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회 이승만 포럼] 김두얼 교수 "통계자료로 분석한 산업화-경제성장의 기원"

한국 산업화 속도는 이승만 정권때 '세계 최고'였다 [경제사 증언 全文]

산업개발 수출정책 입법등 1950년대 모두 갖춰...유엔도 '고속성장' 확인
박정희 중심 '전통설'은 오류...폄훼-과장 말고 연속성 '기적' 정립해야

김두얼 칼럼 | 최종편집 2017.06.21 16:2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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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발전연구] 제22권 제4호 pp. 29-68 /2016 ⓒ 한국경제발전학회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경제성장의 기원, 1953–1965

― 전통설과 새로운 해석 ― 

김 두 얼 (명지대 교수)


해방 이후 한국의 경제성장에 대한 전통적인 설명(전통설)은
산업화에 기반한 근대 경제성장의 계기가 1960년대 전반에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전통설은 1961년 군사정변을 주도한 세력이 집권하면서 한국경제가 공업화에 성공하였고
그 결과 지속적이면서도 급속한 경제성장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본다.
박정희 정부가 이러한 전환을 이룩할 수 있었던 이유로는 수출지향 경제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실질적으로 집행하였기 때문이라는 점이 제시된다.

본 연구는 근대경제성장의 역사를 분석한 전통적인 연구들이 지향한 바에 기초하여
 1950-60년대 통계들을 재검토하고 기존의 연구들을 종합함으로써
한국경제의 장기적 성장에 대한 전통설을 대체하는 새로운 해석을 체계화하고자 한다.

새로운 해석의 핵심은 해방 이후 진행된 산업화와 한국경제 성장의 기초가
1960년대 전반이 아니라 그보다 이른 1950년대에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휴전 이후 1950년대 동안 도입된 무역, 산업 정책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을 구현할 수 있는
물적 기반을 제공한 원조가 해방 이후 산업화의 본격적 출발점이었으며

근대경제성장의 초석을 갖추는 중요한 요인들이었음을, 그런 맥락에서 근대경제성장의
주요한 기원임을 제시하고자 한다.

1. 서론

한 나라가 언제 근대경제성장 (modern economic growth)의 길로 접어들었고

어떤 요인들로 말미암았는지 구명하는 작업은 경제발전 연구의 핵심 주제 중 하나이다.
사이먼 쿠즈네츠 (Simon Kuznets), 월터 로스토우 (Walter W. Rostow)등의 고전적 작업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 질문에 답하는 시도는 기본적으로 이론적이기보다는 실증적이고
현재적이기보다는 역사적이다.
국민경제가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오른 이후에야 “언제부터” 이러한 추세가 시작되었는가라는
회고적 질문이 유효해지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장기추세를 전제로 해야 동시대에 추진된 정책이나 외부 요인과 같은 외생변수 가운데 중요한 것들을 식별하고 영향을 분석함으로써 “어떤” 요인들이 경제성장을 촉발했는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질문들을 탐구하는 작업은 한 국가의 경제성장을 장기적 시야에서 이해하고 정책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에 유효한 요인들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 때문에 과거를 대상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현재적이며 미래지향적이다.

본 연구는 우리나라의 근대경제성장이 언제 시작되고 어떤 요인들에 의해 촉발되었는지
궁구함으로써, 한국경제의 발전 과정을 새롭게 파악하고 근대경제성장의 기원이라는 보편적 주제에 대한 이해를 제고하는 데 기여하려는 시도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이루어진 한국경제사에 대한 수량적 연구들의 성과와 20세기 전반에 있었던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들을 고려해 볼 때, 한국경제가 근대경제성장의 길로 본격적으로 접어들게 된 시점은 1945년 이후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본 연구는 다양한 통계를 이용하여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근대경제성장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점검한다. 그리고 해방 이후의 지속적 경제성장이 그때 촉발되도록 작용한 주요한 외생적 요인을 판별해 보기로 한다.

해방 이후 한국의 경제성장에 대한 전통적이고 지배적인 설명은 산업화에 기반한 근대경제성장의 계기가 1960년대 전반에 마련되었다고 파악한다. 1961년 군사정변을 주도한 세력이 집권하면서 한국경제가 공업화에 성공하였고 그 결과 지속적이면서도 급속한 경제성장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박정희 정부가 이러한 전환을 이룩할 수 있었던 이유로는 수출지향 경제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실질적으로 집행하였기 때문이라는 점이 제시된다.
전통설은 1960년 경까지 한국 경제는 경제성장의 길로 접어들지 못하고 침체하였으며, 이것은
상당 부분 5.16 군사정변 이전 정부의 무능과 부패 그리고 수입대체공업화라는 잘못된 정책방향에 기인하였음을 함축한다. 결국 한국경제의 지속적 성장은 수출지향성 때문에 가능했는데, 수출지향 경제성장은 1960년대 초 도입된 수출지향 경제성장정책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전통적 설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0여년 동안 이러한 전통적 설명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 그리고 대안적 설명이 제기되어 왔다. 본 연구는 근대경제성장의 역사를 분석한 전통적인 연구들이 지향한 바에 기초하여
1950-60년대 통계들을 재검토하고 기존의 연구들을 종합함으로써 한국경제의 장기적 성장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체계화하고자 한다.

새로운 해석의 핵심은 해방 이후 진행된 산업화 그리고 수출지향적인 한국경제성장의 기반이 1960년대 전반이 아니라 그보다 이른 1950년대에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휴전 이후 1950년대 동안 도입된 무역, 산업 정책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을 구현할 수 있는 물적 기반을 제공한 원조가 해방 이후 산업화의 본격적 출발점이었으며 수출지향적 근대경제성장의
초석을 갖추는 중요한 요인들이었음을, 그런 맥락에서 한국경제 성장의 주요한 기원임을 제시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새로운 자료를 발굴, 분석하는 것이기보다는, 1950, 60년대에 대한 기존 실증연구들
그리고 해당 시기의 정부 통계들을 가급적 폭넓게 파악하여 종합하는 작업에 가깝다.
이러한 시도가 부가가치를 갖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먼저1950, 60년대에 대한 많은 기존의 실증 연구들은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을 밝혀왔지만
이런 사실들이 어떻게 다른 연구들과 관련성을 가지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한국의 장기 성장의
모습에 대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심도있게 고찰하고 명시적으로 논의하는 데에는 소홀하였다. 많은 사실들을 나열하는데 그치지않고 이들을 종합하는 큰 그림을 그려나갈 때
개별 사실의 의미가 분명해지며 향후 연구가 보다 생산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연구의 개괄과 종합은 충분한 의미를 갖는다.

기존 통계에 대한 종합적이고도 비판적인 검토가 의미있는 이유 역시 이전 연

구들이 이것을 충분히 수행하지 않았기 있기 때문이다. 1950-60년대를 다룬 많은 연구들은 동시대의 통계들을 제한적으로만 이용한 경향이 있으며, 이러한 문제는 1950년대 통계와 관련해서
특히 두드러진다. 당시 우리나라 정부가 경제 관련 통계들을 적지 않게 생산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것은 기본적으로 통계에 대한 불신에 기인하였다고 짐작된다.
하지만 통계가 여러 가지 결함을 안고 있는 것은 일상적인 문제이다. 이러한 한계는 다양한 자료들을 대조하고 심도 있는 검토를 통해 극복해야 할 과제이지, 통계를 방치하는 것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이하의 논의는 다음과 같이 진행한다.
먼저 제2장에서는 수출지향 경제성장의 기원에 대한 전통설을 살펴보고,
제3장에서는 이 이론이 갖는 이론적, 실증적 문제점들을 검토한다.
제4장에서는 본 연구가 제시하고자 하는 “새로운 해석”을 체계적으로 기술한다.
제5장에서는 본 연구의 결과가 가지는 정책적 함의를 제시하고 추가 논의 사항을 다룬 뒤,
제6장에서 논의를 마무리한다.


