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죄 법리 구성에 회의적… "여론에 의지한 궁색한 영장 청구" 지적도
  • 박영수 특검팀 이규철 대변인이 16일 오후 서울 대치동 특검사무실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영장청구 및 수사진행상황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사진 뉴시스
    ▲ 박영수 특검팀 이규철 대변인이 16일 오후 서울 대치동 특검사무실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영장청구 및 수사진행상황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사진 뉴시스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박영수 특검팀이 1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검팀이 이 부회장에게 적용한 혐의는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 위반(위증) 등 3가지다.

    특검팀은 관심이 집중된 뇌물죄 적용과 관련해 제3자 뇌물죄와 단순(일반)뇌물죄를 모두 적용했다고 밝혔다. ‘뇌물공여’는 단순(일반)뇌물과 제3자 뇌물공여를 구별하지 않기 때문에, 수수(收受)자를 기준으로 두 혐의가 모두 공소사실에 포함된다는 것이 특검팀의 설명이다. 다만 특검팀은 두 가지 항목이 공소사실 가운데 어느 부분에 해당하는지는 언급하기 어렵다고 했다.

    특검은 이재용 부회장이 자신의 경영권 승계가 걸린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을 위해,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지원을 요청(부정한 청탁)했고, 그 대가로 박 대통령과 이익을 공유하는 최순실씨 측에 430억원대의 금전을 건넨 것으로 판단했다.

    특검이 밝힌 ‘뇌물 430억원’에는 삼성전자가 최씨의 독일법인인 코레스포츠(비덱스포츠 전신)와 체결한 220억원대의 컨설팅계약, 삼성이 최씨의 조카 정시호씨가 주도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후원한 16억2,800만원, 삼성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을 위해 출연한 204억원이 모두 포함됐다.

    덧붙여 특검팀은 뇌물죄 적용과 함께, 이 부회장이 최순실씨 측에 건넨 430억원 가운데 상당수가 회사 돈이기 때문에 특경법 상 횡령죄도 적용했다고 밝혔다.

    특검은 이 부회장에 대한 뇌물죄 적용과 관련해 “영장 청구 결정과정에서 사실관계와 법리적용에 큰 이견이 없었다”고 밝혀, 구속사유 입증 및 공소유지에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특검은 이 부회장에 대한 뇌물죄 적용의 전제가 되는,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 사이의 이익 공유관계 입증과 관련해선, 이를 뒷받침할만한 물증을 충분히 확보했다고 했다.

    특검이 이 부회장을 구속기소하기로 결정하면서, 이제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 특검 현판식에 참석한 박영수 특검. ⓒ 사진 뉴시스
    ▲ 특검 현판식에 참석한 박영수 특검. ⓒ 사진 뉴시스


    남은 쟁점은 이 부회장에게 특검이 주장한 것과 같은 구속사유가 있는지, 특검의 법리구성은 적절했는지의 두 가지로 모아진다.

    특검은 이 두 가지 쟁점과 관련해 자신감을 보였지만,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청구 사실이 전해진 직후 기자가 만난 법조인들이 보인 반응은 온도차가 적지 않았다.

    현직 변호사들은 대부분 “특검이 혐의를 입증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일부 변호사는 ‘궁색한 기소’라는 표현을 빌려, 특검이 무리수를 두고 있다고 꼬집었다. 특검이 법리보다는 우호적 여론에 의지해 영장 청구를 강행했다는 견해도 나왔다.

    무엇보다 변호사들은 특검의 법리 구성이 예상보다,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기자는 특검이,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 청구 방침을 밝힌 뒤, 현직 변호사들과 로스쿨(법대 포함) 교수 7명에게 의견을 구했다. 질문의 내용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특검이 밝힌 공소사실에 대한 동의 여부였으며, 다른 하나는 이 부회장에 대한 특검의 구속영장 청구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 질문에 응답한 7명은 각자 실명 혹은 익명으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기자의 질문에 답변을 한 7명은 모두 법조 혹은 교수경력이 10년 이상인 중견 법조인들이었다.

    이 가운데 6명은 변호사 자격이 있으며, 다른 한명은 한국상사법학회장을 지낸 현직 로스쿨 교수다. 변호사 자격이 있는 6명 가운데 법원·검찰 출신은 2명으로, 한명은 검사(지검장), 다른 한명은 판사를 역임했다.

