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4대강 수문 개방에 어도에서 물고기 말라죽어… 증어망국
  • 문재인 대통령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지난달 25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앞두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문재인 대통령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지난달 25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앞두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혈맹이자 최대 우방국인 미국 방문을 앞두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 심화되는 한미동맹의 균열과 안보 위기 속에서 취임 한 달을 맞이했다.

    30일 사이 악화일로를 걸은 안보 위기의 조짐이 증어망국(蒸魚亡國)으로 나타났다. 앞서 취임 직후 섣부른 4대강 보 수문 개방 업무지시를 내린 탓에, 낮아진 수위로 어도(魚道)에서 오갈 곳 없게 된 물고기들은 모두 떼죽음을 당했다. 자초한 이재(罹災)인 셈이지만, 이제라도 수신(修身)해서 남은 59개월 임기 동안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게끔 해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로 취임 한 달을 맞이했다.

    취임 한 달 행보 중 박근혜 전 대통령 때의 적폐 청산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높이 평가할만한 부분도 없지 않다.

    바른말을 하다가 억울하게 갈려나갔던 직업공무원들을 영전시켰고, 법정기관이지만 유명무실해졌던 국가인권위원회와 특별감찰관 제도 등을 정상화했다. 국민의 혈세를 불투명하게 사용하던 특수활동비 관행에 대한 시정 의지를 드러낸 것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아마추어스러운 국정운영으로 나라 안팎에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위기를 자초한 점 때문에 취임 한 달은 안보위기가 심화된 '위기의 한 달'이 되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가뭄에 특히 취약한 시점인 모내기철을 전후해 4대강 보 수문을 섣부르게 개방 지시했다. 이 때문에 어도 아래로 수위로 내려가면서 강의 상·하류를 활발히 오가던 물고기들은 전부 떼죽음을 당했다.

    초여름 더위에 물고기와 민물새우들이 바싹 마른 어도에서 배를 드러내고 끓듯이 말라죽어간 것은 전형적인 증어망국(蒸魚亡國)의 조짐이다.

  • 문재인 대통령의 낙동강 강정고령보 수문 개방 지시로 수위로 낮아져 어도에 물이 통하지 않게 되면서, 물고기와 민물새우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TV조선 방송화면 갈무리
    ▲ 문재인 대통령의 낙동강 강정고령보 수문 개방 지시로 수위로 낮아져 어도에 물이 통하지 않게 되면서, 물고기와 민물새우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TV조선 방송화면 갈무리

    산란을 위해 상류로 올라가야 할 물고기들이 어도가 말라 이동하지 못하니 이미 내수면 양식어민들의 피해는 불보듯 뻔한 것이 됐다. 어도 제약수위에서 수위가 더 내려가면 취수구 아래로 물이 내려가는 양수 제약수위와 지하수 제약수위에 도달한다. 농업용수조차 취수하지 못하게 되면 모는 전부 말라죽게 된다. 농민의 피눈물이 하루하루 현실로 다가오는 셈이다.

    증어망국이란 바로 이러한 국민의 고통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업무지시 한 마디에 어도에서 떼죽음을 당한 물고기와 민물새우, 그리고 물이 말라 썩어들어가는 수초가 내뿜는 악취가 취임 한 달을 맞이한 문재인정권을 향한 준엄한 경고의 의미다.

    밖에서 심화되는 교린의 위기가 안으로 망국지조(亡國之兆)로 나타났을 수도 있다.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이래 64년 굳건히 유지된 한미동맹이 불과 한 달만에 이렇게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게 놀랍다.

    미국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지난 8일(현지시각) 조찬간담회를 갖고 사드 배치 문제를 논의했다. 조찬 직후 헤더 노어트 국무부 대변인은 "사드 배치는 미국 정부에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라는 말이 최고위급 논의 과정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집권 공화당이 우회적인 우려를 표하고 있는 것과 달리 야당이 된 민주당은 더욱 직접적이다. 지난달 31일 문재인 대통령을 면담하고 미국으로 돌아간 딕 더빈 상원 민주당 원내총무는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연일 문재인정권의 사드 관련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미국 언론도 문재인정권에 비판적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날 "한국의 새 지도자가 사드 정지 버튼을 눌렀다"며 "문재인정부와 트럼프정부의 잠재적 갈등을 보여준다"고 우려했다. 뉴욕타임즈도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몇 년간 동북아정세가 근본적으로 번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꾸짖었다.

    워싱턴 주변에서 여야와 언론을 가리지 않고 문재인정권을 향한 불편한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는 중이다. 균열음이 태평양 양안에서 울려퍼지고 한미동맹에는 누구의 눈에도 보이는 금이 쩍쩍 가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의 낙동강 강정고령보 수문 개방 지시로 수위로 낮아져 어도에 물이 통하지 않게 되면서, 물고기와 민물새우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연합뉴스 사진DB
    ▲ 문재인 대통령의 낙동강 강정고령보 수문 개방 지시로 수위로 낮아져 어도에 물이 통하지 않게 되면서, 물고기와 민물새우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연합뉴스 사진DB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한 달은 그야말로 심화된 '위기의 한 달'이었고, 이대로 가면 내우외환을 피할 길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행스러운 것은 사드 배치와 관련해 정권 내부에서도 국제정치적으로 민감한 사항을 국내정치에 이용하기 위해 건드린 것은 잘못이라는 인식이 뒤늦게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9일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정부는 사드에 대해 한미동맹 차원에서 약속한 내용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의도가 없다"며 "정권교체가 됐다고 해서 (사드 배치) 결정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을 것"이라고 수습에 나섰다.

    잘못은 어느 정권이나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잘못을 빨리 깨닫고 이를 인정하는 용기를 발휘한 뒤 대담하게 정책을 전환하는 것이다. 이러한 용기와 대담성을 발휘하면 남은 임기 59개월은 성공적인 임기가 되지 말란 법도 없다.

    정유재란을 앞두고 전선이 소강 상태를 보이던 병술년(1595년) 9월, 삼남 지방에서 강물이 말라 물고기와 자라가 떼죽음을 당하는 어별(魚鼈)의 변고가 보고됐다. 일본의 재침 위협을 앞두고 겪은 망국지조라 군신의 두려움이 컸다.

    이 때 이조좌랑 정경세가 상신하기를 "한편으로는 근심스러우나 한편으로는 기쁜 일"이라며 "천명(天命)이 이미 끊어졌다면 재이(災異)가 나타나지 않는 법인데, 천심이 아직 우리나라를 돌보기 때문에 변고를 보여 돌이켜 수성(修省)하도록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경세는 선조에게 "상께서 천명이 끊어지지 않은 것을 생각해, 두려운 마음으로 허물 면하기를 생각하면 매우 다행이겠다"고 상주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비록 자초한 재이였지만, 4대강 어도에서 물고기들이 떼죽음당한 것을 비통히 여겨, 지금이라도 안팎으로 잘못된 정책들을 바로잡는다면 '위기의 한 달'을 밑거름 삼아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