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규의 오해가 나의 기분을 크게 상했다. 성규의 오해 때문에 내가 한 말을 후회했을 정도였다. 성규에게 이런 오해를 일으킬 바에야, 이런 말을 꺼내지 않았느니만 못했다는 것이었다. 내 차가 아쉬워서 그래서 내가 그의 도망간 몽골 아내를 그만 찾자고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니, 아무래도 성규는 지만이의 말마따나 아니 그 이상으로 그의 도망간 몽골 아내에게 지나치게 얽매여 있는 것 같았다.

    그날 나는 모처럼 많은 욕을 했다. 지만이도 그랬고 성규도 그랬다. 대낮부터 시작한 술이 밤 이슥토록 까지 계속되었다.

    기분이 나빠서 그렇게 술을 마셨다. 성규의 나에 대한 오해가 나의 기분을 상했었다. 술을 먹다보니 전날에 케이사모에게 사기당하고 직싸리 얻어터진 게 떠올라와 그 때문에 또 기분이 나빠져, 또 술을 마셨다. 도난당한 내 차의 기억도 새롭게 떠올라왔고 그 기억이 참을 수 없이 나를 아프게 해 나는 또 기분이 나빠졌고, 그래서 또 술을 마셨다. 그러다보니 대낮부터 시작한 술이 밤이 이슥토록까지 이어졌던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결론은 나지 않았다. 성규의 도망간 몽골 아내를 계속 찾아야 할지 아니면 그만 말지.

    나는 성규의 도망간 몽골 아내를 찾는 일은 헛된 일이니 이쯤에서 손을 털자는 주장이었고, 지만이는 성규의 마음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으니 계속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성규는 아무 주장도 하지 않았다. 단지 도난당한 내 차를 자신이 변상해주겠다고만 할 뿐이었다.

    대낮부터 밤 이슥토록까지 그렇게 많은 시간동안 술을 마시면서 갑론을박 하였으면서도 아무 결론에도 다다르지 못했다는 것은, 참 심난한 일이었다.

    정말이지 술이 웬수였다.

    남양주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서울 머32 4855 차량을 도난당하지 않았느냐는 연락이었다.

    넘버는 정확히 내 차 넘버였다. 차의 넘버를 듣는 순간, 내 차를 찾았구나 싶었다. 나는 도난당했다고 했고, 그게 내 차 넘버라고 했고, 연락을 준 남양주 경찰서의 순경이 차를 찾으러 남양주 경찰서로 나오라고 했다. 나는 지금 당장 나가겠다고 하고서는, 좀 궁금해서 물었다. 내 차를 도난당한 것은 동대문운동장 근처인데 어떻게 내 차가 거기에 가 있느냐고. 우문이었다. 연락을 준 순경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야 도난당했으니까 그렇지요.

    나는 즉시 지만이와 성규에게 연락해서 그 소식을 전했다. 혼자 갔다올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이 일은 기본적으로 성규의 도망간 아내 찾기의 연장이라는 생각이었으므로 연락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또 지만이와 성규도 궁금해 할 일이라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연락을 받자마자 지만이와 성규가 달려왔다.

    찾을 수 없다고 이미 포기한 차였었다. 내 차를 끌고 간 케이사모 놈이 차를 중고차 시장이든 어디든 팔아넘겨 현금화 하리란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팔아넘기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번호판을 바꿔 대포차를 만들어 타고 다니거나 그러다 지 조막만한 한국인 상사한테 혼나고는 그 분풀이를 내 차에 해 박살을 내거나 하리라는 믿음 아닌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녀석은 내 차를 팔아버리지도 번호판을 갈고 대포차를 만들지도, 분풀이 대상으로 삼지도 않았던 모양이었다.

    대신 녀석은 내 차를 좀 타고 다니다 내다버린 모양이었다. 좀 타고 다닌 기간이 십여 일쯤 되는 것 같았다. 남양주 경찰서로부터 연락을 받은 게 차를 도난당한 지 꼭 열 하루째 되는 날이었으니까.

    "진짜 차를 찾았답니까."
    "그래."
    "놈이 차를 팔아버린 게 아니라 내다버린 모양이에요. 남양주 쪽에다. 그러니까 남양주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겠지요."
    "그렇겠지. 헌데, 난 녀석이 내 차를 어디다 팔아버릴까 보다 지 조막만한 한국인 상사한테 혼이 나고 그 화풀이를 내 차에 대고 해꼬지를 하지 않을까 그걸 더 걱정했었거든. 우리한테 하듯이 말이야."
    "놈이 당숙 차에 분풀이를 했다면 당숙 차는 몇 분 안에 아작이 났을 걸요. 놈의 괴력이 장난이 아니었잖아요."
    "꼭 그렇지만은 않았을 걸. 내 차가 보기보단 아주, 상당히 강력하고 튼실하거든."
    "근데요, 당숙. 혹시 녀석이 차를 거기다 버린 게 아니라 녀석의 근거지가 거기, 남양주는 아닐까요."

