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초·재선 9인과 회동 "입당 위한 세(勢) 규합 신호탄" 해석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23일 오전 서울마포가든호텔에서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 9인과 회동한 직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23일 오전 서울마포가든호텔에서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 9인과 회동한 직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연일 정치인들과 접촉면을 늘려나가며 '대선 완주'를 강조하고 있다.

    귀국 직전 대변인이 발표한 "설 연휴 전까지 정치인과의 만남은 없을 것"이라는 말과는 상반된 행보인데, 이와 같은 노선 전환이 이뤄진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반기문 전 총장은 23일 오전 서울 마포의 한 호텔에서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 9명과 회동했다. 직후에는 오세훈 전 서울특별시장과도 인근 모처에서 회동을 가졌는데, 이는 지난 18일 만난지 닷새 만에 2차 회동을 가지는 긴박한 흐름이다.

    앞서 반기문 전 총장 측 이도운 대변인은 지난 11일 서울 마포 캠프에서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당분간 국민들과 소통하겠다고 했는데, 정치인을 만나는 게 바람직한지는 생각해봐야 할 일"이라며 "설 연휴까지는 삶의 현장에 다니는데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 설 연휴가 되지 않았는데도 정치인과의 회동이 시작됐고, 그것도 오세훈 전 시장의 경우에는 짧은 간격으로 여러 차례 만날 정도로 회동이 잦다. 오간 대화의 내용이 전해진 것만 봐도, 단순한 '귀국 보고'나 의례적 상견례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반기문 전 총장이 지난 주에 집중했던 '대국민 귀국보고' 과정에서 뭔가를 느끼고, 행보의 방향을 선회하기로 결단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반기문 전 총장은 지난 주 영남·호남·호서 등 전국을 돌며 '대국민 귀국보고' 형식의 민생 투어를 진행했지만, 그 과정에서 일부 음해 세력의 집중적인 공격에 노출됐다. 대권주자로서 음해에 노출된다는 것은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문제가 된 것은 대응이 부실했다는 점이었다.

    지난 12일 귀국 이후 지난 열흘 간은 각 매체가 반기문 전 총장의 일거수일투족을 연일 보도하고, 이에 따라 국민의 눈과 귀가 모두 반기문 전 총장에게로 쏠리는, 이른바 '컨벤션 효과'가 집중된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기문 전 총장의 대권주자로서의 지지율은 인상적인 상승세를 그리지 못했다.

    결국 현실정치에서는 대권주자를 뒷받침해주는 정당 조직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오세훈 전 시장에게 손을 내민 것은 바른정당에 입당해 설 연휴 직후부터 시작될 경선전에 뛰어들 채비를 갖추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오세훈 전 시장은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에 입당한지 얼마되지 않았다. 23일 창당준비위원회의에서는 원외당협위원장의 대표 격으로 최고위원에 추대됐다.

    반기문 전 총장이 바른정당 이외의 당적을 갖게 되거나 독자 창당을 하게 된다면, 오세훈 전 시장이 반기문 전 총장을 돕기 위해서는 또다시 탈당을 해야 하는데 이는 정치 현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서는 바른정당 정병국 중앙당창당준비위원장이 이날 MBC라디오 〈시선집중〉에서 "(오세훈 전 시장이 반기문 전 총장을 돕는다는 것은) 반기문 전 총장이 (바른정당과) 다른 당적을 갖는다고 하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간명하게 설명했다.

    그러면서 "반기문 전 총장이 당적을 갖지 않고 제3지대론을 거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이른 시일 내에, 설 전에라도 당을 선택한다면 선택해야 한다"고 결단을 요구했다.

    오세훈 전 시장도 이날 바른정당 창당준비위원회의가 끝난 직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반기문 전 총장에게 바른정당 입당을) 당연히 권했다"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그분도 고민 중"이라는 기류를 전했다.

    결국 바른정당 입당을 어느 정도 심중에 둔 상황에서, 입당 이후 벌어진 유승민 의원·남경필 경기도지사와의 경선전에 대비해 바른정당 내부에 일정 부분 지분과 조직을 갖고 있고, 바른정당 최고위원으로서 경선 룰 결정에 관여할 수 있는 오세훈 전 시장에게 "도와달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기문 전 총장이 지난 20일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과 통화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당시 반기문 전 총장은 김무성 의원에게 협력을 구하는 내용의 통화를 한 뒤, 전화를 끊고나서 주변 인물들에게 "김무성 대표는 사심이 없는 분"이라고 극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무성 의원은 바른정당 내부에 강력한 조직력을 구축하고 있는데, 향후 자신의 정치 행보와 관련해 긍정적인 메시지를 받은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하면, 정치적으로 볼 때 입당 전에 남은 과제는 '입당의 모양새'다. 반기문 전 총장쯤 되는 거물이 홀홀단신으로 입당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그림'이 좋지 않다.

    또, 입당 후의 지분 문제나 여러 가지 정치 현실을 고려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세(勢)를 갖추고 입당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날 새누리당 박덕흠·권석창·이만희·최교일·이양수·이철규·민경욱·박찬우·김성원 등 초·재선 의원과 만나 "끝까지 간다"며 "중도 하차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것은 이러한 의미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선 완주(完走) 의사를 강조하면서 '염려 말고 나를 도와도 된다'는 의사를 강력히 전달한 것이다.

    특히 바른정당은 현재 31명 소속 의원의 선수(選數)가 92선에 달할 정도로 다선(多選) 중진의원 위주로 구조가 편향돼 있어, 취약점인 초·재선 의원들을 반기문 전 총장이 모아서 합류한다고 하면 당세(黨勢)에도 의미심장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민경욱 의원은 이날 반기문 전 총장과의 회동 직후 취재진과 만나 "마음에야 그런 게 있었을지 모르지만 (도와달라는) 명확한 언급이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내가 기억하는 한은 없다"면서도 "분위기가 우호적이었고, 이렇게 좋은 이야기를 해줘서 고맙다는 말씀이 있었다"고 전했다.

    반기문 전 총장도 회동을 마치고 나서면서 취재진과 만나 "앞으로의 행보나 진로에 대해 아주 고귀한 의견을 많이 들었다"며 "앞으로 그러한 방향으로 추진해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