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대가관계 ‘입증’이 관건...소명(疏明) 만으론 부족
  •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공판준비기일이 열린 지난달 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로비에 이재용 사건 방청권 배부장소를 알리는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 사진 뉴시스
    ▲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공판준비기일이 열린 지난달 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로비에 이재용 사건 방청권 배부장소를 알리는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 사진 뉴시스


    그룹 경영권 승계를 범정부 차원에서 지원해 줄 것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청탁하고, 그 대가로 박 대통령과 경제공동체 관계에 있는 최순실 측에 433억원 대의 뇌물을 건넸다는 혐의(뇌물공여) 등으로 구속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1회 공판기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오면서, 이번 사건에 대한 재계와 일반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박영수 특검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적용한 혐의는 뇌물공여 외에도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횡령, 외국환거래법 위반, 범죄수익은닉 등 다양하다. 그러나 이 가운데 핵심 혐의는 430억원대 뇌물공여다.

    특히 이 가운데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내용이 미르 및 K스포츠재단 기금 출연이란 점에서, 이번 사건이 재계에 미칠 파장은 상상 그 이상일 수 있다.

    만약 법원이 위 두 재단에 대한 삼성 측의 설립 기금 출연행위 전체를 뇌물로 인정한다면, 기금 출연기관에 이름이 올라있는 국내 대부분의 대기업은 뇌물공여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이명박 정부 당시 미소금융재단 출연, 노무현 정부 당시 대중소기업상생기금 출연 등 역대 정권이 대기업 총수들의 ‘협조’를 받아 만든 공익재단 혹은 기금의 설립 과정으로도 불똥이 튈 수 있다.

    박영수 특검은 “다른 대기업에 대한 수사는 착수도 하지 않았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박 특검 본인이 최순실 사건의 본질 중 하나로 ‘정경유착’을 지목한 사실은 그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다.

    이는 결국 특검의 뒤를 이은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칼날이 직간접적으로, 대기업 총수들과 과거 정권 사이의 ‘커넥션’에 맞춰져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이 부회장 사건 1심 재판의 최대 쟁점은 뇌물죄의 성립여부에 모아질 수밖에 없다.

    특검은 이 부회장의 뇌물 혐의를 입중하기 위해 영장 재청구 당시 ‘안종범 수첩’이란 히든카드를 들고 나와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재임 시절 매일의 주요 일정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 등을 짧은 메모 형식으로 기록한 것으로 알려진 수첩은 모두 39권이다.

    특검은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을 재청구하면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의 독대 과정을 메모한 ‘안종범 수첩’의 내용을 해석하면, 부정한 청탁을 한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며 구속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안종범 수첩은 당시 영장전담판사가, 뇌물혐의에 대한 소명이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인정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따라서 ‘안종범 수첩’의 내용은 공판기일에서도, 뇌물죄의 구성요건인 부정한 청탁의 존재와 대가관계를 밝히는데 있어,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점에서 송우철, 김종훈 변호사 등 이 부회장 변호인단이 지난 공판준비기일에서 특검의 공소사실 중 가장 먼저 ‘부정한 청탁’의 존재를 조목조목 부인하는 변론을 펼친 사실은, 앞으로의 공판 흐름을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30일 열린 3회 공판준비기일에서 송우철(55·연수원16기) 변호사는, “이 부회장 등 (기소된 삼성 경영진)이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관계를 알면서, 서로 대가 관계를 협의해 정유라씨의 승마 지원을 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송 변호사는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 경영진은 최씨가 미르재단 등에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며, 부정한 청탁 자체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변론의 초점을 맞췄다.

    변호인단은, 특검이 이 부회장 유죄 입증의 유력한 정황증거로 꼽고 있는 정유라씨 승마 지원과 관련해서는 “올림픽을 대비하기 위한 선수 지원 계획이 최순실의 방해로 변질됐다”고 항변했다.

    이날 변호인단은 ▲특검이 ‘공소장 일본주의’를 위반했고 ▲특검이 유력한 증거로 제시하고 있는 ‘안종범 수첩’의 입수경위가 석연치 않고 ▲특검이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증거를 의도적으로 누락한 정황이 있다며, 공소장의 형식적·내용적 하자를 동시에 지적했다.

    양재식 특검보가 주도하는 검찰도 “변호인들이 낸 의견서를 보면 앞 뒤 주장이 모순된다”며,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경영진이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사이의 관계를 각각 어느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는지가 밝혀져야 한다”고 받아쳤다.

    양 특검보는, 변호인단이 특검의 정치편향적 성격을 지적한 부분도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변호인 측은 의견서에서 ‘야당이 특검의 수사 가이드라인을 줬다’, ‘대기업에 적대적인 언론과 시민단체의 활동으로 인해 사건이 변질됐다’는 주장을 했는데 그 근거가 무엇이냐”고 따져 물었다.

    3차례에 걸친 공판준비기일에서, 송우철 변호사를 중심으로 한 법무법인 태평양 송무팀과 이용훈 전 대법원장 비서실장 출신의 김종훈 변호사로 구성된 변호인단의 변론은, ①박영수 특검의 공소장 자체가 안고 있는 흠결(공소장 일본주의 위반), ②증거법칙 위배(안종범 수첩 입수 경위에 관한 자료의 열람 요구), ③뇌물죄의 구성 요건인 ‘부정한 청탁의 부존재‘ 항변으로 정리할 수 있다.

    반면 양재식 특검보를 중심으로 한 검사 측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등을 인용하면서 변호인단의 공세를 사안별로 방어하는데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7일부터 시작되는 공판은 앞으로 20 차례 정도 열릴 전망이다.

    2~4회 공판은 4월12일부터 14일까지 3일 연속으로, 서울중앙지법 서관 417호 대법정에서 속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