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과도한 추론·예단, 여러 차례 제지당해...변호인 “순환출자 해소는 당연한 일”
  • 합병 전 삼성물산 서초동 본사. ⓒ 사진 뉴시스
    ▲ 합병 전 삼성물산 서초동 본사. ⓒ 사진 뉴시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그룹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부정한 청탁을 하고, 그 대가로 최순실 측에 430억원대의 뇌물을 공여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그룹 전·현직 경영진에 대한 5차 공판에서, 특검은 이 부회장이 그룹 미래전략실 임원으로부터 주요 현안을 보고 받는 등 실질적인 총수로서의 역할을 한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다.

    특검은 20일 서울중앙지법 417호법정에서 열린 이 사건 5차 공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적용한 뇌물공여죄의 전제사실이라 할 수 있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 합병 전후 사정을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표를 던진 과정에 ‘외압’ 혹은 청와대의 ‘압력’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특검은 삼성물산-제일모직간 합병 건과 관련해 청와대 혹은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구체적인 지시가 있었다거나, 박 전 대통령의 부당한 지시에 따라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이나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위법하게 업무를 처리한 사실이 있음을 입증하는데는 실패했다.

    오히려 특검은 이날도 이 사건 공소사실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는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의 역할이나,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건에 찬성표를 던진 과정,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의 개입으로 국부유출 논란이 일어난 상황에서 삼성 측이 어떤 대응에 나섰는지 등을 지나칠 정도로 세밀하게 밝혀, 재판부로부터 제지를 받기도 했다.

    특검은 국민연금관리공단, 청와대 경제비서관실 파견 행정관, 삼성 미전실 임원 등을 불러 작성한 참고인 진술조서를 장시간 읽어 내려가면서, 이재용 부회장이 그룹의 사실상 총수로서 지배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데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런 내용은 이 사건 공소사실과는 상당부분 동떨어졌다는 점에서, 특검이 ‘이재용 부회장의 거짓말’을 입증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특히 특검은 이날 “이때부터 삼성 측의 로비가 시작된다” 등의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마치 검증된 사실처럼 주장하다가, 재판부로부터 여러 차례 주의를 받았다.

    반면 변호인단은 청와대 경제비서관실에 파견된 금융위 소속 선임 행정관이, 엘리엇 사태 직후 삼성에 비판적인 보고서를 작성한 사실만 보더라도,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뇌물을 요구했고, 이 부회장이 그 대가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위해 정부 차원의 지원(국민연금의 찬성)을 요구했다는 특검 측 공소사실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고 반박했다.

    변호인단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의 진술조서 어디에도 안종범 전 수석이나 박 전 대통령의 지시 혹은 개입을 시사하는 내용이 없었다고 부연했다.

    다음은 이와 관련된 특검의 서중조사와 변호인단의 변론 중 일부.

    특검 :

    “금융위 금융서비스 OO국장의 진술조서 서증조사한다. 2015년 7월 청와대 경제수석실 선임 행정관으로 근무.

    삼성합병 관련해 대통령 보고서 작성, 대통령에게 서면보고한 적 있다.

    당시 최OO 비서관으로부터 엘리엇 사태 합병 건에 대해 상황 파악하라는 지시 받았다. 국민연금공단 관련 업무 관장하는 김OO 비서관 등을 통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안건 챙겨봤다.

    대통령 보고용 보고서 관련해, 2015년 7월20일 합병 성사된 다음날 엘리엇 분쟁평가 및 시사점 보고서를 경제수석실 명의로 작성해, 대통령에게 서면보고 형식으로 올렸다.

    대통령 비서실 사실조회 신청한 내용이다. 보고서 통해 삼성물산과 엘리엇 합병 관련 분쟁에 대한 현황 평가 및 시사점을 말했다.

    엘리엇 패소한 후 주주 표 대결에서 실패했고, 주주총회에서 합병 승인됨으로써 지배구조 개선이 안 되므로, 재벌들로 하여금 ‘주주 친화적’  정책을 추진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보고서는 경제비서관실이 대통령에게 최종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

    22일 안종범 수석과 장충기 피고인(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이 연락해서 대통령과 이재용 피고인 독대 일정 잡고, 25일 실제 독대하고, 27일 ‘주주친화 정책’ 등 담은 엘리엇 관련 보고서 안종범 수석 통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변호인단 :

    “특검은 이재용 피고인이 대통령 독대해서 경영권 승계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요구(부정한 청탁)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OO국장이 작성했다는 보고서는 내용자체도 특검이 말한 것과는 반대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만일 대통령이 (삼성물산-제일모직)합병에 찬성하라는 지시를 안종범 수석에게 하고, 안 수석이 지시내용을 복지부장관 통해 국민연금공단에 했다면 이런 보고서 형태가 있을 수 없다.

    이런 사정은 대통령의 합병 찬성지시가 없었음을 보여주는 정황이다.

