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 "특보 자격이라 언론 주목받는건데… 무책임한 말씀"
  • 문정인 청와대 외교안보특보가 21일 새벽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문정인 청와대 외교안보특보가 21일 새벽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문정인 청와대 외교안보특보가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했지만, 그의 거취를 둘러싼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자유한국당·바른정당 보수 양당은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한미 관계를 이간시켰다"며 문정인 특보의 즉각 사퇴 또는 청와대의 특보직 해촉을 주장했다.

    청와대 정무특보를 지낸 바 있는 바른정당 주호영 대표권한대행은 21일 본지와 통화에서 "(나도 특보로 지명됐을 때부터) 언행 하나하나를 대통령특보의 언행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생각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며 "(문정인 특보의 언행을) 교수 개인 자격으로 했다고 누가 보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문정인 특보가 공금으로 미국에 간 것인지 개인 돈으로 간 것인지부터 알아보고 있다"며 "출장이었다면 더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고, 사비로 갔더라도 대통령특보이기 때문에 대사관에서 일정 등을 어레인지하는 게 있었을텐데 개인 자격으로 (말을) 했다는 것은 아주 무책임한 이야기"라고 경고했다.

    청와대 부속실장과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을 지냈던 바른정당 정병국 전 대표는 "일반 교수 자격으로 갔으면 언론의 주목을 받았겠는가"며 "지난해 스탠포드대 세미나에 (연세대) 교수로 갔을 때에는 언론에서 전혀 주목하지 않았었는데 (개인 자격의 말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어 "너무 잘 알만한 분이 왜 그리 무책임한 말씀을 하셨는지 모르겠다"며 "자신이 한 말에 대해 당당하게 책임을 지기 싫다면 특보를 그만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바른정당 전당대회에 출마한 김영우 국회 국방위원장도 통화에서 "(개인자격이라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라며 "누가 봐도 문재인정부의 외교안보라인 수장인데 단순히 교수 자격으로 이야기했다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라고 일축했다.

    나아가 "본인이 한미 외교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일을 하고도 아직도 사리분별을 못하는 것 같다"며 "여러 가지로 복잡하게 변명할 게 아니라,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게 문재인정부의 부담을 덜어주는 일"이라고 단언했다.

    같은날 오전에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주요당직자회의에서도 이날 새벽 귀국한 문정인 특보의 사퇴·해촉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자유한국당 이현재 정책위의장은 "문정인 특보가 학자로서 견해를 밝히고 싶다면 당장 대통령특보직을 사퇴하고 학계로 돌아가 자유롭게 발언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청와대는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동맹에 심각한 균열을 일으킨 문정인 특보를 당장 해촉하라"고 압박했다.

    같은 당의 강효상 의원도 "문정인 특보는 임명되자마자 한미동맹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는 망언을 계속하고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은 경거망동을 한 문정인 특보를 즉각 파면하라"고 촉구했다.

    앞서 지난 13일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으로 출국한 문정인 특보는 7박 9일 간의 미국 방문을 마치고 이날 새벽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 문정인 청와대 외교안보특보가 21일 새벽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문정인 청와대 외교안보특보가 21일 새벽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문정인 특보는 14일 워싱턴DC의 레이건국제공항에 도착한 직후 연합뉴스 특파원과의 문답에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다녀가긴 했지만, 민간과 이야기한 적은 없다"며 "미국 (민간) 쪽의 의견을 들어 대통령께 보고드리고, 성공적인 정상회담이 되도록 돕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처럼 미국 민간 부문의 여론을 듣는 '경청의 순방'이 될 줄 알았던 문정인 특보의 미국 방문은 그 자신이 쏟아낸 말로 설화(舌禍)를 야기하고야 말았다.

    워싱턴DC 우드로윌슨센터에서 16일 열렸던 한·미 대화 오찬연설에서 "북한이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중단'하면, 미국의 한반도 전략자산과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축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은 때마침 터진 웜비어 고문치사 사건과 결합하면서 미국 조야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미 국무부는 "한국 정부의 정책을 반영한 말은 아닐 것"이라며 불쾌감을 표했고, 미군은 '전략자산 축소' 발언을 일축하기라도 하듯 B-1 전략폭격기를 한반도에 전개해 무력시위를 했다.

    한미 간의 균열이 커지자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19일 "향후 있을 여러 가지 한미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문정인 특보에게 별도로 정중하게 말씀드렸다"고 밝혀야만 했고, 이후 문정인 특보도 현지에서 "교수로서의 개인 생각"이라고 선을 긋기 시작했다.

    뉴욕으로 이동한 뒤 아시아소사이어티에서 열린 세미나에서는 한 질문자가 'Special Advisor(특보)'라고 호칭하자 "교수라고 불러달라. 정부에서 월급받는 자리도 아니고…"라고 하기도 했다.

    이날 청와대 측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의 미국 출국 및 귀국 때와는 달리 취재진의 풀단(공동취재단) 구성을 권유하지 않았다. 대통령특보 신분과 선을 그은 문정인 특보의 언동에 발을 맞추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이 때문에 문정인 특보의 귀국길의 혼란은 극대화됐다.

    이날 새벽 4시 귀국장으로 들어선 문정인 특보는 취재진의 첫 질문부터 "할 이야기 없다. 할 이야기 없다. 할 이야기 없다니까"라고 같은 말을 세 번 반복하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취재진의 거듭된 질문에는 "그만할테니까 비켜라"며 앞에서 촬영하던 사진기자들을 짐수레로 밀면서 돌파를 시도했다. "비키라"며 밀고 나가는 대통령특보와 이를 에워싸고 질문을 쏟아내는 취재진이 엉키면서 '세계인의 관문'은 새벽부터 아수라장을 연출했다.

    이날 고성과 소란 속에서의 귀국길은 문정인 특보가 지난 13일 출국한 이래 7박 9일 간의 미국 순방이 야기한 혼란을 압축적으로 보여줬다는 평이다.

    문정인 특보는 이날 귀국길에서도 "내가 특보지만 직업은 연세대 교수"라며 "학자로 갔는데 청와대와 뭔 이야기를 하느냐"고 '사전조율설'을 일축했다.

    아울러 청와대 고위관계자에 의해 공개된 자제 요청을 받았는지 묻는 질문에도 "경고는 무슨!"이라고 거친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