2. 전통설

해방 이후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기원에 대한 지배적인 견해는 1960년대 전반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수출지향적 경제개발 정책을 시발점으로 보는 것이다.
“전통설”은 논자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제기되어 왔지만,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크게 네 가지 명제로 구성해 볼 수 있다.

첫째, 한국 경제가 지속적 경제성장의 길로 접어든 시점은 1960년대 전반이다.

1950년대 말까지 한국경제는 침체된 경제상황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고 이것을 벗어날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상태였지만, 1960년대 전반에 활로를 찾고 지속적이면서도 급속한 경제성장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변화가 시작된 시점을 특정하기는 쉽지 않지만 대략 1962년부터 1964년 사이로 볼 수 있으며, 1965년 경이 되면 근대경제성장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둘째, 1960년대 전반부터 근대경제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이 시기부터 산업화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1950년대에도 산업화를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성공적이지 못하였다. 그에 비해 1960년대에는 산업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그 결과 근대경제성장이 이루어졌다.

셋째, 1960년대 전반부터 산업화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지속적 경제성장의 길로 접어들 수 있었던 것은 산업화가 수출지향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1950년대에 이루어진 산업화 노력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산업화가 대내지향적인 혹은 수입대체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1960년대에는 산업화가 수출지향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성공적이었고, 궁극적으로 지속적 경제성장도 가능하였다.

넷째, 수출지향 공업화는 정부의 정책 주도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정부가 수출지향적 산업화를 핵심으로 하는 경제개발계획을 입안하고 여기에 맞추어 자원배분 등을 통해 민간부문을 성공적으로 유도하였기 때문에 산업화와 수출확대 그리고 고도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상에 제시한 전통설은 한국의 근대경제성장이 1960년대 전반부터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수출지향 경제정책에서 비롯되었다는 명제로 요약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역사해석은 1961년 군사정변을 통해 잡은 집권세력의 역사관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혁명세력은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는 것을 혁명공약으로 제시하였다.
 이처럼 우리 국민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이유를 전 정권의 무능 때문으로 평가한 뒤, 빈곤으로부터의 탈피를 위해 군사정변을 일으키고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박정희 정부 당시 활동한 경제관료나 기업가들 역시 유사한 생각을 표명해 왔다.
제1차경제개발5개년 계획 평가서는 서문에서 “제1차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성공적인 수행으로
무기력하였던 지난날의 우리의 역사는 이제 그 종지부를 찍게 되었고 생기발랄한 약동의 역사로 대치되어 가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1970년대 초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낸 태완선은 1950년대의 한국경제는 “한 마디로 말하여 빈곤의 악순환이었다”고 규정하면서, “참다운 지도자”의 등장으로 이러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다고 서술하였다. 제3공화국 경제개발정책 추진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오원철은 「한국형경제건설」에서 1961년 제1차 경제개발계획이 수립됨으로써 한국의 “산업혁명”이 시작되었으며, 보다 본격적으로는 “공업의 수출전환”을 착수한 1964년부터였다고 언급하였다. 한국경제인연합회 상임이사를 역임한 조규하도 1945년부터 1961년까지의 기간을 “기나긴 어둠의 터널”로 묘사하고, 이로부터 벗어나게 된 것은 ‘62년부터 시작된 박정희 대통령 주도하의 경제개발계획의 실시“로부터라고 서술하고 있다.

정치세력의 변화와 경제발전을 연결하는 이러한 역사 해석은 1950년대와 대비되는 1960년대의 여러 상황들로 인해 별다른 이견 없이 받아들여졌다.
우선 1950년대 경제를 분석한 연구들은 1950년대의 산업화가 경제성장에 기여하지 못하였

다는 부정적인 견해를 표명하였다. 예를 들어 김대환 (1981)은 50년대 한국의 공업화가 “대외의존의 심화와 대내불평등의 확대과정”이었다고 규정하였으며, 다른 연구들 역시 이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공제욱, 조석곤 공편 (2005), 이병천 (1999), 이상철 (2005; 2015), 장하원(1999), Amsden (1989), Woo (1991) 등 한국경제발전을 다루는 많은 연구들도 1960년대 이후 진행된 지속적 경제성장을 1960년대에 이루어진 변화들로부터 설명하고자 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11) 차동세, 김광석 (1995), Cummings (1997), 이헌창 (2012), 한국경제60년사편찬위원회 (2010) 등 한국경제를 다룬 대표적인 개설서들도 대체로 전통설에 입각하여 1950년대와 60년대를 서술하고 있다.

한편 최근 들어서는 전통설의 패러다임 하에서 제기되는 중요한 질문, 즉 “박정희 정권이 어떤 계기로 인해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정책 방향을 설정하게 되었는가” 라는 문제가 주요 연구과제로 조명을 받았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장하원(1999), 이완범 (2006), 박태균 (2007), 기미야 다다시 (2008), 이영훈 (2012), 공제욱, 조석곤 공편 (2005) 등은 박정희 정부의 정책과 과거 정부들의 정책 간의 연속과 단절, 그리고 단절의 계기를 파악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박정희 정부와 그 이전 정부 하의 경제상황을 대비하는 전통적 입장은 박정희 정부에 대해 정치적으로 비판적 견해를 견지하는 학자들조차도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철환 (1981), 유종일 엮음 (2011), 장하성 (2014), 양우진 (2016)등은 해방 이후 경제발전이 1960년대에 시작되었다는 견해를 인정하면서 그 내용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논지를 전개한다.


3. 전통설의 문제점

해방 이후 한국경제의 성장이 1960년대 전반 실시된 수출지향 경제개발정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전통설은 1960년대 전반에 군사정변을 일으킨 세력이 제기한 이후 오늘날까지 한국경제의 성장이 어떻게 비롯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지배적인 패러다임의 지위를 견지하여 왔다.
하지만 이러한 지배적 지위는 이론적 성찰과 실증적 검증을 이겨낸 결과는 아니었다.
이하에서는 여러 통계들과 선행 연구들에 기초하여 전통설을 구성하는 네 명제가 사실과 부합하는지를 점검해 보기로 한다.

(1) 경제성장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 관련해서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사실은 늦추어 잡아도 1965년부터 한국 경제는 산업화에 기초한 “고도성장”에 접어들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시기의 경제성장률이 매우 높았다는 사실은 역설적이게도 지속적 경제성장이 언제 어떤 계기에 의해 시작되었는가라는 문제를 차분하게 돌아보고 반추하는 작업을 소홀히 하도록 만든 측면이 있다.