    국민연금공단 최광 이사장은 합병과 관련해서 청와대나 복지부, 행정기관 어느 부서로부터도 로비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대통령으로부터 경제수석 통해 순차적으로 지시가 내려갔다는 특검 주장과는 거리가 먼 진술이다.”


    통합 삼성물산(제일모직과의 합병 후 법인) 출범 뒤 불거진 순환출자 고리 해소 문제와 관련, 공정거래위가 매각 처분 주식의 규모를 당초 1천만주에서 500만주로 축소 의결한 것은 ‘특혜’라는 주장에 대해, 변호인단은 특검이 서증조사 대상으로 삼은 김종중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팀장의 진술조서를 역으로 인용해, 반박했다.

    변호인단은 “김종중 팀장의 진술 취지는 합병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고려한 내부 임직원들의 제안을 계기로 추진됐다는 것”이라며, 이를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연결 짓는 것은, 특검이 처음부터 그릇된 예단을 가지고 수사를 시작했음을 반증한다고 비판했다.

    이런 사정은 김종중 미래전략실 전략1팀장(사장)의 진술조서를 통해 드러났다.

  • 2015년 7월17일 서울 중구 삼성생명 빌딩에서 '제52기 임시주주총회'가 열리고 있다. 제일모직은 이날 주주총회를 통해 삼성물산과의 합병을 통과시켰다. ⓒ 사진 뉴시스
    ▲ 2015년 7월17일 서울 중구 삼성생명 빌딩에서 '제52기 임시주주총회'가 열리고 있다. 제일모직은 이날 주주총회를 통해 삼성물산과의 합병을 통과시켰다. ⓒ 사진 뉴시스


    김종중 사장의 진술조서에 따르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아이디어를 제일 먼저 꺼낸 사람은 제일모직 윤주화 패션부문 사장이다.

    윤 사장은 상장을 하려면 주식가격에 대한 적정수익 보장이 이뤄져야 하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기 때문에, 해외 인프라가 있는 물산과의 합병을 검토하자는 의견을 냈다는 것.

    변호인단은 “특검이 인용한 진술조서를 보면, 윤 사장의 제안 이후 내부 보고와 결재를 거쳐 최지성 실장에게 합병안을 보고한 과정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즉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특검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재용 부회장이 자신의 경영권 승계와 보유지분 확대를 위해 추진한 것이 아니라, 두 회사 내부 구성원들이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와 그룹 차원의 이익을 따져 먼저 제안을 하고 추진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특검의 주장 및 공소사실과 매우 큰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 재판부가 이 부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변호인단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두 회사가 자율적으로 합병을 추진하다가 갑자기 엘리엇이 등장하면서 그룹 차원의 현안으로 확대됐고, 이때부터 미전실이 지원에 나서게 됐다고 덧붙였다.

    변호인단은 이재용 부회장이 국민연금공단 경영진의 요구에 따라, 공단 투자전문위원들을 만나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적극적으로 설명한 정황을 소개하면서, “만약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 사이에 부정한 청탁과 대가관계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면, 이 부회장이 직접 국민연금공단 투자 전문위원들을 찾아가서 내용을 설명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이날 서증조사 도중 여러 차례 재판부의 제지를 받았다.

    특검은 “이때부터 삼성 측의 로비가 시작된다”, “안종범 수석이 결국  (이 부회장이 매각해야 할) 주식규모를 500만주로 결정해 준다”, “공정위가 결정한 처분을 청와대 경제수석이 일방적으로 줄이고” 등의 주장을 계속했다.

    변호인단은 “순환출자 해소를 위한 주식 매각은 당연한 일이며, 특검은 매각 주식규모가 1천만주에서 500만 주로 줄어든 것을 엄청난 특혜처럼 말하지만, 당시 이미 4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1천만주를 매각해도 5%가 줄어드는 것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변호인 측은 “금융지주사 전환을 위해서는 어차피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야만 했고, 지분 매각은 시간의 문제였을 뿐 어차피 처분이 필요한 사안이었다”며, 특검 측 주장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다고 했다.

    “삼성생명이 금융지주전환을 신청하는데 그걸 위해선 남아있는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해야만 했다.

    그룹들(계열사)이 삼성물산에 가지는 주식을 팔아야 할 수밖에 없는 구조. 그런데 이거를 두고 경영권 승계에 큰 의미가 있다고 하는 건 전혀 사실과 다르고 논리에도 맞지 않는다.”

    사건을 심리중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김진동 부장판사)는, 다음 주에도 수, 목, 금 3일에 걸쳐 서증조사를 진행하고, 5월부터는 특검과 변호인단이 신청한 증인에 대한 신문을 진행할 예정이다.

    재판부는 서증조사 대상인 조서와 비진술 증거가 수만 쪽에 달하자, 특검 측에 최대한 간략한 서증조사를 당부했다.

    서증조사가 이례적으로 길어지고 있고, 양 측이 요구한 증인의 수도 많아 공판은 5월을 넘어 6월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