    성규가 끼어들었다. 성규의 얘기가 나의 귀를 또 한차례 솔깃하게 했다.

    "그러니까 녀석이 자기 주거 주변에 세워둔 건데, 경찰들이 도난차량인 줄 알고 끌고 간 건 아닐까 하는 거예요."
    "어디 그렇기야 하겠어. 그랬다면 순경들이 주변 몽골인들 주거지를 조사해보았을 텐데. 그런 얘기는 없었잖아. 그렇지요?" 지만이가 이렇게 성규의 물음에 부정적으로 말하면서 끄트머리에 내게 물어왔다.
    "그런 얘기는 없었어. 내가 봐도 녀석이 한심한 놈이 아닌 바에야 그런 멍청한 짓을 했으리라고 보이지는 않는데. 그거야 나 잡아 가슈 하는 얘기일 텐데....하여간 정확한 건 경찰서에 가 봐야 알겠지만 말이야."

    성규가 내 차를 갔다버린 게 아니라 케이사모란 놈이 거기 남양주에 살고 있기 때문에 남양주에서 내 차가 발견된 게 아닐까 의심했지만, 나나 지만이는 그렇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자세한 내막이야 남양주경찰서의 순경을 만나 얘기를 들어봐야 알 일이겠지만, 도난차량이 도난범의 주거지 근처에서 발각된다는 것은 여간해선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었다. 도난범이 '나 잡아가슈' 할 정도로 간땡이가 부었거나 한심한 놈이 아니라면 말이다.

    케이사모란 놈이 한심한 놈은 아니었다. 간땡이가 부은 놈 같기는 했다. 한심한 놈은 아니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럴 리야 없지 않겠느냐 싶었고, 간땡이가 부은 놈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은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성규의 의심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케이사모란 놈이 간땡이가 부은 놈인 것 같긴 하지만, 간땡이가 배 밖으로까지 나온 놈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지 조막만한 한국인 상사는 어째 보고 싶어도 어째 보지 못하는 걸 보면, 돈 한 푼에 아등바등거릴 줄 아는, 생각이 없는 놈은 아닌 게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남양주 경찰서의 순경을 만나고 나서 나와 지만이의 생각이, 조심스럽게 바뀌었다. 아니, 바뀐 것은 아니었다. 나나 지만이나 케이사모란 놈이 내 차를 그 곳에 버리고 갔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내 차가 발견된 곳이 주택가에서는 한참이나 떨어진 도로변 빈 공간에서였으니까.

    나나 지만이의 생각이 바뀌었다면 그건, 케이사모란 놈이 여기까지 온 게 단지 우연만은 아니었지 않나 하는 의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다시말해, 케이사모가 여기까지 온 건 그래서 여기다 차를 버리고 간 건, 단지 차를 버리기 위해서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다른 이유나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고, 차를 여기다 버린 건 그것의 덤이었다는 것이었다.

    이런 의심을 갖게 된 것은 내가, 내 차가 발견된 곳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 남양주 경찰서의 순경이 다음과 같이 서슴없이 얘기한 탓이었다.

    "혹시 몽골문화촌이라고 아세요?" "네 압니다."
    "그 몽골문화촌 가는 길과 축령산으로 빠지는 길이 만나는 지점에서예요. 그 도로변의 모퉁이에 차가 버려져 있더라구요. 버려진 지는 한 하루쯤 되는 것 같았고 말이에요."
    "?...."

    몽골문화촌이라는 말이 예리하게 우리의 귀에 와 박혔다. 내 차를 훔쳐간 건 케이사모라는 칭키즈칸처럼 거대한 체구의 몽골놈이었다. 몽골놈이 몽골문화촌 근처에 왔다면, 필경 그냥 온 건 아닐 게 틀림없는 일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서 왔을 게 틀림없으리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성규의 의심이 맞을 수도 있는 일이겠다. 놈은 몽골문화촌 내에서 아예 거주하는 놈일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제 차를 끌고 간 게 몽골놈이었다는 걸 알고 계십니까. 케이사모라는."

    내가 순경에게 물었다.

    "그게 몽골인이었나요. 외국인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국적은 내가 정확히 확인하질 못해서요."
    "몽골놈이 몽골문화촌 근처에서 제 차를 버리고 갔다면, 뭔가 수상쩍은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수상쩍은 냄새요?"
    "예를 들자면, 놈이 몽골문화촌 내에 거주하는 놈은 아닐까 하는 겁니다."
    "글쎄요. 정히 수상쩍으면 한 번 가서 확인해보시지요. 확인이 되시면 연락을 주시고요."
    "오순경님께서는 확인해보지 않으셨나요?" 우리와 상담한 남양주 경찰서 그 순경의 이름이 오상철이었다.
    "몽골문화촌은 관광지라서요. 남의 눈도 많고 해서 도난차량을 이런 데 끌고 올 도난범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어떤 도난범이 자기가 사는 바로 코 앞에 자기가 도난해 온 차량을 버리겠습니까. 잡혀 갈 작정을 한 놈이 아니라면 말이지요."
    "?...."