만일 우리가 고도성장과 근대경제성장을 동일하게 놓는다면 전통설은 타당할수 있다.
하지만 경제성장에서 10%에 가까운 고도성장이 유지되는 기간은 오히려 특수하며,
근대경제성장 나아가 근대경제성장의 출발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서는 적절하지 않다.
 물론 어느 정도의 경제성장율이 얼마만큼 지속될 때 근대경제성장이 진행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계경제의 장기성장 추세를 살펴보면, 연평균 3-4% 정도 이상의 경제성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제를 “지속적인 근대경제성장 (sustainable modern economic growth)”이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에 큰 무리는 없다. 한국의 근대경제성장이 1960년대의 고도성장으로부터 시작되었는지 아니면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성장이 진행되다가 고도성장기로 접어들게 되었는지를 파악하려면 1950년대의 경제성장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림 3-1>은 1953년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실질 GDP 성장률을 보여준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1965년 이후에는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10% 수준으

로 접어들며, 이러한 높은 경제성장율이 유지되는 기간을 우리는 통상적으로 “고

도성장기”라고 부른다. 그런데 고도성장기에 접어들기 이전의 시기가 경제성장률

이 절대적 수준에서 볼 때 낮았던 것은 아니다. 1954년부터 1960년까지의 성장

률은 평균 5.3%이다. 물론 고도성장기보다는 낮은 수준이지만 경제학에서 일반적

으로 받아들여지는 기준 혹은 근대경제성장이 진행된 지난 200여년 동안 세계

각국의 성장률을 고려해 볼 때, 5.3%의 경제성장율은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1950년대를 침체기로 규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경제성장률에 근거해서 근대경제성장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Kuznets (1966), Rostow

(1960) 등 경제발전론의 전통적 연구에 기반한 것이며, 경제발전에 대한 로버트 루카스

(Robert Lucas, Jr.)의 유명한 규정, “경제발전이라는 문제는 단지 국가간 시점간 일인당

소득의 수준과 증가율의 관측된 양상을 설명하는 것”이라는 언명과도 일관된 것이다.

Lucas (1988), p.3. 한편 Maddison (2003, p.259)은 세계경제의 성장은 산업혁명 이전

에는 연평균 0.1% 수준에 불과했지만, 산업혁명 이후인 1820년부터 2000년까지 180년

기간 동안 전세계 GDP의 연평균 성장률을 약 2.2%, 서유럽국가들은 약 2.1%로 제시

하였다. 특히 본 연구가 다루고 있는 1950년부터 2000년까지 50년 기간을 놓고 보더라

도 근대경제성장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서유럽 국가들의 연평균 GDP 성장률은

3.2%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연평균 3-4%의 경제성장율을 지속하는 경제가 근대경제성

장의 필요조건을 갖추었다고 보는 기준을 기각할 만한 근거는 찾기 어렵다. 아울러 이

러한 기준은 경제성장론의 표준적인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Weil (2005, Ch.1) 등과도

일관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성장률은 산업의 고도화에 뒷받침된 것일 때 지속적일 수

있으며, 진정한 의미의 근대경제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경제가 이 시기에 산업화

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여부는 다음 절에서 다루기로 한다.>


물론 1950년대의 경제성장율은 해외로부터의 주입 (injection), 즉 원조에 크게 힘입은 것이다.
하지만 이 점은 1960년대도 마찬가지이다. 김두얼, 류상윤 (2014)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받은 ODA 규모는 1950년대 후반에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지만, 1960년대에도 1950년대보다 크게 모자라다고 보기 어려운 규모가 계속 유입되었다 (그림 3-2).
따라서 원조 규모를 가지고 1950년대의 성장을 폄하하고 1960년대의 성장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나아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세계 ODA의 역사를 보더라도 원조가 그대로 경제성장율 제고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이 시기의 경제성장이 외부로부터의 주입에 힘입었다고 해서 무의미하다고 치부하는 것 역시 적절하지 않다.

한편 개발도상국은 경제활동의 시장화 정도가 낮기 때문에, 또 자료 수집과 처리 상의 문제 때문에 GDP 추계가 경제의 실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해서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률을 추정하는 대안으로 많이 사용되는 지표 중 하나가 전력생산 및 사용량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전력생산 추이를 살펴봄으로써 당시의 경제상황을 보다 심도 있게 파악할 수 있다.

<그림 3-3>과 <표 3-1>은 전력생산 및 사용량 추이를 보여준다. 1950년대 동안 전력생산은
연평균 13.1%씩 상승하고 있으며, 1960년대 전반에 비해 결코 전

력생산 증가 속도가 낮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GDP 뿐 아니라 전력생산 및 소비추세 역시 근대경제성장이 1950년대에 이미 시작되었으며, 이 시기가 1960년대에 도래할 고도성장의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는 해석이 현실을 보다 잘 반영하는 설명임을 제시한다.


이상의 논의를 마무리하기 전에 두 가지 문제를 언급하고자 한다.
먼저 이 시기의 경제성장율을 평가함에 있어 국민일인당 지표가 아닌 총량지표를 사용한 까닭이다. <표 3-2>는 일인당 실질 GDP 증가율 추이를 보여주는데, 1950년대의 일인당 GDP 증가율은 연평균 1.6%로 비교적 낮은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 표는 일인당 GDP 성장률이 낮았던 이유가 낮은 성장률 때문이 아니라 높은 인구증가율에 기인하였음을 보여준다.
즉 1950년대는 해방 이후 현재까지의 70년 기간 동안 출산율이 가장 높았던 시기였고, 이 점이 일인당 GDP 성장률이 낮게 나타나는 원인이었다.
만일 1950년대 후반의 인구증가율이 고도성장기인 1960년대 후반의 수준이었다고 한다면,
1950년대 후반의 일인당 GDP 증가율은 3%가 넘는 높은 수준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일인당 GDP는 절대적인 측면에서나 이후 시기와의 비교라는 측면 모두 이 시기의 경제성장을 저평가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실질 GDP나 전력생산과 같은 총량지표가 이 시기의 경제성장 추세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보다 유의미한 정보를 제공해준다고 판단된다.


둘째는 전후복구과정이 경제성장율에 미친 영향을 평가하는 문제이다.
1950년대 경제성장율이 높았던 것은 전쟁으로부터의 복구 때문이며 이것이 완료되는 1950년대 말에 가서는 그 효과가 다하기 때문에, 1950년대의 경제성장을 근대경제성장의 맥락에서 보기 어렵다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견해는 두 가지 측면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먼저 이 견해는 전쟁으로인한 파괴로부터의 빠른 복구를 “당연한” 일로 전제한다.
그러나 이것은 타당하지 않다. 한국경제는 1953년 휴전 이후 복구를 하지 못한 상태로 머물러 있었을 수도 있으며, 복구는 훨씬 이후에야 혹은 훨씬 느린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었다.
특히 당시 한국의 낮은 소득 수준을 고려한다면, 전쟁으로 인한 파괴는 한국경제를 “가난의 덫”에 가둠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침체로 끌고갈 가능성도 존재하였다.
 이러한 가능성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 시기의 높은 성장을 당연시하는 것은 당시의 경제 현황을 적절하게 평가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보다 근본적으로, 1950년대 말이 되면 경제성장이 정체된다는 것은 경제성장률 통계와 부합하지 않는다. 1960년의 경제성장률이 2.3%로 전후 연도와 비교해서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지만, 1959년과 1961년 양년도 모두 5% 이상의 높은 경제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1960년의 낮은 경제성장율 중 상당 부분은 해당연도의 흉작으로 인한 농업생산 저하에 기인하였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볼 때 전후 복구가 완료되는 1950년대 말 이후에는 경제가 성

장의 한계 혹은 원조의 중단으로 인해 침체하기 시작하였다는 평가는 실증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이상의 논의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경제성장을 측정하는 데 활용되는 기본 지표들을 검토해 볼 때, 우리나라의 고도성장이 시작된
시기는 이미 널리 받아들여지는 사실, 즉 1960년대 전반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지속적인 근대경제성장이 시작된 시기는 1950년대 중엽부터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2) 산업화

근대경제성장의 핵심은 산업화이다. 앞서 살펴본 경제성장 추이가 근대경제성장인지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일종의 필요조건이라고 한다면, 산업화의 진행 여부는 경제성장의 “근대성” 여부를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이다. 1960년대 중반부터 진행된 고도성장이 같은 시기 이루어진 산업화의 성공을 통해 추동되었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이것이 곧 산업화가 이 시기부터 시작되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경제성장율과 마찬가지로 1950년대의 산업화에 대해서도 면밀한 평가와 비교가 필요하다.

