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위원들 '당의 미래' 언급했지만…핵심 관계자들은 아직도 5월 9일에 머물러
  • ▲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자유한국당이 30일 "당의 나아갈 길을 찾겠다"며 국회의원과 당협위원장, 보좌진 등 당 관계자가 전부 모이는 토론회를 개최했지만, 과거 책임론에 대한 성토만 잇따르면서 빈손으로 해산했다.

    자유한국당은 이날 오전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제19대 대선 평가와 자유한국당이 나아가야 할 길'이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열었다. 외부위원으로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윤창현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황태순 정치평론가 등을 불러 당 외부 이야기를 듣는 한편, 당원·보좌진·당협위원장 등 각층 의견을 수렴해 당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합리적이고 강력한 수권정당으로 태어나 국민의 지지를 다시 얻는 것이 우리 과제"라며 "대선 이후 20여 일간 생각해오고 정리해온 많은 이야기를 토론을 통해 우리의 앞날을 모색하자"고 했다.

    정 원내대표는 "외부의 시각에서 볼 때 우리 당이 가장 많이 비판받는 것은 바로 계파주의"라며 "오는 7·3 전당대회를 계기로 해서 이런 모든 관행과 행태를 녹여내는 새 출발의 전환점이 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간 자유한국당은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친박계와 비주류인 비박계 간 갈등 끝에 분당(分黨) 됐고, 총선과 대선에서 내리 패했다. 토론회를 통해 오랜 기간 이어져온 계파 갈등을 끝내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7·3 전당대회 이후 한국당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자는 의미가 담긴 발언이었다.

    외부위원들은 이같은 정우택 원내대표의 주문에 따라 자유한국당의 지향점에 대해 한 마디씩 견해를 내놨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미래 국가적 과제를 선점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유권자들은 자유한국당에 경륜 있고 안정적 모습을 기대하는데, 여기에는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또한 "경제 민주화와 일자리 정책에서 아젠다를 선점당했고, 자유한국당의 경제공약을 부각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며 '작은 정부론'을 대안으로 주장했다.

    윤 교수는 "1970년 영국이 경쟁하려는 의지가 사라지고 공공 서비스에 기대면서 노사관계가 안 좋아진 적이 있었다"며 "정부 만능주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본다. '한국병'을 치료하는 정당으로 이미지와 대안 제시가 중요하지 않겠나"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이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잠시 묻어둬야 하는 게 아니냐"며 "새로운 사람을 키워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 이날 자리를 메운 자유한국당의 당 관계자들은 저마다 외부인사에 책임론 문제를 물었다. '나아갈 길'과는 거리가 먼 질문을 던진 셈이다.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 이날 자리를 메운 자유한국당의 당 관계자들은 저마다 외부인사에 책임론 문제를 물었다. '나아갈 길'과는 거리가 먼 질문을 던진 셈이다.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그러나 질의응답 시간이 시작되자 미래 방안을 이야기하는 분위기는 이내 실종됐다.

    질문을 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은 당 관계자들이 그간의 분노를 성토하기 시작하면서 책임론을 꺼냈기 때문이다. 질의응답 시간이 '성토의 장'이 되면서 토론회를 통해 단결과 단합을 해보려던 분위기도 싸늘하게 식어갔다.

    서울 지역의 한 당협위원장은 "자유한국당의 국회의원님들, 당협위원장님들은 비겁하다"며 "당이 날아가더라도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했으면 한다. 용감해졌으면 한다"고 날을 세웠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받을만한 짓거리를 했느냐"며 "전교조, 종북 세력들, 민노총 같은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기획해서 탄핵된 것이 아니냐"고 했다. '기획 탄핵설'을 꺼내며 "우리가 박근혜 대통령의 잘잘못을 따지고 그것이 탄핵의 대상이 아니었다고 강력히 주장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변화가 될 것인지 답변을 듣고 싶다"고 외쳤다.

    경기 지역의 한 당협위원장은 "당 지도부가 내가 잘못해서 졌다고 하는 분이 안 계신다. 책임지지 않는 자유한국당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알려달라"며 "바른정당 갔다 오신 분들도 반성하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 제 입으로 말하기 불편하니 말씀해 달라"는 구체적인 주문을 넣기도 했다.

    급기야 종로에서 정당선거 사무소 소장을 맡았다고 자신을 소개한 여성 당원이 "제 이름이 입력이 안 돼 있다고 하면서 수기로 투표하게 됐는데, 여백이 없는 투표용지로 투표했다"며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고, 다른 중앙위원이 "박근혜 대통령 사진을 걸고 당선된 사람들이 양심 없이 밥그릇을 위해 싸우다 새누리당이 망하고 자유한국당이라는 이상한 당을 만들지 않았느냐. 적어도 XXX는 한 번 주인을 정하면 영원히 따른다"는 육두문자를 섞은 발언까지 등장했다.

    상황이 여기에 이르자 사회를 보던 민경욱 의원이 "뭐하시는 것이냐, 그만하라"며 발언권을 빼앗았지만 당내 자유토론 분위기는 무거워질 대로 무거워졌다.

    보다 못한 이우현 의원이 나서서 "원외 위원장님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가 대통령 후보가 되고 나서 선거운동을 얼마나 했느냐"며 "우리 당 대표님도 (득표율) 15%가 안 될 줄 알고 광고도 안 했고 원외 위원장의 절반은 많은 노력도 안 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처음부터 죽기 살기로 뛰었으면 30%~35%가 될 수 있었다"며 "우리가 고생하지 않고 새롭게 안 되면 저는 비전을 찾기 어렵다 본다"고 질타했다.

    자유한국당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역시 "밖에서 사람을 찾으려 하면 안 된다. 답은 우리 내부에 있다"며 "스스로를 존중하고 잘 뭉치면 불행한 일이 없을 것"이라고 분위기 수습에 나섰다.

    이같은 자중지란 하는 모습에 자유한국당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당장 오는 6월 1월과 2일 예정된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가 제대로 진행될지에 대한 걱정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정 원내대표는 "이날 토론회를 기점으로 해서 오는 연석회의를 통해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날이 갈수록 새로워 짐)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한 바 있다.

    자유한국당의 한 의원실 관계자는 "당초 전당대회를 앞두고 계파전 양상으로 전개되지 않을까 우려를 했는데, 예상한 것보다 더 안 좋은 모습이 나온 것 같다"며 "그래도 막판에 '지구당·정당 연수원 부활'등 긍정적인 언급도 있었던 것 같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