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보위성 차관급 간부 5명 고사총 처형…정찰총국이 ‘감청’한 뒤 보고?
  • 지난 15일 김정남 암살과 관련해 국회 긴급현안보고에 참석한 이병호 국가정보원장. ⓒ뉴데일리 DB
    ▲ 지난 15일 김정남 암살과 관련해 국회 긴급현안보고에 참석한 이병호 국가정보원장. ⓒ뉴데일리 DB


    지난 27일 국가정보원이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업무 보고를 했다. 이날 보고에서 나온 이야기 가운데 가장 주목을 끄는 대목은 “김정남 암살이 北보위성과 외무성의 합동 작전이었다”는 점이다.

    이병호 국정원장은 이날 업무 보고를 통해 “김정남 암살 직후 공작을 주도한 것이 北정찰총국이라는 발표가 나왔지만 실제로 말레이시아 당국이 조사하고 국정원이 직접 분석한 결과 北국가보위성과 외무성의 합동으로 이뤄진 국가단위 테러 사건”이라고 밝혔다.

    이병호 국정원장이 국회에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김정남 암살은 말레이시아 당국의 발표대로 신경작용제인 VX가스를 사용했으며, 암살에는 4명의 보위성 요원, 실행 작전에 2명의 외무성 출신, 고려항공 직원, 내각 소속 신광무역 직원 등이 참여했다고 한다.

    국정원이 국회에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김정남 암살에는 8명, 2개조의 지원인력이 동원됐다고 한다. 1조는 보위성 소속 이재남, 외무성 소속 이지현, 2조에는 보위성 소속 오정길, 외무성 소속 홍성학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각 조가 베트남 여성 1명과 인도네시아 여성 1명을 포섭했다고 한다.

    이들 김정남 암살조는 별도로 활동하다 지난 2월 13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에서 만나 현광성 현지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의 암살 실행을 지원했다고 한다.

    국정원에 따르면, 북한 측이 김정남 암살 소식이 유입되는 것을 최대한 막고 있지만, 해외 요원과 일부 노동당 간부 사이에서 관련 소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일부 노동당 간부는 김정남의 존재를 처음 알게 돼 충격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국정원은 “이 소식이 북한 고위층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형제를 암살할 수 있느냐’는 반응이 나오는 등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김정남이 장남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사람들도 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국정원은 “말레이시아 당국이 희생자 이름을 ‘김정남’이라고 아직 밝히지 않고 있지만 김정남이 확실하다”고 지적하고, 김정남 암살에 국가보위성 요원이 많이 가담하기는 했지만, 주도한 기관이 어디인지는 지금도 추적 중“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 지난 21일 'TV조선'은 "김원홍 보위상이 김정남과 몰래 통화한 사실이 정찰총국 감청에 적발돼 해임 당했다"고 보도했다. ⓒTV조선 관련보도 화면캡쳐
    ▲ 지난 21일 'TV조선'은 "김원홍 보위상이 김정남과 몰래 통화한 사실이 정찰총국 감청에 적발돼 해임 당했다"고 보도했다. ⓒTV조선 관련보도 화면캡쳐


    국정원의 이 같은 보고 내용은 지금까지 북한에 대해 연구하던 사람들조차도 헷갈리게 만들었다. 북한이 대남공작·도발을 위해 기존의 조직들을 합쳐 만든 ‘정찰총국’이나 다른 노동당 소속 대남공작조직을 빼놓고, 국내외 방첩을 전담하는 국가보위성을 해외 암살공작에 동원했다는 점 때문이다.

    국가보위성이 맡는 ‘반탐’ 업무는 서방국가에서는 ‘방첩(Counter Intellgence)’으로 불린다. ‘방첩’이란 외국 스파이, 국내 체제전복 세력 등의 활동을 미리 감지하고 단속해 위험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활동이다. 북한과 중공 등의 경우에는 여기에 일당 독재체제 유지와 당 중앙 우상화 반발 세력 색출 및 처벌도 포함된다.

    즉 국가보위성은 한국으로 따지면, 국정원과 기무사령부, 경찰청 정보국의 ‘방첩’ 업무를 한 데 묶어서 관리하는 조직이라고 보면 된다. 때문에 지금까지 알려지기로는 북한의 대남공작은 정찰총국, 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 대외교류국(일명 225국)가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지난 10년 사이 보위성 소속 간첩들의 탈북자 위장 침투 사건이 여러 차례 있었고, 이번 김정남 암살에 소속 요원을 말레이시아까지 파견했다는 점으로 볼 때, 정찰총국과 노동당 225국, 보위성 간의 업무 영역 구분이 점차 모호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추측할 수 있다.

    이는 어쩌면 40년 가까이 대남공작을 지휘했던 김정일이 자신의 노하우를 김정은에게 제대로 전해주지 못해 이후 ‘첩보기관 사이의 권력 투쟁’이 일어나 지휘통제체계가 엉망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실제 국정원의 업무 보고에서 나온 ‘김원홍 숙청 및 보위성 부상(차관) 5명 고사총 처형’ 소식이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해 준다.

    국정원은 업무 보고를 통해 “김원홍은 국가보위상에서 해임된 뒤 연금 상태이고, 보위성 부상급(차관급) 간부 5명 이상이 고사총으로 총살당했다”면서 “이로 인해 체제 불안요인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

  • 북한은 김정일이 죽기 전인 2009년 왼쪽과 같던 기존 대남공작조직을 오른쪽 같이 개편했다. ⓒ종북백과사전 화면캡쳐
    ▲ 북한은 김정일이 죽기 전인 2009년 왼쪽과 같던 기존 대남공작조직을 오른쪽 같이 개편했다. ⓒ종북백과사전 화면캡쳐


    국정원이 밝힌 김원홍 해임과 보위성 간부 처형 이유는 보위성이 노동당 간부들을 체포해 고문한 뒤 누명을 씌우고, 이를 김정은에게 허위보고를 한 사실이 들통 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김정은은 보위성 관계자들에게 “너희는 김정일 동상을 섬길 자격이 없다”며 청사에 있던 김정일 동상까지 치워버렸다고 한다.

    국정원은 “김원홍 해임과 보위성 간부 처형을 통해 노동당 조직지도부가 실권 부서가 됐다”고 밝혔지만, 어떤 조직이 김원홍과 보위부의 문제를 파악해 보고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여기에 지난 21일자 ‘TV조선’ 보도를 집어넣으면 이야기가 그럴싸해 진다.

    당시 ‘TV조선’은 “지난 1월 김원홍 해임에는 김정남이 있었다”면서 “김원홍이 김정남과 전화통화를 한 사실이 정찰총국 해외방첩망에 걸렸다”고 보도했다.

    ‘TV조선’은 “2009년 정찰총국이 창설될 때 통신감청 업무도 이곳으로 이관됐다”면서 “김원홍은 김정남과 전화통화를 한 뒤에 이를 노동당 조직지도부에 보고하지 않았는데 정찰총국이 이 사실을 감청한 뒤 조직지도부에 보고, 김정은이 알게 됐다”고 전했다.

    ‘TV조선’의 보도 가운데 김원홍의 전화통화 내용이 정찰총국의 감청망에 걸렸다는 점이 눈에 띤다. 즉 대남공작을 맡는 인민군 소속 정찰총국이 ‘방첩을 위한 감청 업무’를 맡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앞서 말한, 김정은 집권 이후 첩보기관 간의 업무분담 모호와 그에 따른 권력투쟁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