산업화의 진행 정도를 파악하고 평가하려면 무엇보다 산업생산 추이를 살펴보

아야 한다. <그림 3-4>는 1955년부터 1965년 기간 동안 제조업 부문 GDP와 생산지수의 증가추이를 보여준다. 제조업 생산지수의 경우 1960년을 100이라고 볼 때, 1965년까지 180에 이를 정도로 1960년대 전반에는 제조업 생산이 급증하였다. 하지만 1954년부터 1960년까지의 기간 동안에도 제조업 생산은 47에서 100으로 증가를 하고 있다. 이것은 1960년대 전반의 증가와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

즉 두 기간 동안의 연평균성장율을 계산해 보면, 1955년부터 1960년까지는 13.6%,
1961년부터 1965년까지는 12.3%로, 1950년대의 경제성장율이 1960년대전반과 거의 같은 수준이었다.



이러한 추세는 부가가치 증가율로부터도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1955년부터

1965년 기간 동안의 부가가치 증가율은 12.6%로, 제조업 생산지수 증가율과 거의 유사하다.
한편 앞서 <그림 3-3>과 <표 3-1>은 이 시기 산업용 전기생산 추이도 제시하였는데, 1954년부터 1960년 기간 동안 산업용 전력사용량은 연평균 17.3%씩 증가하였고, 이것은 같은 시기 전체 발전량 증가율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표 3-2>는 위 결과와 아울러 1955년부터 1965년 기간 동안 주요 제조업 부문 생산지수의 연평균 성장율을 1950년대와 1960년대로 나누어 제시하였다. 이 표에 따르면 1950년대 후반의 생산증가율이 1960년대 전반보다 다소나마 낮은 산업은 목재 분야에 불과하며, 나머지 영역은 오히려 1950년대 후반이 더 높은 생산증가를 보이고 있다.

이상과 같은 1950년대의 산업화 진척은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이었다.
United Nations (1960)은 1950년대 각국의 산업분야 성장률을 비교하였는데, 이에 따르면
한국의 산업생산 증가율은 경공업과 중공업 모두에서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그림 3-5)



한편 산업화는 기업의 수와 규모 증가를 수반한다. 이런 의미에서 제조업 관련기업 및 해당 기업 근로자 추이 역시 산업화를 가늠하는 좋은 지표가 될 수 있다.
<그림 3-6>은 제조업 사업체 및 종업원의 추이를 보여준다.
1955년 우리나라의 제조업체는 8,800개였으며, 여기 근무하는 종업원은 약 20만명 수준이었다. 이것은 1964년이 되면 업체가 18,700여개, 종업원이 37만명으로 늘어난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전반을 나누어 증가 추세를 살펴보더라도 앞서 검토한 지표들처럼 두 시기 간에는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다.



산업화는 도시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도시화의 진행 정도 역시 1950년대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다. <표 3-3>은 1955년부터 1966년 기간 동안 도시에 거주하는 인구의 변화추이를 제시한 것이다.
1955년에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도시에 사는 인구는 53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24.5%를 차지하였다. 그러던 것이 인구는 1960년까지 700만으로 28%, 1966년까지 980만명으로 33.5%로 증가하였다. 이러한 도시 인구 증가는 1955-1960년기간 동안 연평균 5.9%, 1960-1966년 기간 동안 5.7% 증가한 결과로, 1950년대 후반의 도시인구증가율은 1960년대 초와 거의 동일한 수준이었다. 도시인구 증가는 10만 이상 도시, 나아가 가장 규모가 컸던 서울 및 부산으로 갈수록 더욱 높

은 수준으로 진행되었는데, 대도시를 살펴보더라도 1950년대 후반의 도시화가 절대 수준에서 높았을 뿐 아니라 1960년대 전반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정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제조업 부분의 기업, 노동자, 생산량 등이 증가하는 추세에 대한 이상의 검토는 본격적인 산업화가 1960년대 들어 시작되었다는 주장이 통계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미 1950년대부터 산업화 그리고 도시화는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3) 산업화와 수출

전통설에 입각한 연구를 진행해온 학자들 중에서도 일부는 1950년대에 산업화가 진행되고 있었음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다. 단, 이들은 대개 1950년대와 1960년대의 공업화가 불연속적이며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파악한다. 1950년대는 내수지향적 혹은 수입대체적인 방향으로 공업화가 진행된 데 비해 1960년대에는 수출지향적인 형태로 진행되었으며, 그 때문에 전자는 실패한 반면 후자는 성공하였다고 평가한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의 성공을 “수출지향적 공업화” 때문이었다고

설명하는 논의들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대비(對比)에 기초한고 할 수 있다.

산업화와 수출 간의 관계에 대한 전통설의 설명을 평가하려면 먼저 수출 추이를 살펴보아야 한다. 대외교역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1950년대와 1960년대가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은 별다른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림 3-7>은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GDP 대비 수출액의 추이인데, GDP 대비 수출액은 1950년대 전 기간에 걸쳐 2-3%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이 값은 196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해서 현재까지 꾸준히 증가하였다.
오늘날 한국은 GDP 대비 수출액이 50% 수준으로 세계 모든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데, <그림 3-7>은 이러한 현재의 모습이 1960년대부터 진행되어온 장기추세의 결과임을 보

여준다.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차이를 보다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 <그림 3-8>은 1955년부터 1965년 기간 동안 수출과 아울러 수입 및 원조 수령액의 변화 추이를 제시하였다. 이 그림은 수출의 절대액 뿐 아니라 원조와 수입 대비 규모라는 면에서도 수출이 본격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1960년대에 접어들어서 나타나는 현상임을 보여준다.

제조업 수출에 초점을 맞출 경우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대비는 더욱 뚜렷하다.
 <그림 3-9>는 제조업 수출 그리고 전체 수출에서 제조업의 비중이 변화하는 추이를 보여준다. 한국전쟁 직후 우리나라의 수출품은 대부분 농산품과 광물이었다. 제조업 제품은 규모도 미미하였을 뿐 아니라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2-3%에 불과하였다. 그러던 것이 1962년부터 규모와 비중 모두에서 급격한 상승이 일어나서 불과 4년만인 1965년에는 전체 수출에서 제조업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달하게 된다.



