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팩으로 한파 버티고, 자녀들 이미 등돌려… "그래도 싸울 것… 방심위는 JTBC 심의하라"
  • 애국·보수 시민 9명은 지난달 17일부터 현재까지 방송통신심위원회가 위치한 양천구 목동 한국방송회관 로비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방심위가 JTBC의 태블릿PC 보도 조작 의혹을 하루 빨리 심사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뉴데일리 강유화 기자
    ▲ 애국·보수 시민 9명은 지난달 17일부터 현재까지 방송통신심위원회가 위치한 양천구 목동 한국방송회관 로비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방심위가 JTBC의 태블릿PC 보도 조작 의혹을 하루 빨리 심사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뉴데일리 강유화 기자


    “어디 기자에요? 또 이상한 기사 쓰려고 왔어요?”

    지난달 17일, 서울 양천구 목동 한국방송회관 로비를 점거해 4주째 철야 농성을 벌이고 있는 시민들의 말과 눈빛에는 언론에 대한 '불신'이 역력했다. 

    현재 9명의 농성자들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위치한 한국방송회관 건물에서 20일이 넘도록 철야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조작 보도 의혹과 관련, 방심위에 심의를 요구하며 따듯한 집대신 차가운 건물 바닥을 택한 애국·보수 진영 시민들이다. 

    지난 6일 농성자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방송회관 로비를 찾았다. 입춘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추위는 잠잠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날이었다. 방송회관 앞, 로비에 들어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경찰병력들이 여기저기 배치돼 있었고, 경찰은 기자라는 신원을 확인한 후에야 농성장 취재를 허락했다. 

    농성장에 들어가 '기자'라고 밝히고 취재 요청을 하자, 질문 세례가 쏟아졌다. 

    “어디 기자에요. 또 이상한 보도하려고 왔나.” 

    “이런거 취재하면 뭐하나 어차피 죄다 이상하게 써놓고, 사실대로 말하지도 않는데.” 

    “어차피 기사는 안 쓸 거잖아요?” 

    농성자들의 목소리에는 언론에 대한 불신과 원망이 서려있었다. 10여분을 설득한 끝에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처음의 차가웠던 눈초리는 사라지고, 김밥 한 줄을 건넨 농성자들은 핫팻이 깔려 있는 이불 위로 안내했다. 

    농성자들은 로비의 한기를 가시려, 두툼한 이불 위해 핫팩을 잔뜩 깔고 앉아 있었다.

    농성자 김씨는 “난방도 되지 않는 건물 로비에서 영하의 날씨를 20일씩이나 버텨왔다”고 말했다.

    농성자들은 모두 지난 달 17일 일부 시민단체가 이곳에서 개최한 'JTBC 태블릿PC 진상규명' 기자회견에 참석한 일반 시민이었다. 

    지금은 숙식을 함께 하고 있는 '최후의 9인'도 농성을 시작하고 처음 만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9명의 이력도 모두 달랐다. 일반 가정주부부터 정년퇴임한 교사, 골프 코치, 사업가 등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모여 있었다. 연령대 또한 4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했다. 

    김씨는 "정말 처음 본다. 지금도 서로의 이름을 헷갈려 한다. 가끔 이름을 부르려면 힘들다"고 전했다. 

    태블릿PC 조작 보도 의혹에 대한 내용을 접하기 전까지는 여타 시민단체 활동이나, 집회 시위에 참여한 적도 없다는 일반 시민들은 어쩌다 이곳에서 20일을 버티게 된 걸까.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있는 건물에 붙어 있는 박효종 방심위원장 규탄 대자보. ⓒ뉴데일리 강유화 기자
    ▲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있는 건물에 붙어 있는 박효종 방심위원장 규탄 대자보. ⓒ뉴데일리 강유화 기자

    ▶“심의만 제때 해달라는 거에요” 

    농성자들이 방심위에 요구하는 것은 간단하다. 몇몇 시민단체가 제출한 ‘JTBC의 태블릿PC 조작 보도 의혹’에 대한 민원을 하루 빨리 심사해달라는 것이다. 

