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서 "군대와 관련된 건 피할 수 있으면 좋다" 군기피 문화 조장 파문

  • 흔히들 언론을 '등대'에 비유하는 이들이 많다. 배들이 안전한 항해를 할 수 있도록 어두운 밤바다를 환하게 비추는 등대처럼 언론 역시 독자들이 길을 잃거나 좌초되지 않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최근 국내 언론의 보도 행태를 보면 뱃길을 밝히기는 커녕, 바다에 떠 있는 배들을 천길 낭떠러지로 인도하는 사이렌(siren)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원리원칙대신 '감성'에 호소하고, 신념과 소신 대신 '기회주의'를 택하는 게 국내 메이저 언론의 현실. 독자들을 끌어모으기 위해선 선정·선동적인 표현도 마다하지 않고, 사실 확인은 뒷전, 아젠다를 선점하는데에만 혈안이 돼 있는 언론사들이 부지기수다.



  • "헬조선 건아로 태어난 이상 신검 피할 수 없어"


    지난 13일 네이버 사회면에 "<나만 그런가> 신검 앞둔 스무살, '그 분' 앞에만 서면 왜 떨리는가?"라는 특이한 제목의 기사가 올라 왔다. 클릭해보니 이날 오전 조선일보에서 작성한 기사였다. 그런데 첫 문장부터 눈에 거슬렸다.

    병역판정검사(이하 신검)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헬조선 건아로 태어난 이상 신검을 피할 길은 달리 없다.


    헬조선?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국내 최고의 미디어집단을 자처하는 조선일보에서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져야 할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을 '헬조선의 건아'라고 지칭한 것이다. '헬조선'은 최근 젊은층에서 유행하는 신조어로, '대한민국이 마치 지옥과도 같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자학적인 단어다.

    첫 문장부터 이런 단어가 등장했다는 건 '화자(話者)' 역시 지독한 '국가 혐오증'에 매몰됐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같은 글이 일개 블로거가 올린 '일기'가 아니라, 신문사에서 정식으로 출판된 '기사'라는 사실이다.

    하나의 기사가 출고되기 위해선 지면 회의와 선임 부장의 데스킹(Desking) 등 수차례 검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는 대한민국을 '헬조선'으로 폄훼하고 병역판정검사 자체를 조롱하는 글에 대해 조선일보의 담당 데스크와 국장 모두 '오케이 사인'을 내렸다는 얘기다.

    가벼운 칼럼 형식으로 쓰여진 이 글은 병역판정검사 과정과 군대 문화에 대한 비아냥으로 점철돼 있었다.

    글 속에 등장하는 징병전담의사들은 신검 대상자들에게 반말이나 찍찍해대는 '꼰대'들로 묘사돼 있다.

    심지어 이들은 '한쪽 귀가 잘 안 들린다'는 신검 대상자에게 "귀 좀 나빠도 군 생활은 잘 할 수 있다"고 타이르고, '손가락도 잘 안 구부러진다'는 대상자에게 "손가락 좀 아파도 군 생활은 잘 할 수 있다"고 박박 우기는 비인간적인 군상으로 등장한다.

    신검 대상자 : 제가 한쪽 귀가 잘 안 들리고요….

    의사 : 귀 좀 나빠도 군 생활 잘해요.

    신검 대상자 : 손가락도 이렇게… 잘 안 구부러지고요.

    의사 : 손가락 좀 아파도 군 생활 잘해요.


    '화자'는 이렇게 고압적인 징병전담의들에게 '당당히' 대들라고 부추긴다. 이를테면 신체검사 등급을 복명복창시키는 징병전담의들이 있으면 일단 점잖게 타이르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으라는 식이다.

    혹시나 징병전담의가 시비를 걸면 댁이 뭔데 나한테 명령이냐며 점잖게 타이르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자. 가끔 징계를 먹고 나서 자신을 신고한 신검 대상자에게 욕설문자나 전화를 날리는 악질도 있는데, 낯선 번호로 연락이 오면 녹음과 캡처를 잘해서 치킨 값을 벌도록 하자.