    내 차의 상태는 생각보다는 말짱했다. 잔뜩 먼지와 때가 끼어 지저분하다는 것과 앞 오른쪽 헤드라이트 유리가 약간 금이 간 걸 제외하면, 별반 이상이 없었다. 잔뜩 낀 먼지와 때는 세차를 하면 될 테고, 헤드라이트 유리는 갈아끼우면 될 터였다. 비용이 사 오 만원이면 충분할 거였다.

    잔뜩 낀 먼지와 때는 사실 보기에는 아주 흉했다. 내 차는 흰색 차였으므로, 조금만이라도 때와 먼지가 끼면 금세 티가 났고, 낡고 더러워 보였다. 와이프가 내 차를 끌고 다니면서 바탕을 빨간색으로 갈았으면 좋겠다고 몇 번 내게 의견을 물어왔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절대 불가라고 못을 박았다.

    봐라, 빨간색 차야 마티즈 같은 소형차에나 어울리는 거지 우리 차 같은 중형차에 어디 어울리는 거냐. 우리 차 같은 중형차에 빨간색 도색을 한 차가 어디 있냐. 쪽팔린 짓은 하지 않는 게 정상이야.

    그럼 와이프도 꼭 이의를 달았다.

    우리 차가 어디 중형이야. 소형차에서 쪼끔 업그레이드 된 거지.

    와이프는 우리 차에 대해 뭘 몰랐다. 내가 우리 차를 굳이 내 차라고 우기는 것은 와이프가 그렇게 우리 차에 대해 뭘 몰랐기 때문이었다.

    뭘 모르는 소리는 하덜 마. 우리 차는 분명히 중형차야. 차 값도 중형차 값이었다구. 그야 할부로 사는 바람에 이자가 붙어서 그런 거지, 원래 가격은 소형차보다 조금 비쌌고 중형차 보다는 훨씬 쌌을 뿐이야.

    와이프가 이런 식으로 나오는 데에 대한 내 최종 답변은 이것이었다.

    "내 차를 모독하지마. 내 차를 모독하는 것은 나를 모독하는 거야."

    내 최종 답변에 대한 와이프의 최후 반응은, 이것이었다.

    "좋아. 우리 차를 중형차라고 해. 중형차라고 해서 빨간색 도색을 하지 말란 법 있어. 그리고 내가 왜 우리 차에 빨간색 도색을 하려고 하는 줄 알아. 우리 차에 당신 색깔이 너무 짙게 배어 있단 거야. 차는 내가 운전하고 다니는데, 색깔은 당신 색깔이 난다면 문제가 아니겠어. 그리고 자꾸 당신이 우리 차를 내 차라고 하는 게 귀에 거슬려서라도 빨간색으로 차 색깔을 바꿔버리고 싶다는 거야. 차는 주로 내가 끌고다닌다는 입장에서 볼 때, 당신은 이게 당신 차라고 주장하지만, 실은 내 차일 가능성이 더 높으니까 말이야." 솔직히 말해서 와이프가 내 차를 빨간색으로 도색하고 싶다고 하였을 때 내가 극구 제지한 그 깊은 이유는, 내 차를 빨간색으로 도색해버리면 진짜 내 차가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 보이게 되는 게 아닐까 싶어서였다. 와이프의 말마따나 차는 주로 와이프가 몰고 다니는데, 차 색깔도 와이프의 색깔인 빨간색으로 바꾸어버린다면 내 차와 나란 도대체 무슨 공감대가 있단 말인가.

    빨간색으로 도색한 내 차는 내 차가 아니라 당신의 차, 와이프의 차였다. 나는, 와이프는 그렇다 하더라도, 내 차마저 빨갱이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내부도 이상이 없었다. 기름이 떨어졌다는 빨간 경고등이 들어오는 걸 빼면, 달리 오감을 거슬리게 하는 것은 없었다. 빨간 경고등이 들어오긴 했지만, 완전 바닥은 아닌 듯 했다. 몇 킬로 미터는 달릴 수 있을 것 같았고, 가까운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기로 했다.

    기름이 바닥난 순간에 차를 버린 걸 보면 케이사모란 놈도 경제를 좀 아는 놈인 것 같긴 했다. 말하자면, 손해볼 짓은 절대 안 할 놈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한국인 상사한테 좀 혼났다고 그걸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사람들을 위계에 빠뜨리고, 야구 방망이로 발길질로 무자비하게 패대고, 차를 훔쳐가고 하는 걸 거였다. 케이사모란 놈을 놓고 볼 때, 손해 볼 줄 모르는 놈은 제정신이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