제조업 부문의 생산과 수출이 1950년대와 1960년대 전반에 이처럼 대조적인 양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많은 학자들은 경제주체들의 능력이나 지향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왔다.
1950년대에는 기업이나 정부가 수출을 할 능력이 부족하였거나 의지가 박약했던 데 반해,
1960년대에 와서는 이들이 변화하였다는 것이다. 혹은 1950년대에는 수입대체를 지향하였던데 반해 1960년대에 와서는 수출주도적 성장을 지향하였으며, 이 점이 경제성장과 산업화의 성공 여부를 갈라놓았다고 파악한다.

문제는 수출에 대한 기업과 정부의 입장이 실제로 1960년대 전반을 기점으로 극명하게 바뀌었는가 여부이다. 전통설이 시사하는 것처럼 1950년대 우리나라의 기업과 정부는 정말로 수출을 할
능력이나 의향이 없었을까? 이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실증적인 작업이다.

정부 측에 대해서는 다음 절에서 살펴보기로 하고, 이하에서는 면방직공업에 대한 사례분석을
중심으로 기업 측면을 다루어보기로 한다.
면방직산업은 1950-1960년대에 우리나라 제조업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산업이었으며,
1960년대의 수출을 주도한 분야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에서 면방직산업에 대한 검토는 단순히
한 산업을 살펴보는 것을 넘어 이 시기 우리나라의 산업화와 수출의 상황 그리고 이들간의 관계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사례 분석: 면방직 산업

우리나라에서 근대적인 면방직산업은 식민지기부터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식민지기에 성장한 근대적 산업들이 북한 지역에 상대적으로 많이 위치했던 반면, 면방직공업은 남한 지역에도 많이 분포하였기 때문에 해방 이후 남북의 분단에도 불구하고 지속될 수 있는 여건이 어느 정도는 갖추어져 있었다. 하지만 해방으로 인한 일본인 기술자들의 귀국, 생산중단과 전쟁 등으로 인한 설비 노후화 및 파괴로 인해 1953년 시점에서는 전쟁 이전과 비교하면 생산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있었다.

면방직산업의 생산설비 현황을 보여주는 <그림 3-10>은 이러한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방적 부문의 경우 정방기는 1949년 30만 추 수준이던 것이 1951년에는 8만 추 수준으로 1/4 수준으로 하락하였으며, 방직 부문에 있어서도 직기가 9,000대에서 1,800대로 1/5 수준으로 감소하였다. 정방기는 1954년이 되면 전전 수준으로 회복을 하지만 직기는 1957년에 가서야 전전 수준에 도달한다.

원조는 전쟁으로부터의 복구 그리고 이후의 성장을 가능하게 한 핵심요인이었다.
먼저 원조는 생산 설비의 신속한 복구에 크게 기여하였다. 아울러 미국은 면제품 생산에 필요한 원면을 무상으로 공급함으로써 생산을 촉진하였다. 여기에 더해서 정부는 외국산 면제품 수입을 제한함으로써, 국내생산자들을 보호하였다.

이러한 여건에 힘입어 면방직산업은 종전 직후의 상태로부터 빠르게 회복하였고 생산을 증대해 나아갔다(그림 3-11). 1954년에는 이미 전전 수준을 회복하였으며, 1958년에는 전전 수준의 두 배를 넘는 제품을 생산하였다. 이러한 빠른 생산 증가로 인해 1955년에 접어들면 이미 ‘과잉생산’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면방직생산자들은 이 문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하였다.
첫째는 생산설비 증가를 제한하고 생산을 줄이고자 하였다. 1961년 3월에는 방직협회전체회의에서 “불황으로 허덕이는 면방업계의 침체를 타개”하고자 앞으로 30%의 조업단축을 단행할 것을 결의하기도 하였다.
 <그림 3-11>에 따르면 1959년부터 1961년까지 생산이 감소하는데, 이는 기본적으로는 이 시기에 생산업체들이 담합을 통해 생산을 줄인 결과였다.


두 번째는 해외로부터의 수입 제한이었다. 예를 들어 1955년 1월 수출입품목사정위원회는 40번수 이하의 면사수입을 금지하기로 결정하였다.

마지막으로 해외 진출을 도모하였다. 면방직 생산자들은 수출을 늘리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였으며, 1957년 10월에는 “해외 수출이 현저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고하고 있다.
하지만 수출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다. 가장 문제가 된 것은 미국이 수출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원조를 통해 공급된 원면으로 생산한 제품을 수출하는 것을 매우 제한된 수준으로만 허용하였다. 그 결과 수출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없었다.
수출이 본격화된 것은 1960년에 접어들어 미국이 수출에 동의를 하면서부터였다. 이후 면방직제품의 수출은 큰 폭으로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1950년대와 1960년대 면방직산업의 생산과 수출의 변천과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생산대비 수출비중이다 (그림 3-12). 1964년의 경우, 면방직제품 전체 생산량의 50%를 수출하였다.
이는 국내수요가 대략 10만 km 수준에서 충족이될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앞서 <그림 3-11>에 따르면 이미 1956년에 생산에 있어서는 10만 km를 넘어서기 시작하였다. 수출 능력은 이미 1950년대 후반이면 갖추고 있었으나, 이것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상의 개괄이 보여주는 1950년대 면방직산업은 지금까지 한국 제조업에 대해 전통설이 그려온 모습과는 매우 다르다. 1950년대에 제조업 분야의 생산능력은 전반적으로 빠르게 증진되고 있었으며 이미 1950년대 말이 되면 면방직산업 등 주요 경공업 부문들은 수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거나 혹은 이러한 수준에 거의 근접하고 있었다.

기업들은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1950년대 우리나라의 제조업 기업들이 수출할 능력이나 의지가 부족하였다는 전통설의 설명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아울러 1960년대 초 수출품목을 생산하던 다른 산업들도 기본적으로는 1950년대 말 경에는 수출을 할 수 있는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에서 위의 양상은 면방직 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아울러 면방직산업의 경우 국내시장에 대한 수요를 충족한 뒤 이 과정에서 축적한 생산능력을 발판으로 수출로 나아갔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을 전통설은 흔히 “수입대체공업화의 한계 또는 실패”로 인해 해외로 전환한 것이라고 규정해 왔다. 그러나 사례 분석을 통해 제시한 사실들은 이러한 평가가 타당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1950년대 동안 우리나라 제조업은 내수시장을 기초로 성장하면서 수출을 할 수 있는 생산 능력을 갖추었고, 여기에 기반해서 이미 1950년대부터 수출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대내외적 조건이 갖추어진 1960년대에 와서는 성공적인 수출 확대를 이룩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수입대체와 수출지향은 서로 배치되는 정책이 아니라 기업 차원에서 생산능력 증진에 따라 수입대체로부터 수출지향으로 나아가는 일종의 발전 단계에 가까웠다.