    또한 '화자'는 이미 90년대에 사라진 '항문검사'를 굳이 다시 언급하며 대한민국의 '신검 문화'를 신랄하게 비난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이 문장에선 '듀얼 코어'나 '후장 검사' 같은 낯뜨거운 단어들이 등장해 과연 이 글이 기사인지 일기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다.

    90년대까지는 치질 여부를 보고 듀얼코어가 제대로 달렸는지 확인하려 신검 때 후장 검사를 했다. 하지만 2000년도 이후로는 전국 어느 병무청에서도 이런 검사는 하지 않는다.

    간혹 아재들이 무용담처럼 병무청에서 뒤를 깐 이야기를 하고, 형들이 가끔 애들 놀린답시고 신검때 후장 검사 한다는 썰을 푸는데, 이제 안그러니 너무 걱정 말자.


    이 '기사'의 말미는 더욱 가관이다. '화자'는 "징병신체검사는 시작일 뿐"이라며 "병무청에서 신검 때 겪는 일은 군대에 비하면 프롤로그 축에도 끼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어차피 대부분 장정은 병영에서 글 한 편에는 다 담지도 못할 온갖 '해괴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며 군 생활 자체를 '커다른 재앙'이라고 묘사한 것.

    나아가 '화자'는 "군대와 관련된 건 피할 수 있으면 가급적 피하는게 좋다"며 '군 기피'를 되레 부추기는 듯한 선동적인 화법까지 전개한다.

    하지만 큰 재앙이 다가온다 해서 코앞에 있는 소소한 재난을 온전히 받아낼 필요는 없다. 입대해 보면 알겠지만, 군대 관련된 건 피할 수 있으면 가급적 피하는게 좋다. 잘 준비해 봉변 없는 보람찬 신검이 되도록 하자.




  • '안보 의식' 갉아 먹는 국내 언론


    안보 전문가들은 최순실 게이트로 정권에 대한 피로감이 극에 달한 이때 국민들의 '안보 의식'이나 '정신무장'마저 흐트러진다면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치명적인 위험이 발생할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안보의 기본은 국민 스스로 내 가정과 내 나라를 지키려는 마음가짐을 갖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두 번째는 이같은 안보 의식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국방(병역)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국방·안보 정책을 강화하고 무기를 사들여도 안보에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근자에 '헬조선'이란 신조어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과 맞물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불합리한 희생'으로 터부시하는 이들이 늘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온라인에선 "헬조선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해봤자 '국방의 노예' 밖에 더 되겠느냐"며 대한민국을 불신하고 국민의 기본적 의무를 거부하는 글들까지 난무하는 실정이다.

    솔직히 안보의식 제로거든요. 헬조선에서 국방의 의무 다해봐야 국방의 노예라고 생각해서…. 전쟁나면 총알받이 노예밖에 더 되나 싶구요. 저는 이 나라를 위해서 '안보'를 수호할 생각 추호도 없어요.


    남북한이 대치 중인 상황에서 국민이 '국방의 의무'를 감당하는 것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숭고한 국방의 의무를 부질없는 '시간 낭비'쯤으로 여기는 국민들이 늘어날수록 국방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모름지기 제대로 된 '등대'라면 어두운 바다를 비춰 배들이 급류에 휩쓸리지 않고 암초를 피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마찬가지로 나라의 근간을 뒤흔드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면 마땅히 언론인들이 이를 꾸짖고 계도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하지만 다수의 국내 언론은 '국가 혐오'를 부추기고 군대를 이질적인 집단으로 매도하는 동태(動態)를 먼 산 바라보듯 관망하는 모습이다. 심지어 국내 언론의 '맏형'을 자처하는 조선일보는 자사 지면에 대한민국을 '헬조선'으로 치부하는 조롱조의 칼럼을 올려놨다.

