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특검 운명 가를 핵심 변수는 결국 ‘여론’...법조계 전망 엇갈려
  • 박영수 특별검사. ⓒ 사진 뉴시스
    ▲ 박영수 특별검사. ⓒ 사진 뉴시스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의 실체 규명을 위해 출범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기존 뇌물공여와 횡령, 위증 혐의 이외에 특경가법상 재산국외도피 및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추가 적용하면서, 특검이 본래 설립 목적에 반해 방향성을 잃었다는 우려가 법조계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특검은 삼성이 최씨의 독일 법인과 컨설팅 계약을 맺고 80억을 송금하면서 외환거래 신고를 하지 않은 부분을 재산국외도피로, 삼성이 수십억원을 들여 명마를 구입, 정유리씨가 탈 수 있도록 지원한 사실을 범죄수익은닉으로 각각 봤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진상규명이 아니라 ‘삼성 특검’ 혹은 ‘이재용 특검’이란 말이 나올 만큼, 특검이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을 위해 공을 들인 정황은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특검은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된 뒤 금융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한 압수수색과 삼성 경영진에 대한 동시다발적 소환조사 등을 통해,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 재청구를 위한 준비 작업을 착실하게 진행했다.

    특검은 정례 브리핑은 물론이고 비공식적인 언론 접촉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이 부회장의 혐의를 흘리는 등 여론 관리에도 상당한 신경을 써 왔다.

    대기업 총수에게 적용 사례가 흔치 않은 재산국외도피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추가하고, 최순실 게이트 초반부터 수사 선상에 올라있던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협력 담당 사장(대한승마협회장)에 대한 영장을 함께 청구한 사실 역시 가볍게 볼 수 없는 대목이다.

    최순실 측에 수십억대의 명마(名馬)를 지원한 의혹 때문에 여러 차례 소환조사를 받은 박상진 사장에 대한 영장 청구는,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박 사장에 대한 심리적 압박이란 관측도 있다.

    특검이 구속사유의 필요성, 상당성 부분을 크게 보강해 영장을 재청구 했지만, 결론은 핵심 혐의인 뇌물죄에 대한 영장전담판사의 판단에 따라 갈릴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특검이 새로 추가한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은닉 등의 혐의도 뇌물죄가 성립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때문에 핵심 사항은 1차 영장청구와 달라진 것이 없다는 분석을 내놓는 전문가들도 있다.

    특검이 혐의를 추가하고 구속의 필요성을 보강했다고 하지만, 핵심 혐의인 뇌물죄 성립과 관련해선 기본 사실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

    지난달 있었던 특검의 영장청구에 대해 법원은 뇌물죄에 대한 범죄 혐의, 특히 대가 관계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점을 영장 기각의 주요 이유로 꼽았다.

    당시 특검의 뇌물죄 혐의 적용에 대해서는, 박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의 청와대 회동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뒤에 있었던 사실을 고려할 때, ‘시차(時差)의 모순’이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을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요구했고, 그 대가로 대통령과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는 관계에 있는 최순실 측에 433억원의 뇌물을 줬다는 특검의 주장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논리적으로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회동 시점이 합병보다 앞서야 하기 때문이다.

    특검은 영장을 재청구하면서, 합병 후 통합삼성물산에 대한 보유지분 비율이 늘어난 삼성SDI의 순환출자해소와 관련해, 공정위가 삼성 측에 특혜를 제공했다는 논리를 새롭게 펴고 있다.

    특검에 따르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이후 삼성SDI의 보유지분 비율이 늘어나자 공정위는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1천만주의 주식 처분이 필요하다고 입장을 정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이후 처분 요구 물량을 500만주로 줄여 삼성 측에 통보했다. 특검은 이 과정에 청와대의 압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적자상태에 있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주식시장(코스피) 상장, 중간금융지주회사법 입법 추진 등도 이 부회장의 부정한 청탁에 박 대통령이 화답하면서 추진됐다는 것이 특검의 주장이다.

    즉, 특검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직후 이 부회장이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통합삼성물산 순환출자해소 관련 편의 제공,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을 위한 규정 변경, 입법로비 등을 청탁했고, 그 대가로 최순실 측에 430억원 대의 금품을 건넨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문제는 이를 뒷받침할만한 직접 증거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검은 삼성SDI의 순환출자 해소를 위한 지분매각 특혜 의혹을 비롯해 ‘시차의 모순’을 해소할만한 정황을 새롭게 제시했지만, 이 부회장이 대통령에게 이런 청탁을 했음을 직접적으로 입증할만한 물증이나 당사자의 진술을 확보하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가관계에 대한 입증이 어렵다면, 핵심 혐의인 ‘뇌물죄에 대한 소명 부족’이란 기각 사유는 1차 영장 청구 당시와 달라진 것이 없다.

    일부 변호사들이 “국민 여론을 제외하고 순전히 법리적으로만 봤을 땐 영장을 기각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삼성은 영장 재청구 직후 특검이 적용한 5가지 혐의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순환출자해소와 관련해 특혜를 받았다는 부분에 대해선, 공정위가 입장을 정하기 전에 자진해서 먼저 유권해석을 의뢰했고, 공정위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500만주를 매각했을 뿐이란 입장이다. 공정위 역시, 민간전문가를 포함한 전원회의에서 결론을 내린 사안이라며, 특혜 혹은 청와대의 압력설을 부인하고 있다.

    중간금융지주회사법 입법 로비 의혹에 대해서는, 실무진 차원에서 금융지주회사 설립을 검토했지만 금융위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 접은 사안이며, 특검이 말하는 중간금융지주회사법과 금융지주회사는 개념이 전혀 다르다고 설명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코스피 상장에 대해서는, 적자 상태에서도 미국 나스닥과 코스닥 상장은 당시에도 가능했으며, 코스피에 상장을 했다고 해서 별도로 이득을 본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명마 구입에 대한 삼성의 입장은 처음과 달라진 것이 없다. 삼성은 정유라씨에 대한 지원은 청와대의 강요 때문이며, 독일 비덱스포츠와의 컨설팅계약 역시 허위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서초동의 한 로펌 파트너 변호사는 이 부회장의 영장 재청구에 대해 “이번에는 법원의 고민이 1차 때보다 더 깊을 것으로 보인다”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법원과 검찰이 가장 두려워하고 눈치를 보는 건 국민여론이다. 검찰은 정권초기에만 잠깐 눈치를 보고, 법원이 정권 눈치를 보지 않은 건 이미 오래됐다.

    특검이 저렇게 집요하게 영장을 재청구하는데, 법원이 소신껏 심리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이 변호사는 “국민 여론이란 변수를 제외하고 법리적, 상식적으로만 본다면, 새로운 증거가 나온 게 없고 핵심 혐의인 뇌물죄 성립 여부에 대한 다툼이 여전해,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서라도 기각을 하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