    농성단 측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4일 일부 시민단체들은 JTBC의 보도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며 방심위에 ‘정정보도’ 및 ‘징계’를 요청했다. 그러나 두 달여가 지난 현재까지 방심위는 “심의 중”이라는 말만 거듭할 뿐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내놓지 않고 있다. 

    농성자들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진실보도다. 편파 왜곡 보도에 대해 정정보도를 요청했다. 그러나 방심위는 심의 담당자 배정조차 안했다. 직무유기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들은 “공공기관인데 왜 원칙을 지키지 않는지 모르겠다. 방심위 내부 규정에 따르면 민원이 제기되고 30일 이내 심의를 해야 한다. 불가피할 경우 민원인에게 징계 완료 시점을 밝혀야 한다. 그러나 (방심위는)징계 심의조차 들어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농성자 허씨는 “펜은 칼보다 강하다. 방송을 통해 이미 잘못된 정보를 들은 사람들에게는 진실을 알려줘도 믿지 않는다. 그 사람들은 방송에서 정정보도를 내기 전까지는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 언론의 선동 조작보도가 무서운 이유다”라고 밝히며 방심위의 심의가 중요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또 다른 농성자 박씨는 “언론의 마녀사냥으로 전 국민이 선동됐다. 마녀사냥식 보도를 듣고 광장에 나온 사람들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인민재판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언론은 의혹성, 추측성 보도를 하고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방심위도 침묵만 한다”고 한탄했다.


    ▶“우리 모두 대단한 애국자는 아니었다” 

  • 농성자들은 만국기 밖으로 나갈 경우 두 번 다시 농성장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뉴데일리 강유화 기자
    ▲ 농성자들은 만국기 밖으로 나갈 경우 두 번 다시 농성장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뉴데일리 강유화 기자


    농성단을 대변하고 있는 허씨는 농성을 시작하게 된 이유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놨다. 

    허씨는 “우리는 사실 대단한 애국자들은 아니었다. 그냥 보수 성향을 갖고 있는 일반 시민이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허씨와 대부분의 농성자들은 농성이 이렇게 길어질줄 몰랐다고 토로했다.

    태블릿 PC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한다는 말에 여기에 왔고, 농성 며칠 하던 중 경찰이 나가는 길을 차단하는 바람에 남게 됐다

         - 농성자 허씨 


    농성단 측에 따르면 처음 농성은 릴레이식으로 진행됐다. 여러 시민들이 돌아가며 농성장을 지켰다는 것. 그러나 지난 달 23일께 경찰이 나가는 길을 차단했다고 한다. 

    방송회관 측에서 농성장 철거를 요구했고, 농성단이 강하게 발발하자, 강제 철거를 하지 않는 대신 현재 농성장에 남아 있는 인원만 농성을 하도록 통보했다고 한다. 

    더욱이 농성장에는 새로운 인원이 추가될 수는 없으며, 남아 있는 농성자들도 방송회관 로비를 나가는 순간, 두 번 다시 농성장에 참여할 수 엇다는 조건을 단 것. 

    실제로 농성장에는 일종의 ‘금’이 그어져 있었다. 농성자들이 금을 밟고 나가는 순간 농성장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식료품과 생필품 또한 농성단을 응원하는 시민들이 가져다 주면 경찰을 통해 넘겨받고 있는 상황이다.

    농성자 김씨는 “감금 아닌 감금을 당하게 된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농성장에 있다 보니 진짜 애국자가 됐다” 

  • 농성자가 추위를 이기기위해 이불을 겹겹이 쌓은 모습. ⓒ뉴데일리 강유화 기자
    ▲ 농성자가 추위를 이기기위해 이불을 겹겹이 쌓은 모습. ⓒ뉴데일리 강유화 기자


    농성장의 공기는 차가웠다. 아랫목에 깔아 놓은 핫팩 덕분에 추위는 좀 가셨지만, 손과 얼굴은 차가운 공기에 화끈 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곳에서 20일을 버틴 농성단의 진솔한 속내를 듣고 싶었다. 