휴전 직후 우리나라 제조업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5-6년 밖에 안되는 짧은 기간에 이처럼 생산능력을 급속히 갖출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를 분석하는 것은 향후 심도있는 분석이 수행되어야 하는 중요한 연구과제이다.
하지만 면방직 공업의 사례를 통해서도 두 가지 핵심 요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는 미국으로부터의 원조이다. 원조를 통해 생산설비를 원활하게 도입할 수 있었고 원자재를 싼 값에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생산능력을 빠른 속도로 증진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둘째는 산업 및 무역정책을 통한 정부의 국내산업 보호정책이다.
후자와 관련해서는 다음 소절에서 보다 상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4) 수출지향 정책

전통설은 박정희 정부가 산업화를 추진함에 있어 수출지향적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였기
때문에 1960년대에 수출 증가와 산업화 그리고 경제성장을 달성하였다고 파악한다.
그 이전 정부가 수입대체공업화를 추진한 것과 달리 박정희 정부는 수출을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정부정책을 도입하였으며 이것을 성공적으로 집행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 속에는 수출에 대한 의향이나 능력이 부족했던 민간 부문을 정부가 일깨워서 이끌어갔다는 함의도 담겨있다. 박정희 정부가 언제부터 그리고 어떻게 이러한 사고를 하고 정책을 도입, 집행하였는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어 왔는데, 이 문제는 최근 들어 가장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온 주제이기도 하다.

불행히도 전통설의 주장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결함이 있다.

첫째는 사실과의 괴리이다.
먼저 많은 학자들은 1960년대에 박정희 정부가 수출을 촉진하기 위하여 수출에 대한 국가 수준의 체계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수출보조금이나 조세 및 세금 상의 혜택처럼 수출을 장려하는 정책들을 실시하였다고 서술한다. 1960년대에 이러한 정책들이 집행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시기에 들어와서 처음 도입된 것은 아니었다.

이미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1950년대에 우리나라는 극심한 무역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이승만 정부는 수입을 줄이는 노력 뿐 아니라 수출을 늘리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실시하였다.
1956년에 수출촉진을 위하여 수출5개년 계획을 마련하였고
1957년에 무역법 등 무역 관련 기본 법령을 정비하였다(표 3-2).
아울러 박정희 정부가 도입하거나 실시하였다고 언급되는 주요수출촉진정책 가운데 상당수를
이미 1950년대부터 실시하였다.
1955년에 수출보상금을 도입하고 1956년에 수출장려보조금을 마련하였다.
일정 수준 이상의 수출을 한 사람에게 수입권한을 주는 수출입연동제 혹은 수출실적 링크제는 이미 1954년부터 실시되고 있었다. 수출을 늘리기 위한 보세가공무역 지구는 1960년대에 본격적으로 설립되었지만 이것을 설립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1950년대 말부터 논의가 이루어졌다.

1960년대를 다룬 연구들 가운데 적지 않은 작업들은 이러한 기본적인 사실들을 무시하거나 누락한 채 1960년대에 시행된 정책을 마치 그때 처음 도입된 것처럼 서술하고 있는데, 이것은 단순 오류라고 보기 어려운 심각한 문제들이다.



물론 이런 정책들이 1950년대에 이미 도입되었지만 실효성이 없었고 실제 정책이 효력을 발휘한 것은 1960년대에 와서였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반론은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다면 기존 연구들은 1960년대에 실시된 정책들을 열거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되고, 왜 이 정책들이 그 이전에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에 가서야 수출 증진을 이룩하였는지 구명했어야 했다. 이러한 설명이 없이 수출증진과 정부 정책이 1960년대에 함께 존재했다는 사실만으로 이들 간에 인과관계를 주장하는 것은 역사연구의 기본을 갖추지 못한 오류이다.

둘째, 전통설은 정책수립과정에서 기업 혹은 민간을 정부 정책의 대상 혹은 정책에 의해 인도되는 수동적인 존재로 파악한다. 그 결과 1960년대에 정부가 수출주도정책을 추진하게 된 이유로 정권 교체, 정부 내 관료들의 사고 변화 혹은 새로운 사고를 하는 관료들의 등장, 혹은 미국 정부가 우리 나라 정부에 미친 영향이나 압력과 같은 요인들을 제시한다.

이러한 연구 경향은 근본적으로는 후진적이고 정체된 민간 부문을 일깨우고 이끌어나간 것이 정부부문이라는 군사정변 주도세력과 박정희 정부 구성원들의 생각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들 그리고 여러 가지 자료들은 전통설이 가지는 많은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면방직 기업들의 경우, 1950년대부터 수출을 하려는 동기와 의지가 있었고, 수출의 필요성에 대해 다양한 통로를 통해 정부당국자들을 설득하였다.

1960년대에도 이러한 현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학자들은 박정희 정부가 초기에는 이전 정부들처럼 수입대체공업화 정책을 추진하였다고 파악한다. 하지만 <그림 3-8>, <그림 3-9> 등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이 기간 동안 이미 제조업 부문 수출은 큰 폭으로 증가를 하고 있었다. 즉 정부가 민간을 일방적으로 끌고 가거나 지도한 것이 아니라, 민간부문의 흐름을 뒷받침하거나 혹은 수출을 더욱 확대하려는 민간부문의 요구를 수용하는 과정을 통해 정책을 형성해 갔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5) 소결

전통설은 1960년대 군사정변을 통해 집권한 세력이 제시한 역사관이었다.
이러한 역사관의 기원을 고려해 볼 때, 전통설은 기본적으로 1960년 이전의 경제상황이나 성과를 낮추고 혁명 이후를 높이는 편향이 있을 수 있다.

불행히도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연구한 학자들은 전통설이 내포한 문제를 파악하거나 실증적으

로 검증하려는 시도를 충분히 수행하지 않았다. 이런 경향이 오랫 동안 유지된 데에는 전통설이 갖고 있는 설득력이 크게 작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와 아울러 1950년대 통계에 대한 연구자들의 불신도 이러한 경향을 강화한 측면이 있다.

본 장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그 동안 방치되어온 문제, 즉 한국의 근대경제성장에 대한 전통설을 검증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 1960년대에 우리나라의 수출지향 경제발전이 시작되고 이것은 박정희 정부의 수출지향 경제발전정책에서 비롯되었다는 전통설은 기본적인 통계들이나 사실들과 부합하지 않음을 확인하였다.
박정희 정부의 공식 문서나 당시 관료들의 회고가 아닌 실제 경제변수들의 움직임은 이미 1950년대부터 우리 경제가 높은 성장 궤도에 오르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민간과 정부는 이미 1950년대부터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었다.



4. 새로운 해석

지금까지 우리나라 경제발전 초기단계에 대한 전통적 설명을 개괄하고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논의 과정에서 “새로운 해석”이라고 부를 수 있는 대안적인 설명이 자연스럽게 제시되었다. 새로운 해석의 많은 부분들은 그 동안 여러연구들 속에서 단편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제시되어 왔다. 본 연구의 기여는 파편화되어 있거나 암묵적으로만 존재하는, 혹은 전공자들 간에만 공유되어 오던 내용들을 종합하고 체계화하여 드러낸 것이다.
아울러 경제성장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의 틀에 비추어 구성함으로써 한국경제의 역사적 경험을 보다 보편적인 논의가 가능한 형태로 재구성한 것이다.
새로운 해석은 다음과 같은 명제들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해방 이후 오늘날까지 지속된 근대경제성장은 한국전쟁 직후, 즉 195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되었다. GDP, 전력생산 등 1950년대 중후반의 경제성장 추세를 보여주는 여러 가지 주요 지표들은 모두가 이 시기에 높은 수준의 경제성장이 진행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1960년대는 1950년대의 침체로부터 탈피하고 근대경제성장이 시작되는 시기가 아니라, 1950년대에 시작되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근대경제성장의 여러 국면 중 한 시기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둘째, 근대경제성장의 핵심인 산업화 역시 1950년대부터 진행되었다.
산업생산 지수, 기업 및 공장근로자 수 등 산업생산 수준을 보여주는 일련의 지표들은

