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8~7월 1일 해오름극장 공연, 이의영·이요음·장윤나·박혜지 캐스팅
  • 조선의 궁중무희 리진이 국립무용단 무용수들에 의해 환생한다.

    국립극장(극장장 안호상) 전속단체 국립무용단(예술감독 김상덕)은 신작 무용극 '리진(Lee Jin)'을 오는 28일부터 7월 1일까지 해오름극장 무대에 올린다.

    국립무용단은 그동안 '도미부인', '춤, 춘향', 'Soul, 해바라기' 등 무용극 형식의 레퍼토리를 발표해왔다. 이번 작품은 국립무용단의 독보적 스타일인 무용극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2012년 '그대, 논개여' 이후 5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안호상 극장장은 7일 국립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국립무용단은 오랫동안 무용극 장르를 개척해왔지만 최근 무용극에 소홀하지 않았나 싶다"며 "모던 발레, 드라마틱 발레는 현대적 변화를 겪어왔지만 무용은 시대적 변화에 덜 수용됐다. 공공극장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21세기 국내 창작무용의 부흥과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단체가 되겠다"고 밝혔다.

    '리진'은 제2대 주한 프랑스 공사 이폴리트 프랑댕이 쓴 '한국에서(En Coree)'(국내 번역본 제목은 '프랑스 외교관이 본 개화기 조선')라는 기록에 등장하는 조선시대 궁중 무희다. 기록에 의하면 프랑스 공사가 리진에게 반해 프랑스 파리로 데려갔다고 전해진다. 이를 모티프로 두 편의 소설 김탁환의 '리심'과 신경숙 '리진'이 출간되기도 했다.

    극은 초대 프랑스 공사 플랑시와의 운명적인 사랑을 선택한 리진과 권력과 명예를 좇은 도화, 두 여인의 상반된 삶을 무용극으로 풀어낸다. 조선 궁궐을 배경으로 한 1막, 플랑시와 함께 떠난 프랑스에서의 리진의 행복한 삶과 이를 방해하려는 원우·도화로 인해 비극적 최후를 맞는 2막으로 구성된다.

    지금까지도 리진의 실존과 기록의 진위 여부에 대한 논쟁이 남아 있다. 지난해 10월 부임한 김상덕 예술감독은 화려한 궁중무희를 채우는 일부가 아닌, 독립된 인간이자 여성으로서 궁중무희의 삶을 서술한 당대의 기록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큰 영감을 받아 자신의 첫 안무작으로 선택했다.

    "부임 후 첫 작품이라 몸과 마음이 무겁다. 그럼에도 단원들과 함차게 준비하고 있다. 역사 속 리진의 이야기는 폭넓지 않다. 리진이 당대 무용수로서 남겨진 화려한 춤도 없다. 현대 감각에 의해 어떻게 모던하게 풀어나갈지 연구했다. 3세대 무용극을 재발견·재구성·재탄생하는 현장을 지켜봐주길 바란다."

  • ▲ 김상덕 예술감독.
    ▲ 김상덕 예술감독.
    김 예술감독은 고(故) 정재만 선생으로부터 전통 춤사위를 배우며 무용수로 활동했고, 1990년~1992년 국립무용단 주역무용수로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그는 "국립무용단 초대 단장인 송범 선생이 마련했던 극 중심의 춤사위 형태가 1세대, 국수호·조흥동이 선생이 보여줬던 신화나 굿 소재의 레퍼토리가 2세대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리진'은 기존 국립무용단의 무용극과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에서 차이를 둔다. 보다 강렬한 드라마를 위해 설명이 아닌 함축, 즉 '선택과 집중'을 택한다. "3세대 무용극은 연기적인 요소들이 많다. 노래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뮤지컬 같은 느낌도 있고, 한국 춤의 움직임 자체를 모던하게 다듬었다. 고전에만 의존하지 않고 한 편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듯이 현대적으로 녹여냈다."

    '리진'은 화려한 무대와 연출을 통해 조선과 프랑스를 고전 세계와 신세계로 설정하고, 시공간을 오가며 벌어지는 로맨스를 다양한 춤으로 표현할 예정이다. 궁중무희의 지배자로서 리진에게 집착하는 원우, 리진과 함께 궁중무희로 자라며 권력에 대한 욕망을 키워온 도화가 등장하며 입체감을 더한다.

    무대는 뮤지컬 '레베카', '베르테르',  '황태자 루돌프' 등 다양한 작품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는 정승호 무대디자이너가 맡았다. 곡선 형태의 거대한 LED 패널을 무대 세트로 활용해 무용수의 움직임에 따라 자연스레 시공간의 변화가 이뤄지도록 디자인했다. 

    정승호 무대디자이너는 "LED 조명과 키네틱 무브먼트 등 현대적인 재료를 활용해 동시대성 화두가 되는 무대를 만들고자 했다. 디지털 기술이 갖고 있는 이미지가 차갑다보니 최대한 아놀로그 느낌을 살리려고 한다.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르지 않게, 무용이 가지고 있는 추상성을 해치지 않고 최대한 미니멀하게 표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의 음악은 리진의 테마 선율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편성 면에서는 서양악기 중심의 관현악을 바탕으로 조선시대 가창음악인 정가, 각 배역을 표현하는 효과음 등을 더할 계획이다. 감성국은 작곡가는 "한축은 서사성을 따라가는데, 조선시대 성행했던 전통 가창 방식이었던 정가를 활용해 주제곡을 만들었다. 한편으론 극 전체를 관통할 수 있는 이분법적인 음악을 구성했다"고 했다.

    작품에는 리진·플랑시와 도화·원우 등 두 남녀 커플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지난 3월 국립무용단은 내부 오디션을 통해 4명의 주요 무용수를 발탁했다. '리진' 역에는 이의영·이요음이, '도화' 역 장윤나·박혜지, '플랑시' 역에 황용천·조용진이 더블 캐스팅됐으며, 극 전반에서 갈등을 촉발시키는 '원우' 역은 송설이 맡는다.

    장윤나 무용수는 "리진은 과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현재의 제 모습 같기도 하다. 무용수들 사이에 낀 세대이다. 14년차인데 무용극 경험이 많이 없다"며 "무용단·무용극이 현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서 저 역시 움직임이나 사상, 가치관 등이 현시대에 맞춰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 ▲ 김상덕 예술감독.
    [사진=국립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