    이 칼럼 한 편으로 대한민국의 헌법에 따라 병역의 의무를 부과받은 수많은 젊은이들은 '헬조선의 건아'가 되고 말았다. 병역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당위성'을 백번 천번 설파해도 모자랄 판에 조선일보는 "군대와 관련된 건 피할 수 있으면 좋다"며 되레 '군대 혐오증'을 전파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이게 정녕 저들이 주장하는 '참언론'의 모습인가? 나라의 기틀을 해칠 수 있는 칼럼을 내보낸 행위는 언론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방기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조선일보가 속히 방상훈 사장의 신년사처럼 대한민국의 기둥을 굳건히 지키고 불편부당(不偏不黨)의 사시를 되새기는 매체로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 "군 생활이 재앙? 나라에 망조가…"

    지난 13일 조선일보에 군 생활 자체를 '커다른 재앙'이라고 묘사한 글이 올라온 뒤로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예비역 장성들 사이에서 "나라에 망조(亡兆)가 깃들고 있다"는 통탄이 쏟아지고 있다.

    이희범 대한민국애국시민연합 사무총장은 17일 "국가가 뭔지, 안보가 뭔지 제대로 된 교육조차 받지 못한 학생들이 이렇게 군 문화를 왜곡시키고 군대를 폄훼하는 글을 접한다면 누구인들 군에 가기 싫다고 말하지 않겠느냐"며 "국민이 안보의식을 저버리고 헌법상에 명시된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으려 한다면 그 나라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안보 교육이 학교에서 사라진지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확고한 안보관, 국가관이 정립되지 않은 학생들이 조선일보의 이런 칼럼을 읽는다면 잘못된 선입견을 갖게될 공산이 큽니다. 학생들에게 우리가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으면 나라가 존재할 수 없다는 걸 가르쳐야 합니다.


    이 사무총장은 "정치권과 언론사가 앞장서서 군을 폄훼하고 가치를 훼손시키는 바람에 젊은이들이 군에 대해 좋지 않은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며 "이렇계 계속 군의 위상이 바닥에 떨어지고 권위가 실추된다면 궁극적으로 그 나라의 결말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라고 말했다.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분단 국가가 우리나라 아닙니까? 그런데에도 국방 예산은 계속 후순위로 밀리고 있습니다. 빼갈 수 있는 예산은 다 국방에서 빼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권과 자유를 지키고 있는 게 바로 대한민국 군인들인데 예산부터 시작해 모든 면에서 괄시를 받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먼저 군인을 존중하지 않고 있는데 일반 국민들은 오죽하겠습니까?


    모 예비역 장군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만 교육기관이 아니고, 군대 역시 팔도에서 모인 청년들을 자유민주주의국가의 일원으로 키워내는 또 하나의 '국민 교육장'이라고 생각한다"며 "부모된 심정으로 장병들을 관리하고 돌보는 군 지휘관들의 정성은 도외시하고, 단편적인 면만 보고 군대 전체를 폄훼하고 비하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밝혔다.


    군대는 내 부모 형제들의 생명을 지키는 곳임과 동시에 청년들을 진정한 국가의 일원으로 키워내는 또 하나의 '국민 교육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일선에서 장병들을 지휘하는 군 지휘관들은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심정으로, 장병들에게 지극 정성을 쏟고 있습니다.

    잠을 재우고 목욕을 시키고, 손톱 발톱 깎는 일까지 챙길 정도로 정성과 관심을 쏟는 군 지휘관들의 노고는 알지 못한채 그저 단편적인 면만 보고 '군대가 조직적으로 잘못됐다' '징병검사가 엉망이다'라고 폄훼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군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전파하고 군 기강을 해칠 수 있는 이런 글이 명망 있는 일간지에 올라왔다는 사실에 실망감과 우려를 금치 못합니다.