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국회의 고민은 오래됐다. 그러나 여야 해법이 크게 달라 접근이 쉽지 않다. 북한인권법안은 계속 국회 회의장 주변만 맴돌고 있다. 북한을 바라보는 여야 시각차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관련 토론회와 세미나는 수차례 열렸다. 대부분 한나라당 등 보수성향 정당이 북한 인권문제를 다뤄왔고 주제는 늘 이 문제에 소홀한 김대중 노무현 두 정권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뤘던 게 사실.

    그런데 16일 국회에서 북한 인권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시도됐다. 두 정권에 대한 비판에서 벗어나 북한 인권 문제를 시장경제 도입과 개혁.개방의 차원에서 접근한 것이다.

    이런 시도를 한 주인공은 박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한나라당)이다. 박 위원장은 이날 오전 북한 인권 증진이란 주제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개혁·개방'이란 제목을 달아 세미나를 개최했다. 국회에서의 이런 접근은 처음있는 일이다. 전 정권 대북정책, 특히 인권에 소홀했던 부분에 대한 비판을 넘어 구체적 대안과 방안을 마련해보자는 게 박 위원장이 이 세미나를 기획한 취지다.

    박 위원장은 인사말에서 "이제 북한 인권을 탄압보다는 경제발전과 개혁.개방 차원에서 새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화두를 던졌다. 박 위원장과 세미나를 공동주최한 선진통일교육센터 도희윤 대표도 "북한 인권 세미나라면 탈북자가 주를 이루는데 오늘 세미나는 직접 관련이 없는 듯 보이지만 정말 북한 인권증진을 위해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도입이 필요하고 이런 접근자체가 상당히 의미있다"고 평했다.

    축사를 한 김형오 국회의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 영결식 당시 북한 조문단과의 면담 성사가 박 위원장의 제의로 이뤄졌다고 치켜세웠고,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는 "북한이 장기적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개방하는 데 우리에게 어떤 대안이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좋은 토론회를 준비해 감사하다"고 말했다. 같은 당 안상수 원내대표 역시 "박 위원장은 통일문제와 외교문제의 최고권위자"라며 이번 세미나 개최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현인택 통일부 장관까지 참석해 관심을 보였는데 현 장관은 "이런 심도있는 세미나가 북한 인권개선에 매우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인권문제를 민주주의 시장경제 도입에서 접근했지만 해법은 쉽지 않았다. 이날 세미나에 토론자로 나온 전문가들은 일관된 대북정책을 갖고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발제를 한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북한학협동과정)는 "북한 인권을 민주주의 시장경제와 개혁·개방 차원에서 논의하는 자리지만 아직 북한은 거리가 멀다"고 진단했다. 이 때문에 "압박과 대화를 동시에 해야한다"고 주문했다.

    토론자로 나선 전문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 이명박 정부가 원칙있는 대북정책으로 일관성을 보이는 점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했지만 정부가 제시한 정책이 현 정부 임기 내에 달성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선 의문을 나타냈다. 임수호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지난 정부에서 북한 변화를 목표로 해 대북정책을 추진했다면 지금 정부는 북한 변화를 전제로 대북정책을 하고 있는데 현실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임 연구원은 "과연 (제시한 정책을) 현 정부 임기 내에 달성할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통된 해법은 북한 김정일 지도부의 불법행동에는 엄격한 잣대를 대는 동시에 인도적 대북지원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가장 큰 과제는 대북정책에 대한 통일된 목소리를 만드는 것이란 게 토론자들이 강조한 부분이다. 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국민 합의가 이뤄져 불필요한 남남갈등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고  임 수석연구원은 "그간 진보·보수, 좌파·우파로 갈려 (대북정책을 두고) 논쟁을 벌였는데 북한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최소한 대북정책이 30년 내지 50년은 일관된 메시지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오일환 한양대 교수(사회과학부)도 "문제는 우리 내부 통합"이라며 "내부가 분열된 상태에서 북한을 설득하기 힘들기 때문에 여야간 합의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정기국회 기간임에도 김 의장과 정 대표, 안 원내대표를 비롯 35명의 의원이 참석했고 한나라당 뿐만 아니라 민주당(오제세)과 자유선진당(박선영), 친박연대(송영선) 등 야당 의원도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