첫 만남은 백악관 도착과 영접 장면까지만 언론에 공개할 예정이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만찬장 오프닝까지 취재진에 공개했다.

    만찬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거대한 선거 승리를 축하한다"며 "예상치 못한 사람들도 많았겠지만, 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 승리를 예상했다"는 인사말을 건넨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오프닝 공개는 우호적 분위기를 만천하에 과시할 의도였던 것으로 분석된다.

    환영만찬은 이날 오전 7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계획을 뛰어넘어 9시 5분까지 이어졌다.

    만찬이 끝난 뒤, 문재인 대통령 내외를 환송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돌발 제안을 했기 때문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까지 내려온 트럼프 대통령은 돌연 문재인 대통령에게 "백악관 3층에는 일반에 공개되지 않아, 나도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는 이런 공간이 있는 줄도 몰랐던 곳이 있는데 구경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 내외는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이 곳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남북전쟁 당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사용했던 책상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여줬다.

    "앉아보고 사진도 찍으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권유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은 게티스버그 연설문 원본이 작성됐던 그 역사적 책상에 앉아 기념사진을 촬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예우는 과연 파격적이지만 '협상의 귀재'답게 노련한 측면도 엿보인다. 굳이 "사진을 찍으라"고 권유한 것이 반증이다. 사진을 찍으면 당연히 이것이 공개되게 돼 있고, 자신의 파격적 예우가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염두에 뒀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따뜻한 환대에 고무된 듯 만찬을 마치고 나오면서 밝은 표정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도 "양국 정상 간의 이해도가 굉장히 높아졌다"며 "만찬이 한미정상회담과 그 결과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애초에 영빈관인 블레어하우스를 공식실무 방문에 걸맞지 않게 문재인 대통령에게 3박을 제공한데 이어, 환영만찬 내내 파격적인 예우를 거듭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담긴 속내는 무엇일까.

    이런 측면에서 바라보면 이례와 파격이 연속된 국빈급 예우였지만, 이러한 예우를 받은 문재인 대통령이 마냥 흡족해할 수만은 없다는 관측이다.

  • ▲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오전(한국시각) 백악관 남쪽현관에 마중나온 트럼프 대통령 내외와 만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식실무 방문했으나, 국빈방문에 준하는 부부동반 환영만찬을 초대받은 데 이어 영접 과정에서도 국빈에 준하는 의장대 도열이 이뤄졌다. ⓒ뉴시스 사진DB
    ▲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오전(한국시각) 백악관 남쪽현관에 마중나온 트럼프 대통령 내외와 만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식실무 방문했으나, 국빈방문에 준하는 부부동반 환영만찬을 초대받은 데 이어 영접 과정에서도 국빈에 준하는 의장대 도열이 이뤄졌다. ⓒ뉴시스 사진DB

    '협상의 기술'이라는 저서를 쓸 정도로 노련한 협상가인 트럼프 대통령이 파격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예우하고 우호적 분위기를 조성한 것은, 이날 저녁에 있을 예정인 한미정상회담에서 그만큼 '청구'할 내역이 많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통상 문제와 관련해 강력한 압박이 예상된다는 것이 현지 관계자들의 관측이다. 이와 관련한 조짐은 이날 환영만찬 메뉴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환영만찬의 메인 요리로 나온 '겨자를 발라서 구운 서대 요리'에는 곁들임 비빔밥이 나왔다.

    이 비빔밥은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황금쌀로 지어졌다. 미국쌀로도 우리나라의 대표 세계화 메뉴인 비빔밥을 맛있게 지을 수 있다는 것을 만찬 메뉴를 통해 역설했다는 분석이다. 농업 분야에서의 시장개방 압력이 있을 것임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 역대 대통령은 농민들의 표심 때문에 농업 분야를 추가 개방하는 결단을 쉽사리 내리지 못해왔으며, 이는 문재인 대통령도 같은 처지다. 이 부분이 협상 테이블로 올라가면 자동차나 철강 등 다른 중요한 제조업 분야에서의 양보가 강제될 수도 있다. 이른바 성동격서 전략으로, 미국이 한미 간의 오랜 통상 교섭 역사에서 번번이 재미를 봐왔던 전법이기도 하다.

    이날 환영만찬에는 캘리포니아산 적포도주와 백포도주가 곁들여졌는데, 와인 또한 우리나라의 대미(對美) 무역역조가 심한 영역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만찬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 승리를 격찬하면서도, 본심은 "북한·무역 등 다른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 모두 토론하자"고 한 대목에 있다는 분석이 뒤따르는 이유다.

    환영만찬이 끝난 직후, 예상대로 자신의 트위터에 첫 만남의 소회를 밝힌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한다. 한미FTA 재협상을 포함한 통상 분야에서의 유리한 고지를 점유하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려는 의도라는 설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만찬 직후 자신의 트위터에 "대한민국 대통령과의 아주 기분 좋은 만남을 방금 마쳤다"며 "북한과 새로운 무역 협정을 포함한 다양한 주제에 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