    응답자 7명 중 이재용 부회장 구속에 긍정적 반응을 보인 사람은 1명, 부정적 입장을 나타낸 사람은 6명이었다.

    긍정적 입장을 밝힌 사람은 현직 변호사 A씨로, 그는 “정경유착을 끊는다는 차원에서 단죄가 필요하다고 본다”며, “특검도 이런 관점에서 접근했을 것”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다만 A변호사는 법원의 영장실질심사 전망을 묻는 질문에 “사실관계, 증거조사, 법리 검토를 통해 영장을 기각할 가능성은 있다”고 했다.

    A씨를 제외한 나머지 6명은 모두 ‘특검의 영장 청구는 과했다’는 취지의 답변을 내놨다. 이들이 영장 청구를 부당하다고 보는 구체적 이유는 서로 달랐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특검 조사를 마치고 13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별검사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 사진 뉴시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특검 조사를 마치고 13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별검사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 사진 뉴시스


    구속영장청구의 구체적 사유가 존재하는지 회의적이란 반응을 보인 대표적 전문가는 최준선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다.

    회사법 및 국제거래법 전문가인 최순선 교수는 검찰과 법원이 인정하는 영장 청구의 3가지 요건을 ①도주우려 ②증거인멸 ③혐의가 중대한 경우 등 3가지로 구분하면서, 위 3가지 요건 중 어느 한 가지에 해당될 때 법원이 영장을 발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 위의 3가지 조건 중 어느 하나에도 해당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검찰의 영장 청구는 “과하지 않나 생각된다”고 했다.

    다음은 이에 대한 최준선 교수의 답변.

    “교수와 현직 공무원처럼 신원이 확실한 경우라면 대개 영장 청구 자체를 잘 하지 않거나, 청구를 해도 기각되는 사례가 많다.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없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 교수나 공무원은 아니지만 그 못지않게 신원이 확실하다고 봐야 한다. 압수수색을 3번이나 하고 조사를 22시간 넘게 한 점을 고려한다면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도 없다고 보인다. 출국금지가 됐기 때문에 도주우려 사유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남은 건 ‘중대한 혐의’인데, 물론 이건 생각하기 나름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가 하나 있다. 이 부회장에게 검찰이 적용한 범죄(뇌물) 혐의 자체가 성립이 될지 안 될지, 현재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굉장히 갈리고 있다. 판검사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법원이, 혐의가 중대하다고 해서 영장을 발부하긴 어렵다고 본다. 이런 사정을 전부 고려할 때 특검의 영장 청구는 조금 과하지 않나 싶다.“

    - 최준선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

    특검이 이 부회장에게 적용한 ‘뇌물죄’가 역설적으로 영장기각의 주요한 사유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은 상당히 많이 나왔다.

    박진식 법무법인 넥스트로 변호사는 “검찰의 언론발표를 보면 법리적으로 뇌물죄 혐의 입증이 상당히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서울 강남의 로펌 파트너변호사 B씨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B변호사는 “특검이 발표한 ‘부정한 청탁’이 실제 법리적으로 구성이 가능할지 회의적”이라며, “특검의 영장 청구사유를 보면 궁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B변호사는 “뇌물죄에 있어서는 액수 특정이 관건”이라며, “이 부분이 소명이 안 돼 영장이 기각 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B변호사는 “검찰 발표를 보면 뇌물로 본 액수가 너무 광범위하고 추상적”이라며, 이 부분에 대한 검찰의 입증이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박진식 변호사는 “신분이 확실하고 도주우려가 없는 뇌물공여자를 구속할 때는, 공여자가 다수의 사람에게 뇌물을 뿌렸고, 그를 구속하지 않으면 다수의 수수자와 입을 맞출 가능성이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사정이 없는 상태에서 공여자를 구속하는 경우는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했다.

    서초동에 있는 로펌 파트너변호사 C씨도 “특검이 이재용 부회장의 대가성을 입증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C변호사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부정한 청탁의 대상으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최준선 교수는 “검찰 발표에 따르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이 이미 성사된 뒤 삼성이 뇌물을 준 것이 되는데, 이게 과연 법리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특검의 법리구성은 회의적”이라고 평가했다.