1950년대 동안 상당히 높은 증가율을 보였고, 그 수준은 1960년대 전반과 거의 동일하였다.
아울러 동시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보더라도 1950년대 한국의 성장 속도는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셋째, 1950년대에 산업화와 근대경제성장이 시작될 수 있었던 중요한 계기는

원조 그리고 정부가 실시한 산업 및 무역정책이었다.
 이러한 요인들에 힘입어 기업들은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으며,
1950년대 말이 되면 해외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마침내 1960년대 초에 해외수출이 대규모로 실현되면서 기업의 성장과 산업화 그리고 경제발전이 가속화되었다.
휴전 직후 한국의 경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대규모 원조와 산업 및 무역정책이 1950년대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한국경제가 근대경제성장으로 접어들기 시작하는 시기는 훨씬 뒤늦은 시기가 되거나 아니면 진입하지 못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넷째, 한국 경제는 1950년대에 극심한 무역적자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정부는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일찍부터 수입대체와 수출촉진을 동시에 추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마련된 정책들과 제도적 장치들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실시된

수출 관련 정책과 제도의 주요 부분이 되었다.

이상의 명제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다.
1950년대에 한국에 공여된 원조 그리고 정부의 산업 및 무역정책에 힘입어
1950년대에 비교적 높은 수준의 산업화와 경제성장이 이루어졌으며,
이것이 1960년대부터 시작되는 고도성장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근대경제성장의 출발점이었다.
휴전 직후 우리나라의 소득 수준과 경제상황을 고려할 때, 원조와 산업 및 무역정책이 없었더라면

이러한 경로를 밟기 어려웠다는 의미에서 1950년대의 원조와 산업 및 무역정책은 수출지향 경제발전으로 특징지울 수 있는 한국의 근대경제성장을 촉발한 기원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새로운 해석의 체계화는 학술적, 정책적 측면에서 여러 가지 함의를 가지고 있다.

첫째, 1950년대를 포함해서 한국경제의 근대경제성장을 조망한다는 것은 단순히 근대경제성장의 시발점을 몇 년 더 앞당긴다거나 기간을 몇 년 더 늘리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은 짧은 기간 동안 주력 산업이 농, 광업에서 경공업, 그리고 중공업, 첨단산업으로 변화하는 과정이었고, 이러한 산업들의 성장과 대체과정은 많은 경우 연속적이고 중첩적이었다. 즉 농, 광업이 주종이었던 1950년대동안 면방직산업이 성장하여 1960년대에는 주력산업으로 등장하였고, 경공업이 주력이던 1960, 70년대에 중화학공업에 대한 투자와 생산 노력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1980년대가 되면 산업구조가 고도화될 수 있었다. 자동차, 조선산업이 자리를 잡아가던 시점에서 반도체 산업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1990년대 이후 중화학공업 분야와 함께 한국경제를 주도하게 되었다.

 새로운 해석은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고 산업구조가 변화해온 이러한 과정을 단절이 아니라
연속과 중첩 그리고 상호작용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1950년대 뿐 아니라 지난 70년의 기간을
이러한 시각에서 재조명할 때 역사적 실체에 보다 근접할 수 있음을 함축한다.

둘째, 새로운 해석은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서 산업화와 수출 간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해야 함을 시사한다. 근대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요소는 산업화인데, 개별 산업의 발전 과정을 들여다 보면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한 뒤 수출산업으로 나아가는 방식으로 진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본 논문에서 살펴 본 면방직산업 뿐 아니라 1980년대의 철강산업과 자동차산업, 1990년대의 전자산업 등 우리나라의 많은 주요 산업들이 이러한 경로를 거쳤다.
이같은 산업의 진화 과정을 도외시한 채 수출 여부 혹은 수출 비중을 기준으로 산업의 성패를

고려하는 것은 실상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잘못된 정책적 개입을 야기할 수 있다.

보다 큰 틀에서 보자면, 우리나라의 산업들은 다양한 경로를 밟아 성장하였고 성장단계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역할 역시 상이하였다. 조선산업처럼 초기 단계부터 국내 수요와는 큰 관련 없이 해외시장을 대상으로 해서 시작된 산업도 있었으며, 면방직, 자동차 등과 같이 내수로부터 수출로 발전한 경우도 있었다. 수출산업단지 등에 기반하여 국내산업과는 연관성 없이 발전한 분야가 있는 반면, 농산물 관련 산업들처럼 수출로 확장하기보다는 내수시장을 지향한 산업들도 있었다.

우리나라 경제의 역동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산업 발전의 다양한 양

상을 보다 포괄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제기한 점도 새로운 해석의 중요한 함의임을 언급하고자 한다.

셋째, 새로운 해석은 한국의 근대경제성장에서 1960년대 박정희 정부의 기여가 무엇이었는가에 대해서도 새로운 평가를 제시한다. 박정희 정부는 우리나라 경제 발전을 촉발하였다기 보다는 1950년대로부터 시작된 근대경제성장의 움직임을 지속시키고 확대해 나아갔다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경제발전에서 박정희 정부의 역할을 낮추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아무리 경제성장의 단초가 생겨났더라도 그것이 지속되지 못하고 실패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경제발전을 지속하는데 필요한 제도적 틀을 마련하고 운영한 박정희 정부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새로운 해석이 강조하는 것은 1960, 70년대의 눈부신 성과를 부각시키기 위해 굳이 1950년대를 폄훼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리고 1950년대와의 관련성 속에서 볼 때 박정희 정부의 기여가 과장이나 왜곡 없이 제대로 파악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해석은 우리나라의 근대경제성장을 정치와 정부 중심으로 이해하는 접근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한국경제의 발전 과정을 다룬 많은 저작들은 집권 세력 혹은 대통령의 교체에 기초해서 시대를 구분하고, 각 정부가 펼친 정책들의 소개를 경제 발전의 역사로 제시한다. 이러한 역사 서술은 집권 세력의 홍보물 혹은 정부 부처의 보고서로서는 적합할 수 있겠지만, 경제성장의 역사를 궁구하는 학문적 작업과는 맞지 않는다.
주요 경제변수들의 장기적 변화를 파악하여 시대를 구분하고, 이론적 분석에 근거해서 이러한 변수들의 결정 요인과 상호 관계를 이해한 뒤, 특정 시기 특정 정책들이 이러한 방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할 때 경제 변화와 정책 간의 관계를 제대로 밝혀낼 수 있다.
새로운 해석은 1950년대와 60년대를 이러한 방식으로 파악하여 도출한 결과이며,
향후 연구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5. 결 론

역사적 사건의 기원을 추적하는 작업은 역사 연구의 핵심 영역이다.
하지만 “기원”이란 개념에 대한 동의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보니 기원에 대한 논의는 많은 혼란을 수반하는 경향이 있다. 본 연구는 근대경제성장에 대한 고전적 연구들의 전통에 기초하여 경제성장율의 추세, 산업화의 진행 정도 등과 같은 통계적 자료를 활용해서 우리나라 경제성장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수출지향성이 언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분석하였다.
그리고 이 시기에 발생한 여러 가지 외생적 요인들 가운데 산업화와 경제성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되는 요인들을 수출지향 경제성장을 촉발한 “기원”으로 파악하였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도출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는 휴전 직후인 1950년대 중후반부터 높은 수준의 산업화와 경제성장이 이루어졌으며,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근대경제성장의 출발점이었다.
휴전 직후 우리나라의 소득 수준과 경제상황을 고려할 때, 원조와 산업 및 무역정책이 없었더라면 이러한 경로를 밟기 어려웠다는 의미에서 이 시기의 원조와 산업 및 무역정책을 수출지향 경제성장의 기원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이상과 같은 결과를 새로운 해석이라고 이름하였다.
이러한 명명은 새로운 해석이 전통설, 즉 지금까지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기원을 설명하는데 널