    모두 각자의 가정과 일터가 있는 사람들일 터였다. 농성을 끝내고 나가고 싶은 마음은 없는 지 물었다.

    왜 그런 마음이 없겠는가. 여기에 있으면 동물원에 원숭이가 된 기분이다.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기 바쁘다. 방심위 측에서 로비에 있는 전기를 차단해 콘센트에 전기가 안 들어온다. 핸드폰 충전도 안 되고, 온열기구도 쓸 수 없다. 시간마다 환풍기를 계속 틀어서 찬 공기가 들어온다.

         - 농성자 김씨

    면회도 안 된다. 폴리스 라인을 쳐놓고 저기 넘어가면 농성은 못한다고 하니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가족들이 와도 면회를 할 수 없다. 여기가 대한민국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 농성자 박씨 


    농성장이 있는 한국방송회관 로비는 큰 창으로 돼 있어 밖에서도 농성장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돼 있다. 특히 로비는 24시간 불이 켜져 있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구경꾼들이 몰린다고 했다. 

    실제로 인터뷰 도중에도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 사람들, 손가락 욕을 하고 가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반대로 농성단을 응원하기 위해 찾아온 시민들의 발걸음도 많았다.

    특히 9명의 농성자 중 4명 이상이 농성을 시작한 후 자녀들과 갈등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한 농성자는 자녀가 “만약 농성을 계속하겠다면 내 얼굴을 볼 생각도 하지말라”고 하는 바람에, 연락도 못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또 다른 농성자의 자녀는 하루에 세 번씩 “빨리 농성장에서 나오라”며 문자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농성자들은 이곳에서 나가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우리의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가족들과의 갈등도 버티고 있는 이유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인민재판은 공산국가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헌법이 대통령 임기를 보장하고 있음에도 언론은 군민은 선동해 인민재판을 하려고 했다.

         - 농성자 허씨


    1947년 생인 최고령 농성자 박씨는 “우리는 공산주의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있는 세대다. 민중을 선동해서 대통령을 친 것은 북한에서 민중을 세워 장성택을 처형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우리나라 현 상황이 북한과 다를 바가 없다”며 농성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농성단이 바라는 것은 '소통'이다 

    농성단 측에 바라는 것을 묻자 '소통'이라고 밝혔다. 좁은 의미에서는 방심위와의 소통이고, 넓은 의미에서는 국민 간의 소통이자 자녀 세대와의 소통이라고 말했다. 

    허씨는 “방심위는 대화 자체를 피하고 있다. 우리와 소통을 한 번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대화를 하겠다고 한 적이 없다. 박효종 방심위원장이 내려왔지만, 답도 주지 않고 올라갔다”고 밝혔다. 

    그는 “나이드신 분들이 태극기를 흔들게 된 것은 단순히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해서가 아니다. 이 나라가 공산국가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광화문 광장에는 사회주의가 답이다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젊은 사람들은 나이든 사람들의 경험을 인정 안한다. 어르신들은 세상에서 배운 건 부족하지만 지식이 아닌 지혜로 사신 분들이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부모를 인정 안하고, 부모의 말이라면 일단 무시한다”고 한탄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입장은?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방심위 측은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심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심의 완료 시점은 알 수 없다고 전했다.

    방심위는 농성단 측 주장처럼 ‘민원처리법’이 있지만, 방심위를 민원처리법이 적용되는 대상 기관이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방심위 측은 "저희가 특수한 기관이다 보니 정부 부처라고하기 어렵다"며, "저희의 경우, 준사법적 기능을 가진 위원회다. 민원처리법에 적용을 하기는 곤란하다"고 밝혔다.

    방심위 측에 '심의가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느냐'고 묻자, "민원이 들어왔을 경우 심의가 오래 걸릴 수는 있지만 안하는 경우는 없다"며, JTBC에 대한 민원도 심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방심위 측은 "이미 민원인 측에도 처리 기간이 연장된다는 문자 메시지를 발송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