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 낙마로 인사청문회 '참고용' 아니란 것 증명…정부 견제 역할 필요
  • 문재인 대통령은 이낙연 총리의 국회 인준 이후, 국무위원 후보자 임명을 강행해왔지만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내정하는데에는 실패했다. 사진은 국회를 방문해 시정연설을 할 당시 모습이다.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은 이낙연 총리의 국회 인준 이후, 국무위원 후보자 임명을 강행해왔지만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내정하는데에는 실패했다. 사진은 국회를 방문해 시정연설을 할 당시 모습이다.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플라톤(Platon, 기원전 428?~347)의 대화편 '테아이테토스'에서 고대 그리스의 프로타고라스(Protagoras)는 상대주의자로 묘사된다.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이 만물의 척도'로 개개인의 견해가 모두 '참'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사물을 제각각의 감각을 통해 인식하기에 진리 또한 각각 다를 수 있다는 의미였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국무위원 평가를 보면 프로타고라스가 떠오른다. 인간의 주관적 감정인 여론의 호불호를 척도로 국무위원 후보자 낙마 여부가 평가되는 모습이어서다. 문재인 정부는 그간 자신이 세운 인사 5대 원칙 대신 '여론'을 지렛대로 인사를 강행해왔다.

    이같은 태도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를 대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태도에서 잘 드러난다. 문 대통령은 강경화 후보자에 대해 "강경화 후보자는 제가 보기에 당차고 멋있는 여성"이라며 "유엔과 국제사회에서 외교관으로서 능력을 인정받고 칭송받는 인물"이라 했다. 객관적 검증 대신 주관적 인식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그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장녀 위장전입·이중국적 문제와 증여세 늑장 납부 등 여러 문제가 드러나 반대하는 상황이었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야당의 반대에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명한 데 이어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도 임명 강행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 위원장은 국회의 청문 보고서조차 받지 못했지만, 청와대 윤영찬 수석은 "김상조 신임 공정거래위원장은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공정한 경제 질서를 통해 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 능력을 갖췄음을 입증했다고 본다"며 밀어붙였다.

    그러나 지난 16일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거취는 자진사퇴로 결론났다. 정치권에서는 안 후보자의 사퇴 결정에는 청와대의 기류변화가 깔려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같은날 기자회견을 통해 "청문회에서 내 칠십 평생을 총체적으로 평가해달라"며 정면돌파 의지를 내비쳤던 그가 8시간 만에 돌연 자진사퇴 한 것에는 배경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이날까지 언론은 안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을 더해갔다. 성 인식 문제는 물론, 아들 특혜 문제, 위조 혼인 논란까지 점화됐다. 여러 의혹이 겹치면서 상황은 점점 악화됐지만, 청와대는 그를 일방적으로 감쌌다. 정작 후보자가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풀기 위해 직접 해명을 한 날에 청와대 관계자가 "안경환 후보자는 자진사퇴 한 것"이라며 선을 그은 것이 대조돼 보일 정도다.

    처음부터 청와대 인사검증에 객관적인 잣대를 적용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문재인 정부는 대선 기간 동안 5대 비리(위장전입, 부동산투기, 병역면탈, 세금탈루, 논문표절)에 연루된 인사를 고위공직자로 임명하지 않겠다며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를 정면으로 비판해왔다.

    진보진영이 대선 과정에서 보수진영에 비해 도덕적 우월성이 절대적인 양 기세를 올렸지만, 대선이 끝나자 상대적인 잣대를 사용함으로써 스스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더불어 안 후보자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의 민낯은 인사청문회 제도를 앞두고 드러났다. 문재인 정부의 독단적 인사에 '청문회 무용론'이 대두되는 이 시점에, 인사청문회가 반드시 필요한 제도였다는 사실을 새삼 깨우친 점은 덤이다.

    국무위원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 제도는 지난 2005년 광범위한 인사권을 행사하는 대통령을 견제하기 위해 시작됐다. '선한 의도'로 시작됐지만 시간이 지나며 여야 간 줄다기리와 감정싸움만 남고 있다. 정치권에서 시쳇말로 "일단 상대방이 하자고 하는 것은 '안 된다'고 제동을 걸고 나서 찬찬히 생각해봐야 한다"고 할 정도다.

    박근혜 정권시절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교회 강연에서 "미국을 붙잡기 위해 하나님이 6·25를 주셨다" 등의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특히 일제강점에 대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 발언이 반복적으로 언론을 탔다. 후에 앞뒤 맥락을 통해 일본의 식민지배를 옹호 하려는 발언이 아님이 밝혀졌지만 그는 사퇴했다. 이 역시 여론이라는 상대적 잣대에 휘말려 생긴 참사다.

    프로타고라스는의 주장에 대해 플라톤은 '그가 자신의 견해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견해를 분명히 인정하고 있다'는 한 마디로 반박했다. 개인의 주관적 인식이나 여론의 시선을 잣대로 삼는다면,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시선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라도 양 진영이 모두 납득할만한 객관적인 인사청문회 원칙을 다시 세울 필요가 있다. '5대 비리자 제외 원칙'을 문재인 정부가 고수할 수 없다면 야당과 협상을 통해 인사청문회의 객관적 기준을 세워야한다. 엿가락처럼 휘어지는 잣대로는 인사청문회마다 국론 분열이 반복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