리 받아들여지던 지배적 설명과 구분되기 때문이다.
전통설은 한국의 근대경제성장이 1960년대 전반부터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수출지향 경제정책에서 비롯되었다는 명제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해석은 1961년 군사정변을 통해 잡은 집권세력의 역사관으로부터 비롯된 이후, 별다른 도전에 직면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

본 연구는 전통설이 논리적으로나 실증적으로 많은 문제가 있음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경제성장에 대한 경제학의 전통적 접근에 입각해서 역사적 사실들을 재구성해 봄으로써 도출하게 되는 역사상이 새로운 해석임을 논구하였다.

본 연구는 한국경제 발전의 초기 단계를 설명하는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였지만, 이것이 새로운 해석의 최종 형태는 결코 아니다. “좋은 연구가 제대로 된 큰 그림을 가능하게 하는 반면, 훌륭한 연구는 큰 그림, 즉 우리나라 역사가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에 대한 일반적 양상을 염두에 두고 있을 때 많이 배출될 수 있다.”
 본 논문은 기존 연구를 종합함으로써 추후의 연구가 보다 생산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기초를 마련한 것이다. 여기에 근거해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짐으로써 한국경제의 발전에 대해 보다 심도있는 연구가 이루어지고, 이를 통해 경제발전의 본질에 대해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보론> 해방 이전과 이후 경제성장의 연속성 문제

본 연구는 서두에서 한국경제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근대경제성장의 길로 접어들게 된 기원 혹은 시발점을 해방 이후, 즉 1945년부터 1965년 사이의 기간에 있는 것으로 설정하고 논의를 전개하였다. 1965년을 상한으로 놓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의가 없을 듯 하지만 1945년을 하한으로 놓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본 절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설명을 제시하기로 한다.

Kim and Park (2007), Kim and Park (2011), 김낙년 편 (2012), Cha and Kim(2012) 등
한국경제의 장기 발전을 다룬 최근의 연구들은 한국경제가 식민지기에 높은 경제성장율을 보였고 산업화가 상당한 수준으로 진척되고 있었음을 보였다.

이러한 연구들을 근거로 해서 해방 이후의 근대경제성장을 식민지기 경제성장과

연속된 혹은 이것이 지속된 결과라고 파악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 즉 한국의 근대경제성장은 해방 이후가 아니라 식민지기부터 시작되었다는 주장도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식민지 조선 경제가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해방 이전의 경제성장과 해방 이후의 경제성장을 연속적 현상으로 보는 것은 많은 무리가 따른다.
우선 식민지기 공업화는 북한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분단 이후 남한 지역의 경제성장은 식민지 이전 공업화와 단절된 측면이 강하다.
아울러 김대래, 배석만 (2002a, 2002b), 서문석 (1998)의 연구들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해방 이후의 혼란, 일본 기술자들의 귀국, 한국 전쟁 등으로 인해 식민지기에 축적된 남한지역의 물적 자본들은 상당히 훼손되었다.

물론 해방 이전에 형성된 여러 가지 제도나 인적자본이 해방 이후의 경제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특히 Eckert (1991), Kim and Park (2007), 이상철 (2012) 등의 연구는 식민지기에 형성된 인적자본이 해방 이후의 경제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하지만 이러한 요인들은 해방 이후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한 “조건”에 가까울 뿐, 실제 경제성장을 촉발한 “기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즉 이러한 제도적 기반과 인적자원이 갖추어져 있었다고 하더라도, 휴전 이후의 상황에서 외생적 요인의 작용 없이 근대경제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 가능성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또 다른 이유는 한국전쟁이 끝난 시점에서 한국경제의 상황 때문이다.
경제성장론의 기초가 되는 솔로우 모형에 따르면 한 나라의 경제는 자본축적과 소득증가가 상호증폭 과정을 통해 균제상태 (steady state)로 수렴하여 근대경제성장을 이룩하게 된다. 하지만
소득수준이 지나치게 낮은 수준에서는 자본축적이 소득수준과 상호증폭을 일으키지 못하여 저소득을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을 경제성장론 혹은 개발경제학에서는 가난의 덫 (poverty trap)이라고 부른다.

어느 정도의 자본축적 혹은 소득수준일 때 가난의 덫에 빠져있다고 할 수 있는지, 혹은 자본축적이 어느 수준에 도달할 때 가난의 덫을 벗어나 근대경제성장으로의 수렴이 진행되는지를 구분하는 이론적, 실증적 기준은 없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대개 최빈국들이 가난의 덫에 빠져있으며 원조는 이러한 국가들을 가난의 덫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큰 밀어주기 (big push)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원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휴전 직후 한국의 상황은 오늘날 개발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가난의 덫”
상황과 유사하였고 외부로부터의 지원 없이 자생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룩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판단하는데 큰 무리가 없다. 우리나라는 이 시기 일인당 국민소득이 2010년 실질액 기준으로 500달러 수준이었는데, 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소득이 낮은 수준이었기 때문이며 오늘날 기준에서도 최빈국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해방 이전에 어느 정도 경제성장을 달성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1940년대 전시기, 해방 이후의 혼란, 그리고 전쟁으로 인한 파괴 때문에 소득 수준이 이처럼 크게 하락한 상황에서 외부로부터의 도움이 없이 경제가 자생적으로 회복의 길로 빠르게 접어들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해방 이전과 해방 이후를 연속선상에서 본다는 것은 휴전 이후 한국경제가 외부의 도움 없이도 자생적으로 전쟁으로부터 회복하고 근대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음을, 즉 해방 이전 수준까지 경제가 회복될 뿐 아니라 지속적인 성장할 수 있었으리라는 주장을 함축한다.
반면 해방 이전과 이후의 경제성장을 불연속적으로 보고 휴전 이후에 근대경제성장이 시작된 것으로 한정한 까닭은 이러한 낙관론이 신빙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함을 의미한다.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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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ustrialization and Modern Economic Growth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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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ditional View vs. Revisionist View -

42)

Duol Kim*

Prevalent explanation on the Korean economic growth after the liberation is

that it started from the early 1960s. This traditional view implies that the

leaders of the coup in 1961 initiated the industrialization and that the Korean

economy has grown rapidly since then. The success of Park Chung-hee

government originated from export-oriented economic development strategy and

its implementation. Based on statistics of the 1950s and the 1960s and previous

studies, I proposed a revisionist view. Foundation of the industrialization and

economic growth were created during the 1950s. Trade policies, industrial

policies, and foreign aids initiated the industrialization after the liberation, and

from this sense they can be regarded as the origins of modern economic growth

in Korea.

Key Words: Industrialization, Modern Economic Growth, Traditional View,

Revisionist View, Foreign Aid, Trade Policy, Industrial Policy

JEL Classification: N65, N95, O24, O25, O40, O53

* Department of Economics, Myongji University. duolkim@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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