    최 교수는 “일이 끝난 다음 돈을 준다면 그건 사례의 성격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고, 일이 끝난 뒤 뇌물을 준다는 건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 교수는 “내가 알기론 그런 판례도 없다”고 강조했다.

    특검이 기본적으로 전제한 사실, 즉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이익을 공유하는 관계에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회의적 반응이 나왔다.

    “경제공동체는 부부간에도 인정이 안 된다. 그런데 특검은 박 대통령과 최씨가 이런 관계가 있다고 했다. 그걸 전제로 뇌물죄를 적용했는데, 이 부분은 법리적으로 크게 다툼이 있을 것으로 본다.”

    - 최준선 성대 로스쿨 교수.

    특검의 발표내용이 안고 있는 모순을 지적하는 견해도 있었다.

    인천지법 판사출신인 이재교 세종대 교수는,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204억원 전부를 뇌물로 본 특검 발표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단법인의 재산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설립의 바탕이 되는 기본재산이 있고, 다른 하나는 운영(보통) 재산이 있다.

    운영 재산은 개인인 누군가가 이사회를 자기사람으로 채운다거나 하는 방법으로 독식하거나 전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기본재산은 이렇게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성격이 돈이 아니다.

    삼성이 출연한 돈이 운영재산이 아닌 기본재산이라면 이걸 뇌물로 볼 수는 없다. 대가성을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 이재교 세종대 교수.

    삼성이 두 재단에 출연한 돈은 특검이 밝힌 것처럼 모두 204억원이다.

    삼성은 2015년 10월26일 미르재단에 125억원을 출연했으며, 미르재단은 이틀 뒤인 10월27일 설립됐다. K스포츠재단에 기금을 출연한 시기는 지난해 1월12일, 삼성은 이날 79억원을 지원했다. K스포츠재단은 하루 뒤인 1월13일 설립됐다.

    두 재단에 대한 기금 출연 시기는, 이 돈을 뇌물죄로 볼 수 있을지 여부를 판단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르·K스포츠재단 기금 출연이나 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을 뇌물로 판단한 부분에 대해서는,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 전체를 뇌물로 보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전직 검사장 출신의 원로 변호사 D씨는, “이런 식으로 구속하면 대기업 가운데 살아남을 곳이 없다”며, 특검이 현실을 도외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D변호사는 문화나 스포츠재단 기금 출연을 뇌물로 보기 시작하면, 기업의 사회공헌이란 개념 자체가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D변호사는 이 부회장에 대한 특검의 영장 청구는 “대통령을 뇌물죄로 엮기 위한 작위적 결정”이라며, 특검이 무리수를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업의 사회공헌을 뇌물로 보기 시작하면 공익재단이나 스포츠·문화진흥 같은 건 생각도 할 수 없게 된다.

    역대 정권도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언제나 기업의 후원 혹은 지원을 직간접적으로 독려해 왔다.

    자본주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그 대안으로 나온 게 기업의 사회공헌이고 공익재단 출연인데, 이를 뇌물로 보기 시작하면, 역기능이 매우 크다.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 청구는 대통령을 뇌물죄에 얽어 넣기 위한 작위적 행위라고 본다.
    특검이 정말 무리를 하고 있다.

    - 지검장 출신 D변호사.

    특검이 우호적인 여론에 의지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의견은 다른 전문가들에게서도 나왔다.
    ‘증거는 차고 넘친다’며 수사에 자신감을 보인 특검이 자가당착에 빠졌다는 흥미로운 분석도 있었다.

    “일단 여론이 같은 편이니 여론을 믿고, (뇌물)액수 크게 때리고 법원에 공을 넘긴 것이다. 여론이 받쳐주니까 끝까지 밀고 가자는 것인데 법원에 가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 B변호사.

    “특검은 그 동안 매일 언론브리핑을 통해 ‘증거는 차고 넘친다, 입증할 자신있다’고 큰소리를 쳐왔다. 이제 와서 영장을 청구하지 않는다면 말이 안 된다. 특검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자가당착에 빠진 셈.”

    - 최준선 성대 로스쿨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